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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 ㅣ 범우문고 163
윤형두 지음 / 범우사 / 1997년 12월
평점 :
40년이 넘은 범우사. 그리고 범우사의 대표 윤형두. 그가 쓴 책이 궁금했다. 고서점을 운영했었
으며 헌책수집벽도 있는 그야말로 책에 살고 책에 죽는 이가 쓴 책의 제목도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다. 저자의 책 이야기는 그간 잊었던 책에 대해 또 다른 생각들을 불러 일으킨다.
동시에 누구나 좋아한다고 말하는 책과 책하고 살 지경이 된 사람의 책을 바라보며 그 의미를
다시 세워봐야겠다고 다짐한다.
살다 보면 수많은 인연과 만난다. 비단 사람만이 아닌 책과의 인연도 그러하다. 특히나 이 인연이 없다
고 생각해보니 얼마나 삭막한지. 또 얼마나 향기로운 인연인지를 설명하기란 입이 아플지경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페이지에 걸친 저자의 책 이야기는 흥미롭다. 예전 같았으면 참으로 부럽기만
할 일인데 언제부터인가 책을 소장하기보다 털어버리는 쪽이 늘어나면서부터 담담해졌다. 어쩌면 저자
처럼 고서라던가 진귀한 책을 소장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역시 책 사랑이 느껴져 마음이 짠
했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모든 책을 털어버릴 수가 없었다. 몇 년째 손으로 쓰다듬어 떨어지기 어려운
책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바라보고, 만져보며 별 탈 없는지를 확인하며 스스로 안도한다. 그러니 저
자의 마음을 이해한다. 누군가의 책사랑 이야기를 듣는 것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마지막 문고본에 관한
내용까지 읽으며 책을 읽는 것만을 떠나 책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잠시나마 떠올려 보았다.
일본이 임진왜란 때 약탈해간 수만 권의 책!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 조선 책을 자본 삼아 문교정책을
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일본에 가면 꼭 고서점에 들린다. 들려서 찾아올 책을
찾아오는데 그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부르는 게 값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헌책방에서
도 마찬가지다. 가치를 알기에 저자는 더욱 속이 탈뿐이다.
책을 아끼던 우리 선조들은 포쇄관이란 직책이 따로 있어서 서고의 통풍, 온도, 습도 등을 조절하게 했
다. 특히 여름철에는 햇볕에서 말리고 바람을 쐬는 포쇄작업을 했다. 포쇄란 젖거나 촉촉한 것을 바람
을 쐬고 볕에 말리는 일이다. 장마철인 요즘을 떠올리며 볕이 나는 날을 잡아 꼭 해봐야겠다. 그저 책을
툭툭 털기만 했는데 애정이 가는 것에는 역시나 손길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대조되는지 안타깝다. 선조들은 이리도 소중하게 여기며 책과 함께
했거늘 어째서 한 달에 한 권도 책을 접하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일까. 삶의 버거움에 지쳐 책을 펼 수 조
차없는 사람을 제외한다 쳐도 대게는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도 더 자극적인 쾌락이나 유희를 찾
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한가지는 책이야말로 어떠한 유희보다 즐겁다는 사실이다.
또 무조건 책을 읽지않는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관심분야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필요한 일이다. 술 권하는 사회란 말은 있어도 책 권하는 사회란 말은 없다. 가까운 주위를 둘러보아도
책 권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진정한 책의 멋을 아는 자는 보이기 위한 책읽기가 아닌 책이 곧 생활
이다. 그 생활을 조금씩 나눠주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저자는 한때 책보다 재미있는 일을 찾고자 화투 등에도 빠져보았으나 결국 집으로 돌아와 비틀거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솔직하고도 애정이 어린 그의 책사랑은 오늘도 범우사를 이끄
는 힘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범우사의 앞날은 언제나 맑음이기를 빌어본다.
:: 책에서 데려온 문장들.
책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그것은 암흑이다. (9쪽, 책의 미학.)
나는 독서에 의해 얼마나 성장하였을까? 책을 읽는데 나이가 있고 지식을 풍부하게 하는 데 정년이 있
을리 없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독서를 통해 내 인생을 살찌우고 그 열매를 더욱 알차고 영글게 할 것이
다. (20쪽, 여섯 개의 돋보기.)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죽음의 공간이 아니며 멈춤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공간이며 활동과 재
생산의 공간이다. 잠시의 휴식도 생명을 불어넣는 시동을 위한 충전의 순간이다. 공간은 무한하다. 그
속에서 책과 더불어 사는 유한한 삶의 값진 보람을 찾는다. (30쪽, 책이 있는 공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