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 김용택 동시집
김용택 동시집, 이혜란 그림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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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를 떠올리면 지금과는 많이 다른 그때의 나를 만나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새삼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정겨운 웃음이 피어난다. 초등학생 때 동시를 지어오라는 숙제를 어떻게 풀지 혼자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시라는 것의 형이상학적인 낯설임은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무언가를 창작해야 한다는 건 새롭고도 떨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창작 동시는 장난꾸러기 바람과 소녀들의 치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중에 옆집 사는 대학생 오빠들에게 읽어주며 부끄러워하던 시였는데 사실 이 시는 완전한 창작은 아니었다. 친구와 같은 주제로 썼는데 표현이 달랐을 뿐이다. 이렇듯 어린 날의 추억이 이 시집을 읽으며 하나씩 되돌아왔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과 아이들은 따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친근하다. 교단에서 그가 만난 아이들처럼 시인의 웃는 모습이 순수하다. 꾸밈없는 자연의 모습을 찾아내고 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독자까지 포용한다. 아이들이야말로 실은 꾸밈없는 자연 그 자체이다. 예쁜 시들과 그림이 마음마저 예쁘게 물들인다. 그리고 거기서 연상되는 것들이 보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잊었던 추억 한 조각, 어린 날의 나. 시인과 아이들의 이야기에 보태지는 나만의 이야기까지 끝이 없다.  

 그러나 동시가 예쁘기만 하진 않았다. 순수한 동심이 밝은 한 자락이라면 이 시집의 또 다른 한 자락은 도시의 현실만큼이나 외로운 농촌 아이들의 현실이었다. 왜 이 시대의 아이들은 도시나 농촌이나 할 것 없이 외로운 것일까. 과거에는 부모들이 먹고살기 바빠서였다고 쳐도 지금처럼 공간이 크지는 않았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갔다는 동요는 애처롭지만,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엄마와 아이의 하나 됨이 느껴졌다. 어디서건 아이들에게 사랑을 많이 주었으면 좋겠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더 많은 사랑을 전해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아이들이 굳건하게 잘 이겨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엄마 없이 밥 먹어요

엄마 없이 옷 입어요 

엄마 없는 집에 가요 

엄마 없는 잠을 자요 

(70쪽. 엄마 전문.)   

 

여치가 운다. 

귀뚜라기가 운다. 

지렁이가 운다. 

개구리가 운다. 

먼 산에서 소쩍새가 운다. 

나는 안 운다. 

절대 안 운다. 

(75쪽. 나는 안 운다 전문.)


태성이가 엄마 빨래하는 데 따라와 

징검다리를 폴짝폴짝 뛰어다닙니다.

태성아 그러다가 물에 빠질라

태성아 그러지 마 그러다가 물에 빠질라

그래도 태성이는 징검다리를

폴짝폴짝 뛰어 건너다닙니다.

그때 비행기가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갑니다.

태성이가 하늘을 쳐다보며

징검돌을 뛰어 건너다가

풍덩 물에 빠집니다.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50쪽.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전문.)


  엄마의 자리가 큰아이의 외로움부터 나는 절대 안 운다는 아이의 애처로운 다짐을 보며 마음이 저렸다. 그러다가도 책 제목과 동명의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같은 시를 읽을 때는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하루를 보내며 작은 곤충 하나와도 친구가 되고 그들의 입장이 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발견한 것은 나 또한 그랬다는 사실과 어른일 때보다 어쩌면 그때가 더 남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았을까 하는 태도이다. 지금은 별거 아닌 일로도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데 이는 언제부터 굳어진 습관인지 모른다. 그래서 말랑하게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때처럼 자연스럽게 먼저 헤아릴 줄 아는 순수함이 그립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찾아가는 행복을 기억한다면 삶이 보다 풍요로워 질 것은 자명하다. 

 예쁘게, 둥글게 살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나부터 사랑하고, 나처럼 모든 것을 사랑하면 된다. 억지로 되는 일이 없듯 얼마간의 시간은 필요할 것이다. 아마도, 충분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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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09-02-11 20:04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잘 계시죠 얼마전 <콩, 너는 죽었다>라는 이분 동시집 읽은 기억이 나요
이 책도 참 좋을 거 같네요. 담아갑니다. 행복하세요

은비뫼 2009-02-12 14:40   좋아요 0 | URL
안녕하셨어요. ^-^ <콩, 너는 죽었다>도 읽고 싶어지네요. 저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책읽기 이어가시기를 빕니다.
 
