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엔리카 크리스피노 지음, 김현주 옮김 / 예담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잠자던 내면에 일렁임을 일으킨 작가가 헤르만 헤세(데미안)였다면 미술의 격정을 느끼게 해 준 화가는
바로 고흐였다. 그래서 처음 구입한 미술책도 고흐 책이었으며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다 본 그림도 고
흐의 그림들이었다. 외국사이트까지 찾아가서 그의 데생을 찾아내 감상하던 때의 떨림을 아직 기억한
다. 불꽃같은 삶의 화가 고흐는 내게 많은 영향을 준 것이다.

 불을 내뿜듯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끈 강한 붓 터치와 자화상은 온 마음과 몸을 전율시켰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 」
고 말한 고흐는 외로운 삶을
살았다. 그의 해바라기 그림은 태양을 마주하는 느낌이며 아이리스 그림은 아름답지만 고독하다. 농부
를 주제로 그린 그림들은 인물의 표정과 색깔로 표현되는 거칠고 투박함 때문에 잊을 수가 없으며 특히
<감자를 먹는 사람들>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다. 그 밖에도 <별이 빛나는 밤>과 <파이프가
놓인 반 고흐의 의자>, <아를의 반 고흐의 방>, <밤의 카페 테라스>, <슬픔>, <까마귀 나는 밀밭>등
도 마찬가지이다. <별이 빛나는 밤>은 책마다 색감이 다른데 나는 학고재판의 약간 밝은 그림이 마음
에 든다. <슬픔>은 타로에 만약 슬픔이란 카드가 있다면 이 작품이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또한, 그의 풍경화는 자연과의 교감을 보여주며 자화상은 잊을 수 없다. 화가의 자화상에는 그들 영혼
의 창이 투영되어 있어서 참 좋아한다. 누군가의 내면과 마주하는 순간을 떠올리면 된다. 고흐의 자화
상은 언제나 진지해서 애처로울 때가 있다. 에곤 실레나 프리다 칼로 등의 자화상은 묘한 아픔이 느껴
지는데 이와는 다른 느낌이다. 무엇일까. 그것은 광기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인간이 마음의 평안을 찾고
자 노력하고 다짐하는 모습이랄까. 자신의 심리까지 표현한 그의 자화상을 그리며 또 초상화를 그리며
안도하지 않았을까. 불안한 그의 현실을 말이다.

 보기 좋고 아름다운 작품보다 애정이 가는 그림은 인간의 감정 즉, 화가의 마음이 담긴 그림이다. 광기,
나약함, 절망이 담기고 안식을 느끼는 평화로움이 전해질 때면 이미 그림 하나를 떠나 하나의 세계로
다가온다. 그런 벅찬 순간을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작품이 고흐의 손끝에서 나왔기에 그는 영원하
다. 사실 그의 그림은 외형적인 인체의 비례가 정확하지 않은 것도 많다. 그러나 그가 중요하게 여긴 것
은 정신이 들어간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고흐를 좋아하다 보니 서평이 아니라 고흐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맙소사!
각설하고 책을 살펴보면 일단 이 책은 크기가 커서 작품을 크게 감상할 수 있어서 좋으며 함께 적힌 고
흐의 생애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성이다. 그러나 편집은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형태라 아쉽다. 특
히 글자의 배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애초부터 기획의도가 글보다는 그림에 비중을 둔 것 같기
는 하지만 글을 읽기 편하게 바꾸면 더 좋았을 거 같다. 그러나 가끔 펴들고 그림을 보기에는 나쁘지 않
다. 게다가 고흐에 관한 글이니 어쨌거나 읽기 시작하면 빠질 수밖에 없다. 글의 내용도 고흐를 이해하
는데 객관적인 도움이 된다.

 <이젤 앞의 자화상>을 크게 보니 그의 눈빛에 자꾸만 끌린다. 동생 테오도 그렇고 둘 다 모친의 눈을
닮아있다. 고흐하면 테오와의 우애를 빼놓을 수 없는데 800통이 넘는 편지와 언제나 형 고흐를 후원하
고 격려한 테오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고흐의 작품을 아주 소량만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37살의 나
이에 권총 자살한 고흐는 죽기 전 온종일 침대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고흐(1853-1890)가 죽고 일 년 후 테오(1857-1891)도 사망했다. 그들의 무덤은 나란히 자리 잡
고 있다.

