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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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자의 책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름이 귀에 익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한참을 생각하다 올해 5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저자의 <도착하지 않은 삶> 사인회 장면이 떠올랐다. 아, 그분이었구나. 지나가다 사진을 한 장 찍었었다. 

제목이 맘에 들어 읽게 된 책이다. 어릴 적에 가족 여행을 많이 한 덕에 성인이 되고서도 여행의 짜릿함을 좋아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어디든 떠나고 싶어하는 중이다.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길을 잃어본 적이 있던가. 길을 잃는 것과 헤매는 것이 동일하다면 그런 경우가 몇 번 있다. 아테네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한 캄캄한 새벽에, 담양 금성산성 오르는 중에, 그리고 도쿄 여행 중 하루에 한번씩은 길을 헤매었다. 어쩌면 그렇게 고생한 덕분에 여행에 대한 기억이 더욱 뚜렷한지도 모른다. 

여행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미술과 신화, 영화, 문학, 음악 이야기가 고루 섞여 있다. 글이 쉽게 읽히지 않아 지루했던 부분도 있다. 1부 아름다움에의 망명은 '여행'이라는 요소가 2부보다는 많이 포함되어 있고, 2부 예술가의 초상은 말그대로 예술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파리 드골 공항에서 마주친 여인들의 뛰어난 미적 감각에 감탄하고, 바르셀로나를 혼자 자유로이 돌아다닌다. 이른 아침부터 관광지를 돌아다니다 해질녘이면 광장에 앉아 현지인들에 섞여 차를 마신다.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감상하고,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기차 안에서 일기를 쓰던 날 독일 여배우를 만나고, 파리의 카페에서 야채  타르트와 홍차로 식사를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고, 부에나비스타 카페에서 오믈렛을 먹는다. 그 모든 것이 느긋하고 한가롭게 느껴져서 좋다. 

여행뿐 아니라 시와 영화, 그림과 음악까지도 접했지만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여 머리가 뒤죽박죽이다. 마치 학창시절 다음날 치를 여러 과목의 시험 공부를 한 과목이라도 제대로 해놓은 게 아니라 이것저것 조금씩 손만 댄 것처럼 말이다. 산문집이라서 그럴 지도 모르지만 읽는 게 조금은 불편했다. 그래도 여행 전 준비하는 대목에서는 내가 다 설레었고, 처음 방문한 도쿄가 낯설지 않았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공감했다. 이제는 볼거리가 많아 잘 짜여진 일정에 맞춰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여행 말고, 그저 풍경만 좋은 곳으로 휴식하러 가고 싶다. 공기 맑은 곳에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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