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홀딱 벗은 채 배를 부딪치고 신음소리를 내며 결합하는 과정이 더 '중대한'데도 불구하고, 사랑이 뒷받침되지 않은 욕정의 섹스에서 남자나 여자는 한 번쯤 '입에다가는 키스하지 말아요'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의아하다. 키스는 섹스의 전 단계인데 섹스하는 중에 키스는 안된다니,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 영화 <여왕 마고>에서 혼란한 시대에 몸소 느끼는 공허를 오빠, 남동생 할 것 없이 온갖 남자들과의 잠자리로 채워가던 정략결혼의 희생자 가톨릭교도(구교도) '마고' 그러니까 이자벨 아자니의 입으로 절정의 순간에 이 대사를 들으니, 언젠가 그애가 했던 웃긴 '말'이 생각났다.

 

나는 남자가 아니므로 남자가 궁금했다. 아마 남자들은 왜 섹스를 안하면 살 수 없냐고 물었던 것 같다. 못하면 왜 승질 내냐고도. 왜 보채냐고도. 나는 어렸고, 막 키스없이도 몸을 내줄 수 있고, 처음보는 사람과도 눈빛만 통해서 잠자리를 할 수 있다는 이전에는 말도 안돼, 했었던 이론들을 가능하다 생각하던 중이었다. 결합이 감정이 아니라 욕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자들은 이미 알았는데, 그래도 내 생각은 남자들이 본능적으로 해야 하는 욕망해소와는 좀 다른 '이론'이었다고 스스로 생각. 아님 말고. 더 어릴 때 나는 '사랑하는 것'과 '잠자리'에는 별로 연관이 없지 않냐고 늘 반문하고 있었고(손잡고 잠만 자도 애기가 생기는 줄;;), 그애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도 내 말에 동의하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얼마 전에는 결혼과 출산 이후 아내의 거부로 횟수가 줄다가 줄다가 자존심 상한 남편이 요구하지 않자, 아내가 자존심 굽히고 들어가 다시 좋은 관계가 되었다, 부부의 잠자리에 밀당은 필요없다, 뭐 그런 기사에 2주만 참아도 큰일나는 남자의 특성상, 몇 년간 관계가 없었던 남자가 분명 어딘가에 해소하고 왔을 거라는 악성 or 저렴 or 편견 댓글이 달린 걸 봤다. 세상 남자들이 다 똑같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욕망이든 욕정이든 비난한다던가 하는 건 아니다. 그건 그냥 그분의 문제. 그분의 생각. <섹스 앤 더 시티>를 다시 본다면 사만다에게도 몰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섹스는 아직 은밀하고 소중한 감정이지, 절제 안되고 참을 수 없이 열망하는 어떤 것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갑자기 섹스론.. 이게 뭐지..

 

그렇게 생겼으니까. 라고 답하면서, 그럼 너는 왜 참는데? 라는 연이은 질문에, 가만 생각해보면 그게 큰 의미가 없으니까. 그냥 넣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 뿐이잖아. 사랑한다는 표시내는 건데 니가 좋아하지 않는데 그게 뭐가 중요해.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그때 얼마나 웃었냐면, 남자들이 싸잡아 바보처럼 보이는 거다. 3초의 희열에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게 잠자리의 욕정인데, 그냥 흔드는 거라니,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연이은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그게 그러니까 서로 원할 때 해야 좋은거지, 짐승도 아니고 여자친구가 싫다는데 애원할 일은 아니지. 근데 남자는 그렇게 생긴 거니까 그렇다고 해서 욕하면 안돼. 여자도 나이 들면 남자보다 더 성욕이 강해져.. 어쩌고저쩌고.

 

 

 

 

 

 

 

 

 

 

 

 

 

 

이자벨 아자니 진짜 예쁘다. 일단은 궁중 예복과 드레스 등이 눈에 확 띄지만 그보다 살짝살짝 드러나는 쇄골과 허벅지 같은 게(아.. 이 페이퍼 19금!!! 우리 소이진님 어쩌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자인 내가 봐도 아름다운데, 자연스럽게 성욕을 부르지 않는다면 거짓말 아닌가. 나는 그림만 봐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가 외설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건 아니다. 역사시대극인데 배경을 모른다면 모르지만 어느 정도 배경을 이해하고 보기 시작하면, 이보다 더 선명한 줄거리로 핏빛 역사를 재현하기란 힘들다. 오히려 뚝뚝 떨어질 듯한 피가 더 외설적이라면 모를까. 사내들의 욕망은 섹시하고, 숨겨진 질주는 가히 매력적이다. 성적인 면 말고. <스파르타쿠스>를 보면서는 느낄 수 없는 예술미까지 느끼고 있다. 미쳤나. 영화는 교육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역사의 한 획을 제대로 긋는다. 마침 온갖 미남 왕들과 남자들 그리고 그들의 약함, 비열함까지 부수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역사에서 종교는 참 많은 이에게 빚을 졌다. 다양한 종교가 나름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우리나라로선 이해하기 힘든 몇 번의 종교전쟁. 사실 종교에 빗댈 뿐이지, 결국 어떤 명분으로든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싶어했을 거라는 어설픈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빨갱이 이론은 정부를 부정하는 사상 덩어리이기라도 했지, 개인의 삶에 지극히 추상적으로만 자리한다 여기던 종교가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긴 근대에 일어난 천주교 박해에 비하면 이해할 만도 한데, 아무래도 종교는 문화 혹은 문명을 반영할 수밖에 없고, 주도권을 쥐는 순간 권력이 되므로 한편으로 엄청난 무기가 아닌가.

 

<여왕 마고>야 말로 프랑스 구교와 신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전쟁을 소재로 하는 대작이다. 시대는 16세기, 배경은 프랑스, 소재로 1572년 파리에서 일어났던 성바르톨로메오의 학살사건을 다룬다.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days>에 이 사건은 이렇게 소개된다. (네이버 지식사전)

 

가톨릭의 위그노 공격으로 수천 명이 거리에서 살해된다.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날이 밝기 직전, 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학살이 시작되었다. 끔찍한 폭력의 물결이 파리 전역을 휩쓸었다. 프로테스탄트 교도를 추격하여 집 안에서 살해하고 상점을 약탈하며 가족 전체를 몰살했다. 프로테스탄트 왕자인 나바라의 앙리와 프랑스 왕 샤를 9세의 누이인 발루아의 마르그리트의 결혼식이 며칠 전에 열렸으므로, 여기에 참석했던 위그노(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지도자급 귀족들은 여전히 파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도시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이 결혼은 샤를 9세의 어머니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불화를 해소하기 위해 주선한 것으로, 가톨릭 설교가들 사이에는 비판의 물결이 널리 일었으며, 파리에는 반 위그노 감정이 팽배했다.

