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지음 / 동방미디어 / 199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의 60년대에는 학생 운동이 꽤 과격했다고 합니다. 흔히들 전공투(전학공투회의)라고 알고 계시는 학생 연합과 정부와의 대결이 극심했다고 하더군요. 일본에서는 60년대 대학을 다니며 투쟁에 동참한 사람들을 일컬어 전공투 세대라고 부른다네요. 그런데 이 전공투의 투쟁 방식은 거의 전쟁이나 다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공투를 다룬 책을 읽어보면 투석전, 화생방전에 육박전까지...이 작품은 전공투 멤버였던 주인공 기쿠치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60년대, 도쿄대에서 투쟁을 하던 기쿠치와 친구 구와노, 유코는 투쟁의 한계를 느끼고 발을 뺍니다. 그런데 구와노가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바람에 기쿠치와 구와노는 도피 생활을 하게 됩니다. 무려 20년이 지난 현재, 기쿠치는 여전히 도피 생활을 하고 있고, 알콜 중독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신주쿠 공원에서 위스키를 홀짝이며 시간을 죽이는데 공원에서 엄청난 위력이 폭탄이 터집니다.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죠. 그런데 사상자 리스트에는 소식이 끊긴 지 20년이 지난 구와노와 유코의 이름이 있습니다. 끊을 수 없는 운명의 세 명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었다, 기막힌 우연이죠. 기쿠치는 사건을 조사해나가기 시작합니다.

 

간략한 줄거리였습니다. 보시다시피 흥미로운 내용을 작가는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기쿠치는 수상한 곳을 들쑤시고 다니며 신주쿠 노숙자들, 야쿠자, 폭발 사건 희생자의 집, 거대 기업 등을 방문합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수집하면서 마침내 사건의 큰 그림을 그리게 된다는 내용이 긴박감 넘치게 펼쳐집니다.

 

1949년생 작가 후지와라 이오리는 역시 전공투 세대로서 도쿄 대학 불문과를 졸업했답니다. 엄청난 학벌이죠? 본서 <테러리스트의 파라솔>로 우수한 미스터리 신인 작가에 수여하는 에도가와 란포상을 탔으며, 그해에 나오키 상까지 수상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작품에 대한 호평도 작용했겠지만 엘리트 작가에 대한 예우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라 보여지네요. 이 작품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같은 시대를 살아남은 친구들에게/ 그렇지 못하고 사라진 친구들에게' 그렇게 이 작품은 작가와 같은 세대를 힘겹게 통과해오거나, 중간에 낙마한 모두들에게 바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개인적인 감상을 적을 차례인 것 같습니다.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이 전공투 세대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간직한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건 당연하겠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그렇게 울림이 크지 않습니다. 설마 일본추리소설을 더 재미있게 보기 위해, 깊이 있는 일본 역사 공부를 요구하시는 분은 없겠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작품이 복잡한 플롯에 비해 명쾌함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사건은 정말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사건, 마약, 야쿠자, 신주쿠 노숙자, 테러리스트 까지 벌려놓은 플롯이 많은데 비해 해결 과정에서는 쾌도난마와 같은 명쾌함이 떨어집니다. 범인의 입으로 그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정리하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웬지 찜찜함이 남는 결말이었습니다. 또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는 귀중한 단서를 기쿠치만 알고, 독자들에게는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허무주의+패배주의+숙명론자 같은 기쿠치의 캐릭터도 마음에 들지 않았구요.

 

시간 가는 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었지만 90년대 일본 추리소설의 대표작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에도가와 란포상이나 나오키 상을 수상한 하라 료나 기리노 나츠오의 수준에는 아직 못 미친다는 게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별점: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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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10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짜요. 그래도 주인공 멋있잖아요~

jedai2000 2006-03-1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공 멋있죠..^^;; 넘 짠가요. 사실 저도 네 개와 세 개 반 사이에서 격렬하게 망설였는데 밑에 적었듯 기리노 나츠오나 다카무라 카오루 정도의 수준에는 좀 부족하다고 생각이 되서 짜게 줬습니다. 그래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04-20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솔직히 세 개 정도가 맞다고 봅니다. 주인공의 변화가 지나쳐요. 속이 빈 주사위를 보는 것 같다고 해야하나...
 