 고흐는 광기보다 열정이 넘친 화가였으며 내면을 이끌어낸 화가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고흐하면 자신
의 귀를 자르고 권총자살을 한 광기의 화가로만 기억한다. 실로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는 평생 그림을
그렸기에(물론 늦게 시작했다.)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밝은 빛깔의 그림도 많으니 그를 어두운 화가로
생각하지 말 것이며 그의 정신질환은 그의 생애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으니 그를 정신질환자로
만 보지도 말기를 바란다.

 책 뒤로 가면 고흐뿐아니라 다른 화가(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관련 화가들)의 작품이 실려있으며 연대표
에는 미술사뿐 아니라 문학사도 함께 명기되어 있어 연결해 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전체적으로 고흐
의 수많은 책 가운데 괜찮은 책이었다.


나는 지금 내 온 힘을 모아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찾고, 싸우고 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中, 1882년 4월 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07-07-09 13:13   좋아요 0 | URL
전 그림을 감상할줄 모르지만 가끔 접하는 고흐의 그림은 무언가 강렬한 열망 같은것이 느껴지더군요. 글뿐 아니라 그림에서도 삶의 모습을 읽어내시는군요. 전 미숙하기에 돈 맥클린의 <빈센트>만 듣고 있습니다.

은비뫼 2007-07-11 13:09   좋아요 0 | URL
돈 맥클레인의 빈센트 오늘같은 날 들으면 딱 좋겠네요. 물론 별은 보기 어렵겠지만요. ^^
stary night~~ 역시 고흐의 그림은 강렬함을 느끼게 해주는 거 같습니다.
 
파한집 범우문고 113
이인로 지음, 이상보 옮김 / 범우사 / 199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한집>은 장거리 버스여행 시 애용하던 책 가운데 하나이다. 그야말로 제목처럼 한가로움을
깨기 위한 책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볍고 산뜻한 예쁜 책은 아니며 오히려 생각을 부르는 책
인 동시에 이인로가 뛰어난 문장가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그래서 늘 마주할 때면 나의 한계를 느낀다고나 할까. 한 번에 읽기보다 조각조각 나눠 읽는 책으로 그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발견하기 원했으나 한결같다는 사실은 책을 탓하기보다 나를 탓할 일이다. 아직
깊이가 형성되지 않아 새로움을 음미하기에는 모자란 그릇 탓이니 말이다. 그런들 어떠하랴. 명상하듯
쉬엄쉬엄 읽기에 제격이다. 파한집을 펼치고 읽다 어느 날 무르팍을 탁-치며 껄껄거릴 날이 올지도 모
르기에 여전히 책상 가까운 곳에 두고 있다. ㅡ 실은 모시고 있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등 가끔 다른 책에서도 언급되었던 이 책의 가치는 인정하는 부분이므로 많은 이
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한문이 많고 고전이라 선뜻 손이 가지 않더라도 이인로의 책에서 유일하게 전해
지는 책이며 더구나 고려시대의 문인의 글이자 당시를 알 수 있는 연구자료이다. 희소적인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의 발문을 쓴 이는 세황인데 이인로의 아들이다.

 이인로하면 죽고칠현 즉 해좌칠현으로 유명한데 이들은 자연을 찾아 술과 글로써 보낸 이들이었다. 이
미 역사에서 보면 조정에서 뜻을 다하지 못하고 은둔생활을 하며 시화로 여생을 보낸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은둔자 만으로 기억하기에는 이들의 문학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속에서 꽃핀 문학이 지금도 전해지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들의 반대 부류인 조정을 좌지우
지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과는 다른 것을 역사에 실어 전해져 오는 것이다.

 선인의 풍류 속에는 여유와 혼이 들어 있으며 이인로의 경우는 그의 문장에서 느낄 수 있다. 선인들끼
리 시를 짓고 화답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인상적이며 과히 부러운 부분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며 시나 글을 떠나 말조차도 서로 귀담아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듣지 않고 말하기만 하니 화답은
커녕 일방적인 외침이란 말이 맞을듯하다. 그러니 이들의 여유가 퍽 부러울 수밖에.