그 전날 위그노의 우두머리인 콜리니 장군을 노린 암살 시도가 있었다. 이후 24시간에 걸쳐 벌어진 사건에 대한 기록은 매우 혼란스럽지만, 8월 23일 밤, 가톨릭에 대한 복수를 두려워한 카트린이 자신이 좌지우지하던 나약한 왕을 설득해 도시에 남아 있는 위그노 귀족을 전부 처단하게 했던 것 같다. 콜리니는 병상에 누워 있다가 급습을 당해 칼에 찔려 죽었다. 다른 귀족들도 곧 목숨을 잃었다. 새신랑인 나바라의 앙리는 개종자인 척하여 목숨을 건졌다. 왕은 뒤늦게 학살을 중단시키려 했지만 이미 다른 도시로 번진 후였다. 10월이 되어 살인이 멈췄을 때에는 파리에서만 3천 명, 프랑스 다른 곳에서는 최대 3만 명의 위그노가 죽은 후였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대학살 소식을 환영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축하 메달을 제조하도록 했고, 화가 조르조 바사리에게 학살에 대한 그림을 그리라는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대학살은 위그노의 반발을 진압하기는커녕 이러한 상황에 맞서 무장 봉기를 일으키도록 하는 결과를 낳아, 프랑스는 또 한 차례의 내전에 빠져들게 된다.

 

"광분한 군중이 '위그노를 죽여라!'라고 외치는 광경에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쉴리 공작의 회고록』, 1638년 출판

 

그리고 '파리가 피로 물들다'라고. 이보다 더 잔인하고 포악하게 콕 집어낸 수식어가 있을 수 있을까. 영화는 이 싸움을 늦추기 위한 정략결혼으로부터 시작할 뿐이다. 아들 대신 통치를 맡게 된 카트린 드 메디치가 평화협정을 위해 딸 마고를 개신교도(신교도) 앙리 4세와 결혼시킨 것이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잔인한 대학살이라 여겨지는 종교전쟁의 씨앗을 잉태한 달콤한 알약이었을 뿐인 이 결혼식을 시작으로 이제껏 해온 크고 작은 다툼을 종식시키리라 믿었던 개신교도(신교도)들이 안심한 순간, 카트린의 악랄한 뒤통수치기로 인해 세느강이 피로 물든다. 마고가 진짜 사랑을 알아본 것은 이날 밤이다. 피흘리는 한 남자를 숨겨주며 시작되는 사랑. 여기서 흥미 끝.

 

영화 이미지가 강렬해서 특정 시퀀스가 전체 줄거리보다 붉고 짙다. 차라리 치정 살인이 낫지, 종교가 죽고 죽일 명분이 된다는 게 여전히 의문이지만, 사랑이 이유 없듯, 전쟁도 이유 없는 거여서 여튼 전쟁이 있었기에 이렇게 매력적으로 치장된 영화도 볼 수 있고, 좋지 뭐! 영화는 영화일 뿐, 내 것도 아니니까. 제3자의 시선. 요즘 이러고 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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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2-04-16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님, 오늘 하루종일 알라딘에만 계셨군요! 왜 이렇게 글을 많이 쓰셨어요!
전 이제 자야는데, 자고 싶은데 다 읽고 자야만 하잖아요ㅠㅠ 아이님의 내 잠을 뺏어갔어...
라고 투정부립니다ㅋ 차근차근 읽어볼게요^^
저는 일주일에 한 번 글을 던질까 말까 하는 사람인데, 아이리시스님의 이 무한한 글들은 정말-_-b

그런데 이 글, 미성년자 우리 소이진님은 어째요ㅋㅋ

아이리시스 2012-04-16 01:22   좋아요 0 | URL
아..샤이닝님 동물원 다녀왔어요? 다녀온 거예요? ^^
지금 아까 전세 전단지 붙이러 엄마한테 끌려나갔다가 지금 왔어요. 김밥천국에서 김밥 두 줄 사왔어요. 호호호. 다리 아프고 졸려 죽겠어요. 하루종일 시체놀이하면서 뒹굴거리면 이렇게 돼요!!!

소이진님이 나를 순수한 누나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아닐까봐 걱정돼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자요. 일요일인데 난 알라딘하고만 놀았어..( '')

맥거핀 2012-04-16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재밌어요. 중간에 빵~ 터졌습니다. 근데 저도 이 영화 봤었는데 중간에 그런 대사들이 있었나 생각이 드네요. 그런 대사보다는 다른 부분에 집중하고 있었던 모양.ㅎ 종교전쟁이라는 것도 사실 웃긴게, 늘 종교는 명분이었고, 대체로 다른 게 훨씬 중요한 문제였던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2-04-20 17:06   좋아요 0 | URL
저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기 때문에, 20대 초반이었거나 초중반. 아무 것도 잘 모르겠어서 그랬습니다ㅋㅋㅋ 쟤는 가끔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할배같은 진지함이 있기 때문에 저런 대답을 했었어요. 그 대답부분이 웃긴 게 아닌 거예요, 맥거핀님? 아하하. 묻지도 않고 혼자 설명하고 있었네요.

서양=종교+과학
동양=인본주의

에서 시작됐다고 요즘 읽는 신영복의 <강의-나의동양고전독법>에 나오던데요. 서양은 철학이든 역사든 늘 그 명분의 종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종교'의 지점에서 늘 서양문명에 흥미를 갖는 것 같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종교나 인종 같은 것들에서요.

이진 2012-04-16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ㅠㅠㅠㅠㅠ 소이진님 어쩌지... 하지만 괜찮아요. 남자인데가 벌써 고1이잖아요. 알건 다 아는 나이고, 뭐. 그래요 ㅋㅋㅋ학교 국어 선생님도 터프하게 막 말하시는걸요 뭐... 그래도 이런 영화는 딱히 보고 싶진 않아요. 포스터의 여자가 예쁘긴 하지만요. 정확히 말하면 여자보다는 옷의 기품과 우아함이 더 아름다워 보인달까요.

나 근데 자주 못온다면서 매일 들어오고 있어요. 하, 이러다 중학교 아니 고등학교 첫 시험인데 망치면 어쩌지 ㅠㅠ

Shining 2012-04-16 23:54   좋아요 0 | URL
이자벨 아자니는 레전드급 외모죠>_< 그러게; 알라딘때문에 시험 망치면 안되는데ㅠㅠ

아이님, 소이진님 괜찮대요ㅎㅎ 근데 이 아이러니한 감정은 뭐죠, 뭔가 다행스러우면서도 아쉬운...
저 소이진님이 더 부끄러워하길 기대했나봐요ㅋㅋ 아이리시스님도 그렇죠?

이진 2012-04-17 23:16   좋아요 0 | URL
잉, 아니에요. 부끄부끄하답니다. >3<... 하면 농담이구.
순수문학이랄까요, 문학 작품을 읽다보면 선정적인 장면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요.
맞죠, 그죠? 우리나라작품은 약간 에둘러서 표현된 감이 많은데, 특히 일본의 작품들은 심하잖아요. 그쵸? 맞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왜 전 이런걸로 합리화를 하고 있는 걸까요... 후후

아이리시스 2012-04-20 17:12   좋아요 0 | URL
샤이닝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특히 예뻐요. 프랑스배우들에게서는 미국배우들에게서 느껴지지 않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는데 그걸 글로 설명 못하겠어요. 실제 프랑스에서 본 프랑스인들은 그렇게 매력적이거나 별다르게 생기지도 않았던데요.

제가 소이진님 걱정한 건.. 제 이미지가 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이에요. 아쉽지만요. 네, 저도 소이진님이 부끄러워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저도 부끄러웠어요ㅠㅠㅠㅠㅠ

소이진님/ 자꾸 알라딘에 출몰하지 말고 시험공부 하도록 해요. 시험 잘 못치면 이후가 고생스러워요. 저는 공부를 잘 못했지만 소이진님은 잘 해야해요. 우리 목표는 전국 1등이니까. (나는 꿈에서..)

