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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 상
차오원쉬엔 지음, 김지연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차오원쉬엔의 작품이라면 학교 다닐 적에 <빨간 기와>, <까만 기와>를 읽었을 뿐이다. 작가의 사춘기 시절을 회상하며 썼다는데 꼭 우리네 옛 시절 이야기를 읽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이제 차오원쉬엔이라면 친근한 중국 작가로 여겨진다.
파스텔톤의 은은한 느낌이 좋다. 겉표지의 가느다란 하양 선이 빗줄기를 표현한 것일까. 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비 오는 날, 먹구름, 홍수, 우산 등 비와 관련된 것은 어느 것 하나 좋은 이미지를 떠올릴 수가 없다. 그런 내가 '비'라는 제목의 두 권짜리 소설을 읽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비가 내린다. 잠시 멈춘 듯하여 공기라도 한 모금 마실라치면 또다시 비를 뿌린다. 하지만 내용이 지루하지 않고 비에 젖어 눅눅하다는 느낌은 없다. 한 장(章)을 읽으면 다음 장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기대된다.
유마지(油麻地)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니, 유마지로 흘러들어와서 결국 유마지를 위해 살다가 죽어서도 유마지를 잊지 못하는 두원조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어린시절부터 예순이 넘어서까지의 일대기라고도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했다. 책장(冊張)을 넘길 때마다 머릿속에 영상이 흘렀다. 비록 날씨는 맑지 않지만 포근하고 아름다운, 사랑과 우정과 질투가 뒤섞인 끊임없이 얽히고설킨 이야기.
많은 사람이 나오지만 다른 소설보다 등장인물에 대해 더 쉽게 기억하고 있었던 이유가 그들의 성격이나 모습이 잘 묘사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배경이나 상황 설명은 자세하게, 인물 묘사는 세밀하게 되어 있다. 2권을 펼치면 유마지에 농사를 지으러 젊은이들이 오고 그 중 애융이라는 여자 아이의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뜬금없다 생각했는데 이야기의 전환점이라 볼 수 있겠다. 인상깊었던 건 장님 범 씨의 노래부르는 장면이다. 노래 가사가 바로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견하는 듯하다.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야기에 빈틈이 없다. 앞뒤 내용의 연결고리가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역시 다른 외국소설과 다르게 친근하고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