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하게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 장르를 떠나 넓게 봤을 때 미스터리 요소가 있는 작품은 포함했습니다.

*** 국내 번역본이 나와 있는 책만을 대상으로 했고, 당연히 국내에 출간된 모든 일본 미스터리를 읽지는 못했습니다. 

 

5위. 불야성 - 하세 세이슈

 

 

   타오르는 환락의 불로 꺼질 줄 모르는 밤을 지새우는 도쿄 가부키초. 차별받는 대만인 혼혈아 류젠이는 어려서 고아가 됐고, 현재는 장물아비 노릇을 하며, 남의 등에 칼을 꽂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이 비정한 도시의 한 마리 들개처럼 살아간다. 처음으로 살인한 건 고등학교 때. 어느날 류젠이는 상하이 계파의 보스 유엔천쿠이의 호출을 받게 되고, 그로부터 옛 친구인 우휴춘이 가부키초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휴춘은 유엔천쿠이의 오른팔을 죽이고 잠적한 상태였다. 마치 지옥의 사자 같은 유엔천쿠이는 류젠이를 이렇게 협박한다. "네 친구니까 네가 책임지고, 3일 안에 우휴춘을 내 앞에 데려와라. 그렇지 않으면 넌 죽는다."

 일본 하드보일드, 느아르의 귀재 하세 세이슈의 대표작이다. 일본 사회에서 천대받는 혼혈아인 류젠이(그래서 항상 혼자다)가 상하이와 북경, 대만의 계파 전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게 기둥줄거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은 철저한 악인들이다. 작가는 '불야성' 가부키초를 내가 먹지 않으면 먹힌다는 정글의 생태로 치환해 독자들에게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강렬한 에너지를 선사한다. 류젠이가 받은 사형선고일은 오로지 3일, 그 3일이라는 데드라인이 주는 넘치는 긴박감과 한다 하는 지략가들의 치밀한 암투와 간계, 배신으로 점철된 인간 관계, 총격전과 육박전의 박력까지 이 모든 것이 섞여 돌아가는 불꽃 같은 작품이다. 일단 한 번 페이지를 잡으면 절대로 놓을 수 없다. 하세 세이슈는 데뷔작인 이 작품을 더쉴 해미트의 <피의 수확>에서 착안했다고 밝혔으며, <진혼가> <장한가>로 이어지는 '류젠이3부작'으로 완성했다. 소문에 의하면 이 작품들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국내 출판사가 있다는데 도대체 꿩궈먹은 소식이다. 이 책들을 내지 못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당장 출간할 것을 엄중 경고하는 바이다.

 

 

 

4위. 점성술 살인사건 - 시마다 소지

 



  이시오카(그의 이름을 영어로 쓰면 아마 '왓슨'이 될 것이다)는 점성술사 친구 미타라이 키요시를 찾는다. 미타라이가 들으면 재미있어 할 이야깃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란 다름 아닌 '헤이세이 점성술 살인사건.' 태평양 전쟁 전 점성술에 홀려버린 서양화가 우메가와는 모든 미美의 정수인 '아조트'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여섯 명의 딸을 희생시킨다. 불가사의한 이 연쇄살인사건은 그후 몇 십 년 동안 누구도 풀지 못했다. 비상한 두뇌를 가진 미타라이는 곧 흥미를 느끼고 이 사건에 뛰어든다.

 <점성술 살인사건>은 퍼즐 미스터리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가는 다른 곁가지를 모두 배제한 채 점성술 살인사건이라는 단 한 가지 수수께끼에만 몰두하며, 사건의 배경과 단서를 주의깊게 노출시키고, 로지컬한 추리와 독창적인 트릭에 집중함으로써 사회파나 하드보일드가 유행하던 80년대 일본 미스터리계에 신본격 열풍을 몰고 왔다. 이 작품을 읽으면 누구나 코넌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가 득세하던 황금기의 미스터리를 떠올릴 것이다. 무엇보다 대단한 건 작품의 핵심 트릭으로서, 크리스티나 앨러리 퀸이 읽어도 혀를 내두를 만큼 뛰어나다. 어쩌면 일본인만이 착상 가능할 지도 모르는 엽기적인 트릭이지만 너무나도 기발하고 참신해 시마다 소지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3위. 망량의 상자 - 교고쿠 나츠히코

 

   

 고서점 '교고쿠도'를 운영해 별명도 교고쿠도인 수다쟁이 추젠지 아키히코는 조상 대대로 요괴를 퇴치하는 음양사 일도 병행하고 있다. 전작 <우부메의 여름>에서 밀실에서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와 18개월째 출산을 하지 못하고 있는 그의 아내의 사건을 멋지게 해결해낸 적이 있는 교고쿠도는 이 작품 <망량의 상자>에서 열차사고로 온 몸이 부서진 인형처럼 박살난 소녀가 병원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연기처럼 사라진 사건에 말려든다. 이 소녀의 믿지 못할 이야기와 더불어 연달아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들을 하나로 꿰어 교고쿠도는 사건의 압도적인 비밀과 진실을 독자들 앞에 펼쳐놓는다.

 일본 전통의 요괴를 미스터리와 결합하고, 독특한 개성을 가진 등장인물들을 창조해 일종의 '교고쿠 월드'안에서 뛰어놀게 만드는 교고쿠 나츠히코는 일본 내에서 현재까지 신드롬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작가다. 주인공 교고쿠도의 입을 통해 요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동, 서양의 온갖 현학을 어마어마하게 펼쳐놓는 취향이 있어 1,000페이지를 예사로 넘는 엄청난 볼륨이지만 현실에서 접할 수 없는 기이하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충분히 독자를 몰입시킨다. 이제는 슬슬 물리는 감도 있고, 너무 길어 읽기 힘들다는 독자도 조금씩 나오지만 <망량의 상자> 단 한 편만으로도 작가는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기묘한 사건들이 하나로 합쳐져 진실의 밑그림이 그려지는 결말의 스펙타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고, 지옥의 풍경을 잠깐 엿본 듯한 그로테스크함도 일품이다. 일본 미스터리 사상 손꼽힐 만한 역작.