소이진님은 소설 많이 읽으니까 이 정도에는 꿈쩍도 안해요, 그쵸? 알고 있었어요ㅋㅋㅋ (일본작품 뭐가 특히 그랬어요? 채홍말고..아..이건 한국꺼지?...)

2012-04-20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0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드 1 - 가난한 성자들 조드 1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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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유라시아 내륙 평원에서 일어나는 대재앙. 물이 부족한 건조지대에서 겨울철 가뭄과 추위가 겹치며 정점에 이르렀을 때, 유목민의 생명줄인 가축이 한꺼번에 수천 마리씩 죽어나가는 사태를 지칭한다. 섬나라나 해안에 인접해 있는 땅에서 맞이하는 기후적 재앙인 '쓰나미'와 정반대 개념.

 

 

광활하고 호전적인 몽골땅에 늑대(족)의 후손들이 살았다. 납치결혼 당해 남편을 일찍이 보낸 어떤 여자가 달빛으로 잉태하여 낳은 아들 중에 '바보'라는 뜻을 가진 막내가 있었는데, 부모의 죽음 후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재산다툼이 벌어지자 지나치게 온순해서 투미한 데가 있던 막내(보돈차르 몽학)를 형들은 철저히 배제한다.

 

...내 소중한 자식들아. 절대로 흩어지면 안 돼. 이 가녀린 배가 화살 다섯 발을 세상에 쏘았어. 그리고 봐주는 남자도 없이 혼자서 지켜왔다. 나는 머지않아 죽지만 너희는 누구도 함부로 꺾지 못하도록, 어떤 일이 있어도 너희만은 세상이 무섭지 않도록 반드시 뭉쳐서 살아야 해. 알았니? (p.24)

 

병들어가는 약한 말에 태워 다른 곳으로 쫓아버린 것이다. 혼자가 된 '바보'는 오히려 절정에 다다른 꽃봉오리처럼 활짝 피어난다. 싸움보다는 지혜를, 욕심보다 우정을 택해 인고의 기다림으로 차츰 실현해가면서, 인정을 느낀 매가 자기 앞에 먹이를 물어다 나르도록 만든다. 지혜의 힘은 위대하다. 정말로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 자가 아니라 (타인으로 하여금) 무엇을 하도록 만드는 자이다. 전혀 가늠하기 힘든 이야기는 바로 이 예기치 못한 땅의 과거로, 아주 오래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한다. '바보'는 씨앗을 널리 퍼뜨린다. 씨앗은 땅 속으로 스며들어 멀리멀리 커간다. 마침내, 뿌리를 내리고 후손을 길러 거대한 민족이 탄생한다.

 

초원의 삶은 눈이 생명이다. 혹독한 겨울과 고립무원의 고독, 사방을 둘러봐도 그지없이 막막한 일망무제의 벌판밖에 없는 땅에는 지평선 너머에도 지평선이 있고, 그 너머에도 또 지평선이 있었다. 한 생명이 좁게 갇혀서 지내거나 사방팔방으로 열린 세상에서 드넓게 살도록 해주는 건 오직 눈의 능력에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pp.16-17)

 

녹록치 않은 초원의 삶에는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 외에 어떤 원칙도 존재할 여지가 없다. 섬세한 투박함이 거친 난세를 헤쳐나갈 유일한 무기. 늑대는 말과, 말은 늑대와, 인간은 땅과 한판 사투를 벌인다. 버려진 씨앗 중에, 아버지 죽음 후 성골이라는 이유로 무리로부터 배척 당한 테무진이 있다. 테무진이 뺏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끊임 없이 죽이려 하는 키릴툭. 그리고 같은 씨앗으로부터 왔지만 테무진이 흰 뼈라면, 그는 검은 뼈이다. 남몰래 테무진을 질투하는, 껴안을 때와 돌아설 때를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자무카. 대립각이 이게 전부일 리 없다.

 

목숨을 잃는 자는 죽어서도 많은 일을 하지만 용기를 잃는 자는 살아 있어도 아무 일 못한다. (p.48)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고, 살겠다는 몸부림이 처절해 보이지도 않는다. 용맹과 강직의 땅. 유럽사에 스며든 유라시아 대륙의 광대한 몽골. 13세기. 난세에 영웅이 출몰한다 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물'들이 나고 싸우고 스러져갈 것인가. 모든 것들의 중심에 영웅 테무진이 있다. 몽골 고원의 생생한 역사는 오로지 테무진을 실감시킨 작가의 철저한 고증과 상상력에 의해 복원된다. 한낱 영웅의 일대기가 아니다. 대단한 역사의 기록 앞에 현실은 고요히 침잠하고, 쓸데없는 에너지는 자취를 감춘다. 눈을 감으면 푸른 초원의 한복판에 서있는 내가 느껴진다.

 

"하늘에는 기러기들의 세상이 있고, 물에는 물고기들의 세상이 있어. 초원에는 사내들의 세상이 있지. 그걸 지켜야 하기 때문에 다들 고통을 참으면서 자기 다리를 견디는 걸 좀 봐. 이럴 때 한 명이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하찮은 자리로 떨어지고 말 거야. 너는 누구와도 함께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확인시켜주었어. 그래,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라." (pp.61-62)

 

초원에서는 유목보다 사냥이 쉽다. 혼자 남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물과 불을 가르는 일은 곧 전쟁으로 치부된다. 서로의 삶이 어떤지 알기에 쉽사리 귀를 빌려주려 하지 않는다. 제게 기댈까 걱정부터 한다. 삶은 아름답고 참혹하고 몽롱하다. 산 사람들은 반쯤 미쳐있거나 저마다 붕 뜬 세상을 산다. 짐승도 마찬가지다. 하늘의 목소리를 듣는 자들, 함부로 울음을 울지 않는 자들, 현세에 귀 기울이는 자들, 바로 그들이었다.

 

테무진은 천지사방에서 엄습하는 초원의 위험 앞에 전면 노출되어 하루하루를 연명했지만 도망자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도 딱히 방법이 없으니, 언제나 침묵했고 날마다 고독했다. 제길, 운명은 하늘의 것. 간밤에도 그가 볼 수 없고 확인되지 않는 세상 밖에서 천 개의 별이 태어나고 천 개의 별이 죽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p.79)

 

