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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민담 전집 02 - 러시아 편 ㅣ 황금가지 세계민담전집 2
안상훈 엮음 / 황금가지 / 2003년 9월
평점 :
딱, 이거다. 내가 기대했던 민담의 세계. 어쩐지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 즐거운 이야기가 계속 계속 반복되고 있는 듯 한 행복한 기시감. 바로, 러시아 민담이 그랬다.
유럽 러시아 지역의 민담을 주로 추렸단다. 그런가....역시, 어린 시절 유럽에 치중한 <세계명작>을 읽고 자란 독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인가...그나마 절반은 동양인 터키의 민담보다, 한결 유럽풍인 러시아의 민담이 더 즐거웠다. 그러나 어쩌랴. 사실이 그런 것을. 묘하고 신비한 매력은 있었지만 기승전결은 약했던 터키의 민담과는 달리, 러시아의 민담들은 짜임새 있는 구조에 플롯도 한결 다양했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이었다. 악마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둔하고 잘 속아넘어가는 <꼬마 악마>들은 어딘지 우리 나라의 도깨비들을 연상시킨다. 힘 센 보가트리를 보고는 애기장수가 떠올랐는데, 쌍둥이 이반의 이야기가 (민담 치고는 특이하게도) 비극적으로 끝을 맺자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그럼, 여행자를 시험에 들게 하는 노파, 바바야가는 어디에다 붙이지? 산신령님?
참, 마지막 줄에 자주 등장하는 화자도 그렇다. "나도 그 잔치에 초대되어 꿀을 탄 술을 마셨지만, 수염을 타고 흘러내릴 뿐 목으로는 한 방울도 넘어가지 않았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이 화자가 등장함으로써 이야기가 허구임이 반어법 형식으로 밝혀진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이 할아버지가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가 끝나면서 읊조리는 이 두어줄의 문장은, 마치 화롯불 앞에 앉아 할머니에게 옛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민담 본연의 세계로 빠져드는 주문과도 같았다. ㅎㅎ 정작 내게는 화롯불 앞에서 옛이야기를 들어본 경험이 없는데도.^^
멋진 이야기와 더불어 중간중간 등장하는 삽화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삽화를 보고 또 보며 컬러 도판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에이, 얼른 지웠다. 그렇게 되면 책 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것인데. 여기서 만족하자.
흠...이제 슬슬 잘 시간인가? 사람은 저녁보다는 아침에 더 지혜로워지는 법이니(러시아 속담) 얼른 잠자리에 들어야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