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산책하는 낭만제주
임우석 지음 / 링거스그룹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표지의 에메랄드빛 바다 사진은 여행에 대한 갈망을 풀어줄 것처럼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그녀와 산책하는 낭만 제주라니, 오랜만에 들어보는 '낭만'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갔다. 그녀는 누구일까? 처음에는 '그녀'가 저자를 가리키는 줄 알았다. 저자와 7년여 동안 여행과 인생을 함께 해 온 그녀의 에필로그를 먼저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가 무척 부러웠다. 

작년 1월, 제주도에 처음 가보았다. 입사 1주년 기념으로 보내주는 1박 2일 여행이었다. 여행이란 기분을 느낄 새도 없이 짜여진 일정에 맞춰 버스에 몸을 싣고 로봇처럼 움직였다. 제주도에 도착하여 전복죽으로 점심 먹고, 한 번도 보지 않았던 '태왕사신기' 촬영장에 가고, 비 맞으면서 ATV 타고, 미천굴에 들렀다가 흑돼지불고기로 저녁을 먹었다. 이튿날엔 귤따기 체험하고 고등어조림과 구이로 점심을 먹은 뒤, 테디베어박물관과 녹차박물관, 소인국테마파크에 들렀다가 서울로 왔다. ATV 체험은 재미있었고, 테디베어박물관도 괜찮았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여행은 아니었다. 1박 2일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았고 날씨도 좋지 않아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재작년 6월, 한 북클럽에서 북크로싱으로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게 되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궁금해 사진가가 되었고, 사진을 찍으며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으며, 대자연의 신비를 느끼고 하늘과 땅의 오묘한 조화를 깨달았다는 故 김영갑님을 그때 처음 알았다. 벌써 생을 마감하신지 1년이 넘었을 때였다. 그 책 한 권이 마음에 꼭 들었고 언젠가 제주도에 가게 되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찾아가겠다고 마음 먹었다.    

4월의 제주도 여행을 갑작스럽게 계획하게 되었다. 2박 3일의 시간을 확보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몇 번씩 들락날락하며 일정을 짰다. 갖가지 테마 박물관보다는 제주를 느낄 수 있는 곳 위주로. 작년에 한국국제관광전에서 얻어온 제주 전도를 펼쳐놓고 며칠을 즐거워했다. 첫날은 제주도 도착해서 고등어 쌈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유채꽃밭에서 사진도 찍었다. 제주 속의 제주라는 돌마을 공원에 들렀다가 저지오름을 오르고 중문관광단지를 지나 숙소 도착하여 쉬다가 돼지두루치기로 저녁식사를 했다. 둘째날은 한라산 등반 예정이었으나 아침에 계획을 변경했다. 혼자서 외돌개 산책로를 한 시간 넘게 거닐고, 오분작해물뚝배기로 아침을 먹었다. 천지연폭포에서 감귤막걸리 한 잔 하고 쇠소깍에서 태우 타보고 남원읍 숙소에 짐을 풀었다. 민속촌박물관에 갔다가 성읍민속마을에서 저녁 먹고 마지막 날 일정도 변경. 마지막 날 아침, 숙소에서 전복죽 먹고 두모악으로 갔다. 두 번째 제주도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다. 섭지코지와 성산 일출봉 들렀다가 비 많이 내릴 때 선녀와 나무꾼 둘러보고 삼성혈 근처에서 고기국수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비행기 시간이 남아 민속자연사박물관 마지막으로 들르고 공항으로 갔다.    

<낭만 제주>의 차례를 보면 크게 '작은 마을', '산과 바다', '공간 산책'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가 소개하는 많은 곳 중에 내가 들른 곳은 극히 적었지만, 2박 3일 여행을 다녀온 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고 알찬 시간을 보내다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소개한 곳이 내가 다녀온 곳이면 더욱 반가웠다. 그녀와 산책하는 낭만제주 여행 지도를 보며 잠시 여행의 기억을 떠올렸다. 

첫 장 '작은 마을 (아무도 제주를 모른다)'에서는 따뜻하고 예쁜 마을들을 소개한다. 남태평양 어느 섬에 세워진 교회 같은 바닷가 예배당이 있는 법환동, 헌책방에서 산 88년도 제주관광안내도로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월대, 한적하게 걷기 좋은 보목리, 제주에서 가장 예쁜 포구가 숨어 있는 한경면 고산리 등. 노꼬물오름으로 부르기도 한다는 수월봉의 밑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해안도로가 있는데 데이트하기에 매우 로맨틱한 길이라고 한다.

둘째 장 '산과 바다 (추억을 섬에 묻다)'에서는 가을에 오르면 억새가 오름 전체를 뒤덮는다는 새별오름, 비자나무가 내뿜는 엄청난 양의 공기 맛이 맛있게 느껴진다는 비자림, 꿈에서나 볼 수 있는 넓고 평탄한 들판의 풍경이 계속되는 마치 아프리카 같다는 서성로, 난대림의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만끽할 수 있는 절물자연휴양림 등을 소개한다. 

셋째 장 '공간 산책 (섬에서 산책하다)'에서는 지극히 제주도다운 곳을 알려준다. 이름만큼이나 색다른 풍경의 이시돌 목장, 제주에 미쳐서 살던 제주만을 찍었던 사진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한라산과 산방산이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주는 오설록 녹차밭, 아시아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유일한 폭포 '정방폭포', 호텔 속으로 걷는 '관광단지' 산책로, 1980년대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식물원 '한림공원' 등을 소개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음 제주도 여행은 가보지 않은 곳과 작은 마을들을 골라서 3박 4일 혹은 일주일 정도 다녀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천리에서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들어보고, 영주십경에 든다는 수월봉의 '월봉낙조'를 보고 싶다. 비자림 입구에서 꿩부침개를 먹고, 한라산 백록담도 보고 싶다. 성산의 맛집에서 문어와 해삼을 먹고, 남은 문어와 함께 끓여주는 라면은 얼마나 맛있을까. 휴양림을 천천히 거닐어보고, 용연에서 한치주물럭을 먹고, 마라도에서 따뜻한 공기의 바람을 느껴보고 싶다. 동문시장에서 맛있는 음식들을 맛보고 시장구경하는 것도 좋겠다. 

'제주도 여행 전에 알아두기'를 보며 '이 책을 조금만 일찍 읽었더라면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컸다. 숙소나 식당에 대한 정보가 그랬다. 두 숙소에서 따로 1박을 했었는데 한 숙소는 인터넷 정보와 많이 달랐다. 식당도 몇 군데 알아보고 갔는데 가격도 괜찮고 음식도 맛있었던 곳은 여섯 곳 중 두 곳 뿐이었다. 이 책의 도움으로 다음번에는 후회 없는 여행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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