나코 어른의 손에서는 말이 초원을 가르며 달리는 바람 소리가 났다. 말과 함께 한 세월과 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나코 어른과 그의 아들을 사람들은 말 부자(父子)라고 불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초원의 적이 되어 쫓기고 쫓기면서도 한 가족 못지 않게 정다운 체온을 나누었던 황금 말을 도둑 맞은 테무진에게 나코 어른의 아들 보오르추가 다가온다. 테무진은 보오르추와 가족들을 통해 처음으로 초원에서의 정을 느낀다. 한 뿌리에서 났지만 뒤춤에 칼 꽂아 돌진하는 이들 틈에 버텨온 그에게, 한 번도 무리에 낀 적 없어도 자신을 친구로 여겨주는 이들이 감탄스러울 수밖에. 초원의 정은 끈끈하고 뜨거웠다. 팔딱팔딱 심장이 요동칠 만큼 절박하면서도 고요한 시간을 선사하였다. 힘줄과 뼈로 만든 악기, 백마의 기마술, 고운 노래 그리고 협동심. 모든 것들이 초원의 광활함 앞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괴팍한 날씨 때문에 초지가 피폐해져서 가축들이 지쳐 죽는 걸 조드라 한다. 조드는 근본적으로 고원에 물이 없어서 생기는 것인데, 피해의 양상은 크게 네 가지로 드러난다. 하나,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가축이 초지를 찾을 수 없게 되는 것, 이게 하얀 조드이다. 둘, 여름이나 가을부터 초지가 말라서 겨울 뿌리까지 고갈되는 재난, 이것을 검은 조드라 한다. 셋, 극심한 눈보라가 몇 날 며칠이고 계속되거나 콧구멍을 막는 흙바람 때문에 가축이 한 발짝도 나다닐 수 없게 되는 재앙이 눈보라 조드이다. 넷, 일찍 내린 눈이 따뜻해지는 바람에 철철 녹아서 흐르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강추위에 아주 두꺼운 얼음이 되는 것, 그래서 눈에 번히 보이는 풀뿌리에 입도 대지 못한 채 굶어 죽는 것이 거울 조드이다. (p.116)

 

테무진은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온통 혼자의 그림자 뿐인 질주하는 대지에서 비로소 친구와 가족의 정을 만난 것이다. 산 너머 산, 산 너머의 산에도 산이 있을, 지평선 너머가 보이지 않는 희미한 땅의 달빛에서 그는 지금도 슬픔으로 치장하고 있을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돌이켜보면,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조차도 그 어디엔가는 사랑의 숨결이 숨어 있었다. (중략) 인간을 기르는 건 세상이다. (중략) 그런데 왜 못 죽였을까? 칼을 쥔 손에 몇 번이나 힘이 들어가 근육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는데, 왜 휘두르지 않고 돌아갔을까? 테무진에게는 그것이 언제나 수수께끼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의문이 풀렸다. 매번 남들이 보고 있었다는 것. 비겁한 이웃을 원망할 일이 아니라 감사해야 된다는 말이 백번 옳다. 아버지를 잃고 죄도 없이 붙들려온 어린 소년을 뚜렷한 잘못도 없이 죽였다가 인심을 잃게 되면 키릴툭의 권세는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목이 자신을 살린 것이다. 그 이목을 일컬어 사람들은 세상이라 부른다. (pp.173-174)

 

테무진은 길을 떠날 때 하늘에게 묻고 말에게 물었다. 광야에는 숨을 곳이 없다. 도망치고 또 도망하고 숨는 삶 도중에 친구를 만난 것이었다. 보오르추의 열린 귀에 테무진이 속삭였다. 여자의 가슴과 닿았던 추억담과 약혼녀를 찾으러가기까지의 결심을. 초원에는 지도자가 없었다. 통솔, 화합, 통합 대신 분열, 경쟁, 싸움만이 있었다. 전쟁이 아니면 죽음이었다. 약혼녀와의 잠자리에 실패하고 아버지의 위독소식을 듣고 돌아가던 그날 아버지를 보내며 비로소 운명을 피할 수 없음을 배운다.

 

테무진은 버르테와 혼인한다. 그녀는 언젠가 찾아들 하늘의 별빛처럼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날밤의 흔적을 지붕에 올려 푸른 하늘에 알리는 것과 말 떼 속에서 진짜 수컷을 없애는 이유, 사막에서 죽은 사람을 매장할 때 낙타 새끼를 함께 묻는 이유, 절망에 눈멀고 낙담, 후회 같은 감정 기관을 잘라야 하는 것 등 초원의 모든 위험에 노출된 테무진의 아내가 되는 길은 멀고도 멀다. 시어머니 후엘룬의 뜨거운 보살핌 속에, 오래된 그녀의 슬픈 사연을 벗 삼아, 그들의 간격은 좁혀지고 또 좁혀진다. 게르의 중앙에 화덕을 피우고 웃음을 꽃피운다. 행복을 배운다. 오래가지 못하더라도 행복은 행복이다. 곧 다가올 미래는 예상하지 못해 애처로운 短歌다.

 

초원의 삶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오로지 삶 뿐이었다. 막힘 없이 푸르고 넓은 초원을 달리고 달려 인간을 결박하는 기후로부터, 다른 생명체로부터 도태되지 않고 생존하는 일이 전부였다. 테무진의 어깨가 무거웠다. 한때 아버지에게 목숨을 빚진 케레이트 왕, 토오릴칸에게 목숨을 구하러 가면서도 그의 눈은 별똥 같은 반짝임을 감출 수 없었다.   

 

전투가 일어난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을 보유한 친구들과 어제까지 행복한 웃음을 지었던 게르를 떠나면서 그만 생모와 아내 버르테를 두고 온 것이다. 유목민 그리고 초원의 전투란 生과 死 혹은 女人에게서 시작되고 女人에게서 끝났다. 하지만 전쟁이란 언제나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일 터였다. 지금 버르테가 처한 상황과 똑같이 아버지 예수게이의 부족에게 납치되어 뿌리내린 어머니는 테무진에게 일생일대의 선택을 자연의 섭리처럼 요구한다.

 

"버르테는 다른 남자와 살 거다. 그래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너의 아내야."

(중략)

"울 생각 마라. 자신의 생애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이해하기에 인간은 너무 작아. 인생은 아주 크단다. 우리는 자기 발밑도 온전하게 볼 수가 없어. 사랑의 생명이 끝나버린 잿더미 속에서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 걸 누가 알아? 한데 그것도 하나의 생명이란다." (p.290)

 

테무진은 버르테를 찾기 위해 토오릴칸, 자무카와 삼자동맹을 결성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득이기에 각자 발톱 숨긴 채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다. 메르키드를 처치하기 위한 작전의 지휘는 자무카, 어린 몽골의 겁없는 지도자에게 남몰래 대립각 세우는 지도자는 토오릴칸이었다. 테무진은 보르칸 산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비로소 초원의 중심에 자기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도움을 구해야 할 자가 아니라 도움이 되어줄 자라는 사실을 확신한다. 비극은 경탄의 강을 흘러 뜨거운 성공의 세월을 예감하고 있었다.

 

'버르테! 초원의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광야를 횡단하는 구름만 남더라도 나는 당신을 찾을 것이오.'

 

테무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옹기라트에서 데려와 버르테의 피가 흐르는 곳이라면 손가락 발가락까지 입 맞추던 날, 한없이 높으면 높은 곳, 한없이 깊다면 깊은 곳까지 내려가 천 마리의 벌 떼들이 마치 꽃잎을 누비는 것처럼 부끄럽지도 지치지도 않고 덤비던 밤에 한 약속이었다. (p.321)

 

어려움을 아는 자, 어려운 자를 거둘 줄 안다. 버려짐을 아는 자, 버려진 자의 마음을 꿰뚫는다. 전쟁통에 버려진 아이를 만나면 데려와 달라던 어머니의 부탁을 거스를 수 없는 것 또한 앞으로 테무진이 가야 할 길에 놓인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그 가치를 드러낼 체제이자 가치관일 것이다. 삼자동맹의 시작은 성공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영웅이란 무릇 시대가 만들어내는 것. 또한 그 영웅은 절대로 포기와 타협을 모르는 법. 지혜로운 자, 영웅이 되리라.

