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술통
장승욱 지음 / 박영률출판사 / 2006년 11월
평점 :
누군가가 마구 구겼을 종이를 펼쳐놓은 듯한 표지가 인상적이다.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친근함에 관심을 가졌지만 444페이지의 압박이 심했다. 하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저자의 맛깔스러운 글솜씨에 흠뻑 취해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이틀만에 읽어버렸기 때문이다.
누구나 술에 대한 여러가지 기억이 있겠지만 그 누구도 저자만큼 한 권의 두꺼운 책으로 엮을 만큼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술에 관한 추억이 많다. 어릴 적 식사 중에 아버지께서 채워놓으신 술잔에 코를 갖다 대고는 찡그리기도 했고 입에 살짝 대보기도 했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2 때 처음 맥주를 마셨다. 6교시 수업까지 마치고 저녁식사 시간에 교문 앞에서 고깃집을 하던 친구 집에 갔다. 저녁을 먹은 후였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친구가 긴 컵에 맥주를 따라주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번에 들이켰고 그 한 잔에 감정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자율학습시간, 괜히 우울해져서는 영어단어며 수학공식으로 가득 채운 연습장을 북북 찢어 버렸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고 위로해주려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였다. 그 후, 대학 입학을 앞두고 참석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소주라는 술을 처음 마셨다. 술과 친할 수밖에 없는 화학공학과였고 마침 생일이 겹친 탓에 위대한 삼배주를 경험했다. 4년의 대학 생활 중, 기숙사 생활을 하던 1학년 때는 일주일에 4일 이상을 여기저기 모임에 쫓아다니며 술을 마셨다. 2학년 때는 다행스럽게도 남자친구가 생겨 술자리에 참석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4학년 때는 저학년 때도 하지 않은 외박을 하며 새벽까지 술자리에 있었고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할 수 없는 창피한 기억 또한 가지고 있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 어린 감정이 솟구쳐 오르기도 한다. 술에 관한 추억과 그 추억들을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너무도 진솔하게 이야기해준다. 마치 술상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아서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편안하게 듣고 있는 느낌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국내파, 연안파, 친소파 이야기며 대학 입학 후 오뎅파 결성과 교련복 이야기, 48일 동안의 자전거 무전 여행기 등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책에 빠져 들어 술과 친구의 매력에 넋이 팔려 있는 동안의 알싸하면서 상쾌하고 구수한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