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하게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 장르를 떠나 넓게 봤을 때 미스터리 요소가 있는 작품은 포함했습니다.

*** 국내 번역본이 나와 있는 책만을 대상으로 했고, 당연히 국내에 출간된 모든 일본 미스터리를 읽지는 못했습니다.  

 

 

20위.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우타노 쇼고

 


매일 아침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활달하게 살아가는 프리터 나루세. 벌이는 비록 크지 않아도 인생은 짧으니 다양한 경험을 하며 보람찬 나날을 보낸다. 어느날 고등학교 후배의 부탁으로 한 노인의 뺑소니사고를 조사하게 된 나루세. 알고보니 그는 잠깐 탐정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한 적도 있었단다. 뺑소니로 사망한 노인이 '호라이클럽'이라는 노인대상 사기 업체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아낸 나루세는 호라이클럽에 잠입해 본격적으로 조사를 해 나가는데... 

 무엇보다 반전이 특출난 작품으로 소설의 주인공은 흔히 이런 사람일 것이다, 라는 독자의 무의식적인 선입견을 산산히 부수는 기발함이 돋보이는 작품. 우리나라에서 뜻하지 않게 '페어-언페어' 논쟁이 불었는데, 트릭을 만들기 위한 설정들이 보편성이 조금 부족해 약간 억지성은 있지만 적어도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은 없으므로 내 기준으로는 페어다. 이런저런 약점은 있지만 뒤통수를 한 방 제대로 맞은 듯한 묵직한 반전과 그후에 이어지는 상쾌함으로 기분 좋게 책장을 덮을 수 있다. 2004년 제5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

 

 

19위. 비밀 - 히가시노 게이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를 둔 평범한 부부. 시골 친척집에 엄마와 딸이 잠시 다녀오기로 하고 남편은 프로야구도 보고, 맥주도 마시며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한다. 이 여유도 슬슬 무료하게 느껴지던 참에 TV에서 긴급 속보가 뜬다. 고속버스 추락사고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희생자 중에는 남자의 아내도 포함되어 있지만, 천우신조로 딸은 살아났다. 하지만 남자는 슬픔에 젖어 있을 새도 없이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데, 몸은 딸의 것이지만 아내의 영혼이 딸에게 빙의되어 있었던 것이다.  

 딸의 몸에 아내의 마음이라면 과연 그녀는 딸일까, 아내일까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흥미진진한 소설. 엄밀히 보면 빙의라는 소재가 미스터리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깝지만, 내노라하는 일본 미스터리의 장인 중 한 사람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군데군데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미스터리 요소를 솜씨좋게 깔아둠으로써 끝까지 완벽하게 독자들을 몰입시킨다. 딸(=아내)의 성장과 동시에 서서히 늙어가고, 모든 걸 잃어가는 중년 남자의 시선으로 진행되며 그가 느끼는 절절한 슬픔, 허전함, 안타까움의 정서가 깊이 배어 있다. 만약 이 작품의 결말을 읽고도 눈물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신경 계통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1999년 제52회 일본미스터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스토리텔러 히가시노 게이고의 진가를 보여주는 작품.

 

 

18위. 배틀 로얄 - 타카미 코슌

 



 가상의 국가인 대동아공화국(이라 쓰고 일본이라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에는 기묘한 법이 한 가지 있다. 중학교 3학년 한 학급을 통째로 무인도에 가둔 후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들어 생존자 한 사람만을 남기는 이 법의 이름하여 '배틀로얄법.' 군국주의 전제국가인 대동아공화국의 정치인들은 이 법을 통해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원칙을 국민들에게 주입하려 하는 것이다. 물론 배틀로얄의 결과를 두고 벌어지는 거액의 도박이 주는 짜릿한 재미를 잊지 못해서기도 하지만.

 수학여행을 가는 줄 알았던 40명의 학급 아이들이 무인도에 갖혀 서로를 죽여야만 살아남는다. 이 기발하다고 하기엔 섬찟한 플롯을 만들어낸 작가 타카미 코슌은 이 소설 한 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천재작가 탄생을 예고했다(하지만 아직까지 후속작을 내지 못했다). 미스터리라기보다는 모험소설 혹은 호러소설에 가깝지만 '서드맨' 미무라나 주인공 슈야, 거의 신에 가까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카즈오 등의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장기와 지혜, 지형지물과 소유하고 있는 무기의 이점을 이용해 대결하는 과정이 정말 스릴 넘친다(물론 중학생이라고 보기엔 능력들이 너무 특출나다). 단순히 대중소설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친구가 친구를 죽여야 사는 끔찍한 세계를 통해 군국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펼쳐낸 작가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보시길.

