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걸 - 에드거 앨런 포 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9
T. 제퍼슨 파커 지음, 나선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캘리포니아 걸>은 2005년 미국 에드거상 수상작입니다. 세계 유수의 추리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만 선별해 출간하는 블랙캣 시리즈의 9번째 작품입니다. 꽤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서 기대를 하고 읽었습니다. 작가 문장력도 좋고, 문학적인 향기가 많이 나는 작품이라 그런 쪽을 좋아하시는 독자분들은 꽤 마음에 들어하실 것 같습니다.

 

1954년 사소한 시비로 형제간의 3:3대결을 벌이게 된 베커 형제와 폰 형제. 싸움은 베커 형제의 완승으로 끝나지만 그날 베커 형제는 평생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한 소녀를 알게 됩니다. 7살 난 폰 형제의 막내 동생 자넬이 바로 그녀입니다. 폰 형제를 묵사발낸 베커 형제는 부모님의 명령에 따라 폰 형제에게 사과를 하러갑니다. 거기서 어린 자넬이 눈에 멍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자기들에게 폭력을 당한 폰 형제가 자넬에게 폭력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베커 형제는 폭력이 폭력을 부른다는 사실을 처음 배우게 되는 거지요.

 

세월이 흘러 베커 형제 중 장남 데이비드는 목사가 되고, 차남 닉은 형사가, 삼남 클레이는 월남전에 참전하고, 막내 앤디는 기자가 됩니다. 1968년, 형제 모두에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자넬 폰이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된 것입니다. 자넬 폰은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끔찍하게도 목이 잘린 시체가 됐을까요? 이 부분은 닉의 입을 통해 작가가 요약한 내용을 부분 발췌해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자넬. 주근깨 얼굴. 양 손에 오렌지를 들고 있었던 소녀. 발레 치마와 기타...열네 살 때부터 마약과 술에 빠진 아이...나중에 미스 터스틴으로 선발되었다가 <플레이보이> 표지 모델로 나왔다는 이유로 자격을 박탈당했다...이제 겨우 열아홉. 짧은 생을 뒤로 하고 그녀의 머리는 불결한 통조림공장에 잘려나갔다."     

 

어린 나이에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다 간 자넬 폰의 죽음의 비밀을 벗기기 위해 형사인 닉과 기자 앤디가 수사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자넬 폰은 어찌나 바쁘게 살았던지, 마약 문제와 성범죄를 비롯해 유력 정치인과 엮여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용의자와 수많은 증거들...결국 사건을 완전히 해결하는 데는 38년이 걸립니다.

 

이 작품이 미국에서 평가가 굉장히 좋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격변의 시대였던 미국의 60년대를 깊이있게 소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반은 단정한 머리에 성조기를 가슴에 달고 성실하게 일을 하고, 나머지 반은 마리화나와 LSD에 취한 히피였던 기묘한 시대를 작가는 세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는 존 F.케네디 암살과 베트남 전쟁, LSD, 살인마 찰스 맨슨, 우주선 발사 등 60년대를 상징할 만한 에피소드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그 시대를 살아온 평론가들이 높은 점수를 주었을 것 같습니다만 한국 독자들에게는 조금 낯선 느낌이 있습니다. 장르는 완전히 다르지만 <포레스트 검프>에 등장하는 미국의 시대적 묘사를 우리 관객들이 그 나라 관객들만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캘리포니아 걸>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작품의 배경이 미국의 60년대 소도시라는 것입니다. 사건을 조사하는 닉과 앤디의 용의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동네 형, 형 친구, 아버지 친구 등이죠. 취조할 때도 용의자들이 오히려 형사에게 반말을 씁니다. 하긴 뭐 동네 형이니까요. 작가는 좁아터진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인물 중 누가 마음 속에 악의를 숨기고 있었을지를 끊임없이 궁금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줍니다. 그 외에도 시대적 배경이 60년대이다 보니 당시 과학 수사의 한계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데 이 부분도 재미있습니다. <CSI>에 익숙한 요즘 독자들에게 옛날 수사 방식은 정말 답답하게만 느껴지죠.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에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습니다. 가장 불만인 것은 이 작품이 미스터리라는 얼개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완성도가 부족했다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꽤 많은 분량으로 살인 사건을 다루지만 의외로 추리성이 약합니다. 특히 결국 진범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거의 실소가 날 정도입니다. 정보도 미리 독자들에게 전달된 것도 아니고, 다분히 우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보다 못한 결말로 허겁지겁 맺는 느낌이 강합니다.

 

평론가들이 주는 추리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작품답게 깊이있는 인물과 시대 묘사가 돋보이지만 추리적 재미는 거의 전무하다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문학 작품의 느낌이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지만 제 취향은 아닌 작품이라는 게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마지막으로 유독 기억에 남는 대사를 소개해 드리고 짧은 독후감을 마치겠습니다.   

 

"...성에 대해 매우 개방적인 편이었어. 한동안은 술에 대한 태도도 그랬지. 다음에는 각성제. 다음에는 마리화나. 마지막으로 LSD. 이런 것들은 다 함께 가는 모양이야. 섹스와 마약과 음악 말일세."

"68년이잖아요."

 

 

별점: ★★★ 1/2

 

 


댓글(7)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ldhand 2006-03-1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 미스터리 분야 최고의 기획중 하나인 블랙 캣 시리즈에 대한 응원과 의미있는 작품에 대한 의무감때문에 구입을 고민하고 있지만, 많은 분들의 평은 대부분 "아쉬움"이로군요. 이것참.

물만두 2006-03-1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은 진짜 읽어볼려고 해도 이리 말리시니 참... 안 읽을 수도 없고 난감합니다 ㅠ.ㅠ

jedai2000 2006-03-10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의미있는 작품인 것은 분명히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에게까지 의미가 있는 작품은 아닌 것 같아요. 온전히 미국 독자들을 위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추리적 재미가 전혀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물만두님...480페이지까지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진범이 밝혀지는 순간, 그리고 진범을 어떻게 알게됐나가 밝혀지는 순간 정말 허망했습니다...T.T

한솔로 2006-03-10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대를 그리려는 야심과, 그 야심만큼 어느 정도 당대를 그려냈기에 재밌게 볼 수는 있어요. 그런데 제다이님 말씀처럼 추리의 얼개가 너무 빈약하고, 또 죽은 자넬의 영혼이 방치됐다는 느낌이 너무 슬프더군요.

jedai2000 2006-03-10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께서 좋은 점을 지적하셨네요. 베커 형제 영혼의 치유(?)에는 공을 들였는데 자넬의 영혼은 그냥 방치되는 감이 있습니다.

Lennon 2006-07-27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의 반은 단정한 머리에 성조기를 가슴에 달고 성실하게 일을 하고, 나머지 반은 마리화나와 LSD에 취한 히피였던 기묘한 시대'?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마도 이쪽으로 보이지만) 그냥 본문에 나온 말을 인용하신 건가요?

jedai2000 2006-07-27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문에 나온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