 

 

2위. 마크스의 산 - 다카무라 가오루

 

        

    씨가 있어야 꽃도 피고 나무도 되는 것처럼 모든 비극에는 그 출발점이 있기 마련이다. 1976년 일본의 미나미 알프스에서 한 가족이 자동차 배기가스 자살을 시도해 사내아이 하나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곧 시간적 배경은 1991년 현재로 돌아와 사회의 엘리트들이 연속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그려진다. 수사 1과 7계 고다 주임 외 경관들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그들은 한 대학교의 등산회원으로 동기생들이다. 왜 그들은 죽어야 했을까? 고다가 밝혀내는 사건의 진상에 독자들은 아연해질 것이다.

 1993년 제109회 나오키상 수상작. 현대 일본 경찰소설의 최고봉으로 작가 다카무라 가오루의 지금의 입지를 만들어준 결정적인 작품이다. 과거의 사건들과 현재의 사건이 맞물려 돌아가는 절묘한 구성과 일가족 자살사건, 전공투 등의 소재를 통해 당대 일본 사회를 소설 안에 오롯이 재현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며, 엄청난 취재가 선행되었으리라 여겨지는 수사 과정의 정밀한 묘사가 입을 다물게 한다. 끝모를 허무감과 비애에 젖어 있는 고다에 대한 묘사도 훌륭하며, 산으로 시작해 산으로 귀결되는 결말의 감동 역시 일품이다. 고다 시리즈는 <석양에 빛나는 감>과 <레이디 조커>로 이어지는데, 국내에서는 '일본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일컬어지는 다카무라 가오루의 작품들을 별로 만나볼 수 없어 늘 안타깝게 생각한다.

 

 

1위. 화차 - 미야베 미유키

 

 

 은퇴할 나이에 부상을 당해 휴직 중에 있는 혼마 형사에게 처조카가 찾아와 자신의 약혼녀를 찾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결혼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실종된, 단지 소박한 행복을 느끼는 게 꿈의 전부였던 그 여자 세키네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미스터리 소설의 세계에서는 어찌 보면 평범하다 할 수 있는 한 여자의 실종이라는 사건의 조사에서 속속 드러나는 사실들은 자못 충격적이며, 담배나 술이 절로 떠오를 만큼 우울하고 애절하다.

 이 작품은 거대 자본주의에 매몰된 현대 사회의 여러 병폐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무엇보다 집중하고 있는 건 신용카드를 이용한 손쉬운 대출과 그 대출금을 막지 못해 젊은 나이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가련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손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는 좀더 현대적이고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된 신용카드라는 소재를 통해 침체에 빠진 사회파 미스터리의 면모를 혁신하고, 결국 애초에 돈 있는 자만 배를 불리고, 돈이 없는 사람은 끝없이 착취당하며 살아야 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에 접근한다. 그야말로 화차(지옥의 불수레)에 탄 것처럼 완전히 모든 걸 빨리기 전까지는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 현대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성공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련한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 비판에만 매몰되어 작품을 딱딱하게 만드는 멋없는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단서 하나없는 실종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은 일급 미스터리로 손색이 없다. 등장하는 인물 하나 하나 개성이 넘치고 인간을 잘 그린다는 세평답게 심리 묘사도 완벽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 미스터리를 다시 잡았을 때만 해도 웬지 유치한 걸 읽는다는 부끄러움에 주변 사람들에게 떳떳이 권하지 못했는데, 메시지와 재미를 완벽하게 결합한 <화차>를 읽고 나서야 미스터리를 잡는 손이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내게는 <화차> 이전과 이후가 분명하게 나눠질 만큼 의의가 큰 작품이라 1위로 선정했음을 아울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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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6-09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 읽은 작품들^^ 화차를 예상했어야 했는데요^^:;;

nemuko 2007-06-09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크스의 산>이랑 <불야성>은 소문만 무성하게 듣고 결국 못 구해서 못 봤어요. 이런 속상한 경우가....

jedai2000 2007-06-10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보신 지 좀 되서 기억이 잘 안 나셨나 보네요. ^^

네무코님...일어 잘 하시잖아요 ^^ 원서로라도 한 번 읽어보세요. 후회는 안 하실 것 같아요 ^^

oldhand 2007-06-10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스럽게도(?) 최상위 다섯개는 다 읽은 거네요. 아주 잘 읽었습니다. 카페가서 답글 놀이 해야 하려나.. ^^

jedai2000 2007-06-11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제가 워낙 예전부터 좋아했던 작품들이죠. 이 순위는 쉽게 바뀔 것 같지가 않네요 ^^ 답글놀이하세요. 구경 가게 ^^

paviana 2007-06-12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미미여사네요. (아직 안읽었어요.읽을거에요.ㅎㅎ)
망량을 몇번이나 들었다놨다 했는데 , 언젠가는 꼭...불끈입니다요.^^

이매지 2007-06-12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량, 화차만 읽어봤네요^^ 점성술 살인사건은 조만간 읽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날개 2007-06-12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성술 밖에 못읽었어요... 그 유명한 화차를 얼른 봐야할텐데!

Koni 2007-06-13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전 안 읽은 일본 미스터리가 정말 많아요~ 재미있어보이는 걸 골라서 읽어봐야겠어요.

jedai2000 2007-06-13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망량의 상자>나 <화차> 다 재미있어요. 일단 손이 잘 안 가서 그렇지 한 번 잡으면 금세 다 보실 수 있을 거예요 ^^

이매지님...<점성술 살인사건>은 트릭이나 퍼즐 풍의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신다면 아주 만족스러울 거예요 ^^

날개님...<화차>는 정말 강력하게 추천드려요. 꼭 보시기 바랍니다 ^^

냐오님...저도 안 본 게 많은 걸요 ^^ 앞으로도 많이 쏟아져 나올 테니까 지갑 관리 잘 해여죠. 굳이 일본쪽만 아니라 우리나라 미스터리도 그럴싸한 게 많이 나왔음 좋겠습니다. ^^
 

