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쟁반처럼 둥근 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는 정월 대보름이다. 초저녁부터 전등이 없는 부엌과 뒷간 등에 촛불을 켜놓으시던 할머니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1. 밤새 하얘진 눈썹
초딩 4년때 전기불이 들어왔으니 등잔불, 남포불을 모두 경험했다. 눈썹이 하얘진다는 말에 쏟아지는 졸음을 참다 지쳐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니 정말로 눈썹이 하얘져 있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삼촌이 놀려주려고 눈썹에 밀가루를 입혀 놓았던 거다.

2. 가족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던 고사
할머니는 열나흘 밤이면 마른명태와 떡시루를 소반에 올려놓고 냇가로 나가 용왕님께 고사를 지내셨고, 고사가 끝나면  그 떡들을 조금씩 덜어 고사지낸 냇가의 큰 바위, 수돗가, 장독대, 뒤주, 화장실 등에 올려 놓기도 했다. 떡을 먼저 차지하려고 고사 지내는 바위뒤에 숨어있는 사람으로 인해 기겁을 하고 놀란 적도 있다. 고사 지낼 때 할머니의 주문이 궁금해 벌벌 떨면서 지켜봤지만, 만사형통, 무병장수 외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대보름엔 하루에 아홉 끼를 먹고, 반찬도 주로 나물과 차가운 탕 종류를 먹는다. 그 외에도 부럼 깨기, 귀밝이술 마시기, 더위팔기, 달집태우기, 달맞이, 쥐불놀이 등의 세시풍속이 전해져 온다. 
이런 영향일 까 오늘 해람이와 네이트온을 하면서 옆지기가 빨리오라는 주문을 전달 받았다.
이유는 일찍 저녁을 먹는 날이기도 하고 오곡밥을 가족과 같이 먹을려고 한단다. 그래 일찍 들어가서 가족들과 함께 대보름 전야를 즐겨보자. 

3. 밥 훔쳐 먹기 놀이
보름날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밥을 훔쳐 먹으러 다녔다.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던 시절의 풍습으로 동네 꼬맹이들이 올 줄 알고 찬장이나 가마솥에 밥 한그릇씩 더놓아 가져가도록 했던 것이다.
말이 훔쳐오는 것이지 알아서 가져가라고 준비를 해 준 것이니 옛날 사람들의 인심씀씀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모아온 밥을 합쳐 각종 나물과 참기를 등을 곁들여 비벼먹는 그 맛은 지금도 구미를 당기게 한다. 
 
4. 깡통불 돌리기
겨울철 불놀이 중에 깡통 돌리기를 빼놓을 수 없다.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내거나 칼로 깡통을 조금씩 찢은 후 솔방울 몇 개와 장작개비를 넣고 관솔로 불을 지펴 어깨가 아프도록 돌리다 하늘을 향해 던지면 은하수를 뿌려놓은 듯 했다. 여럿이 동시에 던지면 불야성을 이뤘는데 지금의 불꽃놀이보다 아름다웠던 것 같다. 대부분이 동네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올라가서 이 놀이를 했고, 각 동네이산, 저산마다 깡통불을 들고 이동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그러다 산불이 나기도 했기에 언제부턴가는 산에서 할 수 없도록 통제되었다. 
깡통에 관솔(소나무에 송진이 모여서 만들어진 옹이)을 태우기 위해 보름전부터 친구들과 산으로 관솔을 따러 다니기도 했다.