 

알랑고아의 후손, 하얀 뼈를 물려받은 테무진에게 늘 가혹하기만 했던 초원의 삶이 드디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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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4-13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이런 이야기...색다른데요? 초원이라니.
물론 제가 생각하는 그런 낭만적인 초원은 아닐 것 같긴 하지만...ㅎㅎ

어렸을 때 흑룡강을 배경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같은걸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스케일이 다르더라구요.
그때 한참 유라시아 내륙 지방을 동경하기도 했었어요. 그곳의 삶은 진짜 다르겠죠?

아이리시스 2012-04-13 23:04   좋아요 0 | URL
몽골의 시조 알랑고아가 주몽의 딸이라는 설이 있더라고요. 아까 다(1권만) 읽고 언뜻 찾아보니까, 이 소설 주인공 테무진이 훗날 징기스칸인데 몽골제국 탄생을 그리고 있어요. 몽골역사에 관심이 생겼어요. 책에 나온 가계도 아니, 족보 보니까 정신이 없는데 몽골식 이름이 입에 안 붙어서요. 엄청난 자료조사와 고증을 거쳐 탄생한 부지런한 작가의 탄생물 같아서 좋았어요. 몽골 가고 싶은데^^

오.. 그 다큐멘터리는 어떤 다큐멘터리일까요. 몽골배경 한 번 찾아보고 싶어요. 저는 이런 류의 다큐는 예전에 <차마고도>가 마지막..ㅠ 맨날 유럽,미국 이런 곳들 여행기만 줄기차게 보고요. 낭만적인 초원 전혀 아니고요. 목가적 삶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그것마저 날려버렸어요=3

잘잘라 2012-04-13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기를 잃는 자는 살아 있어도 아무 일 못 한다..
용기를 잃는 자는 살아 있어도 아무 일 못 한다..
음..
어떤 일을 할 때는 항상 용기가 필요하다는..
용기를 잃지 않도록 잘 간수해야겠다는!!^^

아이리시스 2012-04-13 23:27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와서 천천히 글들도 읽고 마실 다니면 포핀스님 댓글도 만나는군요!
사실은 영웅 일대기 그린 역사소설이 생각하는 대로 좀 뻔한 면이 있는데, 간혹 허를 찌르는 지혜의 구절이 있어서 참 좋아요. 저도 저 장면이 기억에 남았거든요. 차라리 죽으면 기억에라도 오래 남지만, 살아서 허접하면 죽느니만 못하다는 게요.

용기.. 저는 요즘 신이 잘 안나요. 자동적으로 용기도 없어요. 밤이니까 자고나면 또 나아지겠죠. 자기 전에 맛있는 부침개 부쳐먹어야겠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잘라 2012-04-14 13:57   좋아요 0 | URL
쑥부침개 해먹어요! 직접 쑥 캐다가요!(야외활동이 필요해욧!!) 완전끝내줘요^^ 쑥 향기~~~~

아이리시스 2012-04-15 16:41   좋아요 0 | URL
그렇잖아도 엄마가 막 아빠더러 쑥 캐드시라고 그러던데, 요즘 이것저것 봄씨앗 심느라 울아빠 바쁘셔요. 저는 쑥국 몇 번 먹었어요. 부침개도 해먹어요? 오늘 진짜 날씨 따뜻해요!! 신나요!!^^
 

 

 

 

다른 삶. 어떤 삶이요? 어째서 다른 삶을 살아야 하나요?

 

 

 

 

 

 

 

 

 

 

 

 

 

 

 

힘겹다면 누구 하나는 묻지 않았을까. 강물이 흐르듯 흘러가는 게 삶인데, 다른 삶을 살라니, 나는 내 삶조차 정의내리기 혼란스러운데, 대체 당신이 얘기하는 다른 삶이란 무엇인가요. 언젠가, 미이라의 전복된 이미지를 설파하는 프리젠테이션 발표자에게 질의자로 예정된 내가 질문했다. 미이라의 왜곡된 이미지를 탓하려면 일단 미이라의 원 이미지를 먼저 다수가 받아들이도록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는 미이라의 원 이미지에 대한 언급은 없네요. 결국, 아무 것도 '원(original)'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소설 <은교>에서 이적요는 제자 서지우에게 밤하늘의 별이 반짝인다는 것마저도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의 고정된 이미지일 뿐이라며, 전복되지 못하는 사고(생각)로는 어떠한 시적 번뜩임도 찾을 수 없다는 강의록으로, 시, 나아가 문학의 한정된 둘레와 보수적 문학계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그것은 결국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작가가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독자, 아니 그보다 더 큰, 세상에 고하는 일침이 된다. 별빛이 반짝인다는 사실마저도 당신들이 만들어낸 거짓된 허상, 고정된 이미지에 불과하다면서. 문학에서는 허상과 실질의 괴리만이 대상을 빛나게 한다. 언어도, 이미지도, 메시지도. 아마 다른 어떤 대상에 대입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은 안정을 원하는 동시에 변화를 추구한다. 욕망과 열정, 변화와 괴리는 맹물에 뿌려진 달콤한 설탕 아니면 소금 같은 것이다. 어느 하나만 있거나 둘 다 흔들리거나 하는 한, 갈대처럼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정과 경직된 결혼생활, 고정된 인간관계와 환경 등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또 어떠한가.

 

불변과 변화의 어디쯤. 그것만이 삶을 가능케 한다. 결국 부서질 어떤 삶도, 반짝임이 눈부셔 외려 어두운 어떤 절망도, 침잠하는 고요의 찰나에도 나만 다른 삶을 살아도 될까요, 하는 의문을 품는다. 사랑, 일, 사회, 사상, 신조, 신앙, 가치관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여전히 허락되지 않은, 찢어발겨진 허무의 삶을 나는 이 영화 <이민자>에서 본다. 지독히 열망할 수록 그림자는 훨씬 더 짙은 법. 욕망이 원칙을 능가하는 세상은 아름다운가. 아님 반대가 평화로운가.

 

 

 

 

 

 

 

 

 

 

 

 

 

 

 

 

 

포스터를 보고 영화에 꽂힌 건 오랜만이다. 잡지 표지모델 같은 두 남녀의 깊은 포옹과 입맞춤(입맞춤이 깊었는지 어떤지는 내가 알 수 없..). 여자는 조막만하게, 허리는 더 잘록하게, 허리를 감싼 남자의 손은 의도적으로 더 크게 표현하면서 깊어지는 욕망과 열정의 강도를 표현했다. 사진은 정말로 모든 걸 품고 있다. 이들은 서로를 완벽하게 가졌다. 적어도 갖고 싶어하는 걸로 보인다. 욕망을 욕망하고, 욕망하는 욕망을 더불어 욕망하면서 점점 내가 당신을 원하는지, 당신이 나를 원하는지, 내가 당신을 욕망하는 나 혹은 당신의 욕망을 원하는지 뒤죽박죽 되어버리면서 달리는 방향이 어긋난다. 여자의 안에서 갓 나온 남자가 그러하듯 욕망이 제대로 분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랑은 사랑이라서가 아니라, 일방의 욕망이 향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지켜보는 일이므로 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1930년에 나온 브뉘엘의 <황금시대>는 지독히 매력적이다. 필모그래피 전체가 적절한 성욕분출을 허용하는 작품들이므로, 황홀이 극에 달한다. 한때 내가 베르니니와 클림트를 보며 느꼈던 엑스터시가 내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사망한 이 감독에 의해 철저히 부활한다.