캘리포니아 걸 - 에드거 앨런 포 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9
T. 제퍼슨 파커 지음, 나선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캘리포니아 걸>은 2005년 미국 에드거상 수상작입니다. 세계 유수의 추리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만 선별해 출간하는 블랙캣 시리즈의 9번째 작품입니다. 꽤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서 기대를 하고 읽었습니다. 작가 문장력도 좋고, 문학적인 향기가 많이 나는 작품이라 그런 쪽을 좋아하시는 독자분들은 꽤 마음에 들어하실 것 같습니다.

 

1954년 사소한 시비로 형제간의 3:3대결을 벌이게 된 베커 형제와 폰 형제. 싸움은 베커 형제의 완승으로 끝나지만 그날 베커 형제는 평생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한 소녀를 알게 됩니다. 7살 난 폰 형제의 막내 동생 자넬이 바로 그녀입니다. 폰 형제를 묵사발낸 베커 형제는 부모님의 명령에 따라 폰 형제에게 사과를 하러갑니다. 거기서 어린 자넬이 눈에 멍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자기들에게 폭력을 당한 폰 형제가 자넬에게 폭력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베커 형제는 폭력이 폭력을 부른다는 사실을 처음 배우게 되는 거지요.

 

세월이 흘러 베커 형제 중 장남 데이비드는 목사가 되고, 차남 닉은 형사가, 삼남 클레이는 월남전에 참전하고, 막내 앤디는 기자가 됩니다. 1968년, 형제 모두에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자넬 폰이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된 것입니다. 자넬 폰은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끔찍하게도 목이 잘린 시체가 됐을까요? 이 부분은 닉의 입을 통해 작가가 요약한 내용을 부분 발췌해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자넬. 주근깨 얼굴. 양 손에 오렌지를 들고 있었던 소녀. 발레 치마와 기타...열네 살 때부터 마약과 술에 빠진 아이...나중에 미스 터스틴으로 선발되었다가 <플레이보이> 표지 모델로 나왔다는 이유로 자격을 박탈당했다...이제 겨우 열아홉. 짧은 생을 뒤로 하고 그녀의 머리는 불결한 통조림공장에 잘려나갔다."     

 

어린 나이에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다 간 자넬 폰의 죽음의 비밀을 벗기기 위해 형사인 닉과 기자 앤디가 수사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자넬 폰은 어찌나 바쁘게 살았던지, 마약 문제와 성범죄를 비롯해 유력 정치인과 엮여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용의자와 수많은 증거들...결국 사건을 완전히 해결하는 데는 38년이 걸립니다.

 

이 작품이 미국에서 평가가 굉장히 좋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격변의 시대였던 미국의 60년대를 깊이있게 소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반은 단정한 머리에 성조기를 가슴에 달고 성실하게 일을 하고, 나머지 반은 마리화나와 LSD에 취한 히피였던 기묘한 시대를 작가는 세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는 존 F.케네디 암살과 베트남 전쟁, LSD, 살인마 찰스 맨슨, 우주선 발사 등 60년대를 상징할 만한 에피소드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그 시대를 살아온 평론가들이 높은 점수를 주었을 것 같습니다만 한국 독자들에게는 조금 낯선 느낌이 있습니다. 장르는 완전히 다르지만 <포레스트 검프>에 등장하는 미국의 시대적 묘사를 우리 관객들이 그 나라 관객들만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캘리포니아 걸>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작품의 배경이 미국의 60년대 소도시라는 것입니다. 사건을 조사하는 닉과 앤디의 용의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동네 형, 형 친구, 아버지 친구 등이죠. 취조할 때도 용의자들이 오히려 형사에게 반말을 씁니다. 하긴 뭐 동네 형이니까요. 작가는 좁아터진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인물 중 누가 마음 속에 악의를 숨기고 있었을지를 끊임없이 궁금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줍니다. 그 외에도 시대적 배경이 60년대이다 보니 당시 과학 수사의 한계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데 이 부분도 재미있습니다. <CSI>에 익숙한 요즘 독자들에게 옛날 수사 방식은 정말 답답하게만 느껴지죠.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에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습니다. 가장 불만인 것은 이 작품이 미스터리라는 얼개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완성도가 부족했다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꽤 많은 분량으로 살인 사건을 다루지만 의외로 추리성이 약합니다. 특히 결국 진범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거의 실소가 날 정도입니다. 정보도 미리 독자들에게 전달된 것도 아니고, 다분히 우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보다 못한 결말로 허겁지겁 맺는 느낌이 강합니다.