 이 책의 구성은 평론 41편과 수필 42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인로는 시인이자 평론가며 수필가로 그의
글을 많이 보고 싶었으나 평론은 다른 이의 시를 전하기에 아쉽기도 했으나 고려시대 때도 비평가가 있
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만큼 문학이 발전해온 것이라 판단된다. 또한, 평론도 글이기에 그만의 글
맛이 느껴진다. 문장의 가치는 신분이나 빈부귀천이 좌우할 수 없다는 그의 말처럼 이 시대는 그만큼
많은 이들이 글을 쓴다. 그러나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임하는지는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은둔하며 그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글을 쓴 자체가 바로 파한(破閑)이 아닐까 한다. 파한집의
유명구절이나 글은 많지만 그의 수필 하나를 끝으로 적어본다.

내가 8, 9세 때 한 늙은 선비를 따라 글을 배웠다. 한번은 고인(古人)의 경구(警句)를 가르쳐주었는데
"꽃은 난간 앞에서 웃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고, 새는 수풀 아래서 우나 눈물을 보기 어렵도다"
라 한 것이다. 내가 말하기를 "이것은 결국 '버들이 문 밖에서 찡그리나 뜻은 알 수 없다'한 것처
럼 사(詞)가 대단히 적절하고 어의(語意)가 교묘하지 못하다"고 하니 늙은 선비가 깜짝 놀랐다.

(파한집·하-28, 134-135쪽)



* 이인로(1152-1220)
: 고려 무신집정기 때의 문인. 본관은 경원, 호는 쌍명재.
어려서 고아가 되어 요일(친중이며 중)밑에서 유교 전적과 재가백가서를 두르 섭렵.
정중부의 난을 기화로 불교에 귀의했으나 다시 환속하며 6경을 공부하고 문과에 장원급제 후 14년간
사국와 한림원에 재직함. 그의 저서로는 <<은대집>>, <<쌍명재집>>, <<파한집>> 등이 있으나
<<파한집>>만 전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감성과 글투 사이에서 서성였던 책.

 장마철과 어울리는 책 제목이다. 비가 오는 날 읽고는 한참이 지나고 다시 비 오는 날에야 서평을
쓰다. 제목은 책에 인용된 시의 제목이기도 한데 시인은 압둘 와합 알비야티라는 이였다.
생소한 이름이었으나 그 서정성 짙은 제목이 나를 끌어당겼다.

 공지영의 산문집으로 시인이 되고 싶었던 작가답게 좋은 시들이 인용되어서 그 시를 읽는 것도 괜찮았
다. 그러나 산문은 작가의 맨몸뚱이를 보는듯한 느낌이기에 적랄하다. 나는 독자이기에 작가의 글로써
그를 느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작가는 언제나 독자에게 있어서 맨몸뚱이일 것이
다. 나이 쉰이 넘었어도 감수성은 사그라지지 않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감성이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기에 나 역시 작가처럼 혼자인 빗방울임을 느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아무리 읽
어도 그녀의 글투는 내게 큰 울림이 되어주지 않는다. 편견 같은 것을 갖지 않으려 했으나 다소 가로막
히는 내 감각을 볼 때 역시 이미 하나의 편견이 생겨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작가
와 나 사아의 공감이 퍼져 나갈 수 없는 이유가 그것도 글투 때문이라니! 개인적 차이니 별 수 없다. 그
러나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느낄 수 있는 어느 부분인 공집합적인 요소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특정적인 경계가 불분명한 것이 오히려 행운일 수도 있다. 특히나 우리 작가의 글과 마주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 더욱 민감하다. 그래서 어지간히 신경이 써지지만 말이다.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에 파도가 일렁였다. 그래서 약간의 쓰라림을 동반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무언가가 찰랑대다 말았다. 어쩌면 다행이지 않았을까. 넘쳐버려 우울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그녀이기도 한 J에게 하는 말은 내게도 하는 말이었다. 작가의 내면에게 속삭이는 말들로 많은 치
유가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나 역시도 그렇다.

여류작가와의 주파수 놀이는 이래서 다소 불편하기도 하지만 편하기도 하다. 그녀가 오슬로에 가서 뭉
크를 보고 나서 한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다.

'누군가를 너무 가까이에서 들여다 본 벌을 받는 것 같은 그런 기분(47쪽)'

 들여다 보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을 때가 있다. 더 들여다보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글투와 상반되
는 마음에 들어오는 전달의식의 충돌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 닮아있음. 이 사람 나와 닮은
데가 있어 애써 외면하고도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책을 잡고 한 번에 읽어버렸다.

