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서일까 칼 포터가 요즘 이상하다. 늘 성실했던 그가 근무 시간이 끝나자마자 득달같이 스트립바 <비바 라 라싸 Viva la laza>로 달려가는 것이다. 한 두번이야 젊은 혈기에 그럴 수 있다 치지만 그 빈도가 너무 잦았다. 포터의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한 카렐라는 그를 붙잡고 충고했다. 하지만 포터는 다짜고짜 <비바 라 라싸>로 카렐라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닌가.
<비바 라 라싸>는 스트립바 답게 무대 중앙에 봉이 기둥처럼 박혀 있었다. 벗기 위해 입는 옷을, 입은 검은 옷의 스트립 걸이 나오자 사람들의 환호는 대단했다. 칼이 말한다.
"자, 잘 보세요. 블랙 다알리아라고 불리는 여자예요. 여기서 최고 인기죠."
블랙 다알리아는 섹시하게 봉에 기대어 춤을 추며 옷을 벗었다. 남자들의 환호는 대단했다.
"잘 봤네. 그래, 자네 요즘 이 여자한테 그렇게 미친건가?"
칼 포터는 침울하게 대답했다.
"저..사실 동독 출신이예요.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저와 제 여동생을 데리고 미국으로 망명했죠. 연고도 없고, 재산도 없이 출발해서 저희 집은 무지하게 어려웠죠. 일해도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자 아버지는 알콜 중독에 걸려 어머니와 동생, 저를 학대했습니다. 나중에는 술값을 감당할 수 없자, 14살이던 여동생을 포주에게 팔았어요...전 늘 동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런...그랬군..."
"그런데 우연히 잠복 근무 중에 춤추는 블랙 다알리아를 봤어요. 전 직감했죠. 그녀가 제 동생이라는 것을...솔직히 닮았잖아요?"
빈 말로라도 칼 포터와 블랙 다알리아는 닮은 곳이 전혀 없었지만 카렐라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매일 와서 닮은 곳을 찾던 중에 마침내 닮은 곳을 발견했어요. 발가락이 닮았더라구요."
카렐라는 마음이 찡해져 거짓말을 했다.
"발가락만 아니라 얼굴도 닮았네."
"그렇죠! 하하. 역시 카렐라 형사님은 눈이 날카로우셔."
며칠 뒤, 칼 포터의 성화에 못 이겨 카렐라, 마이어, 핼 윌리스, 버트 클링 형사들은 <비바 라 라싸>로 향했다. 기다리던 블랙 다알리아는 나오지 않았다. 무료한 나머지 형사들은 칼을 재촉했다.
"노래나 한 번 해보지, 그래."
형사들의 성화에 칼은 노래를 불렀다. Bread의 를 불렀다.
"If a picture paints a thousand words then why can't I paint you"
(독자의 편의를 위해 더 이상의 영어는 생략하겠습니다. 결코 작가의 지식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분위기는 마치 폭탄이라도 떨어진양 썰렁해졌다. 마이어가 비꼰다.
"오우~ 칼의 노래 끝내주는군."
그것도 모르고 칼은 연방 감사 인사를 한다. 바닥을 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마이어가 총대를 멘다.
"나 나나나 난나나나~ 아일 서바이브~ 솨~ 오 애즈 롱 애즈~ 솨~ "
한참 술을 마시며 떠들석하게 즐기고 있는데 여자 화장실 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직업 정신을 발휘하여 다섯 형사는 여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여자 화장실 칸막이 안쪽에 한 여자가 죽어 있었다. 혀가 튀어나온 것이 질식사의 흔적이 보였다. 목에 손자국이 있는걸로 봐서 교살인 듯 했다.
형사들은 밖으로 급히 나갔다. 버트 클링이 소리쳤다.
"여자 화장실에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음악을 멈춰! 그리고 모두 움직이지 마라..."
그러나 역효과가 발생했다. 살인 사건이라는 말이 나오자 손님들 모두 당황해 벌떡 일어서며 문쪽으로 달려갔다. 기민한 핼 윌리스가 문 앞으로 다가가며 손에 든 총을 뽑았다. 총을 공중에 발사하며 핼은 소리쳤다.
"이 안에 살인범이 있으니 아무도 나갈 수 없다. 모두 정지하라.."
