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도시 이야기 - 포르투, 파리, 피렌체에 스미다
신지혜.윤성은.천수림 지음 / 하나의책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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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혼여행 대신 결혼식 전에 유럽 배낭여행을 했다. 추운 계절이라 아래쪽에 있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가자고 했고, 루트를 짜면서 프랑스와 포르투갈도 들르기로 했다. 배낭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그랬지만, 한 달의 일정을 짜면서 무척 설렜다. 여행 중에 셀프웨딩촬영을 하기로 했고,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 앉아 있을 때,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를 보았다. 우린 곧장 숙소로 가서 촬영 준비를 했고, 피렌체에서 마지막 날, 첫 촬영을 했다. 여행 두 달 전, 밀라노에서 파리 가는 야간열차를 예약했다. 그리고 며칠 후, 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심란했지만, 취소/환불도 안 되고, 두 달 후에는 괜찮아질 거라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행히 파리에서는 무사했다. 뮤지엄패스를 소지하고 미술관을 마음껏 다녔다. 여행은 포루투갈 리스본에서 마무리했다. 3박 4일 머물렀던 리스본, 그곳이 아주 맘에 들어서 다음번 포르투갈 여행을 기약하며, 그때는 꼭 포르투도 가보자고 했다.

예쁘구나. 정말 예쁘구나. 게다가 포르투라는 도시가 주는 온화함과 평온함이 여행객의 긴장감과 피로감을 말끔히 씻어 준다. (중략) 이래서 포르투가 좋다고 하는구나. 모든 여행지는 나름의 매력이 있고 즐거움을 주며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시간의 속도를 늦추게 만들기에 좋은 느낌으로 남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포르투갈, 포르투에 다녀온 사람들이 "그냥 좋았다"라고 이야기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19-20p)


<세 도시 이야기>는 포르투, 파리, 피렌체를 이야기한다. 영화음악을 진행하는 아나운서의 포르투 이야기, 영화 평론가의 파리 이야기, 아트저널리스트의 피렌체 이야기. 난 내가 여행했던 피렌체와 파리 이야기부터 읽느라 책을 뒤쪽부터 펼쳤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가 여행 에세이인데, <세 도시 이야기>는 여행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피렌체를 이야기하며 영화, 역사, 건축, 문학, 미술에 관해서도 들려준다. 역사를 어려워하는 난 피렌체보다는 파리 이야기가 더 쉽게 읽혔다. 나도 관심 있는 분야인 미술과 영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내가 생각하는 여행 이야기에 좀더 가까웠던 것 같다. 포르투를 읽으면서는 역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눈길을 확 끄는 화려함은 없다. 확실히 정신을 앗아갈 만큼 아찔한 아름다움은 없다. 그러나 간소하고 청렴한 삶을 영위하는 전통 있는 가문의 후예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포르투갈의 선입견이 그러했듯, 포르투의 첫인상이 그러했듯이 포르투의 장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엄이 있다고나 할까. (44p)




해발 130미터인 몽마르트르 언덕은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파리의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관광지다. 눈부시게 하얀 사크레쾨르 대성당 앞으로는 언덕을 내려가는 계단이 양쪽으로 카펫처럼 쭉 뻗어 있고, 그 가운데 녹색 융단 같은 잔디밭이 깔려 있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 양식을 절충해 지었다는 우아한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조금만 돌아 나가면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테르트르 광장이 펼쳐진다. '화가들의 광장'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120p) 행정구역상으로는 나누어져 있으나 이 100년 된 녹색 간판의 서점(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불과 2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700년 된 성당이 바로 '우리 어머니' 혹은 '귀부인', 곧 '성모 마리아'라는 의미를 가진 노트르담 성당이다. (141p) 파리의 노트르담은 꼭 들러야 하고 들를 수밖에 없는 곳이다. (142p)


파리에서 처음 3일 동안은 날씨가 흐리더니 하늘이 참 맑았던 마지막 날 오후,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고 몽마르트르 언덕에 올랐다. 화가들의 광장이라고도 불린다는, 사크레쾨르 대성당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테르트르 광장이 궁금하다. 미리 알았더라면, 꼭 가봤을텐데, 아쉽다. 종탑에 오르기 위해 두 번이나 찾아갔던 노트르담 대성당과 불과 200미터 떨어진 곳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있었다니, 혹시 걷다가 지나쳤으려나. 여행 전에 <세 도시 이야기>를 읽었더라면, 내 여행은 마음이 더욱 풍요로워졌을지도 모르겠다.



