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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읽어나가며 수시로, '부끄러움'이 나를 엄습했다. 나의 무지와 무관심에 대한 절절한 수치심.....
나는, 유대인과 아랍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온주의, 무슬림, 아랍어, 히브리어들을, 치열하게 반목하고 있는 그들을 구분짓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리 부끄러운 일만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아시아 끝 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모를 수도 있다고. 하지만 잠시 생각해본다. 리비아나 헝가리, 대한민국과 떨어진 어느 즈음엔가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남한과 북한은, 뭐가 다른거죠? 그 둘은 서로 적인가요?"하고 묻는다면? 그런 질문에 닥치면, 나는 얼마나 황망할 것인가.
이 정도까지 생각이 흐르면서, 문득 이 입장바꾸기야말로 <팔레스타인>이 주는 가장 큰 깨달음이라 느껴졌다.
인간이 인간을 공격할때는(특히 전쟁) 상대를 비인간화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한다. 사람보다는 벌레, 먼지를 없애는 것이 훨씬 수월하니까.
그리고 서문을 쓴 사이드가 설명한 <오리엔탈리즘>의 개념. 동양을 공격하고 억누르기 위해 서양이 새로 창조해 낸 <동양>의 개념. 그들은 무지하고 공격적이며 대충 신비주의로 버무려진 알 수 없는 존재 - 결론적으로 본인들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설정.
이제까지 나도 서양의 입장, 강자의 곁에 서서 팔레스타인을 비인간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테러나 좋아하고 - 이유가 뭐 있겠어, 원래 잔인한 민족이라잖아.- 무지몽매한 - 그 더운데 두건은 왜 두르고 다니는거야? 게다가 여자들을 꽁꽁 싸매고 소유물처럼 여기다니!- 민족이라 여기며, 그들에게 무지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던 것이다.
ㅎㅎ, 나와 내 민족 역시, 비인간화와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들을 깨닫고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자리를 바꿔 앉아 보는 것은, 매우 아팠지만 꼭 필요한 경험이었다.
사각의 컷으로 또박또박 나뉘어진 세련된 만화에만 익숙해 있던 눈에는, 굵은 선으로 아름다움이 아닌 분노와 절망을 담아 낸 이 그림이 낯설기만 했다. 꽤 많은 글자들, 그림 속에 파고 들듯이 흩어져 있는 그 지문들을 주워 읽는 것도 숨이 가빴고.
하지만 그런 거칠음에 어느정도 적응하고 나자, 슬슬 탄탄한 뎃셍 실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혼란스럽고 과잉된, 꽉 짜여서 넘치는 화면 자체가 지구에서 최고로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는, 한 방에 여덟 아홉이 예사로 얽혀 산다는 가자 지구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책을 덮고 생각해본다. 그들이 겪는 고문, 폭력, 절망은 일본의 압제, 또는 민주주의를 표방한 독재 권력의 아래에서 우리가 겪었던 일에 비해 더 아픈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팔레스타인, 그들이 겪는 일은 현재진행형, 내가 리뷰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이다.
답답하다.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가 느낀 이 답답함이, 과연 그들의 삶에 무슨 효용이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