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지음 / 동방미디어 / 199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의 60년대에는 학생 운동이 꽤 과격했다고 합니다. 흔히들 전공투(전학공투회의)라고 알고 계시는 학생 연합과 정부와의 대결이 극심했다고 하더군요. 일본에서는 60년대 대학을 다니며 투쟁에 동참한 사람들을 일컬어 전공투 세대라고 부른다네요. 그런데 이 전공투의 투쟁 방식은 거의 전쟁이나 다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공투를 다룬 책을 읽어보면 투석전, 화생방전에 육박전까지...이 작품은 전공투 멤버였던 주인공 기쿠치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60년대, 도쿄대에서 투쟁을 하던 기쿠치와 친구 구와노, 유코는 투쟁의 한계를 느끼고 발을 뺍니다. 그런데 구와노가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바람에 기쿠치와 구와노는 도피 생활을 하게 됩니다. 무려 20년이 지난 현재, 기쿠치는 여전히 도피 생활을 하고 있고, 알콜 중독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신주쿠 공원에서 위스키를 홀짝이며 시간을 죽이는데 공원에서 엄청난 위력이 폭탄이 터집니다.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죠. 그런데 사상자 리스트에는 소식이 끊긴 지 20년이 지난 구와노와 유코의 이름이 있습니다. 끊을 수 없는 운명의 세 명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었다, 기막힌 우연이죠. 기쿠치는 사건을 조사해나가기 시작합니다.

 

간략한 줄거리였습니다. 보시다시피 흥미로운 내용을 작가는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기쿠치는 수상한 곳을 들쑤시고 다니며 신주쿠 노숙자들, 야쿠자, 폭발 사건 희생자의 집, 거대 기업 등을 방문합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수집하면서 마침내 사건의 큰 그림을 그리게 된다는 내용이 긴박감 넘치게 펼쳐집니다.

 

1949년생 작가 후지와라 이오리는 역시 전공투 세대로서 도쿄 대학 불문과를 졸업했답니다. 엄청난 학벌이죠? 본서 <테러리스트의 파라솔>로 우수한 미스터리 신인 작가에 수여하는 에도가와 란포상을 탔으며, 그해에 나오키 상까지 수상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작품에 대한 호평도 작용했겠지만 엘리트 작가에 대한 예우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라 보여지네요. 이 작품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같은 시대를 살아남은 친구들에게/ 그렇지 못하고 사라진 친구들에게' 그렇게 이 작품은 작가와 같은 세대를 힘겹게 통과해오거나, 중간에 낙마한 모두들에게 바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개인적인 감상을 적을 차례인 것 같습니다.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이 전공투 세대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간직한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건 당연하겠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그렇게 울림이 크지 않습니다. 설마 일본추리소설을 더 재미있게 보기 위해, 깊이 있는 일본 역사 공부를 요구하시는 분은 없겠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작품이 복잡한 플롯에 비해 명쾌함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사건은 정말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사건, 마약, 야쿠자, 신주쿠 노숙자, 테러리스트 까지 벌려놓은 플롯이 많은데 비해 해결 과정에서는 쾌도난마와 같은 명쾌함이 떨어집니다. 범인의 입으로 그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정리하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웬지 찜찜함이 남는 결말이었습니다. 또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는 귀중한 단서를 기쿠치만 알고, 독자들에게는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허무주의+패배주의+숙명론자 같은 기쿠치의 캐릭터도 마음에 들지 않았구요.

 

시간 가는 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었지만 90년대 일본 추리소설의 대표작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에도가와 란포상이나 나오키 상을 수상한 하라 료나 기리노 나츠오의 수준에는 아직 못 미친다는 게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별점: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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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10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짜요. 그래도 주인공 멋있잖아요~

jedai2000 2006-03-1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공 멋있죠..^^;; 넘 짠가요. 사실 저도 네 개와 세 개 반 사이에서 격렬하게 망설였는데 밑에 적었듯 기리노 나츠오나 다카무라 카오루 정도의 수준에는 좀 부족하다고 생각이 되서 짜게 줬습니다. 그래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04-20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솔직히 세 개 정도가 맞다고 봅니다. 주인공의 변화가 지나쳐요. 속이 빈 주사위를 보는 것 같다고 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