 

 

 

 

 

 

 

 

 

 

 

 

 

 

 

 

허락되지 않는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딸을 사랑하는 것도, 누이를 사랑하는 남자도, 아내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어린 여자도, 한낱 성욕으로 여자를 범해 아이를 잉태한 억세게 운 좋은 남자도, 사랑하는 행위와 방법에 문제가 있을 뿐, 사랑하고자 하는 자연적 육욕과 좀 더 고결하다 믿는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 않는다. 버려진 삶을 책임지는 일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가능한가. 여자에게 자신의 몸과 몸안에 잉태된 아이까지 모조리 책임지라는 건 얼마나 모질고 가혹한가. 아버지의 아이를 배고 사산하고 낳은 여자라는 말로 이 여자의 벅차고 고된 삶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고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은 어째서 하루에 두 끼 이상, 최소한의 잠, 추위,더위를 느끼는 감각, 짐승 같은 짓으로도 생명을 잉태시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을까. 오빠나 남동생에게 시집가고, 형이 죽으면 형수를 취하고, 자매가 한 남자에게 안기는 일련의 일들과 아버지가 딸을 범하는 행위는 동급이다. 이것조차 이적요의 말로 이해하면 고정된 이미지, 만들어진 이성일 뿐 본능의 도덕성은 아닐거란 사실이다. 신은 대체 왜. 인간을 어떻게 믿고 이 모든 걸 허락하셨나. 오늘날 욕망이 도덕을 이겨 비극을 낳은 경우, 아무리 예쁘고 건강하고 소중하더라도 생명이 꿈틀거리지 않으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을 더러 했다. 도덕적이지 못하게 태어났대서 태어남을 비난한다면, 기회의 평등을 빼앗는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가장 현대화되고 제일 이성화된 현 사회는 이 모든 폭력을 묵인한다. 어느 쪽이 더 나쁜가. 행위를 단지 형벌로 처벌할 수 있는가. 형벌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되갚아줄 수 있는가.

 

젊음을 원하는 행위가 자연스럽듯, 젊은 여자나 젊은 남자를 품고픈 나이든 이들의 욕망도 자연스러워서, 그건 이성으로 통제될 뿐이지, 자연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학 속에서 너나할 것 없이 설파하고, 실제로도 왕왕 벌어지는 이 '짐승 같은' 일들이 단지 꿈인 게 아닌 걸 보면, 욕망은 내재되어 있지만 욕망을 찍어눌러 억제한다는 이론이 그 반대보다는 더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딸을 욕망하는 아버지는 실제로도 존재한다. 당연히 문학으로도 존재할 밖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라, 이 여자의 삶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아버지를 손가락질 하는 일과는 별개로, 여자의 삶은 이해되어야 한다. 어릴 땐, 아빠나 오빠, 동생에게 꽁꽁 숨겨진 몸을 언제부터 가까웠는지도 모르는 낯선 남자에게는 보일 수 있다는, 평생 보이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적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이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나를 낳아준 이는 갖지도 얻지도 못하는 몸을 타인에게는 허락한다는 사실이 비이성적이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많은 것에 의문을 품었으니까. 알을 낳고 품는 인고의 과정이 아니라, 단지 욕망을 분출하는 '행위'로 잉태되는, 고귀한 존재의 삶이 늘 불공평하다 여겼다. 책임이 사라진 생명잉태가 가능하게 하려면, 태어난 즉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해체되어야만 한다. 어떤 동물들처럼.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고리는 바로 이게 아니었을까. 끊어낼 수 없는 천륜의 관계가 허락된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선물 받은 전자책은 역시, 가끔 프린트용 자료로, 대부분 예상대로 만화책 보는 일에 쓰이고 있다.

그리고 싸돌아다니는데 재미 들려서, 나는 지금, 놀러간다. 데이트 하러 ^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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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4-09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삼. 오늘 같이 좋은 날 나는...ㅠㅠㅠㅠㅠㅠㅠ

아이리시스 2012-04-12 02:40   좋아요 0 | URL
그날은 밤바람도 적절하게 시원하고 참 좋았는데 오늘밤은 좀 추웠어요. 투표하고나서 혼자 시내 나가서 서점 좀 둘러보고 돌아오는데, 왜케 피곤한지.. 오는 길에 불고기버거세트 사들고 집에 와서 씻고 먹으면서 개표방송 봤어요 ^______________^

아.......... 절망했어요. 미안해요. 저 부산 살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기 이유도 명분도 없이 1번 밖에 누를 줄 모르는 사람들이 유별나게 많네요. 역시 넘사벽이었어요... 오늘밤 제 코드는 절망........... 뭐 100% 제 절망은 아니지만요.

Shining 2012-04-09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산책하기 딱 좋은 이런 날씨에! 무려 데이트이신겁니까?ㅎㅎ
저도 아이리시스님 댓글에 공감 달고 싶어요, 그런데 저는 모르는 영화와 책들ㅠㅠ
<이민자>가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을 리메이크했다는 것 밖에 모르겠어요, 흑ㅠ

아이리시스 2012-04-12 02:45   좋아요 0 | URL
밤산책은 동네 뒷산이나 벚꽃 하늘거리는 공원이나 뭐 그래야 하는데, 늦은 밤에도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무려 시내에 가서 고기 구워먹고, 광안리 가서 바다 보며 카라멜 마키아또 한 잔을.............아................. 시럽과 카라멜이 사람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엔젤리너스에서.....................( '')

저게 리메이크였어요? 저는 그것도 몰랐는데요.. 이상해.. 샤이닝님은 뭐든지 알고 있어요!! 흑ㅠ

맥거핀 2012-04-09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고전영화에 관심을 가지시기로 했나봐요. 저 포스터는 정말 인상적이네요. 새로운 땅에 도착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저번에 보았던 <정복자 펠레>가 떠오르네요. 분명히 이들은 고난을 겪을 것이고, 아들은 결국 아버지를 넘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겠지요. 모든 아버지들은 그것을 원할까요..잘 모르겠네요.

아이리시스 2012-04-12 02:50   좋아요 0 | URL
아..맥거핀님.. 저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제가 많이 좋아할 만한 영화들이더라고요. 물론, 모조리 본 게 아니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요. 그래서 야금야금 구해서 보면 되겠다 싶었어요. 저는 인내도 부족하고 끈기도 없어서 고전영화에 관심을 가져도 짚어내가며 볼 수 있을거란 생각이 안들어요. 생각만 해도 잠이 몰려와요.. 오, <정복자 펠레> 좋은 영화일 것 같네요. 전에 제가 맥거핀님 리뷰를 읽은 적이 있나요? 기억이 안나요. 저는 뭐든 잘 기억을 못하니까...........( '') 오늘 멍청한 티 엄청 내고 가네요. 밤이 되니까 더 심해지는 듯ㅋㅋㅋ