 

평론가들이 주는 추리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작품답게 깊이있는 인물과 시대 묘사가 돋보이지만 추리적 재미는 거의 전무하다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문학 작품의 느낌이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지만 제 취향은 아닌 작품이라는 게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마지막으로 유독 기억에 남는 대사를 소개해 드리고 짧은 독후감을 마치겠습니다.   

 

"...성에 대해 매우 개방적인 편이었어. 한동안은 술에 대한 태도도 그랬지. 다음에는 각성제. 다음에는 마리화나. 마지막으로 LSD. 이런 것들은 다 함께 가는 모양이야. 섹스와 마약과 음악 말일세."

"68년이잖아요."

 

 

별점: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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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hand 2006-03-1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 미스터리 분야 최고의 기획중 하나인 블랙 캣 시리즈에 대한 응원과 의미있는 작품에 대한 의무감때문에 구입을 고민하고 있지만, 많은 분들의 평은 대부분 "아쉬움"이로군요. 이것참.

물만두 2006-03-1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은 진짜 읽어볼려고 해도 이리 말리시니 참... 안 읽을 수도 없고 난감합니다 ㅠ.ㅠ

jedai2000 2006-03-10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의미있는 작품인 것은 분명히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에게까지 의미가 있는 작품은 아닌 것 같아요. 온전히 미국 독자들을 위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추리적 재미가 전혀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물만두님...480페이지까지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진범이 밝혀지는 순간, 그리고 진범을 어떻게 알게됐나가 밝혀지는 순간 정말 허망했습니다...T.T

한솔로 2006-03-10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대를 그리려는 야심과, 그 야심만큼 어느 정도 당대를 그려냈기에 재밌게 볼 수는 있어요. 그런데 제다이님 말씀처럼 추리의 얼개가 너무 빈약하고, 또 죽은 자넬의 영혼이 방치됐다는 느낌이 너무 슬프더군요.

jedai2000 2006-03-10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께서 좋은 점을 지적하셨네요. 베커 형제 영혼의 치유(?)에는 공을 들였는데 자넬의 영혼은 그냥 방치되는 감이 있습니다.

Lennon 2006-07-27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의 반은 단정한 머리에 성조기를 가슴에 달고 성실하게 일을 하고, 나머지 반은 마리화나와 LSD에 취한 히피였던 기묘한 시대'?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마도 이쪽으로 보이지만) 그냥 본문에 나온 말을 인용하신 건가요?

jedai2000 2006-07-27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문에 나온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염없이 웹서핑을 하다 문득 <소나기>의 황순원 작가님의 젊었을 적 사진을 발견하고 퍼와봤다. 옛날에는 문인들도 얼굴 보고 뽑았는지 거의 원빈을 방불케 하는 꽃미남임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소나기>를 패러디한 인연(ㅋㅋ)도 있고 해서 웬지 낯설지 않은 작가님이시다.

 

<소나기>가 중학교 교과서인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건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이 명단편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해지는 사춘기 때 본 책들은 평생 기억에 남는 법이다.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멜로 영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데는 <소나기>가 마음 속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어서일 거라고 믿는다. (필자는 감수성이 가장 예민할 때, 김용의 작품에 빠져 살아서 지금도 협사(俠士)를 꿈꾼다...^^;;)

 

그런데 <소나기>에는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다. 황순원 선생님께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을 때 제자분을 개인적으로 뵌 적이 있다. 그분은 황순원 작가님의 <소나기> 육필 초교를 보셨는데...그동안 소년, 소녀의 완전 순백한 사랑 이야기로 알려져 있는 <소나기>에는 사실 약간의 스킨쉽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리기만 하던 소년이 소녀로 인해 성적인 야릇한 생각을 하게 되고, 마침내 키스를 나눈다고 한다. 그런데 교과서에 실리는 과정에서 그런 장면들을 개정해 달라고 요청을 받게 되고 그렇게 하셨다고 한다.

