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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한 달 살기
김상아 지음 / TERRA(테라출판사)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사실 베니스는 누가 오더라도 무념무상으로 푹 쉬어가기에 적당한 곳은 아니다. 이 매력적인 도시는 여행자를 몇 곱절 부지런하게 만든다. (233p)
책이 참 예쁘다. 핑크색 바탕에 크레파스로 그린 듯한 표지는 아기자기하고, 다른 책들과 달리 모서리가 둥글다. 겉모습만으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에 '암스테르담 한 달 여행자'를 읽고, 한 나라가 아닌 한 도시에서 한 달씩 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베니스 한 달 살기'와 같은 출판사의 책이다. 친한 언니가 가장 가보고 싶은 곳으로 베니스를 말했었다. 이탈리아의 도시라는 것 말고 내가 베니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 마침 이 책을 만났다.
베니스는 걷기 좋은 아담한 크기의 도시라고 한다. 저자는 다양한 볼거리와 맛있는 음식이 있는 이탈리아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베니스를 골랐다. 하지만 걷는 걸 좋아한다면 베니스가 딱이라니 나도 언젠가 가보고 싶다. 그녀는 극단에서 일하는 엘레나와 패트릭의 집에서 한 달간 머물기로 한다. 커튼과 실내등도 직접 만들어 달았고, 솜씨와 안목을 읽을 수 있는 소품들을 구석구석 배치하여 예술가의 공간처럼 꾸민 멋진 집에서 머물렀다는 게 부럽다.
베니스의 골목은 마치 미로 같아서 베니스에서 길 찾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란다. 하지만 주요 목적지를 가리키는 노란 표지판을 길목마다 배치했다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유럽 최고의 살롱이라고 불리며 사랑 받아온 베니스의 상징 '산 마르코 광장', 대운하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리알토 다리, 산타 루치아 역에서 산 마르코 광장에 이르는 대운하 등 멋진 장소들이 가득한 베니스는 매력있는 곳임에 틀림없다.
베니스에 와서 처음으로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하던 날,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를 보며 생각했다. '여행은 일상에서 탈출한다는 게 매력인데 여기서도 이러고 있구나.' 하지만 내가 널어둔 양말 아래로 지도를 든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며 지나는 걸 보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이렇게 한 달을 한 도시에서 지낸다는 건 여행자와 일상 생활하는 사람의 태도를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64p)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베네치아 화파의 대표작들을 보고, 리알토 시장에서 장을 보고,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아코디언 소리도 듣고,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하며 느긋하게 오후 시간을 보내고 싶다. '젤라테리아 산 스타에'에서 스트라차텔라를 맛보고, 부라노 섬에 들러 알록달록 페인트가 칠해진 건물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 곤돌라를 타고 건물 사이사이를 지나다니고, 문구점에서 맘에 드는 노트를 고르고 싶다. 베니스 식 정어리 튀김 '사르데 인 사오르', 마스카포네 치즈와 토마토, 황새치를 넣은 샌드위치, '비지오 비르투'의 초콜릿, 젤라토와 티라미수 등 음식 사진만 봐도 이야기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맛있는 음식들도 먹어보고 싶다.
한 도시에서 한 달을 머무르니까 시간은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떠날 날이 바짝 다가왔는데도 가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일들이 이렇게나 많이 남아 있는 줄 처음에는 미처 몰랐다. 눈부시게 맑은 날, 베니스를 더 높은 곳에서 더 멀리까지 보겠다는 욕심을 내보았다. 그동안 좁은 골목길과 물길을 오가며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만끽했다면, 떠나기 전엔 시원한 베니스의 전망을 누리며 이 도시를 눈과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 (216p)
한 달간 한 도시에서 머물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유롭게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보름 정도만 느긋하게 지내고, 나머지 보름은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계획을 세워서 돌아다녀야겠다. '암스테르담 한 달 여행자'를 읽고 나서 작은 나라의 한 도시에 한 달간 머무르는 여행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베니스 한 달 살기'를 읽고 나서 그 마음이 굳혀졌다. 지금 당장 떠날 수는 없지만,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가보고 싶은 몇 개국에 표시를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