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 내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취향수집 에세이
신미경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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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는 운명에 맡기고 항상 성장하는 삶의 과정에서 행복을 찾아낸다. 최선을 다해 완전하게 산다는 것은 자기가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느냐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의 생각을 빌려 왔지만, 내가 만든 최소 취향의 결론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다. (255p)





제목만 봤을 때는 최소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범위가 작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펼치고 목차를 보면서 작가의 삶 전체에 대한 최소 취향을 말하는구나 싶더라. 좋은 식사, 편안한 잠자리부터 풍수인테리어까지, 스타일과 건강, 일과 휴가, 지적 유희와 지적 갈망 그리고 본인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어울리는 법.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담백한 글을 읽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20대에 일주일 이내의 짧은 여행이든 한 달간 긴 여행이든 배낭여행을 할 때면 숙소는 무조건 값싼 펜션이나 게스트하우스, 이름은 호텔이지만 저렴한 곳을 골랐다. 대신 되도록이면 조식 포함인 곳으로. 하지만 30대가 되고 결혼을 하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런가. 여행하게 되면 무조건 좋은 숙소에서 머물고 싶다. 작가는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든 좋은 식사와 편안한 잠자리 두 가지는 꼭 지키고 싶다고 한다. 잘 자는 데 필요한 물건을 사는 돈이 건강을 위한 가장 좋은 투자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서 가장 볕이 좋은 곳에 앉아 식사를 한다. (20p) 햇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무한대로 주어진다. (중략) 어두운 구석 아닌 볕으로 나가 식사를 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건 행복하고 싶은 나의 선택이다. (23p)


21개월 딸아이는 식탁의자에서 밥을 먹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다. 오래 앉아 있는 걸 답답해 하면 상 펴고 바닥에서 먹였는데, 아침에는 햇볕을 등지고 벽에 그림자놀이도 해주며 먹였다. 그런데 작가의 햇볕 예찬론을 읽은 후로 따뜻한 볕이 들어오는 아침에는 베란다를 향해 앉아 먹이고 있다. 



 

가끔 행복이라는 모호한 희망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소박한 찬에 볕이 드는 자리에서 밥 먹는 순간에 느끼는 이 감정이 행복 아닐까 싶다가도 왜 예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걸까 궁금해진다. 부족한 면만 좇다 보니 알 수 없었던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의 무게. (22p)


신랑이 설거지하던 주말 아침, 햇볕이 내리쬐는 베란다에 커다란 목욕의자를 두고 앉아 있었다. 딸아이가 자기도 나오겠다고 문을 두드리더라. 요즘 집에만 있으니 따스한 햇볕 드는 시간이 반갑다. 아예 베란다에 돗자리를 펴고 딸아이와 누워있으니 신랑이 베개를 가져다 주더라. 


 


그래서 찾은 건 작은 그림엽서. 가장 심플하고 가볍게 작품을 소유하는 방식이었다. (43p)


미술 작품이나 예술 세계를 잘 알지 못하지만, 나도 그림과 풍경 사진을 좋아한다. 제주도 김영갑 갤러리, 도쿄 하라미술관의 요시모토 나라 작업실 등 여행할 때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들러 좋아하는 작품 감상하는 걸 좋아한다. 정말 마음에 드는 그림이나 사진이 있다면, 관람 후에 엽서를 구입했다. 나 역시 작가처럼 친구의 결혼식 날 축하 카드로 주거나 친한 친구와 언니들에게 짧은 편지를 써서 나눠주곤 했다.





작가는 옷을 적게 가지고 있지만, 좋은 품질의 옷을 사고 잘 관리해 오래 입는다고 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 리를 하면서 입지도 않은 옷을 왜 버리지도 못하고 넣었다 꺼냈다 하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입지 않아서 버려겠다 마음먹었다가도 한번 입어보니 괜찮네, 하며 다시 놔두게 된다. 집안에 필요없는 물건은 들이지 않고 되록 짐을 최소화하고 싶은 생각은 변함없는데, 옷 정리할 때마다 머뭇하게 되더라.


목걸이나 반지보다는 귀고리를 좋아한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스승의 날이면 직접 만든 귀고리를 많이 받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디자인이 촌스럽기도 하고 색상이 나이에 맞지 않기도 해서 항상 착용하는 귀고리만 하게 된다. 첫 스승의 날이었나 엄마가 선물해주신 귀고리를 몇 년 동안 하다가 끊어져서 한 달 여행 함께 했던 언니가 선물해준 귀고리를 또 한참 하고 다녔다. 결혼하고부터는 함 들어오던 날 어머니가 해주신 예물 귀고리를 하고 있다.


