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코타 패닝의 새파란 눈동자가 아니었다면, 진짜, 재미없을 뻔 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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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잡설.

일요일, 서방님과 우주전쟁을 보러 갔다. 첫 시간대였음에도 제법 많은 관객이 들었고,
내 오른쪽에는 이십대 초반쯤 보이는 예쁘장한 아가씨가 혼자 앉아 있다.
나, 예전엔, 영화란 꼭 둘 이상이 떼를 지어 봐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라딘에선 혼자서도 영화를 즐긴다는 매니아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멋진 영화평을 감상하며, '혼자 영화 보기'에 대한 편견을 버렸달까, 여하간,
혼자서 극장을 찾는 이에 대해 존경 비슷한 우호적인 감정을 품게된 바였다.

해서 난, 그 아가씨의 옆 얼굴에 씩, 웃음을 한 방 날려주고 앉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흠. 나는, 매우 새로운 형태의 적을 만났다.
앞자리에 머리 큰 분이 뻣뻣이 고개를 펴고 있다면 -------- (매우 미안한 목소리로) "저어....잘 안 보여서 그러는데...." 하면 될 것이고.
뒷자리 관객이 대동한 꼬마 손님이 시끌시끌 소란을 피우면 --------- (씩, 미소을 날리며) "쉿!!!!" 하면 될 것이고
옆 자리 다 큰 어른들이 경우 없이 떠들어대면 --------- (혼잣말을 가장하여, 그러나 확실히 들리도록) "거 되게 시끄럽네!!!" 하면 될 것이지만.....

이 아가씨의 경우, 올바른 대처 방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아가씨가 구사한 다양한 스킬의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1. 심하게 헐떡대기 - 주로 공포, 혹은 긴장이 고조되는 장면에서. (그러나 사실 그다지 무섭지도 않았다구.ㅠㅠ) "허억...허억...허억....허억.....헉헉헉헉..." 그 시끄러운 영화관에서도, 반경 2m 이내의 관객은 다 들었음직한 헐떡거림. 후반으로 갈 수록 정도가 심해져서, 나는 잠시 짜증을 접고 심장병...호흡관련한 질병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2. 두 손을 꼭 모으고 바들바들 떨기 - 글쎄, 이 정도는 봐줄 수 있는 일 아니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여기에 "안 돼!" "어머나, 뒤에!" 등의 작은 외침이 더해지면, 도저히 신경을 끌 수가 없다. ㅠㅠ

3. 좌석 손잡이를 잡고 바들바들 떨기 - 2번의 변형된 형태. 좁다 보니, 그 진동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ㅡ,,ㅡ

4. 혼잣말, 그러나 너무도 잘 들리는 혼잣말 - 2번에 명시되었듯 "안 돼!" "어머나, 뒤에!!" "세상에~" "어떻게 해, 어떻게 해!" 등 레파토리도 다양한 탄성들...... 가끔 절래절래 도리질도 치더라.

게다가 저런 재증상들이 둘 이상, 심할 때는 서너 개씩 중복되어....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영화를 보는 내내 지속되니, 미칠 지경이었다.
영화에 진정 빠져들어 온몸으로 감상하고 있으니, 뭐라 말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가만 버티자니 짜증이 물밀듯......

내가 그녀와 사랑에 빠진 지 딱 한 달째 되는 남자였다면, "오우~ 우리 자기는 겁 많은 비둘기 같아~~~"하며 어깨라도 감싸주겠지만,
나는, 그녀와 아무 상관 없는 여자였고, 영화는 기대보다 그닥 재미가 없어 실망스럽던 차였으며, 나의 팝콘 씹는 소리가 유난히 큰 것 같아 민망해하는 예의바른 관객(?)이었던 것이다. ㅡ,,ㅡ