그래도 말이죠, 아버지들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게 모든 아들들의 숙명이기도 하니까요. 숙명을 막는다면 그것도 안되는 거잖아요. 부모는 자기가 겪은 시행착오를 물려주기 싫어 어떤 행위를 강요하거나 차단하려 하고 아들(이든 딸이든)은 그걸 알면서도 반드시 직접 해보려 하고.. 제가 후자라서 이걸 잘 알아요. 저는 꼭 제 손으로 만져보고 돌다리를 건너는 타입이거든요. 현명한 건지 바보 같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벨아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3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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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뒤루아는 다행히도 여자가 아니다. 모파상은 <목걸이>, <여자의 일생> 등으로 유명한데, 대부분이 그렇듯 학창시절 읽는 세계문학전집으로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즈음 읽은 것들은 줄거리나 교훈 보다는 배경과 이미지로 기억 속 깊은 곳에 남아 있다. 모파상의 것은 포우와 같이 그다지 좋아하는 작품 스타일이 아니었다. 여러번 말했듯, 나는 소재나 주제보다 문체에 더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벨아미>를 읽게 된 건 단연코 내세울 만한 이유가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은 접어두고 나는 이 작품이 매우 맘에 든다. 다만, 뒤루아가 여자였다면 만인의 여자들이 재수없어할 부류였다는 것만은 명확히 알겠다. 나는 이런 여자들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매우 싫다. 대신 나라면 엮여서 감수하는 쪽보다는 다가가지 않고 무시하는 편을 택하겠다. 그래왔고 또 그럴 것이다. 가진 걸 휘두르지 못해 안달하는 이들, 겉으로는 명쾌한 척 하지만 뒤에서 온갖 수작 부리는 이들, 알고보면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가능한 많은 일들 앞에서 자기논리는 명료하고 남의 것은 그 반대라는 식으로 일갈하는 이들. 무엇보다도 내 욕망, 이라는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주는 피해를 정당화하려는 이들. 말하지 않는다 해서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아닌 것처럼.

 

처음에 벨아미-이는 나중에 뒤루아가 얻게 되는 별명이다-는 평소 너무나도 경멸하고 싶은 부류라서 읽으면서 또는 읽고나서 그에게 동화되고 이해도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여전히 욕망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원한다는 것과 원하는 것을 가지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적어도 그 반대인 것보다는.

 

벨아미는 전직 하사관이었지만 지금은 그저그런 철도회사에서 박봉으로 일하는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남자다. 군대에서 알았던 신문기자 친구 포레스티에를 만나면서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가 욕망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실행하기까지는 짧은 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옮긴이는 내가 놓친 부분을 얘기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뒤루아에게는 단 3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19세기 중후반 파리의 상류 사회는 퇴폐와 자유, 향락, 불륜 혹은 이 모든 것들이 넘실대는 막 걷힌 장이었다 해도 과언 아니다. 다 같이 미쳐있으면 오히려 제 정신인 보통 사람이 이상해보이는 것처럼 경계를 넘어있는 시대였다. 몰라도 아는 척만 하면 되고, '욕망'이 그 어떤 도덕적 가치와 의미보다 상위에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들은 종종 서로를 속였고, 자신도 속였다.

 

"누구나 그 이상을 알진 못하지. 궁지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스무 명가량의 멍청이들은 예외지만 말일세. 강한 사람으로 보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무식하다는 꼬리를 잡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네. 교묘하게 처신해서 어려움에서 빠져나오고 장애물은 피해서 돌아가고 그 나머지 모르는 것들은 사전을 이용해서 남의 눈을 속이는 거지. 인간이란 거위처럼 어리석고 잉어처럼 무식한 법이네." (p.18)

 

무대는 활짝 열려 있었고 아무도 그것을 닫을 마음이라곤 없었다. 벨아미는 친구로부터 신문사 영입제의를 받고-정확히는 기사를 써보겠냐는 제의-그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하면서 국회의원이자 신문사 사장 왈테르 가족을 만나 그 자리에서 알제리 정책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면서 처음으로 모두의 시선을 끌게 된다. 특히 포레스티에의 아내 마들렌이 소개한 먼 친척 마렐 부인이 이 날부터 자기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알고부터는 자신의 외모와 말투와 대화방식이 상대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한 마디로 자신이 먹힌다는 사실을 안 것-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빳빳하게 온 사교장을 누빈다. 남자가 여자에게 혹은 여자가 남자에게 반하는 데는 때로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번드르르한 외모와 상냥하고 친절한 말투, 자기에게 호감이 있다는 듯 살짝 다가가면서도 튕기는 태도. 무엇보다 빨리 이것들을 깨달은 벨아미였다. 그의 깨달음이 머지않아 모든 이의 희극과 비극을 양성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벨아미를 응원할 것인지, 만류할 것인지. 전자를 선택하는 편이 훨씬 더 편하다는 게 비극이라면 비극이지만. 끌리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나중에 씁쓸한 그의 성공에 박수치며 이건 아니야, 라고 외쳐도 그때는 이미 늦다.

 

 

여기서 이 노래를 떠올렸다. 나는, 뜬금없게도. 몇 번이나 좋아한다고 말했고, 몇 번이나 페이퍼에 등장시키고, 얼마 전에는 무려 현빈이 부르는 것도 올렸던, 바로 그 노래. 에릭 클랩튼의 "원더풀 투나잇". 이 곡을 떠올리면 아무 것 없어도 밤은 언제나 완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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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late in the evening
: 늦은 저녁입니다

She's wondering what clothes to wear
: 그녀는 무슨 옷을 입을까 망설입니다.

She puts on her make-up and brushed her long blonde hair
: 화장을 하고 긴 금발머리를 빗어 내립니다

And then she asks me "Do I look all right?"
: 그리고 내게 묻지요 "나 괜찮아 보여요?"

And I say "Yes, you look Wonderful tonight."
: 나는 대답합니다. "그래요 오늘 밤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워요"

We go to a party and everyone turns to see
: 우리는 파티에 나갑니다 모두들 고개를 돌리고

This beautiful lady who's walking around with me
: 나와 함께 춤추는 이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지요

And then she asks me "Do you feel all right?"
: 그녀는 나에게 묻습니다 "기분 좋아요?"

And I say "Yes, I feel Wonderful tonight."
: 나는 대답하지요 "그래요 오늘 밤 난 정말 황홀해요"

I feel wonderful because I see the love light In your eyes
: 나는 정말 황홀하다오 그대 눈 속에서 사랑의 빛을 바라볼 수 있기에

And the wonder of it all is that you just don't realize How much I love you
: 그 무엇보다 경이로운 것은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대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It's time to go home now
: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

And I've got an aching head so I give her the car keys
: 나는 머리가 아파서 그녀에게 차 열쇠를 건네 줍니다

She helps me to bed and then I tell her as I turn out the light
: 그녀는 나를 침대 위에 누이고 나는 불을 끄면서 그녀에게 말합니다.

I say "My darling, You are wonderful tonight"
: 내 사랑 오늘 밤 당신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요"

Oh my darling, you are wonderful tonight.
: 오 나의 사랑, 오늘 밤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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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를 처음 듣고 가사를 찾아봤을 땐, 이 감미로운 가사가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스토리를 알려줘서, 확장시켜 소설을 지어냈다. 그리고 이 부분이 가장 좋다. 파티에 가려고 제일 예쁜 드레스를 꺼내 입은 여자가 자기를 기다리고 서 있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부분. "나 괜찮아 보여요?"

 

하나 더 있다.

 

파티에서 실컷 즐기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술 탓인지 살짝 어지럼증을 느끼는 남자가 여자에게 차 열쇠를 건네주고, 집에 도착해서 남자를 부축해 침대에 부드럽게 눕혀주는 여자. 남자가 침대 옆에 놓인 스탠드불을 끄고 여자도 그 곁에 눕는 부분.