10위. 화이트 아웃 - 심포 유이치

 

 

  폭설이 한 번 내리면 걷잡을 수 없는 지방의 댐에 근무하는 도가시는 같이 일하는 친구와 함께 순찰을 나가다 조난을 당한다. 부상당한 친구를 구하기 위해 혼자 눈 속을 헤치며 댐으로 귀환하려 하나 사방이 온통 흰 눈雪이라 빛의 난반사로 인해 눈眼에 이상이 생겨 일시적으로 시각을 상실하는 '화이트아웃'에 빠져버리고 만다. 결국 사망한 친구를 가슴속에 품고 항상 죄책감에 빠져 사는 도가시. 1년 후 죽은 친구의 애인이 그가 죽기 전에 일했던 곳을 찾아보고 싶다며 방문할 예정이다. 하지만 초대받지 못한 자들이 또 있었으니 6억 톤의 물이 잠긴 댐을 점거해 수십억 엔을 챙기려는 테러리스트들까지 따라온 것이다.

 '설산의 다이하드'라고 불러주고 싶은 작품이다. 일본에서 영화화도 되어 크게 히트한 걸로 알고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평은 그다지 좋지 않다. 영화를 보지 못했기에 이렇게 좋은 원작을 가지고 어떻게 훌륭하지 못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떠나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는 자동소총과 각종 특수무기로 무장한 9명의 전문 테러리스트를 맞아 민간인인 도가시가 강렬한 투혼과 허를 찌르는 두뇌 싸움을 통해 한 명 한 명씩 처치하는 장면들이 연속되며 잠시도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독자를 몰입시킨다. 깊은 자책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도가시가 다시 한 번 과거의 실패를 만회하고 죽은 친구의 애인을 살려내 자신을 구원한다는 대강의 플롯은 뻔한 만큼 익숙한 정서로 독자를 충분히 감동시킨다. 단 한 가지의 분명한 목적을 위해 인간의 한계를 넘을 정도로 분투하는 도가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시길.

 

 

9위. 독원숭이 - 오사와 아리마사

 

 

 경찰 간부 출신이지만 커리어를 위한 정치 싸움에는 애초에 등을 돌리고 현장 일선에서 뛰며 범죄를 원수처럼 미워하는 '골통' 경관이 있다. 별명도 한 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아 '상어'다. 신주쿠 상어 사메지마가 이번에 상대할 적수는 자신을 배신한 범죄조직 보스를 처치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온 대만의 프로페셔널 킬러 '독원숭이.' 대만 조직의 보스는 살기 위해 결연을 맺은 야쿠자의 도움을 받아 독원숭이를 상대하려 하지만 전설의 킬러 독원숭이는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듯 야쿠자들을 가볍게 죽이며 점점 목표 대상에 접근한다. 하지만 하늘에 해가 두 개일수 없듯이 신주쿠 바닥에는 상어와 원숭이가 공존할 수 없는 법!

 일본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의 대명사 오사와 아리마사의 대표작인 신주쿠 상어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 전작 <소돔의 성자>를 일반적인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그렸다면 <독원숭이>부터는 작풍이 조금 달라진다. 작가는 누가 악당인지, 누가 범인인지 그 정체를 밝히는 일에는 처음부터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신주쿠 상어 사메지마와 한 판 제대로 겨룰 수 있는 호적수(독원숭이)를 설정해 두 사람의 대결구도 형식으로 몰아간다. 조금씩 맞수의 존재에 눈을 떠가는 두 사람이 스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엇갈리다가 결국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한 판 제대로 맞붙게 만드는 것이다. 미스터리라고 하기엔 약간 어렵고, 어떻게 보면 통속적인 액션오락물에 가까울 수도 있지만, 워낙 페이지마다 박력이 넘쳐 그런 약점은 거의 눈치채기 힘들 것이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도 자신의 원칙과 자존심을 지켜야 하기에 목표에 접근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철저한 전문가 근성,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된 한 여인에 대한 헌신, 놀라운 무술 실력 등 독원숭이의 마력적 매력은 끝이 없으며, 밀어주는 이 하나 없어도 사명감 하나로 범죄와 맞서 싸우는 고독한 상어 사메지마도 정말 멋진 주인공이다. 이들 중 한 명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커다란 비극인 듯...

 

 

8위. 그로테스크 - 기리노 나쓰오

 



 세간에서 보기에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유능한 대기업의 여사원 가즈에가 밤에는 창녀 생활을 하다 살해된다. 전국이 떠들석한 가운데 이 사건을 알게 된 그녀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화자 '나'는 가즈에의 당시 모습을 회상한다. 그외에도 나의 동생이자 괴물 같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결국 창녀가 된 유리코의 일기, 중국 불법 이민자로 고단한 삶을 살다 그녀를 살해한 장제중의 수기 등을 통해 혼란과 증오, 악의와 바닥 모를 외로움으로 점철된 가즈에의 삶이 베일을 벗는다.     

 어둠의 소용돌이에 빠진 여성을 주인공으로 즐겨 그리는 작가 기리노 나쓰오가 일본 사회를 떠들석하게 만든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여성의 매춘의 연대기를 기록한다. 어린 시절부터 고교시절을 거쳐 현재까지 한 여자가 남성 위주의 사회 속에서 좌절하고, 여성들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질투와 외모에 대한 열등감 등으로 서서히 파멸해가는 과정이 처절하도록 소름끼치게 그려지는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놀랄 만큼 그로테스크하다. 어디서도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지 못해 밤거리를 헤매는 가즈에의 외면적 방황과 내면적 자아의 붕괴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독자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비애감을 남긴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리노 나쓰오의 세계에 구원 따윈 없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기리노 나쓰오의 걸작.