결혼 전에는 추운 겨울에도 짧은 치마를 잘도 입고 다녔다. 출산 후에는 무릎이 보이는 치마는 못 입겠더라. 겨울에는 목도리가 필수였는데, 이제 체질이 바뀐 건지 두꺼운 니트도 목도리도 안 하게 된다. 20대에는 신발도 저렴한 걸 사서 신다가 헤지면 다시 구입했었다. 지금은 좋은 신발을 사서 오래 신으려고 한다.


수영, 요가, 목욕, 마사지 등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공감했다. 뜨거운 날에도 열심히 걸어다니던 30대 초반의 나는 이제 없다. 얼굴에는 색소침착이 생겼고, 까맣게 탄 팔다리가 원래대로 돌아오는데 몇 년이 걸렸고, 조금만 걸어도 발목과 무릎이 아프다. 운동은 아예 안 하는 내가 좋아하는 '걷기'도 이제는 좋아한다고 못하겠다. 처음 해본 온천여행이 너무 좋았고, 가족여행을 계획하면 스파욕조 있는 펜션을 찾게 된다. 마사지라고는 결혼 전에 테라피 마사지와 산후조리원에서 받은 전신마사지가 전부다. 집에서 작은 마사지기로 피로를 풀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전문가의 손길과 비교할 수는 없어서 가끔 몸이 힘들 때 마사지 받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작가는 기한 지난 대용량 파일을 삭제하고 라벨을 나누고 태그를 붙여 정리하면 메일이 깔끔하게 각 서랍에 수납된 듯하고, 잘 안 나온 사진을 몽땅 지울 때 쌓아둔 쓰레기를 버린 듯한 시원함을 느낀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지금은 받는 메일이라고는 쇼핑 주문확인 메일과 스팸 메일이 대부분이지만, 결혼 전에는 메일함을 여러 폴더로 정리했었다. 지금 찍는 사진은 딸아이 사진이 대부분이지만, 잘 나온 사진만 놔두고 휴지통을 비울 때면 속이 다 시하다.





대학생 때 학교 도서관과 동네에 있는 시립도서관을 드나들며 책을 많이도 읽었다. 20대 초반에는 역사추리소설과 의학소설을 재미있게 읽었고, 졸업할 무렵에는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었다. 보통 읽는 분야가 한정적이었는데, 예술, 과학, 경제 서적도 골고루 읽기 시작했다. 3년간 한 분야 책을 읽으면 준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해도 작가는 책을 편식하는 건 생각이 꽉 막힌 사람이 되는 지름길이라며 여러 분야 책을 골고루 읽는다고 한다. 책을 좋아해서 작가의 책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여전히 벽 한쪽을 채우는 책꽂이를 사고 미술과 철학 서적을 가득 꽂아두고 싶다. 읽지는 않았지만, 책을 가진 것만으로 그 지식을 소유했노라 착각하는 지적 허영. 그런 나를 애써 누르는 건 사두고 꺼내 읽지 않았던 수많은 책을 정리했던 과거 때문이다. (190p)


대학 졸업할 무렵부터 여러 도서 이벤트에 응모했고, 당첨된 책들로만 커다란 책장이 꽉 찼다. 그때는 책 욕심이 있어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분야의 책들도 많이 받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보지 않을 책들이 생겨서 결국 기부를 하거나 중고서점에 팔기도 했다. 그 후로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꼭 읽고 싶은 책들만 받는 편이다. 결혼하고 내 집이 생기면서 오랜 로망이었던 서재를 꾸미지는 못했다. 서재를 꾸밀 정도로 큰 방이 아니라서 한쪽 벽을 책장으로 꾸민 정도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가득 꽂아두니 보고만 있어도 좋다.





입에서 걸리는 말을 내뱉지 않는 사람과 어울린다. 가까울수록 예의와 배려, 선을 넘지 않는 것. 편안한 사이여도 지킬 건 지킨다. 내가 계속 함께하는 사람들은 그런 이들이다. (250p)


작가의 최소 취향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부분에 공감했다. 작가는 불만족스러웠던 본인의 많은 면을 지우고,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무척 느리게 다듬어나가며 사람은 어떤 방향을 갖느냐에 따라 충분히 변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니 '이렇게 살아와서 그렇게 바꿀 수 없다'는 말은 핑계임을 알겠다. 따뜻한 봄날, 공원 잔디밭에 돗자리 펴고 읽고 싶은 책이지만 요즘은 나갈 수가 없으니 집에서 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 읽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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