군중들 중 한 남자가 소리쳤다.
"살인이 일어난 곳은 여자 화장실이라고 했잖소. 난 남자니 내보내 주시오."
"그럴 순 없다. 몰래 들어갔을 수도 있지."
"저야말로 내보내 주세요."
블랙 다알리아였다. 여느 때와 같이 아름다운 그녀는 뇌쇄적인 검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한쪽 손에는 붕대를 감고 있었다.
"전 내내 출연자 대기실에 있었어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도 못해요."
"그래도 앉아 있으쇼."
블랙 다알리아가 쌀쌀맞게 소리친다.
"저는 어제 팔을 다쳐 오늘 공연도 못했어요. 이 팔을 해서 어떻게 목을 조르겠어요."
"그래도 안 돼. 무조건 앉아 있어. 조사가 끝날때까지 아무도 못 나가."
핼의 박력에 사람들은 주섬주섬 제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칼이 입을 연다.
"용의자가 이렇게 많으니 난해한 사건이로군요. 이 사건을 어떻게 풀죠?"
마이어가 대답했다.
"이 사건을 풀 사람은 단 한 사람 밖에 없지"
"예?"
마이어가 소리친다.
"카!"
버트 클링이 외친다.
"렐!"
핼 윌리스가 마무리한다.
"라!"
스티브 카렐라 형사는 블랙 다알리아의 팔을 잡았다. 그러곤 입을 열었다.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군. 범인은 블랙 다알리아, 너야. 피살된 여자는 여자화장실에서 발견됐다고만 했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말한 적이 없어. 자네는 대기실에 있었다면서 피살자가 목이 졸려 죽었다는 걸 알았지? 이유는 단 한 가지! 네가 범인이고, 네가 목을 졸랐기 때문이야!"
블랙 다알리아의 얼굴이 사색이 된 순간, 칼 포터가 뛰어나와 카렐라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카렐라는 나가 떨어졌다. 칼의 눈동자는 반쯤 뒤집혔다.
"안돼! 아무도 내 동생은 못 건드려. 내 동생이 범인일 리가 없어. 모두 비켜."
핼이 앞으로 나섰다.
"이봐. 칼. 왜 이래? 아직 범인이 확실한 건 아냐. 그리고 자네 여동생인지 아닌지도 모르잖아."
"그럴 리 없어. 내 동생이야!"
광기에 찬 칼 포터는 아무도 막을 수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핼은 유도의 달인이었다. 재빨리 칼의 품에 파고 들어 엎어치기를 구사했다. 칼은 건너편 테이블에 쳐 박혀 정신을 잃었다.
여름내내 시민들을 괴롭히던 더위가 물러간 어느 가을날, 카렐라와 칼은 87관서 건물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손에 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렐라가 어렵게 입을 뗀다.
"유감이군. 블랙 다알리아가 자네 동생이 아니라니 말이야."
"괜찮습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이미 그녀가 내 동생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다행이지. 한데 경찰은 왜 그만두는 건가?"
"카렐라 형사님. 저는 어렸을 때 동생을 지키지 못했어요. 동생을 지킬 수 있을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했던 거예요...동생을 잃고 저는 늘 한 가지 상상을 하곤 했어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죠.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죠.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 거라구요. 애들이란 앞 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요.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요. 바보 같은 얘기란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입니다."
"하지만...문제가 있네. 호밀밭의 아이들이 자네 얼굴을 감당할 수 있을까? 더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까 싶은데..."
"카렐라 형사님!!!"
"하하. 농담이야. 농담..."
감동으로 카렐라의 가슴이 멍멍해졌다. 어린 동생을 잃었지만, 그는 호밀밭의 많은 아이들을 얻지 않겠는가...자네 인생은 틀리지 않았네. 칼 포터...자네는 일등 경찰이자, 일등 파수꾼이야...
몇 년 뒤, 카렐라는 한 장의 사진을 우편으로 받았다. 석양이 지는 호밀밭에서 수십 명의 아이들이 웃고 떠들고 있고, 아이들 뒤편에는 칼 포터가 서 있었다. 칼 포터 옆에는 그와 꼭 닮은 여자 한 명이 칼과 어깨동무를 한채 나란히 서 있었다.
<그동안 사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