 

 

7위. 모방범 - 미야베 미유키

 



도쿄의 한적한 공원에서 토막난 여자의 팔 한쪽과 핸드백이 발견된다. 대대적인 수사가 벌어지는 가운데 방송국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사건의 물줄기를 바꿔놓는다. 자신을 범인이라 지칭한 이 남자는 자신이 사건을 저질렀으며 팔의 주인은 이미 죽었지만, 핸드백의 주인은 자기가 데리고 있다고 밝힌다. 살인은 연이어 계속되고 그때마다 방송국에 떠들석하게 전화를 거는 범인은 마치 사건의 반향이 커져가는 걸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잘못된 방법으로 세상의 주목을 한 몸에 받길 원하는 비뚤어진 심리가 바탕에 깔린 '극장형 범죄'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인기와 실력 면에서 현재 공히 일본 최고의 작가로 부를 수 있을 듯한 미야베 미유키의 역작. 엄청난 분량의 작품으로 3부작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1부는 사건의 향방을 르포처럼 외부에서 관찰하고, 2부는 범인의 시점에서 그들의 정신이 점점 병들어가는 모습과 결국 범죄라는 치명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이 묘사되며, 3부는 범인의 몰락과 평생 아픔을 안고 살아야 하는 희생자 가족의 끝없는 슬픔이 그려진다. 전대미문의 사건을 맞아, 누구도 원치 않았음에도 어쩔 수 없이 흉악한 범죄에 휘말려들게 된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데 작가는 이 많은 등장인물들에 골고루 시선을 나눠줌으로써 현대 일본 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때로 세심하게, 때로 장중하게 묘사하는데 성공한다. 심지어 범인에게까지 일말의 동정의 여지를 남겨둔 미야베 미유키의 인간적인 면모에는 누구라도 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위. 점과 선 - 마쓰모토 세이초

 

규슈 해안에서 두 명의 남녀 시체가 발견된다. 남자는 건실하게 직장 잘 다니던 남자고 여자는 술집에서 일하는 호스티스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한 남녀가 동반자살을 한 게 아닐까 결론을 내린 수사팀. 하지만 집념의 노형사 도리가이와 도쿄의 민완형사 미하라의 끈질긴 추적으로 사건의 진상이 이내 떠오른다.

 공히 일본 미스터리의 선구자 3명 중 한 사람으로 꼽힐 자격이 충분한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미스터리(나머지 두 명은 당연히 에도가와 란포와 요코미조 세이시가 될 것이다). 원래 역사소설이나 순문학을 썼던 세이초는 종래의 미스터리 소설이 허황된 배경에 말도 안 되는 동기와 요란뻑적지근한 트릭이 남발되어 한 바탕 깜짝쇼로 요상하게 변질되어 가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는 이 작품 <점과 선>과 <너를 노린다> <제로의 초점> 등의 소설을 잇달아 발표해 현실적인 배경과 그럴싸한 동기, 충분히 실현 가능한 트릭을 통해 기존 미스터리의 환상적인 요소들을 배제했으며, 당대 일본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작품 안에 끌여들어 환경오염이나 금융 사기 등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까지 아울러 보여주었으니, 이를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부른다. 사회파의 비조인 마쓰모토 세이초의 명성은 오늘날까지 굳건하며, 미스터리를 애들이나 읽는 것이 아닌 어른들도 진지하게 접할 수 있는 읽을거리로 지위 상승시킨 공은 백번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다할 것이다. <점과 선>은 점과 점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두 점을 멋대로 이어 선을 만들어버리는 선입견을 이용해 멋진 트릭을 선보인다. 또한 크로프츠 식의 열차 시간표 알리바이 깨기 트릭도 충실하게 일본 풍으로 이식하는데 성공했다. 50년대에 나온 고전이지만 지금 봐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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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6-08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7,8,9 봤네요. 어쩜, 그로테스크는 나온지도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내용이 하나도 생각 안나요 -_-;;;

jedai2000 2007-06-08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위도 마저 보시죠 ^^ <그로테스크>의 내용은 강렬한데 왜 기억이 안 나실까요^^

paviana 2007-06-0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1위 발표는 왜 안하시는건가요? 궁금하게.^^

jedai2000 2007-06-08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아직 다 못 썼습니다 ㅋㅋ

이매지 2007-06-08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방범을 빼고 본 게 없는 리스트! 오홋! 이런거 완전 좋아요 ㅎㅎㅎ
(점점 보관함이 가득해지고 있는 중 ㅎ)

jedai2000 2007-06-09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가계에 악영향을 끼쳐 죄송합니다 (__) 이매지님 덕분에 글 쓰는 보람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날개 2007-06-1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소한 10위안에 든건 다 봐야겠다는 생각이.........^^;;;; 볼게 많군요..

jedai2000 2007-06-1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10위 안에 든 것 중 <독원숭이>와 <불야성> <마크스의 산>은 절판입니다. 도서관이나 헌책방을 잘 알아보세요. 볼 거 많음 좋져 ^^
 

15위. 살육에 이르는 병 - 아비코 다케마루

 

이 소설은 무언가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한 남자가 체포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곧 몇 달 전으로 되돌아가 정신에 병이 든 이 남자가 살육에 이끌리게 되는 심리와 여성 희생자를 하나 하나씩 물색해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며, 어딘지 수상한 행동을 일삼는 이 남자를 의심하는 그의 가족 중 한 명의 여성이 나름대로 조사를 벌이는 모습이 교차된다. 마지막으로 은퇴한 형사가 우연히 이 사건에 말려들어 범인을 추격한다. 이 세 명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살육에 이르는 병>은 끝으로 갈수록 긴장이 고조되다 충격적인 결말로 매조지된다.

 올해 초, 많은 화제가 되었던 작품으로 최강의 반전과 엽기적인 살인 행각의 가감없는 묘사가 시선을 잡아끈다. 하지만 단순히 눈길을 끌기 위해 처절한 살육 장면을 그렇게 길고 자세하게 그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실 이 작품은 현대 일본 사회와 가정이 한 사람의 정상적이고 온전한 성인 남성을 길러내기 힘든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주제의식을 그것과 호응하는 훌륭한 반전을 통해 공감가게 그려내고 있다. 그동안 많은 미스터리를 보았지만 주제를 이렇게 잘 살려주는 트릭, 트릭을 이렇게 훌륭하게 뒷받침해주는 주제를 가진 작품은 흔치 않았다. 그렇다고 결코 딱딱한 작품은 아니며 반전의 '깜짝쇼'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만하다.