 

 

17위. 야성의 증명 - 모리무라 세이이치

 



일본의 한적한 시골마을을 피로 물들인   집단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13명의 희생자가 난 이 대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난 건 요리코라는 어린 아이뿐. 요리코는 아지사와라는 보험조사원의 양녀로 들어가게 되고, 아픈 과거를 점점 잊어간다. 하지만 사건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으니 아지사와를 당시 사건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한편 아지사와가 살고 있는 소도시는 정치와 경제력 모든 면에서 그곳을 쥐고 흔드는 거대한 가문이 있다. 야쿠자와 결탁해 폭력과 금력, 정치력을 이용해 온갖 부정을 저지르고 배를 불리는 거대 가문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 정의감 강한 아지사와가 맞이할 결말은 과연 어떤 것일까.

 현존하는 일본 미스터리 베테랑 중의 베테랑 작가라 부를 수 있을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작품.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증명3부작' 중 두번째 작품이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집단 살인사건이라는 미스터리를 도입부에 깔아두고, 곧 지방 소도시를 주무르는 불온한 가문이 등장하여 익숙한 사회파적인 설정으로 진행되어 가다가 이 두 가지가 절묘하게 만나 폭발하는 결말이 압도적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분투했던 그간의 모든 노력을 보상받지 못하고 결국 등장인물에게도, 심지어 비정한 작가에게까지 버림받고 마는 주인공 아지사와의 터질 듯한 야성은 어디에서도 출구를 찾을 수 없기에 그만큼 허무하고 안타까운 몸짓에 불과하다. 너무도 안타까운 작품이지만 박력만은 차고 넘치는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고, <인간의 증명>보다 두세 수는 위에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16위. 링 - 스즈키 코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심장마비로 사망한 고등학생들을 취재하던 기자 아사카와는 학생들이 죽기 전 한 편의 비디오를 보았다는 걸 발견한다. 호기심을 느끼고 비디오를 보니 그것을 본 자는 일주일 후에 죽게 된다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디오의 비밀을 풀어야 한단다. 그런데 한 가지 끔찍하게도 아사카와 뒤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그의 아들이 비디오를 몰래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사카와는 아들과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친구 류지와 함께 비디오의 비밀을 풀려 한다. 남은 시간은 오로지 일주일!

 이 작품은 출간 즉시 일본 호러소설의 전설이 되었고 일본, 미국, 한국에서 영화화되어 전 세계에 <링>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일종의 원귀가 등장하니 호러소설에 가깝겠지만 사람 잡는 비디오의 비밀을 그 영상에 노출된 몇몇 단서를 논리적으로 분석해 풀어나가는 짜릿한 재미가 있는 책이니만큼 한 편의 잘 된 미스터리소설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학창시절 누구나 받아봤을 '행운의 편지(이 편지를 즉시 일곱 사람에게 돌리지 않으면...)'를 '죽음의 비디오'로 멋지게 변주해낸 작가의 역량에 박수를 보낸다. 고전적인 공포의 장치들을 얼마든지 복사 가능하고 그야말로 '공포스러울 정도로' 쉽고 빠르게 확산과 증식이 가능한 비디오라는 현대의 테크놀로지를 통해 풀어낸 <링>은 아마 요즈음 나왔으면 더 무시무시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비디오보다는 인터넷이 여러모로 훨씬 더 무서운 거 아니겠는가. 한 번 잡으면 절대로 놓을 수 없는, 피도 얼어붙을 만한 호러 미스터리의 걸작으로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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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6-08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 18, 16 안 읽었군요.

하이드 2007-06-08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증명 시리즈는 아직 안 봤어요. 세 페이퍼를 보고 나니 제다이님의 취향을 짐작할 수 있는듯. ^^ 저도 내공을 더 쌓아서 탑텐 꼽아봐야겠어요.

paviana 2007-06-08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만두님이 안 읽으신것도 있어요? 이게 더 놀라워요.^^

jedai2000 2007-06-08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히가시노 게이고 중에서 아직 안 보신 것도 남아 있단 말예요? 부럽습니다 ㅋㅋ 전 뭐 다 봐서 읽을 게 없군요

하이드님...역시 쓰는 사람의 취향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겠죠 ^^ 하이드님의 탑텐은 어떨지 몹시 궁금하군요.

파비아나님...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만두님같이 저보다 많이 보신 분들이 랭킹을 뽑아야 더 그럴싸한 랭킹이 나오는 건데 말입니다 ^^

이매지 2007-06-08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 19.16만 읽었군요. 인간의 증명보다 두 세수 높이 있다는 야성의 증명. 읽어봐야겠군요. (사실 리스트에 올린지는 오래나 아직도 못 읽고 있는-_ㅜ)

jedai2000 2007-06-09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성의 증명>은 <인간의 증명>과는 상당히 달라요. 굉장히 건조하고 난폭한 면이 있죠. 역시 취향의 차이일 텐데, 전 <인간의 증명>의 감상주의와 작위적인 전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 보시는 분들에 따라서 <인간의 증명>이 두세 수 위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