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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 당신의 반대편에서 415일
변종모 지음 / 달 / 2012년 2월
평점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길 위에서 만나게 될 모든 사실에 대해 진심을 다하는 일,
그리하여 그것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마음으로 걷는 일, 나에겐 그게 여행.
전에 변종모 작가의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를 읽었다. 빠르지 않은 그의 여행 속도가 좋았고, 다른 여행자들처럼 분주하게 돌아다니지 않고 느긋하게 움직이는 그의 여행 멜로디가 좋았다. 이번 책도 기대가 되었고,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는 요즘 변종모 작가의 여행 산문집을 읽으며 심신을 달래고 싶었다. 제목도 표지도 감성적이다. 여행기 느낌이 들지 않도록 너무 여행이야기만 쓴 것도 아니고,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에세이 모음집도 아니다. 그래서 좋았다. 딱딱하거나 물렁하거나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음에 신뢰가 느껴진다.
지금의 나를 이곳에 두고 홀로 떠나는 여행. 나를 데려가지 않은 나만의 여행. 저 먼 곳에서 이곳에 남겨둔 나를 바라보는 일. 그래서 마침내 여행을 떠나지 않고서도 여행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그. 길 위에서의 반성문을 책으로 엮었다.
가랑비가 쓸쓸히 내리는 늦은 밤, 베를린에서 따뜻한 커피와 흑맥주 한 잔. 한가로운 오전이나 그보다 더 한가로운 오후, 시애틀 외곽 아무도 없는 산책로 그리고 주말의 재래시장. 워싱턴 주의 롱비치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노래를 들으며 석양 바라보기. 미국 서부의 아주 낡고 오래된 101번 해안 도로 달리기….
여행이란, 능숙한 만남과 취약한 작별의 연속이다. 여행길에 만나 기분 좋은 얼굴로 인사하고 며칠을 함께 지내며 서로에게 익숙해질 때즈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헤어질 수밖에 없다. 만남은 반갑고 즐겁지만, 작별은 언제나 슬픈 마음을 갖게 한다. 여행이 힘든 이유는 항상 배낭보다 무거운 생각이나 마음 때문이었다. 한번 결정하고 나면 항공권을 예약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만, 처음 결정을 하기까지가 무척 힘들다. 여행 중에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여행 중 그 먼 나라에 눌러앉게 되지는 않을까, 여행을 다녀오면 원래의 내 생활로 쉽게 돌아갈 수 있을까 등 사소한 것부터 광범위한 것까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랑, 바람 불면 사라지고 마는 것. 지금 나의 것도 아니고 앞으로의 당신 것도 아닌 것. 그 무엇도 사랑 앞에서 단언하지 못하고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조금의 애틋함으로 서로의 현재를 사는 일.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하며 살기 때문에 사랑하던 존재를 괴롭히고 동시에 자신도 괴롭히게 되는 것이리라. 방금 헤어지고도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한 적 없는데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멀리 있지만 항상 마음에 두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게 사랑이겠지. 사랑하기 전에 사랑하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나와 그, 우리가 얼마나 닮았는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변종모의 따뜻하고 감동적이고 가슴 뭉클한,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여운이 남는, 그의 이야기가 좋다. 여행과 사랑, 소리내어 말할 때마다 행복하고도 아련함이 느껴지는 그 두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 그의 책은 항상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