 

 

14위. 시계관의 살인 - 아야쓰지 유키토

 

십각관부터 인형관까지 천재 건축가이자 일가족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자살해버린 나카무라 세이지가 죽기 전에 지었다는 10채의 저택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해 그곳들을 방문하는 아마추어 탐정이 있다. 그의 이름은 시마다 키요시. 다섯번째인 이번 저택의 이름은 거대한 시계탑이 있어 이름하여 '시계관'이다. 수많은 시계들로 가득찬 시계관에 사흘 동안 9명의 사람들이 갇히게 되고, 필연적으로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현장에 있던 출판사 편집자(<십각관의 살인>에서는 대학생이었다)의 증언을 토대로 명추리를 전개해 마침내 진상을 꿰뚫는 시마다의 대활약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80년대 초반 '신본격'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관 시리즈'의 다섯번째 작품으로 교토대 미스터리 클럽에서 활동하며 젊은 미스터리 작가의 기수로 떠올랐던 아야쓰지 유키토의 대표작이다. 풀기 힘든 수수께끼를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명탐정의 활약이라는 고전적인 미스터리의 즐거움을 오늘에 되살리자는 신선한 모토를 들고나온 이들 신본격파는 80년대 일본 미스터리의 기운찬 파도였다고 봐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관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이 서술트릭이 많고 조금 조잡한 느낌을 주는 것도 분명히 있는데 반해 <시계관의 살인>은 작가 본인도 밝히고 있듯 스트레이트한 물리적 트릭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스케일이 큰 트릭과 고전기의 명탐정 느낌을 주는 시마다의 매력에 빠져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1992년 제45회 일본미스터리작가협회상 수상작으로 미스터리 팬이라면-특히 기발한 트릭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만족할 것이다.

 

 

13위. 검은 집 - 기시 유스케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신지는 보험에 든 아들이 자살해도 보험금을 탈 수 있느냐는 부부의 문의전화를 받는다. 직접 현장으로 조사를 나가 만나본 부부는 딱히 설명할 순 없지만 어딘지 느낌이 좋지 않다. 사건 현장에서 몇 가지 의문점을 발견한 그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그 다음 순간부터 지옥문이 열린다. 신지뿐 아니라 그의 애인까지 두 번 다시 맞닥뜨리기 싫은 악몽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영화화되어 곧 개봉될 예정이라 많은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1997년 제4회 일본호러소설대상을 탄 이 작품은 상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호러의 분위기가 강한 작품이다. 당시에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아 심각한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사이코패스'라는 정신이상자들이 세간에 많이 알려지지 않을 때라 일본 내에서 많은 화제를 불렀다고 한다. 물론 클라이막스인 '검은 집'에서 펼쳐지는 한 폭의 지옥도는 뛰어난 호러소설의 한 장면으로 손색이 없지만, 두 부부 가운데 누가 사이코패스이고 한 명은 희생자(혹은 동조자)인지를 그들이 어렸을 때 써낸 일기를 분석해 알아내는 등 미스터리적인 재미도 충분하다. 엔터테이너 기시 유스케는 이 작품으로 유명해졌지만, 바이오 호러 <천사의 속삭임>, 도서 미스터리 <푸른 불꽃>, 트릭이 있는 정통 미스터리 <유리 망치>까지 다채로운 작품에서 다재다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12위. 아웃 - 기리노 나쓰오

 

도시락 공장에서 마치 기계의 부속품처럼 쉬지 않고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네 중년 여자가 있다. 포악한 남편을 둔 그중 한 명이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하자 이들은 그녀를 도와 남편을 그야말로 '해체'해 몰래 버린다. 뜻하지 않은 이 사건은 당연히 그녀들의 인생을 바꿔버리고, 그녀들은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에 휘말린다. 종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결코 하차를 허락하지 않는 총알택시에 탄 것처럼 그녀들 주변을 빠르게 내달리는 사건들의 소용돌이... 심지어 그녀들의 솜씨에 반한 야쿠자에 의해 또다른 시체 해체 사업까지 하게 되니, 역시 한 번 어둠에 발을 담근 사람은 쉽게 발을 뺄 수 없는 모양이다. 작품은 네 여자 중 리더 격인 마사코에게 반해 그녀를 죽여 소유하려는 킬러까지 등장하면서 점입가경으로 나아간다.

 1998년 제51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자 영역되어 아시아에서 최초로 에드거상 후보에 오른 작품. 명성만큼 압도적인 작품으로 기리노 나쓰오가 가진 파워를 느낄 수 있다. 네 명의 평범한 여자들이 어떻게 시체와 해체, 살인에 익숙해져 가는지를 따라간 이 작품에는 현대 일본의 중년 여성들이 느끼는 고독과 절망, 끝없이 계속되는 암담한 현실에서 탈출(out)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날카로운 심리 묘사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발적인 전개, 빼어난 문장력까지 잘쓴 소설의 삼박자를 모두 갖춘 역작.

 

 

11위. 백야행 - 히가시노 게이고

 



1970년대 한창 개발의 물결이 밀어닥치고 있는 작은 동네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완공이 되지 않은 건물에서 한 남자가 살해된 것이다. 사건 장소는 완벽한 미궁이고 용의자는 모두 알리바이가 있다. 담당 형사는 조사를 계속하다 피해자와 관련된 두 어린 소년소녀를 알게 되는데, 그들의 이름은 료지와 유키호다. 작가는 범죄로 얼룩진 삶을 살아왔지만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헌신한  료지와 유키호의 20년을 따라 현대 일본 사회의 명암을 들여다본다.