 작가는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지 느껴질 만큼 적고 있다. 어찌 보면 감추고 싶은 치부
일 수도 있는 것을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독자는 작가의 이런 모습을 좋아하고 작가 또한 이를 통해 내
면을 치유하는 것이다. 즉, 작가와 독자 모두가 구원받는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역시 이 책을 평한다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남의 시를 인용한 것은 흠이 될 수 없겠지만
제목까지도 남의 시 제목을 따서 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제목이 아무리 들어맞는 제목이어도
말이다. 그리고 거듭 말한 지나친 감수성이 내게는 다소 거북했다. 그럼에도,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은 앞
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반짝이는 감성을 잘 걸러내면 진정 그녀만의 글이 나올 테니 말이다. 쓰고 나니
혹평 같지만 읽을만한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은 단순한 균형의 문제
장 자크 상뻬 글 그림 / 미메시스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장 자끄의 상뻬의 그림은 유모러스하면서도 인상적이다. 그래서 보고 있으며 상쾌한 바람 한줄기
를 맞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끝난다면 오래 기억하지 않겠지만 늘 기나긴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글이 없다. 그림만 그것도 자전거와 관련된 것만 잔뜩 있다. 사실 제목부터
한번쯤 멈추게 한다. '인생은 단순한 균형의 문제라...' 그 단순한 균형의 문제가 때로 얼마나 어
려운 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일까. 때로 외줄에서 균형을 불안하게 잡고 있기도 하며 누구도 넘어질
거라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균형을 잃고 쓰러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릴 때 세발자전거로 시작한 자전거와의 첫만남이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서툴렀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자전거와 한몸이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리라. 커서는 자전거와 거리가 멀었다. 중학
생 때던가. 갑자기 자전거가 배우고 싶어서 호수에서 연습하다 빠질뻔하기도 했다. 아주 잠시 탔던 기
억을 지나 성인이 되었는데 노란 자전거를 덜컥 사버렸다. 자전거도 탈 줄 모르면서 말이다. 그리고 다
음날부터 출근 때 자전거를 타고 아니 끌고나갔다. 이런 기억만이 전부인 내게 자전거 타기는 균형의
문제이기보다는 하나의 상징물이었다. 작은 설렘 같은 노란 희망 말이다.

 그러나 그 작은 희망을 지키기 위해서는 역시 작가의 말처럼 균형을 잘 잡아야 했다. 쉽게 보았다가
멍들고 까져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도 했고 속력이 붙어 통제하지 못하기도 했다. 이렇듯 제목과 그림
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책이다. 장 자끄 상뻬의 그림은 나를 꿈꾸게 하며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많은 이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을까 싶다.


 끝으로 상뻬의 책을 읽기 전 예전에 써두었던 짧은 글을 올려본다.

한쪽으로 고개 숙인 아이.
웃기만 하는 정치인.
엎드려 누운 채 함께 숨 쉬며 껴안은 가족.

벌써 며칠 전에도 보았던 그들의 모습을 다시 기억하기란 너무도 쉽다.
변함없는 동작으로 멀리서도 쉬이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한쪽으로 고개 숙이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선다.
아이에게 말을 걸고자 오른쪽으로 숙인 모양새를 따라 나도 함께 숙이고 묻는다.

"왜 그러고 있니?"

대답이 없는 아이.

"힘들지 않아? 아니면 어디가 아픈 거니?"

그제야 조그마하게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

"왼쪽으로 너무 치우쳐있어요. 그래서 균형을 잡아야 해요."

. . . . . .


나는 한 쪽으로만 쏠린 무엇을 회복하고자 노력을 해본 적이 있었나?

(몇 해전에 끄적였던 균형잡기라는 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07-06-26 13:05   좋아요 0 | URL
아이와의 선문답,,,종종 꺼내어 곱씹어봐야할 글이네요.

은비뫼 2007-07-02 03:36   좋아요 0 | URL
사실 제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매순간 기억하기란 쉽지 않아서요. 그래서 글로 남겨두었습니다.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 범우문고 163
윤형두 지음 / 범우사 / 199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0년이 넘은 범우사. 그리고 범우사의 대표 윤형두. 그가 쓴 책이 궁금했다. 고서점을 운영했었
으며 헌책수집벽도 있는 그야말로 책에 살고 책에 죽는 이가 쓴 책의 제목도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다. 저자의 책 이야기는 그간 잊었던 책에 대해 또 다른 생각들을 불러 일으킨다.
동시에 누구나 좋아한다고 말하는 책과 책하고 살 지경이 된 사람의 책을 바라보며 그 의미를
다시 세워봐야겠다고 다짐한다.