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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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도의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는 거 같다. 따지고 보면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얼마나 되며 그나마도 깊이 있게 그들의 생활이나 문화를 이해한 적이 있었던가. 바가바드 기타나 요가, 오쇼 라즈니쉬 같은 철학자와 명상 등에만 관심이 있었던 때도 있었지만 역시 한 발짝 떨어져 무심하게 지켜본 거 같다. 그래서일까. 어떠어떠한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때고라도 <상실의 상속>이라는 제목, 그리고 인도의 젊은 여성작가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흥미를 느꼈다.  

 먼저 책의 두께에 놀랐다. 제목도 우울한 감이 없지 않은데 선뜻 손이 가지 않아서 뒤늦게 잡았지만 실제로 가독성은 꽤 좋았다. 인도의 역사와 혼란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이 주인공들의 자의식만 따라다녀도 시간은 금방이었다. 이질적인 느낌이 아닌 공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주목할만하다. 신분제도는 인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사회에도 보이지 않는 신분이 엄연히 존재하며 신분상승을 위해 사람들은 날마다 분주하게 하루를 쪼개고 있다. 또한, 혼란스런 사회와 피 흘리는 투쟁. 어느 편에 서야 할지조차 모르는 사람들과 흐름에 몸을 맡기거나 반대로 역행하는 이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우리의 역사에도 그런 부분이 없지 않으니 이들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그러니 이 책이 아무리 두껍다 한들 거대한 대서사시의 화려함으로 포장된 게 아닌, 담담하고 때로는 우울하지만 재미까지 포함한 읽기 편한 책이 되었다. 그러나 우울함이나 시대적 배경을 극복(-혹은 포장)하고자 지면을 늘인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길 필요가 있었을까. 조금 잘라내도 좋았을 걸 싶다.

 세계는 화합보다 충돌의 시간이 많았다. 현재진행형인 충돌 그 속의 인도.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 그들의 떠다니는 자아를 세밀하게 보여주는데 가족이란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사이라는 소녀는 부모님의 죽음 후에 외할아버지네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외할아버지는 은퇴한 판사였고 애완견에만 애정을 표현하는 과묵한 노인이며 요리사와 함께 생활한다. 요리사는 전형적인 피지배층으로, 아들이 미국에서 성공해 자리 잡았다고 떠벌이는 낙으로 사는 인물이다. 아들 비주는 사실 불법으로 미국생활을 하며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지만 아버지와의 유일한 매개수단은 편지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을 들자면, 사이의 가정교사 지안인데 그는 사이와의 아기자기한 사랑놀이와 민족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년. 이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상황으로 자연스레 끌어가는 전개는 인물이 부각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체성이란 것에 관해 고민하게 된다. 운명이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정해진 룰에서만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박차고 나오려고 시도하며 거부할 것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이들에게 대물림되는 누릴 수 없는 것들을 움켜쥘 수 있는 시간은 올 것인지. 사회문제를 떠나 개인의 마음에서 잃어버린 건 어떤 것인지 묻는다. 

 계급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 즉, 하층민의 삶은 얼마나 비루한가. 가난해서 비루한 게 아니라 꿈조차 꾸지 않고 포기하는 것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진정으로 비루했다. 갑자기 예전에 읽은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 떠올랐다. 특히나 책에서 판사가 젊은 시절 영국에서 보낸 시절을 이야기할 때와 요리사의 아들 비주가 미국에서 일하는 모습에서 더욱 극명하게 겹쳤다. 물론 판사는 죽도록 노력해서 안락함을 얻었지만 사실 그는 요리사의 아들 비주보다 환경이 좋았고 그래서 가능성이 더 있었던 것이다.



시간은 흘러야 돼.
나처럼 시간이 지나가지 않는 인생을 살려고 하지 마라.
그건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충고야.

(170쪽. 노니가 사이에게 해주는 말.)