 '하얀 밤을 걷다'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최근 드라마화되었고 일본에서 100만부 이상의 판매를 올렸다. 눈에 보이는 심리 묘사는 거의 없고, 오로지 이야기를 통해 두 남녀 주인공의 아슬아슬한 사랑을 독자에게 미묘하게 전달해낸 테크닉이 돋보인다. 이야기의 달인이 견고한 이야기의 성을 쌓아 이야기에 목마른 독자들을 초대해 베푼 만찬이라고 할 수 있을 듯. 당대의 이야기꾼 히가시노 게이고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료지의 헌신과 유키호의 눈물 외에도 이 작품에는 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일본 이공계 산업의 발전상이 병행되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슈퍼 마리오도 나온다). 사랑 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었던 여자를 위해, 그녀의 물질적인 욕망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몸담고 있는 이공계 산업의 현장에서 범죄를 저질러 성공 가도를 달리는 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기술 산업의 발전이 가능하게 한 현대 일본의 번영의 뿌리 속에는 이렇듯 범죄의 기운이 잠복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의구심을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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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6-08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웃 하고 시계관 빼고 봤네요. 아웃은 서울집으로 주문해 놓은 상태. 관시리즈는 다 모아 두었는데, 하나도 안 봤어요. 왠지 지루하다는 선입견이;;

jedai2000 2007-06-09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로테스크>가 별로 맞지 않으셨다면 <아웃>도 마찬가지일 겝니다. 기리노 나쓰오도 취향을 많이 타는군요. 관 시리즈는 트릭이나 퍼즐 풍의 작품을 좋아하신다면 잼있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oldhand 2007-06-08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이 제일 댓글이 적으니 여기다 달아야지.. ^^
11-15위가 유일하게 다 본 리스트네요. 1-5위는 이따가 집에가서 확인해야 되려나요. 화차, 불야성은 꼭 들어갈것 같고, 망량의 상자도 들어갈것 같죠? 내맘대로. ㅎㅎ

jedai2000 2007-06-08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알라딘에는 페이퍼 안 쓰는데 이번 기회에 추리소설 좀 추천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퍼왔습니다. ^^ 여기가 제일 적으니 말씀드리는데 세 가지 다 있습니다 ^^

이매지 2007-06-08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리노 나쓰오는 예전에 아임소리마마를 보고 왠지 찝찝한 느낌이 많이 남아서 꺼려지고 있는. 아웃은 이래저래 좋다는 평들이 많아서 관심이 가네요^^

jedai2000 2007-06-09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아임 소리 마마>는 국내에 소개된 기리노 나쓰오 작품 중에 가장 떨어진다는 게 중론인데, 하필(?) 그게 잘 나가서 우리나라에 기리노 나쓰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어느 정도 전한 것 같아 좀 억울하기도 하네요(작가도 아니면서 ㅋㅋ).
<내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그로테스크> <아웃>이라면 강력하게 추천드릴 수 있습니다 ^^
 

* 완벽하게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 장르를 떠나 넓게 봤을 때 미스터리 요소가 있는 작품은 포함했습니다.

*** 국내 번역본이 나와 있는 책만을 대상으로 했고, 당연히 국내에 출간된 모든 일본 미스터리를 읽지는 못했습니다.  

 

 

20위.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우타노 쇼고

 


매일 아침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활달하게 살아가는 프리터 나루세. 벌이는 비록 크지 않아도 인생은 짧으니 다양한 경험을 하며 보람찬 나날을 보낸다. 어느날 고등학교 후배의 부탁으로 한 노인의 뺑소니사고를 조사하게 된 나루세. 알고보니 그는 잠깐 탐정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한 적도 있었단다. 뺑소니로 사망한 노인이 '호라이클럽'이라는 노인대상 사기 업체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아낸 나루세는 호라이클럽에 잠입해 본격적으로 조사를 해 나가는데... 

 무엇보다 반전이 특출난 작품으로 소설의 주인공은 흔히 이런 사람일 것이다, 라는 독자의 무의식적인 선입견을 산산히 부수는 기발함이 돋보이는 작품. 우리나라에서 뜻하지 않게 '페어-언페어' 논쟁이 불었는데, 트릭을 만들기 위한 설정들이 보편성이 조금 부족해 약간 억지성은 있지만 적어도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은 없으므로 내 기준으로는 페어다. 이런저런 약점은 있지만 뒤통수를 한 방 제대로 맞은 듯한 묵직한 반전과 그후에 이어지는 상쾌함으로 기분 좋게 책장을 덮을 수 있다. 2004년 제5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

 

 

19위. 비밀 - 히가시노 게이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를 둔 평범한 부부. 시골 친척집에 엄마와 딸이 잠시 다녀오기로 하고 남편은 프로야구도 보고, 맥주도 마시며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한다. 이 여유도 슬슬 무료하게 느껴지던 참에 TV에서 긴급 속보가 뜬다. 고속버스 추락사고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희생자 중에는 남자의 아내도 포함되어 있지만, 천우신조로 딸은 살아났다. 하지만 남자는 슬픔에 젖어 있을 새도 없이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데, 몸은 딸의 것이지만 아내의 영혼이 딸에게 빙의되어 있었던 것이다.  

 딸의 몸에 아내의 마음이라면 과연 그녀는 딸일까, 아내일까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흥미진진한 소설. 엄밀히 보면 빙의라는 소재가 미스터리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깝지만, 내노라하는 일본 미스터리의 장인 중 한 사람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군데군데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미스터리 요소를 솜씨좋게 깔아둠으로써 끝까지 완벽하게 독자들을 몰입시킨다. 딸(=아내)의 성장과 동시에 서서히 늙어가고, 모든 걸 잃어가는 중년 남자의 시선으로 진행되며 그가 느끼는 절절한 슬픔, 허전함, 안타까움의 정서가 깊이 배어 있다. 만약 이 작품의 결말을 읽고도 눈물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신경 계통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1999년 제52회 일본미스터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스토리텔러 히가시노 게이고의 진가를 보여주는 작품.

 

 

18위. 배틀 로얄 - 타카미 코슌

 



 가상의 국가인 대동아공화국(이라 쓰고 일본이라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에는 기묘한 법이 한 가지 있다. 중학교 3학년 한 학급을 통째로 무인도에 가둔 후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들어 생존자 한 사람만을 남기는 이 법의 이름하여 '배틀로얄법.' 군국주의 전제국가인 대동아공화국의 정치인들은 이 법을 통해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원칙을 국민들에게 주입하려 하는 것이다. 물론 배틀로얄의 결과를 두고 벌어지는 거액의 도박이 주는 짜릿한 재미를 잊지 못해서기도 하지만.