 살다 보면 수많은 인연과 만난다. 비단 사람만이 아닌 책과의 인연도 그러하다. 특히나 이 인연이 없다
고 생각해보니 얼마나 삭막한지. 또 얼마나 향기로운 인연인지를 설명하기란 입이 아플지경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페이지에 걸친 저자의 책 이야기는 흥미롭다. 예전 같았으면 참으로 부럽기만
할 일인데 언제부터인가 책을 소장하기보다 털어버리는 쪽이 늘어나면서부터 담담해졌다. 어쩌면 저자
처럼 고서라던가 진귀한 책을 소장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역시 책 사랑이 느껴져 마음이 짠
했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모든 책을 털어버릴 수가 없었다. 몇 년째 손으로 쓰다듬어 떨어지기 어려운
책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바라보고, 만져보며 별 탈 없는지를 확인하며 스스로 안도한다. 그러니 저
자의 마음을 이해한다. 누군가의 책사랑 이야기를 듣는 것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마지막 문고본에 관한
내용까지 읽으며 책을 읽는 것만을 떠나 책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잠시나마 떠올려 보았다.

 일본이 임진왜란 때 약탈해간 수만 권의 책!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 조선 책을 자본 삼아 문교정책을
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일본에 가면 꼭 고서점에 들린다. 들려서 찾아올 책을
찾아오는데 그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부르는 게 값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헌책방에서
도 마찬가지다. 가치를 알기에 저자는 더욱 속이 탈뿐이다.

 책을 아끼던 우리 선조들은 포쇄관이란 직책이 따로 있어서 서고의 통풍, 온도, 습도 등을 조절하게 했
다. 특히 여름철에는 햇볕에서 말리고 바람을 쐬는 포쇄작업을 했다. 포쇄란 젖거나 촉촉한 것을 바람
을 쐬고 볕에 말리는 일이다. 장마철인 요즘을 떠올리며 볕이 나는 날을 잡아 꼭 해봐야겠다. 그저 책을
툭툭 털기만 했는데 애정이 가는 것에는 역시나 손길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대조되는지 안타깝다. 선조들은 이리도 소중하게 여기며 책과 함께
했거늘 어째서 한 달에 한 권도 책을 접하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일까. 삶의 버거움에 지쳐 책을 펼 수 조
차없는 사람을 제외한다 쳐도 대게는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도 더 자극적인 쾌락이나 유희를 찾
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한가지는 책이야말로 어떠한 유희보다 즐겁다는 사실이다.
또 무조건 책을 읽지않는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관심분야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필요한 일이다. 술 권하는 사회란 말은 있어도 책 권하는 사회란 말은 없다. 가까운 주위를 둘러보아도
책 권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진정한 책의 멋을 아는 자는 보이기 위한 책읽기가 아닌 책이 곧 생활
이다. 그 생활을 조금씩 나눠주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저자는 한때 책보다 재미있는 일을 찾고자 화투 등에도 빠져보았으나 결국 집으로 돌아와 비틀거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솔직하고도 애정이 어린 그의 책사랑은 오늘도 범우사를 이끄
는 힘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범우사의 앞날은 언제나 맑음이기를 빌어본다.



:: 책에서 데려온 문장들.


책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그것은 암흑이다. (9쪽, 책의 미학.)


나는 독서에 의해 얼마나 성장하였을까? 책을 읽는데 나이가 있고 지식을 풍부하게 하는 데 정년이 있
을리 없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독서를 통해 내 인생을 살찌우고 그 열매를 더욱 알차고 영글게 할 것이
다. (20쪽, 여섯 개의 돋보기.)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죽음의 공간이 아니며 멈춤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공간이며 활동과 재
생산의 공간이다. 잠시의 휴식도 생명을 불어넣는 시동을 위한 충전의 순간이다. 공간은 무한하다. 그
속에서 책과 더불어 사는 유한한 삶의 값진 보람을 찾는다. (30쪽, 책이 있는 공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