5. 할머니께 더위 팔고 혼난 사건
보름날 아침에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 대답했을 때 "내 더위 사가라"라고 하면 그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더위팔기’ 풍습이 내려오는데, 새벽부터 일어나 동네를 돌며 친구들을 부르며 더위를 팔러 다녔고, 팔기보다는 오히려 얻어먹은 것이 더 많았다. 상대가 대답대신에 "내 더위나 사가라"라고 했으니 말이다. 
더위를 어른에게 팔았다가는 뒤지게 혼나는 것이 다반사였고, 너무 어린 사람에게 팔아도 못난이 대접을 받았다. 
더위를 팔아야 여름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다는 말을 100% 믿었던 시절이었기에 지금 생각하면 저절로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답답하고 급한 마음에 “할머니~” 하고 불렀더니 부엌에서 일하시던 할머니가 “왜그려~”하시기에 “할머니 내 더위 사가세유” 했다가 아버지에게 된통 혼났었고, 이제는 풍요와 정이 넘치는 추억이 되었다.   

대보름은 어린시절 빼놓을 수 없는 추억거리다. 지금이야 먹을 것이 지천이고 산업의 발달로 농경생활이 점점 사라짐과 동시에 이러한 풍속도 하나둘 없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건강한 문화와 풍습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일도 의무이자 큰 축복이 될 텐데 우리 아이들에게 어린시절 추억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월 대보름달이 차면 온 가족의 무탈함과 소원을 다 같이 빌어봅시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ookJourney 2008-02-20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들은 이런 풍속을 그저 옛이야기로만 들으며 지낼 것 같아 아쉬워요 --;

전호인 2008-02-21 12:52   좋아요 0 | URL
글게 말입니다.
직접 보여주고 싶은 데 그럴만한 장소도 마땅챦고 실습을 해야 현실감이 있을텐데 너무 아쉽져?

소나무집 2008-02-2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아침밥을 오곡밥으로 준비했습니다.
님의 추억을 읽다 보니 저와 같은 시대를 산 게 틀림없군요.
전깃불 들어온 시기가 좀 다르지만
저의 동네는 저 국민학교 1학년 때 전깃불이 들어오고
아버지께서 엄청 덩치가 큰 흑백 텔레비전도 동네에서 제일 먼저 마련하시고 그랬죠!

전호인 2008-02-21 12:54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저는 전기들어오기 전에 동네 방앗간에서 발전기 돌려 타잔을 시청했던 기억이 납니다. 완전 시골극장이라고나 할까? 50원씩 내고 보았고, 고개라도 들어 뒷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쥔아저씨가 나무막대로 머리를 툭툭 치던 일이 생생합니다

세실 2008-02-2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밥 훔쳐 먹던 기억 납니다.
다음날이 친구 아버지 생신인데 그 친구집 밥을 훔쳐먹고 혼났던 기억도....ㅎㅎㅎ
오늘 오곡밥도 못 먹었어요. ㅠㅠ

전호인 2008-02-21 12:56   좋아요 0 | URL
아니, 세실님이 그때부터 도벽의 기미가 있었단 말입니까? 지금은 없겠죠? ㅎㅎ
맞습니다. 그때는 먹고살기 힘들어도(내가 얼마나 살았다고..ㅉㅉ) 인정은 많았지요.
점심에도 구내식당에서 오곡밥과 나물을 먹었습니다.
팥이 많이 들어갔는 지 속이 끓는 데요. 걱정입니다.

2008-02-21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1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8-02-21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오곡밥하고 나물 잔뜩 먹고 출근했어요. 물론, 어제 저녁에도 잔뜩 먹었구요. 헷 :)

전호인 2008-03-10 14:28   좋아요 0 | URL
아마도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요즘 신세대들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무스탕 2008-02-21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서만 컸기에 쥐불놀이나 달집태우기등은 티비에서만 봐온 행사에요.
어제 저녁에 오곡밥이랑 나물을 먹으며 신랑한테 물어보니 신랑은 어려서 많이 했었다구 하구요. (시골 출신이거든요 ^^)
우리 애들도 엄마같은 신세가 될것 같아요. 저런 재미를 경험해 보지 못하는게 슬쩍 안됐기도 하네요..

전호인 2008-03-10 14:29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이런 즐거움을 알지 못하시겠군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고 싶어요

미니 2014-12-3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눈썹이 왜 햐얘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