 작가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정치와 유머감각은 유쾌할 수 있다. 이들의 안고 있는 문제를 드러내며 거기서 사는 이들의 행복하거나 외로운 혹은 고통스럽거나 신물 나는 삶의 이야기가 짙게 드리운 소설이 여기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지면을 조금 짧게 줄여도 무방할 거 같은 두껍지만 가독성 좋은 이 책을 인도작가의 시선으로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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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권. 작년에 160권 정도 읽은 거 같은데 그에 비하면 수가 팍 줄었다. 개인적인 일로 한번 손에서 놓으니 다시 잡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목표인 우리 詩 읽기도 기껏해야 몇 권으로 끝났으며, 작년에 이은 셰익스피어 책도 역시나 마찬가지이다. 목록을 천천히 살펴보자니 좋았던 기억은 우석훈의 글을 읽었다는 것, 스티븐 킹의 소설과 함께 했다는 것, 지식 e를 책으로 읽은 것, 인생수업, 알랭드 보통의 책을 드디어 읽기 시작한 것, 딘 쿤츠의 발견, 이승우의 소설에 관한 책,  더 알고 싶은 윤대녕, 책 혹은 글을 제대로 쓰고 싶게 한 송숙희, 타샤 튜더를 만난 것, 신경숙, 그리고 시집들!! 조금 읽었어도 나름 위안을 얻는 부분이다. 게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타샤 튜더의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로 우수리뷰로 선정되어 적립금을 받아 챙겼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솔직히 채식주의자는 그래도 생각을 가다듬으며 썼던 거 같지만, 타샤 튜더는 편하게 끼적인 거라 받기가 조금 부끄럽다. <스탠드>로 출판사 우수리뷰가 되어 받은 책들도 사실 고맙다.

 아직 책장에는 작년에 이어 계속 읽을 시간이 밀리는 책이 보이고, 여전히 책상에는 읽을 책이 쌓여 있다. 올해는 게으름을 부리다 서평을 쓴 책도 고작 해야 42권이다. 윤대녕의 <제비를 기르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보통 선생의 <여행의 기술> 등은 꼭 정리해서 적고 싶었는데 시기를 놓치니 뭐라고 끼적이기가 어려워졌다. 그리고 맙소사! 24권이나 리뷰도서였다. 즉, 내가 선택했다기보다 읽고 서평을 올려야 하는 책이었다. 늘 연말이면 주먹을 불끈 쥐며 새해에는 읽고 싶은 책을 더 많이 읽자고 외치지만 리뷰도서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그래도 좀 줄여야겠다. 다시 꽉 차버린 책장을 보며 또다시 덜어버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책나눔을 해도 끝이 없이 쌓이는 걸 보면 만족감보다 욕심 혹은 게으름이 먼저 떠오른다. 달마다 진행하는 책나눔을 비공식적으로 대부분 진행했는데 공식적으로 해보는 게 어떨까. 네이버에서 주로 하지만, 이글루에서도 진행을 할까?

 가장 원했던 건 늘, 책을 제대로 곱씹는 작업에 열중하는 일이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리뷰만 끼적이는 거보다 토론 내지 같은 책을 읽은 지인 혹은 이들의 리뷰를 찾아 읽고 덧글 같은 거로 대화하는 게 좋다는 걸 안다. 그러나 실행하지 못한다. 그래서 소극적인 대안으로 끼적임을 멈추지 않는다. 당시의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도 다른 책과 만나고자 비우려고 그래서 필요한 의식이다.  

 새해에는 책읽기 목표를 따로 정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목표가 있는 것도 좋지만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편하게 읽으려고 한다. 단, 읽기 위한 책이 아닌 읽고 싶은 책을 만나는 시간을 만들기로 했다. 몇 권을 읽든, 전작주의 형태로 가든, 장르로 가든 읽고 가슴 벅찬 그런 책을 많이 만나고 싶다. 이런 기대심리는 벌써 내 심장을 뛰게 한다. 그러니 이제 올해의 반성은 이쯤하고 새해에도 즐겁게 책을 읽고 싶다. 


1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10번 교향곡
조셉 젤리네크 지음, 김현철 옮김 / 세계사 / 2008년 9월
12,800원 → 11,520원(10%할인) / 마일리지 6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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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추천할까 말까 망설이다 적는다. 클래식이 좋지만 뭐 제대로 아는 바는 없다. 그러나 나는 베토벤은 당당히 좋아한다고 말한다. 사실 베토벤 한 명의 음악만 듣기에도 나는 버겁다. 아직도 다 제대로 못 들어봤으니까. 그런데 그런 베토벤과 10번 교향곡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쓰다니 어떻게 관심이 가지 않을까. 또 이 책에는 초판 한정본으로 10번 교향곡 CD가 포함되어 있다. 이것만으로도 내게는 좋은 책이다. :)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6년 8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2009년 01월 03일에 저장
구판절판
타샤 튜더의 책이 제법 많은데 그중 이 책을 가장 먼저 읽는 것이 어떨지. 타샤 할머니가 쓴 유일한 에세이가 그 이유. 타인의 삶을 엿보며 나까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말하게 될 그날까지, 타샤 만세를 외치다.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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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게다가 신경숙이라는 사실에 기대했던 책. 그리고 역시나 좋았던 책. 읽으며, 읽고 나서 그리고 지금까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한 자도 끼적이지 못한 책 중 하나. 이 세상 모든 가족들은 엄마를 한 번쯤 진지하게 이해해봐야겠지.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했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모두가 읽었으면 하는 책으로 역시나 추천.
포옹
정호승 지음 / 창비 / 2007년 9월
12,000원 → 11,400원(5%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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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09년 01월 03일에 저장