 

지금 작품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초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설마 황 선생님이 <소나기>에서 지저분한 느낌이 나는 장면을 넣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소년이 몸과 마음의 사랑에 다 눈뜨게 되는 성장소설의 분위기가 나지 않을까 추측만 해본다. 선생님은 2000년인가 돌아가셨는데, 자제분이신 황동규 시인 역시 <즐거운 편지>같은 명시를 다수 남겼다. 어제 드라마 <봄의 왈츠>를 보는데, 소년소녀 배우들이 원두막에서 비를 긋는 장면이 나오길래 자연스레 <소나기>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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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의랑데뷰 2006-03-17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류소설가 황순원이 떠오르는군요;;;

jedai2000 2006-03-19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류소설가 황순원..ㅋㅋ
유명한 이야기죠. 소변인님의 저서에 익히 나오는..^^;;
 


어제부터 새로 시작한 드라마 <봄의 왈츠>를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오래전부터 윤석호 감독님의 팬이었기 때문에 그분의 계절 연작 중 마지막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석호 감독님과 같은 음식점에서 밥을 먹은 일이 있는데 그때 팬입니다, 하며 사인 한 장 받아둘 걸 하며 늘 후회하고 있다.

 

요즘은 거의 완전히 철지난 소재인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아름다운 계절 풍경에 담아내 서정성을 극대화시키는 연출력을 보여주는 윤감독님은 영원한 사랑을 믿는 피터팬 같은 분이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계절 연작의 순위는 <여름향기>-<가을동화>-<겨울연가>순인데, 아무래도 당시 주연인 손예진을 좋아했기 때문에 기억 속에서 <여름향기>가 조금 미화된 경향이 있다...ㅋㅋ

 

드라마 완성도나 최루성에서는 <가을동화>가 가장 뛰어난 것 같다. 계절 연작을 거쳐간 스타는 송승헌, 송혜교, 원빈, 한채영, 배용준, 최지우, 박용하, 박솔미, 손예진, 류진, 한지혜, 신애 등이 있다. 가장 덕을 많이 본 사람은 역시 욘사마님과 지우히메님이실테고, 얼굴에 비해 유독 뜨지 못했던 원빈도 팔자를 고쳤다.

 

원빈의 명대사 '얼마면 돼? 사랑 이제 돈으로 사겠어."가 떠오른다. 이걸 본인이 한 번 술김에 여후배에게 해봤는데 그녀가 바로 '얼마 줄 수 있는데요. 저 돈 많이 필요해요.'라는 대사를 촉촉한 눈으로 날리더라.ㅋㅋ 참고로 나도 물론 원빈의 발톱에도 따라갈 수 없는 외모지만, 그 아이도 송혜교와는 눈썹 하나 닮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세월은 이토록 흘러 계절 시리즈의 약발도 다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 그래서 캐스팅도 한효주, 서도영, 이소연, 다니엘 헤니라는 신진급들로 채워졌다. 우려를 했는데 어제 첫 회를 보니 다행히 선전하고 있는 것 같다. <여름향기>에서 손예진이 등장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림이 되는 것과는 달리, 한효주는 미모에서 조금 부족하지만 그래도 신선한 느낌이 좋다.

 

계절 연작의 최대 장점은 바로 극중에서 등장하는 장소로 바로 떠나고 싶게 만든다는 것. <겨울연가>의 남이섬이나 <여름향기>의 보성 녹차밭은 지금 완전히 관광지가 되었잖은가. 이 작품에서는 오스트리아의 눈풍경과 푸르른 완도의 풀밭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솔직히 영상면에서는 윤감독이 독보적이다. 물론 드라마는 그림 엽서가 아니니까 내용도 신경써야겠지만...

