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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엔리카 크리스피노 지음, 김현주 옮김 / 예담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잠자던 내면에 일렁임을 일으킨 작가가 헤르만 헤세(데미안)였다면 미술의 격정을 느끼게 해 준 화가는
바로 고흐였다. 그래서 처음 구입한 미술책도 고흐 책이었으며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다 본 그림도 고
흐의 그림들이었다. 외국사이트까지 찾아가서 그의 데생을 찾아내 감상하던 때의 떨림을 아직 기억한
다. 불꽃같은 삶의 화가 고흐는 내게 많은 영향을 준 것이다.
불을 내뿜듯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끈 강한 붓 터치와 자화상은 온 마음과 몸을 전율시켰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 」고 말한 고흐는 외로운 삶을
살았다. 그의 해바라기 그림은 태양을 마주하는 느낌이며 아이리스 그림은 아름답지만 고독하다. 농부
를 주제로 그린 그림들은 인물의 표정과 색깔로 표현되는 거칠고 투박함 때문에 잊을 수가 없으며 특히
<감자를 먹는 사람들>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다. 그 밖에도 <별이 빛나는 밤>과 <파이프가
놓인 반 고흐의 의자>, <아를의 반 고흐의 방>, <밤의 카페 테라스>, <슬픔>, <까마귀 나는 밀밭>등
도 마찬가지이다. <별이 빛나는 밤>은 책마다 색감이 다른데 나는 학고재판의 약간 밝은 그림이 마음
에 든다. <슬픔>은 타로에 만약 슬픔이란 카드가 있다면 이 작품이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또한, 그의 풍경화는 자연과의 교감을 보여주며 자화상은 잊을 수 없다. 화가의 자화상에는 그들 영혼
의 창이 투영되어 있어서 참 좋아한다. 누군가의 내면과 마주하는 순간을 떠올리면 된다. 고흐의 자화
상은 언제나 진지해서 애처로울 때가 있다. 에곤 실레나 프리다 칼로 등의 자화상은 묘한 아픔이 느껴
지는데 이와는 다른 느낌이다. 무엇일까. 그것은 광기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인간이 마음의 평안을 찾고
자 노력하고 다짐하는 모습이랄까. 자신의 심리까지 표현한 그의 자화상을 그리며 또 초상화를 그리며
안도하지 않았을까. 불안한 그의 현실을 말이다.
보기 좋고 아름다운 작품보다 애정이 가는 그림은 인간의 감정 즉, 화가의 마음이 담긴 그림이다. 광기,
나약함, 절망이 담기고 안식을 느끼는 평화로움이 전해질 때면 이미 그림 하나를 떠나 하나의 세계로
다가온다. 그런 벅찬 순간을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작품이 고흐의 손끝에서 나왔기에 그는 영원하
다. 사실 그의 그림은 외형적인 인체의 비례가 정확하지 않은 것도 많다. 그러나 그가 중요하게 여긴 것
은 정신이 들어간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고흐를 좋아하다 보니 서평이 아니라 고흐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맙소사!
각설하고 책을 살펴보면 일단 이 책은 크기가 커서 작품을 크게 감상할 수 있어서 좋으며 함께 적힌 고
흐의 생애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성이다. 그러나 편집은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형태라 아쉽다. 특
히 글자의 배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애초부터 기획의도가 글보다는 그림에 비중을 둔 것 같기
는 하지만 글을 읽기 편하게 바꾸면 더 좋았을 거 같다. 그러나 가끔 펴들고 그림을 보기에는 나쁘지 않
다. 게다가 고흐에 관한 글이니 어쨌거나 읽기 시작하면 빠질 수밖에 없다. 글의 내용도 고흐를 이해하
는데 객관적인 도움이 된다.
<이젤 앞의 자화상>을 크게 보니 그의 눈빛에 자꾸만 끌린다. 동생 테오도 그렇고 둘 다 모친의 눈을
닮아있다. 고흐하면 테오와의 우애를 빼놓을 수 없는데 800통이 넘는 편지와 언제나 형 고흐를 후원하
고 격려한 테오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고흐의 작품을 아주 소량만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37살의 나
이에 권총 자살한 고흐는 죽기 전 온종일 침대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고흐(1853-1890)가 죽고 일 년 후 테오(1857-1891)도 사망했다. 그들의 무덤은 나란히 자리 잡
고 있다.
고흐는 광기보다 열정이 넘친 화가였으며 내면을 이끌어낸 화가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고흐하면 자신
의 귀를 자르고 권총자살을 한 광기의 화가로만 기억한다. 실로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는 평생 그림을
그렸기에(물론 늦게 시작했다.)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밝은 빛깔의 그림도 많으니 그를 어두운 화가로
생각하지 말 것이며 그의 정신질환은 그의 생애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으니 그를 정신질환자로
만 보지도 말기를 바란다.
책 뒤로 가면 고흐뿐아니라 다른 화가(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관련 화가들)의 작품이 실려있으며 연대표
에는 미술사뿐 아니라 문학사도 함께 명기되어 있어 연결해 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전체적으로 고흐
의 수많은 책 가운데 괜찮은 책이었다.
나는 지금 내 온 힘을 모아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찾고, 싸우고 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中, 1882년 4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