정호승을 좋아해서 그런지 그의 시집이 좋다. 아마도 그의 시집에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가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포옹>은 2007년에 출판된 시집인데 좋아하는 이들 모두에게 바리바리 싸주고 싶은 시집 중 하나이다. 시대가 어수선해도 나는 시집을 손에서 놓지 않으리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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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09-01-09 17:20   좋아요 0 | URL
가끔씩 님의 서재에 들르는 사람입니다. 리뷰쓰시는 솜씨에 놀라고, 부지런함에 더 놀라고... 정호승시인 시를 좋아하신다구요 반갑네요..

은비뫼 2009-01-12 00:4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현이맘님. ^^
부끄러운 리뷰와 끼적임인데 읽고 계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님의 서재는 동화가 많네요. 저도 많이 읽고 싶은 부분인데 생각만 하고 행동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좋은 동화 앞으로 많이 참고하겠습니다. 그리고 정호승 시집 이야기 저도 잘 읽고 왔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절벽 세계사 시인선 141
장석주 지음 / 세계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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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질투할 권리를 네게 준 적 없으니
불행의 터럭 하나 건드리지 마라!

 불행 앞에서 비굴하지 말 것. 허리를 곧추세울 것. 헤프게 울지 말 것. 울음으로 타인의 동정을 구하지 말 것. 꼭 울어야만 한다면 흩날리는 진눈깨비 앞에서 울 것. 외양간이나 마른 우물로 휘몰려가는 진눈깨비를 바라보며 울 것. 비겁하게 피하지 말 것. 저녁마다 술집들을 순례하지 말 것. 모자를 쓰지 말 것. 콧수염을 기르지 말 것. 딱딱한 씨앗이나 마른 과일을 천천히 씹을 것. 다만 쐐기풀을 견디듯 외로움을 혼자 견딜 것. 

 쓸쓸히 걷는 습관을 가진 자들은 안다.
 불행은 장엄 열반이다.
 너도 우니? 울어라, 울음이
 견딤의 한 형식인 것을,
 달의 뒤편에서 명자나무가 자란다는 것을
 잊지마라.

- 장석주 시집 <절벽>에서 81쪽-82쪽. '명자나무' 전문. 

 올봄에 만난 시집. 그때만 해도 나는 올해에는 시집을 폭넓게 많이 읽겠노라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결국 올해가 끝나가는 지금 헤아려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밖에 읽지 않았다. 이렇게 반성하고 내년이 되면 또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벌써부터 쓴웃음을 짓는다. 

 자연을 이루는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시인의 이야기에 기울였던 때를 더듬으며 그때 기억에 남는 시들 몇 편 가운데 '명자나무'를 올려본다. 불행의 터럭 하나 건드리지 말라는 엄포에도(불구하고) 가끔 그러고 싶다. 오늘처럼 쓸쓸히 걸어본 날은 더욱 그렇다. 사람들을 만나고 즐겁게 웃고 돌아서서는 산다는 게 꽈배기에 설탕을 묻혀서 먹고 안 먹고의 차이처럼 가소로움을 느낀다. 우울의 근본에는 무엇이 들어앉았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오래도 아니고 몇 초 만에 생각해 낸 사실은 낭만의 실종이었다. '우울해.' '뭐가? 왜?' '낭만이 없어.''….'

