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알라딘 문화초대석에 당첨되어 아들과 함께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연극 "우주인"을 관람했다.
늘 가족 또는 옆지기와 함께 뮤지컬, 콘서트, 영화, 연극 등을 보다가 범석 군과 단둘이 연극을 관람하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남다른 하루였다.
나는 자동차로, 범석군은 지하철을 이용하여 대학로예술극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먼저 도착해서 표를 전달받고 석이를 기다렸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미리 만나서 저녁식사를 한 후 관람할 예정이었으나 석이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연극부터 관람을 했다.
극장에 들어서자 야릇하고 애매하기 짝이 없는 복장을 한 무표정한 배우들이 복장에 적합한 음악을 반복적으로 연주하면서 관객들을 맞고 있다. 석이와 둘째 줄에 자리를 잡고 어떤 내용의 연극일까 궁금해 하면서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깜깜한 상태에서 배우가 등장하고 연극이 시작됐다. 연극의 제목과 내용이 엉뚱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에 호기심있게 지켜봤다.
연극의 줄거리는 하루수입이 고작해야 2만원정도인 대리운전기사와 생수를 판매하는 외판영업사원, 떡볶이 장사를 하다가 망한 후 우주의 별을 관측하는 사람 등 3명이 주인공이다. 모두가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과 소심하기 때문에 늘 위축된 생활로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체 살아가는 소시민들이다.
어두운 밤, 대리운전을 하다가 낯선 곳에 남게 된 대리운전기사, 학교후배이자 군대 후임이었던 부장에게 사실 상 퇴출명령을 받고 책상과 의자까지 짊어지고 그 곳으로 생수를 판매하러 온 영업사원 그리고 천체망원경을 짊어진 체 우주를 관찰하러 그 곳에 온 떡볶이 장사가 서로 만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로 극이 전개된다. 한번도 자신감있는 삶을 살지 못한 사람들이기에 만남자체도 조심스럽고 소심하다. 대리기사에게 생수, 영업사원에게 대리운전을 부탁하려는 서로의 처지가 우스꽝스럽고 처량하다. 떡볶이 장사에 실패한 후 아내를 잃고 방황하면서 늘 쫓겨날 것이라는 트라우마에 갖힌 떡볶이 장사, 어찌 보면 그들은 사회의 패배자들이다.
스스로가 패배자임을 잘 알기에 늘 소심하면서 주눅들어 있고 수동적이다. 자신의 살아온 삶을 회상하고 한탄하다가 감정에 복받쳐 서로 싸우게 되고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소심한 사람끼리의 싸움을 통해 그런 자아를 발견한다는 것이 약간은 어설프긴 하다. 주먹질은 커녕 욕도 제대로 못하고 늘 당하기만 했던 그들이 마음먹기에 따라 보다 역동적이고 미래에 대한 꿈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용기를 얻으면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극 내용은 줄거리가 보여 주듯 심플하지만 중간중간 몽환적 요소의 배경과 대사없이 등장하는 우주인들의 우스꽝스런 춤과 몸짓으로 세명의 주인공 주변을 배회하는 난해함도 있다.
<연극 끝나고 쌀레뻬뻬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적극성이 결여되고 소심해진 범석군에게 딱 맞는 연극이었다. 동생인 해람양의 월등함에 늘 주눅 들어 있다보니 잘해도 부모님의 기대치를 충족할 수 없을 것이라는 단정을 한 범석군이 고등학교 진학에 엉뚱한 진로를 결정한다. 아무도 그런 결정을 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도, 옆지기도, 담임쌤께서도 가족 모두가 상상해보지도 않았던 그 녀석만의 고등학교 진학! 많은 상담과 오랜 고심 끝에 녀석의 결정을 존중해주고 인정하기로 했다.
"저의 결정이 지금은 아빠, 엄마의 기대와 다르지만 나중에 저를 인정해 주신 것에 대하여 절대로 후회하지 않게 좋은 결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극장옆 쌀레뻬뻬로 옮겨 아들과 오붓하게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극이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범석군도 많은 생각을 했겠지만 녀석의 진로결정과 허락에 대한 심정이 어지럽게 얽히고 설켜 복잡하다. 라이브 음악의 흥겨움과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 속에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군상들이 복잡한 마음을 대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