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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조진국 지음 / 해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을 펼쳤을 때 책갈피의 진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표지를 본뜬, 보통의 책갈피보다 좀더 넓적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파스텔톤의 연두색과 하늘색이 섞인 듯한 포근한 느낌이 책을 읽기 전부터 따뜻하거나 슬프거나 가슴 아프게 한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건 무슨 연유에서일까.
드라마 작가 조진국의 '고마워요, 소울메이트'를 서점에서 읽었었다.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문체가 마음에 들어 두 번째 이야기도 읽게 되었다. 각 장의 Love Letter에서 사랑의 단편을 보여주고 드라마의 한 장면을 결합시킨 독특한 구성이 특징이다. 에세이와 스토리텔링을 결합시킨 한 편의 드라마. 소설 같기도 하다.
가슴에 와 닿는 표현이 많았다. 내가 사랑을 하고 연애할 때를 생각하며 읽게 된다. 겨울 쪽에 사는 사람과 봄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그랬다. 상대의 무심한 말투나 차가운 손에 익숙한 겨울에 사는 사람과 기념일을 챙기는 상대의 따뜻한 손에 익숙한 봄에 사는 사람. 결국 난 겨울에 사는 사람이었구나 생각하며 내가 겨울에 태어난 것과 연관이 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금세 아니라는 걸 깨우쳤다. 난 봄이 시작될 즈음 태어났고 그는 한겨울에 태어났으니까. 게다가 여름과 가을에 태어난 사람도 있지 않은가.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을 주기보다 받는 것이 더 어울린다.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보다 나를 좋아해주는 남자를 만나라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에게 쉽게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은 나만 그런 걸까. 사랑은 운명이 아니라 운명적인 선택이란다.
기다리는 일에 지쳤었다. 수십 통의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약속 시간보다 한참이 지났기에 무슨 일이 생긴 줄만 알았다. 그는 잠을 자느라 연락이 두절되었던 것이다. 처음엔 기다리는 시간이 행복했다. 점점 기다리는 걸 지겨워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매번 기다리고 힘들어하면서도 참아냈다. 기다리는 쪽은 항상 나였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아프다.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는 것들. 다음에 하자고 했던 일들이 있다. 오무라이스 전문점에 가기로 했었고, KTX 타고 부산에 가자고 했었고, 야구장에 가기로 했었고, (지금은 예술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동네 유원지에 놀러가기로 했었고, 일어능력시험 성적표 보여주기로 했었고, 그 당시 개봉한 영화 '그때 그사람들' 보기로 했는데...... 함께 하려고 했던 일들이 많았는데 우리는 헤어졌다.
3년간의 다이어리를 펼치면 온통 그 사람과의 추억 뿐이다. 한 달에 몇 번을 만났고, 만나서 무슨 영화를 봤는지, 어디에 놀러 갔었는지, 한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그의 주소도 적혀 있다. 편지 한 통 부치지 못할 주소가. 가슴 아픈 기억들이 남아 있지만 그것 역시 소중한 추억이라고 행복했던 기억이라고 다이어리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가장 처음 놀러갔던 곳은 학교 근처 유원지였다. 같은 동아리였던 내 친구와 그의 친구와 넷이서 갔다. 바이킹을 탈 때 그는 나에게 파카를 벗어 주었다. 밸런타인데이 전날, 밤을 새워 놀고 다음날 나와 내 친구는 다른 상대방에게 초콜릿을 전해주고 헤어졌다. 그 이후 그와 사귀게 되었다.
아픈 추억이 떠올려질 것을 알면서 꼭 읽게 된다. 행복했던 옛 추억이 생각나 오랜만에 가슴 시릴 것을 알면서도 읽게 된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더 사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