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여행 - 우리의 여행을 눈부신 방향으로 이끌 별자리 같은 안내서
최갑수 지음 / 보다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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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름, 최갑수 골목산책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를 읽고 경주 여행에서 사정동을 걸었다. 제목도 표지 색감도 글도 사진도 좋았던 책이라서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책장 한 켠에 꽂아두었다. 당신과 함께 가보고 싶은 그곳 『단 한 번의 여행』도 제목이 맘에 들고, 표지 디자인이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내 스타일이라 읽고 싶었다. 책을 받고 펼치자마자 소름이 쫙 돋았다. 내 이름과 함께 적힌 작가님 사인을 보고 너무 좋아서 책을 손에 든 채로 막 흔들었더니 딸아이가 웃으며 달려온다.


우리 인생의 행복한 기억은 대부분 '즐겁게 놀았던' 순간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의 대부분은 여행이라는 것도 알게 됐구요. 그러니까, 우리는 더 잘 살기 위해 조금 더 놀아야 할 것이고, 더 행복하기 위해 더 여행해야 할 것입니다. (4p)



인생은 너무 짧아서 우리가 더 여행하고,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는 우리의 여행에 별자리 같은 안내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여진 '단 한 번의 여행'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내내 따뜻함이 느껴졌다.

책을 읽기 전, 차례만 훑어보는데도 말이 너무 예쁘다. '더 열심히 놀아야지, 더 애타게 사랑해야지', '우리에게 아직 더 많은 사랑과 여행의 기회가 남았습니다', '동백꽃 밟으며 봄날을 걷다', '그물 위로 춤추는 은빛 멸치', '손을 잡고 옛 담장 길을 걷는 일' 등 시적인 표현들. '이상한 파주의 유쾌한 여행', '삼척, 해변의 말랑한 봄, 봄, 봄', '매화로 맞이하는 봄날' 등 재미있고 예쁜 말들이 얼른 책을 읽고 싶게 만든다.

정감 있는 인물사진, 마음이 확 트이고, 아련한 풍경사진, 맛있는 음식사진과 함께 대한민국 48곳의 여행지를 소개한다. 혼자 갔는데 함께 다시 오고 싶은 곳, 함께여서 좋았던 곳. 망상해변은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와 은수가 파도 소리를 녹음하던 곳(261p), 드라마 <모래시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배경이 되기도 한 공세리 성당(190p), 영화 <리틀 포레스트> 혜원의 집 등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된 곳, 예능프로그램 촬영지도 소개하고 있다. 재미있게 봤던 영화 속 장소를 보여주니 친근하고 가보고 싶다.

새벽 안개가 점령한 우윳빛 갈대밭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 나오던 그대로였다.(241p) 무진기행이나 포구기행, 지리산둘레길, 선암사, 여수의 사랑,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등 책 속 구절과 함께 소개하는 여행지는 책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나도 어느 곳을 여행하기 전, 가이드북 외에 그곳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에세이를 찾아 보기도 한다. 여행 전에 읽는 글과 여행 후에 읽는 글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여행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여행 전에 볼 때와 다녀와서 볼 때의 뭉클함이 다르니 그것 역시 추천한다.


『단 한 번의 여행』을 읽으며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해 알기도 하고, 가본 곳을 추억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을 전라남도에서 보내며 가족과 함께 간 선운사와 해남 땅끝마을, 대학 졸업 전에 친구와 밤기차로 갔던 순천, 직장생활하며 숨 돌릴 때 가본 경주, 익산, 군산, 정선, 삼척, 나홀로 전국일주하며 들른 하동, 남해, 영주, 신랑과 간 파주, 강화도, 강릉, 속초, 소쇄원까지. 특히, 8년 전에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지낼 때 산방산이 있는 안덕면에 있었는데, 근처 대평리에 대한 글을 읽고 옛 생각에 빠졌다. 혼자 갔던 하동과 영주 부석사는 마치 영화 속에 들어간 것처럼 사방이 고요해지고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껴 누군가와 함께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보지 못한 곳 중에 인제 자작나무숲이나 홍천 은행나무숲, 광양 매화마을이 궁금하다. 꽃구경을 거의 가보지 못했는데, 나뭇잎 좋아하는 딸아이 생각에 숲이 먼저 눈에 들어오니 나도 엄마이긴 한가 보다.

최북단 고성의 중국집에서 짜장면 먹은 글을 읽으며, 최남단 마라도에서 짜장면 먹은 일을 떠올렸다. 죽령옛길에서 사과 먹은 글을 읽으며, 소수서원 매표소 직원분이 커피와 함께 건네주신 빠알간 사과가 떠올랐다. 책을 읽으며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보다 더욱 집중해서 읽은 내용이 있으니 바로 음식 소개 글이다. 사진이 나오기도 하고, 글 끝자락에 음식 메뉴와 식당을 친절히 알려 준다. 여행의 묘미 중 하나가 그 지역의 향토음식을 맛보는 것 아닐까?

코로나 이전에는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를 세팅하는 시간이 너무 지겨운,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여행작가였다는 작가님 이야기를 읽고 조금 충격이었다. 나는 왜 여행작가라면 다 여행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지? 회사원이 회사에 가기 싫은 것처럼 그럴 수도 있는데. 그래도 코로나 이후, 가족과 느리게 느긋하게 여행하며 여행이 좋아지셨다니 다행이다.


나는 풍경이 사람을 위로해 준다고 믿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나 누군가의 거짓말 때문에 마음을 다쳤을 때, 우리를 위로하는 건 풍경이다. 힘들고 지쳤을 때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풍경이 지닌 이런 힘을 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일은 좋은 음악을 듣는 것과 다르지 않다. (173p)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읽으며, 시적인 표현에 기분이 말랑말랑해지기도 하고, 인생이 길지 않음에 마음이 아리기도 했다. 코로나로 여행에 대한 마음이 사라져 아쉬웠는데, 책을 읽으며 새록새록 떠오르는 여행 추억으로 힐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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