 수학여행을 가는 줄 알았던 40명의 학급 아이들이 무인도에 갖혀 서로를 죽여야만 살아남는다. 이 기발하다고 하기엔 섬찟한 플롯을 만들어낸 작가 타카미 코슌은 이 소설 한 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천재작가 탄생을 예고했다(하지만 아직까지 후속작을 내지 못했다). 미스터리라기보다는 모험소설 혹은 호러소설에 가깝지만 '서드맨' 미무라나 주인공 슈야, 거의 신에 가까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카즈오 등의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장기와 지혜, 지형지물과 소유하고 있는 무기의 이점을 이용해 대결하는 과정이 정말 스릴 넘친다(물론 중학생이라고 보기엔 능력들이 너무 특출나다). 단순히 대중소설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친구가 친구를 죽여야 사는 끔찍한 세계를 통해 군국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펼쳐낸 작가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보시길.

 

 

17위. 야성의 증명 - 모리무라 세이이치

 



일본의 한적한 시골마을을 피로 물들인   집단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13명의 희생자가 난 이 대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난 건 요리코라는 어린 아이뿐. 요리코는 아지사와라는 보험조사원의 양녀로 들어가게 되고, 아픈 과거를 점점 잊어간다. 하지만 사건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으니 아지사와를 당시 사건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한편 아지사와가 살고 있는 소도시는 정치와 경제력 모든 면에서 그곳을 쥐고 흔드는 거대한 가문이 있다. 야쿠자와 결탁해 폭력과 금력, 정치력을 이용해 온갖 부정을 저지르고 배를 불리는 거대 가문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 정의감 강한 아지사와가 맞이할 결말은 과연 어떤 것일까.

 현존하는 일본 미스터리 베테랑 중의 베테랑 작가라 부를 수 있을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작품.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증명3부작' 중 두번째 작품이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집단 살인사건이라는 미스터리를 도입부에 깔아두고, 곧 지방 소도시를 주무르는 불온한 가문이 등장하여 익숙한 사회파적인 설정으로 진행되어 가다가 이 두 가지가 절묘하게 만나 폭발하는 결말이 압도적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분투했던 그간의 모든 노력을 보상받지 못하고 결국 등장인물에게도, 심지어 비정한 작가에게까지 버림받고 마는 주인공 아지사와의 터질 듯한 야성은 어디에서도 출구를 찾을 수 없기에 그만큼 허무하고 안타까운 몸짓에 불과하다. 너무도 안타까운 작품이지만 박력만은 차고 넘치는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고, <인간의 증명>보다 두세 수는 위에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16위. 링 - 스즈키 코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심장마비로 사망한 고등학생들을 취재하던 기자 아사카와는 학생들이 죽기 전 한 편의 비디오를 보았다는 걸 발견한다. 호기심을 느끼고 비디오를 보니 그것을 본 자는 일주일 후에 죽게 된다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디오의 비밀을 풀어야 한단다. 그런데 한 가지 끔찍하게도 아사카와 뒤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그의 아들이 비디오를 몰래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사카와는 아들과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친구 류지와 함께 비디오의 비밀을 풀려 한다. 남은 시간은 오로지 일주일!

 이 작품은 출간 즉시 일본 호러소설의 전설이 되었고 일본, 미국, 한국에서 영화화되어 전 세계에 <링>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일종의 원귀가 등장하니 호러소설에 가깝겠지만 사람 잡는 비디오의 비밀을 그 영상에 노출된 몇몇 단서를 논리적으로 분석해 풀어나가는 짜릿한 재미가 있는 책이니만큼 한 편의 잘 된 미스터리소설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학창시절 누구나 받아봤을 '행운의 편지(이 편지를 즉시 일곱 사람에게 돌리지 않으면...)'를 '죽음의 비디오'로 멋지게 변주해낸 작가의 역량에 박수를 보낸다. 고전적인 공포의 장치들을 얼마든지 복사 가능하고 그야말로 '공포스러울 정도로' 쉽고 빠르게 확산과 증식이 가능한 비디오라는 현대의 테크놀로지를 통해 풀어낸 <링>은 아마 요즈음 나왔으면 더 무시무시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비디오보다는 인터넷이 여러모로 훨씬 더 무서운 거 아니겠는가. 한 번 잡으면 절대로 놓을 수 없는, 피도 얼어붙을 만한 호러 미스터리의 걸작으로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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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6-08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 18, 16 안 읽었군요.

하이드 2007-06-08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증명 시리즈는 아직 안 봤어요. 세 페이퍼를 보고 나니 제다이님의 취향을 짐작할 수 있는듯. ^^ 저도 내공을 더 쌓아서 탑텐 꼽아봐야겠어요.

paviana 2007-06-08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만두님이 안 읽으신것도 있어요? 이게 더 놀라워요.^^

jedai2000 2007-06-08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히가시노 게이고 중에서 아직 안 보신 것도 남아 있단 말예요? 부럽습니다 ㅋㅋ 전 뭐 다 봐서 읽을 게 없군요

하이드님...역시 쓰는 사람의 취향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겠죠 ^^ 하이드님의 탑텐은 어떨지 몹시 궁금하군요.