 

의붓남매간의 사랑, 기억상실증, 심장이식 등 어떤 주제를 다뤄도 계절 연작의 주제는 운명적인 사랑이다. <봄의 왈츠> 역시 마찬가지로, 한 입양아가 어렸을 때, 한국을 떠나기 전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낸 여자아이와 운명적인 재회를 한다는 내용이다. 솔직히 1,2회는 재미있었지만 시청률은 10%초반이다.

 

이제 이런 내용은 시효를 다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드라마는 다양성이 생명이다.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삶을 세밀하게 그린다거나, 진보적인 정치 메시지를 담는 드라마도 좋고, 영원한 사랑을 그리는 동화같은 드라마도 필요한 것이다. "뻑이 갑니다, 뻑이 가." 같은 대사도 명대사지만 "무지개 너머 한 소녀를 만났습니다.", "할아버지의 영혼이 바람을 타고 우주로 날아갑니다." 같은 <봄의 왈츠>식 대사도 기억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여름향기> 방영 당시, 친구들과 보성 녹차밭을 놀러가서 찍은 사진을 소개한다. 절묘하게 <여름향기>의 한 장면을 재현했다. 다만 한 가지 치명적인 다른 게 있다면 <여름향기>는 선남선녀지만, 저희는 남남커플이라는 것...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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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6-03-08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남남커플 좋아요.
전 어떤 상황에서도 그림이 되는 단열군때문에 보는데 어제 앞에를 놓쳤더니 아그들만 나오더군요.ㅠㅠ

nemuko 2006-03-08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첫회 잠깐 보는데 누가 누군지 헷갈리지 뭐예요. 전 그 여자애 둘을 임은경이랑 채정안이 얼굴 고치고 나온 줄 알았어요. 궁금해서 인터넷 찾아 봤더니.... (이럴때 나이들었단 생각이 파바박... ㅠ.ㅜ)

물만두 2006-03-08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단열군이 누군가요?

paviana 2006-03-0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언냐..그 유명한 단열군..다니엘 헤니 군을 모르신단말입니까? 마냐님 페이퍼에 나오는 그 유명한 시조의 주인공을....언냐 세상 잘못 살고 있는거야요.=3=3=3

jedai2000 2006-03-08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단열군을 좋아하시는군요. 이번 드라마에서 한층 매력적인 인물로 나오던걸요. 아그들 나오는 이야기도 서정적이고 좋던데요. 이번 <봄의 왈츠>는 꽤 매력적인 드라마가 될 것 같습니다. ^^;;

네무코님...한효주가 채정안을 닮았죠. 물론 채정안처럼 인형같이 예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귀엽고 산뜻하니 좋더군요.

물만두님..파비아나님께서 친절하게 달아 주셨네요. 다니엘 헤니입니다. <삼순이>로 벼락스타가 됐던...

물만두 2006-03-08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단열군이 다니엘 헤니군요 ㅠ.ㅠ 음,.. 신군은 알겠는데 율군은 누군지도 좀
3=3=3

상복의랑데뷰 2006-03-08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율군은 궁에 나오는 율인가요? ㅎㅎ

jedai2000 2006-03-08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율군은 2인조 그룹 UN의 보컬 출신인 김정훈입니다. 드라마 <궁>에서 황태자 이신의 사촌인 이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율이라 율군이지요..^^;;

상복의 랑데뷰님...그렇습니다.^^;
 
비밀의 계곡 1
차미언 허시 지음, 크리스토퍼 크럼프 그림, 김시현 옮김 / 평사리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비밀의 계곡>은 오랜만에 읽어보는 동화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쓰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해리 포터>같이 요란뻑적지근한 마법이 등장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보다는 좀 더 마음이 편안해지는, 잊고 있었던 자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작품입니다.

 

작가 차미언 허시는 원래 고고학 학위를 받았는데, 영국의 유명한 고고학자 맥스 말로완의 초대를 받고 집을 방문해서는 그의 아내를 만나게 됩니다. 그의 아내란 바로 그 유명한 애거서 크리스티! 여기서 차미언 허시는 큰 감명을 받고 언젠가 소설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고 <비밀의 계곡>을 통해 마침내 꿈을 이뤄냈습니다. 이 작품에 약간의 추리적 기법이 있는 것이 완전히 우연은 아닌가 봅니다.