 따지고 보면 낭만이 실종되었다고 해도 찾으려 하면 지나가는 할머니의 종이박스에도, 휴대폰으로 엄마에게 막말하는 남학생에게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누군가의 발아래에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난 잠시 망각을 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잃어버린 것일까. 어둠이 점령한 거실에 촛불 두어 개를 밝히니 소리친다. 푸드득- 촛불이 공간으로 날아오르려는 듯 소리쳤지만 무시한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책장을 쳐다보니 <절벽> 시집이 빠끔히 나를 내려다본다. 오늘은 이 시집을 잡아야겠구나. 봄에 열심히 읽고는 손에서 놓았던 시집을, 명자나무를 만난다. 엄마 친구의 이름과 비슷한 어찌 보면 친근한 이름인 명자나무를 읽으며 달의 뒤편을 파헤치고 싶어진다. 

 소중한 지인이 선물한 <새벽 예찬>이란 책이 있다. 봄부터 읽으려고 책상에 올려두고는 손으로 쓰다듬기만을 몇백 번 하고 읽지 못했다. 준비가 되지 않아서였다. 역시 저자는 장석주였다. 원래 이 시인은 새벽 일찍 시를 쓴다고 알려졌는데 그런 책을 게으름으로 가득 찬 내가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도저히! 아, 별의별 핑계를 다 댄다. 어찌 된 것이 이놈의 성격은 CD 음반을 사고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3, 4년을 묵히고 뜯지 않기도 하니 말이다. 아무튼, 이래저래 헛소리만 늘어놓았는데 결론은 이렇다. 시 좀 읽자고…. 

 이 시집에는 시만큼이나 재미있는 시인의 산문 <단상들>을 빼고 넘어갈 수 없다. 짤막한 글에서 만족을 느끼고 동감을 표하며 한마디만 더 적는다.

27.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라는 존재가 정말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읽은 모든 작가들이 바로 나이며,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내가 사랑한 모든 여인들이 바로 나다. 또 나는 내가 갔던 모든 도시이기도 하며 내 모든 조상이기도 하다."

 - 장석주 시집 <절벽>에서 134쪽. '단상들' 중에서.

 고로 내가 읽은 이 시집도 나이기도 해서 그래서 오늘을 이 시집에 바치기로 한다. 꽝꽝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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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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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혼자 있을 때는
돈 걱정 여자 걱정 같은 거나 면하면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 같은 것이나 생각해 보면 좋다
그 못물이 못자리 한 바퀴 빙 돌아
새로 한 논둑에 생긴 손자국 발자국 앞에 슬몃 머무는 것
생각해 보면 좋다
 

그것도 아니면
못자리에 들어가는 그 못물의 소리를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 가운데다
앉혀보는 것은 어떤가
그 소리로써 잠자리의 곁을 삼아보는 것은 어떤가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처럼
하루나 이틀 살아보는 것은 어떤가
아니, 여러 날씩
살아보는 것은 어떤가
 

ㅡ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처럼, 장석남> 본문. 29쪽.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라는 긴 제목의 책을 선물 받았을 때 시집이라는 것과 흑백사진이 인상깊었다. 엮은이 역시도 시인으로 노트에 베끼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시를 간추렸다는 흥미로움에 오래전 사진까지 정감있게 느껴졌다. 잃어버린 향수 같은 추억이 스민 책이었다. 내가 격은 적 없는 이전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며 또한 그만큼 구수한 시들은 무더운 여름을 보내는 내게 즐거움이자 여유를 한번에 주었다. 

 누군가의 삶을 드러내는 모습은 늘 숙연함을 자아낸다. 그래서 더 정겹다. 웃음이 있고, 사랑이 있고, 아픔이 있어서. 쓰다듬어 주고 싶은 예쁜 책이라 말하고 싶다. 많은 시 중 위에 적은 장석남의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처럼'이 자꾸 눈에 어른거렸다. 자주 펴들고 일부러 말로 소리 내 보기도 한다. 이 시인은 정말 맑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정적이면서 동적인 그리고 이미지화시키며 어느새 못물처럼 스미게 하는 시 한 편에 마음이 절로 정화된다. 학창시절 노트에 시를 적어서 누군가에게 선물하던 때가 떠올라 추억 같은 시집이기도 했다. 지금은 왜 시 한 수 적을 시간도 갖지 못하고 지내는 것일까. 베끼고 싶은 시를 만나도 그저 마음으로 읽고 간혹 소리 내 읽는 게 다가 되어버렸다. 펜을 잡고 꾹꾹 눌러가며 시 한 소절이라도 베끼어 써봐야 겠다. 
 
-4341.12.23.불의 날.(08041_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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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09-05-02 17:21   좋아요 0 | URL
올해 스승의날을 위해...^^

은비뫼 2009-05-02 21:08   좋아요 0 | URL
스승님이 좋아하시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