파비아나님...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만두님같이 저보다 많이 보신 분들이 랭킹을 뽑아야 더 그럴싸한 랭킹이 나오는 건데 말입니다 ^^

이매지 2007-06-08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 19.16만 읽었군요. 인간의 증명보다 두 세수 높이 있다는 야성의 증명. 읽어봐야겠군요. (사실 리스트에 올린지는 오래나 아직도 못 읽고 있는-_ㅜ)

jedai2000 2007-06-09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성의 증명>은 <인간의 증명>과는 상당히 달라요. 굉장히 건조하고 난폭한 면이 있죠. 역시 취향의 차이일 텐데, 전 <인간의 증명>의 감상주의와 작위적인 전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 보시는 분들에 따라서 <인간의 증명>이 두세 수 위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거예요 ^^
 
도시탐험가들 모중석 스릴러 클럽 8
데이비드 모렐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폐허가 되어버린 황량한 건물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대부분 이제는 다시 올 수 없을 지난 날의 화려한 시절을 떠올리며 쓸쓸한 감회에 젖거나 낡고 퇴락한 것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건물이 과거의 풍경, 기억, 생활상 등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는 일종의 보물창고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은 수십수백 년의 세월 속에서 버려진 빈 건물들-호텔, 공장, 지하터널, 창고 같은-에 몰래 잠입해 그곳에 놓인 부서진 가구나 신문쪼가리 등을 발견하고 예전에 여기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며 재미있어 하는데, 이런 사람들을 '도시 탐험가The Creepers'라고 부른단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금시초문이었지만 야후나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17만 개 이상의 도시 탐험가 관련 웹사이트가 뜬다고 한다.

 

먼지투성이 버려진 건물에는 도처에 위험이 넘쳐난다. 튀어나온 못, 부서진 계단, 쥐들이 옮기는 전염병 같은 치명적인 위험들이. 어쩌면 일부러 위험한 것을 추구하며 자신이 가진 힘과 지혜를 극한까지 발휘해야 하는 모험 정신이 익스트림 스포츠와 닮아서 그렇게 도시 탐험가들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험이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항상 모험에 굶주려 있으니까. 이 책은 매우 독특한 소재인 도시 탐험가의 세계를 그리며 쉴새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는 만점 스릴러이자, 악몽과도 같은 호러 소설이다. 주인공은 도시 탐험가들을 밀착취재해 기사를 작성하려는 프랭크 발렌저. 그는 역사학 교수 로버트 콩클린과 그의 제자들인 릭, 코라, 비니의 도시 탐험가 팀과 함께 직접 탐험에 참가하기로 약속이 된 상태다. 목적지는 1900년대 초반에 지어졌지만 1960년대에 폐쇄됐고, 곧 철거될 예정인 패러곤 호텔.

 

패러곤 호텔의 창립자는 일종의 광장공포증을 갖고 있어, 호텔 전체를 마야의 피라미드 모양을 본떠 지어 자신만의 성을 쌓은 다음 그곳에서 평생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외출이 있긴 했지만 그것도 호텔 앞 해변가까지 걸어 나가 자살을 하기 위해서였다. 창립자 모건 칼라일이 사망한 후 쇠퇴일로를 걷다 몰락한 패러곤 호텔의 모든 문에는 강철 덧문이 잠겨 있다. 콩클린 교수가 조직한 도시 탐험가들은 배수로 터널을 이용해 호텔에 잠입하는데 성공하는데, 수십 년간 폐쇄된 장소에서 근친교배를 거듭해 돌연변이를 일으킨 쥐떼와 고양이가 그들을 반겨준다. 그 녀석들은 보통 다리가 다섯 개거나, 눈이 하나인 혐오스런 족속들이다. 한편 발렌저는 유일한 여성 탐험가 코라의 존재가 대원들에게 묘한 질투와 균열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감지한다.

 

여기까지가 아주 초반부의 내용이다. 발렌저를 비롯한 탐험대원들은 곧 8시간의 끔찍한 호러와 테러에 시달리게 될 예정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유령이나 흡혈귀 등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행스럽게도 그런 초자연적인 것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무서운 것이 그들을 찾아오니 그건 바로 사람이다. 육체적인 강인함과 교활한 머리, 각종 특수장비까지 겸비한 사이코가 어둠 속에서 한 명 한 명씩 그들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누가 살아나고 누가 희생될지 추측해보라. 그날 밤의 악몽은 날이 새도록 계속된다.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공포가 찾아올 것이다.

 

작가는 영화 <람보>의 원작자로 유명한 데이비드 모렐. 한국에서 '람보'하면 무뇌아 액션 기계의 대표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영화 <람보>도, 원작 <퍼스트 블러드>도 그다지 녹록한 작품은 아니다. 베트남 전쟁의 상흔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가지고 있는 존 람보가 미국의 광산 도시에서 지난 날의 악몽이 되살아나 폭주한다는 이 내용의 어디가 유치한가? 물론 2편부터는 정말 무뇌아 액션 기계가 되어버렸지만 데이비드 모렐이 원작을 쓴 1편은 폄하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액션 스릴러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모렐답게 시종일관 긴박감 넘치고 영화 <다이하드>를 연상시키는 주인공 발렌저의 액션이 독자를 흥분시킨다. 사실 후반부는 거의 잘 만든 헐리우드 액션 영화를 씬 별로 감상하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처음부터 독자들에게 단서를 주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진행되면서 점차 사실들이 밝혀진다는 거다. 알고 보니 주인공의 정체가 뭐더라, 알고 보니 주인공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더라 하는 식인데 어차피 치밀한 반전이나 트릭보다는 손에 땀을 쥐는 스릴과 인상적인 공포의 한 순간에 무게중심을 두고 성큼성큼 건너뛰는 작품이니 큰 문제는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클라이막스에서 결정적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어떤 물건을 주인공 발렌저가 아무 이유없이 챙긴 다음 위기의 순간에 근사하게 써먹는데, 이 물건을 발렌저가 왜 챙겼는지 개연성 있게 설명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위에도 말했듯이 세부적인 것들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작품은 아니다. 발렌저와 도시 탐험가들이 걷는 길을 조용히 뒤따르는 것만으로도 오싹 소름이 돋고 온통 흥분으로 벌개진 채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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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gbong 2007-08-10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드는 '프랭크 발랜저'이름이 맞던가^^; 다음엔 더 흥미진진하고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 기대해 봅니다.

jedai2000 2007-08-10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편이 나온다고 하네요. <스캐빈저>라는 이름으로 나온답니다. 올 여름에 참 재미있게 봤던 작품인데, 내년 여름에도 속편이 나와 시원한 여름밤을 선물해주면 고맙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