 



왼쪽 그림은 <비밀의 계곡>에 수록된 삽화 중의 한 장입니다. 이 작품이 위에 소개한 차미언 허시 만의 노력으로 탄생한 것은 아닙니다. 세밀한 펜화로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스케치해낸 삽화가 크리스토퍼 크럼프의 땀도 아울러 스며들어가 있습니다. 약 80여장의 삽화가 각 챕터의 앞장에 그려져 있어 앞으로 진행될 내용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삽화가 나오면 이 그림은 앞으로 나올 어떤 내용과 연관이 있을까 추측하면서 보았답니다. 

 

 

 영국의 고아 소년, 스티븐은 뜻밖에 유언장을 받습니다. 그 내용은 바로 영국 남부 콘월 지방에 있는 랜즈베리 홀이라는 거대한 저택의 유일한 상속인이 자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니 자신의 큰할아버지 테오도르가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인 스티븐에게 랜즈베리 홀을 남겨준 것이었습니다. 스티븐은 혹시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 있을까 싶어 랜즈베리 홀로 향합니다. 가난한 고아 소년, 스티븐이 하루 아침에 랜즈베리 홀의 왕이 된 것입니다!

 

스티븐이 랜즈베리 홀까지 가는 여정도 참으로 흐뭇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대기오염과 자연 파괴로 얼룩진 런던을 떠나 호젓한 시골길을 걷는 스티븐의 신나는 발걸음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전염이 됩니다. 이 작가는 정말 시골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도 어릴 적에 시골에 살았었는데, 이 책은 제 기억 속의 어느 때 자연이 가장 아름다웠는지 떠올리게끔 만들어주더군요. 

 

보슬비가 내리는 숲 속에 들어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촉촉한 빗방울이 나뭇잎 아래로 똑똑 떨어집니다. 비를 맞아 한층 더 푸르른 생기에 가득찬 숲의 모든 생명들은 참으로 눈부시기 이를 데 없지요. 이 작품에는 그런 장면들이 많습니다. 자연을 오래 관찰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런 글을 쓸 수 없을 것입니다.  

 

랜즈베리 홀에 도착한 스티븐은 영지를 탐험하기 시작합니다. 이 랜즈베리 홀이 얼마나 넓은지 빅토리아 시대의 대저택, 숲과 밭, 호수, 동굴, 바다가 모두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랜즈베리 홀을 홀로 탐험하는 스티븐이 부럽습니다. 모든 복잡한 것을 버리고 자연으로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사람이 보기에는 말예요. 하지만 스티븐은 랜즈베리 홀에서 이상하게 자신을 몰래 훔쳐보는 시선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수십 개의 눈을 말예요. 묘한 기분을 느낀 스티븐은 테오도르 할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보고 랜즈베리 홀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스티븐이 보는 콘월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과 테오도르 할아버지의 일기에서 그리는 아마존 강의 장엄한 자연에 대한 찬가가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산으로, 바다로 당장 떠나고 싶게 만들어주는 작품이라고나 할까요. 아이들에게는 자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멋진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팍팍한 일상을 잠시 잊고, 어린 시절 뛰놀았던 자연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고요. 동화이다 보니 곡절이 비교적 적고 단선적으로 흘러가는 약점이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딱 적절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테어도르 할아버지의 아마존 여행기가 참으로 흥미진진합니다. 그 부분만큼은 누구나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읽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지는 마술같은 책이라는 말씀을 드리며 이만 맺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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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e 2006-03-12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쓴 글이더라도 블로그에서 퍼 오는 것 보다는 직접 쓰는 게 더 나을 듯 하네요...^^
자칫하면 오해를 살 수도...


jedai2000 2006-03-12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런가요. 저는 원래 모든 글을 블로그에서 쓰는 편이라...그럼 블로그 글을 지우면 되겠네요. 충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