두말할 것 없이 파리의 미술관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한 곳은 오르세 미술관이다. 파리를 떠나기 전날에도 무엇을 할까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결국 이곳에서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감상했다. 그들의 작품에는 시간을 초월해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키고 감동을 전달하는, 내가 감히 '예술'이라고 부르고 싶은 유전자가 내재해 있다. (148p) 나 같은 파리 초보 여행자에게는 루브르가 오랑주리 미술관과 퐁피두 센터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오르세 미술관이 그들과 센강을 사이에 두고 대략 삼각형의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꽤나 흥미로웠다. 이 얼마나 경제적인 동선인가! (151p)


한국에서 미리 구입한 뮤지엄패스를 챙겨 들고 파리에 있는 동안 열심히 걸었다. 파리 둘째 날에 오르세 미술관과 루브르 박물관, 셋째 날 저녁에 오랑주리 미술관, 마지막 날은 로댕 미술관과 퐁피두 센터. 지도를 펼쳐놓고 일정을 짜던 때가 그립다. 오르세와 루브르에는 몇 시간씩 머물면서도 시간이 모자라 아쉽기만 했다. 마치 영화 속으로 들어간 듯한 기분이었던 루브르는 무척이나 광대(廣大)해서 맘에 드는 몇 작품만 골라 보았다.



거대한 로마나 화려했던 밀라노, 환상적인 베니스와는 달리 피렌체는 우아하고 기품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었다. (265p) 

여행을 시작한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과 성 피에트로 대성당은 웅장했다. 파리행 열차를 타기 위해 하루 여행 했던 밀라노는 두오모 외관이 특히 화려했다. 우산을 손에서 놓지 못했던 베니스였지만, 바포레토를 타고 다니며 황홀했고, 피렌체는 예쁘고 아름다웠다. 두오모 쿠폴라에서 내려다본 피렌체는 영화 속 아니, 동화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시뇨리아 광장의 조각상 사이에 앉아 있으면서는 박물관에 있는 느낌이었고, 우피치 미술관을 찬찬히 돌아보면서는 궁전 안에 있는 듯했다. 



피렌체의 뒷골목은 특히 더 여유로웠고, 편안했다. 피렌체는 보아야 할 미술관, 박물관, 정원, 장대한 건축이 즐비하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자 갤러리니까. 하지만 골목길 안에 숨어 있는 공방이나 가게를 보지 않는다면 진짜 피렌체를 봤다고 할 수 있을까. (296p)

피렌체에서는 아니, 이탈리아 여행 내내 날씨가 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렌체에서 웨딩촬영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베키오 다리를 배경으로,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삼각대와 리모컨이 찍어준 우리의 첫 셀프웨딩 사진은 너무도 어색하지만, 그래도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다.



<세 도시 이야기>는 피렌체와 파리 여행을 추억하며, 언젠가 가게 될지도 모르는 포르투를 떠올리며, 읽고 싶었던 책이다. 세 명의 저자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각 도시를 이야기한다. 손바닥 만한 책의 크기와 두께, 표지 디자인, 심지어 'ㅍ'으로 시작하는 세 도시의 이름까지도 맘에 든다. 오랜만에 읽은 여행 에세이라서 그럴까? 임신과 출산으로 배낭여행과는 잠시 멀어진 지금 상황에서 읽은 <세 도시 이야기>는 여행에 목마른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다시금 '여행'이란 단어에 설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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