모르겠다.
그녀는 항상, 모든 영화를 그렇게 온몸으로 보는걸까? 혹시, 그 버릇 때문에 친구들이 함께 영화보기를 거절하는 건 아닐까? 그러다가 옆 사람에게 된통 당한 적은 없을까? 다음에 또 이런 부류를 만나면 난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녀와 분홍신을 안 본 것이 다행이라고....그렇게 생각하고 말아야 하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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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7-1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우리 자기는 겁 많은 비둘기 같아~~~" 이거 넘 재밌어요~ ^^

짱구아빠 2005-07-11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겁이 많고 영화에 대한 몰입 정도가 강한 사람인 듯 합니다. 저도 짱구엄마랑 지난 주 토요일에 우주전쟁 봤어요.. 근데 웰즈의 원작이 그랬다고는 하지만 톰 크루즈 일가족이 도망만 다니다 갑자기 외계의 침략자가 자멸했다는 식으로 풀어가서 허탈함에 몸서리 쳤습니다. 왠지 속은 듯한 기분.....

바람돌이 2005-07-11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관에서 저런 사람 만나면 정말 미치겠군요.
그 사람이 제가 사는 동네로 이사오지 않기를 정말 정말 비옵니다....^^

sayonara 2005-07-11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정말 괴롭게 봤답니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좀 지루할 것 같은 영화였는데...
역시나 수많은 어린 관객들이 떠들고, 몸을 비틀고... 통로쪽에 앉았었는데 제 옆에 앉은 아이는 화장실을 네 번을 가더군요. ㅠㅠ

진/우맘 2005-07-1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요나라님> 저런....저런....ㅠㅠ
바람돌이님>ㅎㅎㅎ 어느 동네지요? 꼭 알려줘야지. 그 동네 가서 바람돌이님 곁에 앉아 영화보라고.^0^
짱구아빠님> 뭐, 그 부분은 대략 주워들은 바가 있어서....여하간, 전반적으로 아/무/것/도 새로운 게 없더군요. '새롭다'는 충격이 빠진 스필버그는...흠....
따우> 그쟈? 얼굴은 멀쩡히 이뿌더라.....ㅠㅠ
아프락사스님> 우헐~ 묘한 데서 감동하시네요.^0^;

마태우스 2005-07-11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전쟁 영화평 중 최고로 멋졌습니다. 추천합니다

마태우스 2005-07-11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만 추천했네요! 이 훌륭한 글에...

클리오 2005-07-11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그런 분을 만날 확률도 있군요. 진/우맘님의 자기위로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ㅋㅋ

숨은아이 2005-07-11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짜까. 모금운동을 해서 그 언니에게 홈 시어터 시스템을... ㅎㅎㅎ
그건 그렇고, 어릴 적에 세계명작전집에서 읽었을 때도 참 재미없고 지루했어요.

sooninara 2005-07-1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하게 헐떡대기에서 왜 에로영화가 생각나지?????????
난 전에 옆에 앉은 사람을 막 때리면서 영화 봤는데..나중에 욕 바가지로 먹었음^^

꼬마요정 2005-07-11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주위에 별 신경을 안 쓰는 타입입니다. ^^ 제 앞에 큰 머리들이 여럿 있는 경우만 제외하구요... 저 자체가 영화를 보면서 감동 받을 때 우는 것 빼고는 반응을 안 하거든요...^^;; 아 맞다! 또 한 경우, 저번에 영화 보러갔을 때 왠 할아버지가 영화 중간에 길게 트림을 끄~윽 그것도 큰 소리로 하시는거에요... 어찌나 비위가 상하던지.. ㅠ.ㅠ

날개 2005-07-11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한 줄짜리 영화평 넘 좋아요~~>.< 저도 추천할래요~

진/우맘 2005-07-12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님은 영원한 내 사랑~
꼬마요정님> 헉.....방귀는 없었나요? ^^;
효주님> 저도 그런 부부 만나봤는데!!!!
수니성> 그러게 말유.....그나저나, 옆에 앉은 사람이 아는 사람이었나요? ^^
숨은아이님> ㅋㅋㅋ
클리오님> 처절한 자기위로지요? ^^;;
마태님> ㅎㅎ 마태님 뿐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