 

사실, "내 사랑, 오늘 밤 당신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요." 라는 부분에서는 그다지 설레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그리고 나는 이 곡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미국에 가고 싶었다. 사치와 화려함이 뒤죽박죽된 파티에 초대받고 싶었다. 허영으로 똘똘 뭉친 <가십걸>의 주인공들처럼이라도 상관 없었다. 거기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사랑하는 상대를 가지고픈 욕망, 에만 끌린다. 처음에는 꿈도 얘기했지만 점점 사랑하는 대상과 경제력을 얻을 기회만 호시탐탐 넘본다. 때때로 자조하며 짐승도 한낱 지조는 지키는데, 하면서도 계속 본다. 재밌으니까. <파리의 연인>처럼 파리에서의 파티도 좋을 것 같고, 무도회도 좋을 것 같고, <오만과 편견>의 영국풍 사교계도 상관 없었다. 나는 그저 파티면 되었다. 실제 나는 파티의 분주함이나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기웃거리는 것 등을 즐기지는 않는데도. 하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과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지는 않는다. 술집 보다 광장을 좀 더 좋아하는 게 흠이라면 흠.

 

 

 

어쨌든, 이 남자 좀 재수없는데 한편으로는 멋지다. 자기가 얼만큼 유혹할 수 있는지, 자기가 무얼 할 수 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남자라.. 역시 나는 다시 생각해도 그 반대로 서툴게 다가오는 남자가 훨씬 낫지만 벨아미를 미워할 수가 없다. 재수없어할 수는 있지만 미워지지는 않는다. 남녀 관계에 있어 계산적일 수 있음은 여러가지 의미로 볼 때 서로 다른 장단점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 정도는 밀당이 필요하고, 밀당이 관계를 오래 지속시킬 수도 있다는 것은 맞다고 보지만 자기의 가치와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는 것은 언제나 옳지 않다고 느낀다. 벨아미는 그렇게 한다. 그리고 자기가 나쁘다는 의식조차 없다. 잘못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없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는 벨아미의 입을 빌어서는 절대 선과 악, 옳고 그름, 가능과 불가능 같은 것들이 말해지지 않는다. 그 지점이 바로 문학으로서의 예술로 기능하고, 나는 이게 굉장히 마음에 든다. 모파상이 그려낸 벨아미가 좋아진 이유다. 그럼 이제부터는 모파상이 한 짓들을 낱낱히 고하고 분석해볼까, 라고 하기에 뭐 있을까. 사교계에서 자기 장점이 어필됨을 알았으니 점차 자기를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 날개를 찾아 동분서주하겠지. 뻔한 거 아닌가.

 

<벨아미>는 두 가지만 이해하면 된다. 선악의 경계를 흔들며 사교계에서 귀부인들의 마음을 훔치며 고급 정보를 얻으면서 언론사의 고지위까지 한 계단 한 계단 밟아가는 욕망의 화신인 남자의 모습과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프랑스가 가장 타락한 시기의 언론계를 상세히 묘사함으로서 프랑스 언론역사의 발전과정을 되짚어보는 것. 모파상의 사실적 문학은 동시대 다른 작가들처럼 문체에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 에밀 졸라를 잇는 프랑스 19세기 작가이자, 스승 플로베르를 통해 콩쿠르 형제, 알퐁스 도데, 투르게네프 등과 교류했던 모파상은 이들보다 더 사실적 묘사를 통해 철저히 묘사로만 파리의 상류사회와 사교계의 귀족부인들을 그려낸다. 서정성 있는 문체를 썼던 알퐁스 도데나 투르게네프와는 짐짓 다른 모습이다.

 

그러자 지껄이고 싶은 욕망이 끓어올랐다. 자기에게 모든 주의를 끌고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대단치 않은 말 하나하나까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음미하면서 듣도록 하는 저 말재주가 탁월한 남자들처럼 칭찬을 받고 싶었다. (p.42)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본능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인정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누구나 두 가지의 경계를 지키기 위해 아슬아슬 넘나드는 불편한 선이 분명 있을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비난 당하는 일은 면하기 위해 욕망과 인정 사이에서 간신히 균형 맞추며 살아간다. 이제 벨아미처럼 모든 것이 용서되는 시대도, 무시되는 시대도 아니다. 오늘의 선이 내일의 악이 될 여지도 얼마든지 있다. 돌이켜보면 온라인 세상에서 나는 얼마나 타인에게 이끌려가기 쉬운가, 나는 얼마나 쉽게 타인을 이해한다 하거나 판단하는가. 이왕이면 끌려가는 것 보다는 서로를 통해 하나로 모아지는 관계가 좋다. 하지만 나를 강조함으로서 타인을 간과하는 무심한 사람인 적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누군가에게 내 무관심을 사과하고, 더 많이 애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나를 반성하고, 앞으로의 나를 부탁하는 날이다. 내가 벨아미인 것도 당신이 벨아미인 것도 싫으니, 부디 서로 맞춰가자고 제안하는 날이다. 나는 판단이 필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이해와 위로 그리고 나를 인정하는 내가 되고 싶을 뿐이다. 어쩌면 벨아미도 그랬던 게 아닐까. 반대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상처받아 여자와 권모술수를 이용해서라도 왕의 자리에 한 번쯤 서서 호령하고 싶었을 뿐이지 않을까.

 

다 갖기 위해선 다 걸 수밖에 없는, 가진 것 없는 한 남자의 상류층 편입기. 모파상은 벨아미를 통해 당시 파리의 속은 텅 비었음에도 겉만 꾸며대는 상류사회의 구멍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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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3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4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3-1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겉치레는 공허해요. 한껏 가슴을 부풀리고 머리를 꼿꼿이 들고 있어도
무너져 있는 내면을 발견하게 되는건 시간 문제...살면서, 나이 들어가면서 내 모습이 그럴 때가 많아
좀 우울하기도 하죠....

누군가가가 사람들로 꽉찬 엘리베이터에 제가 타는 걸 보고 농담으로 '젊은 사람이 걸어가지~'하는데
울컥했잖아요..ㅋㅋㅋㅋ 저도 이제 4학년이거든요! 저도 무릎이 좀 시리거든요!
이렇게 말하고 또 우울했어요.ㅎㅎ

파리가 또 그리워 파리 관련된 책을 장바구니에 넣고 고민하고 있는 중이예요. 오늘 날씨는 정말 파리스럽네요~

아이리시스 2012-03-14 12:25   좋아요 0 | URL
이제 4학년ㅋㅋㅋ 다른 사람들이 현맘님만큼만 내면에 대해 고민하고 또 발견하고 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할 거예요. 정말로요^^ 사실은 이것저것 엄마로서, 일적으로도 욕심 많고 따뜻한 분이면서 항상 현맘님 모습에 대해 고민하시잖아요!! 부럽게..^^

한번씩 그런 날이 있죠! 저는 학교다닐 때 봄만 되면 떠나야한다는 생각에 거의 미쳐가지고;; 날씨 좋으면 진짜 미칠 것 같지 않아요? ^___________^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3-14 16:50   좋아요 0 | URL
ㅋㅋㅋ 여기 오늘 비와요!!!!
파리스러운 날씨는 흐리고 우중충한 날씬데...제가 파리 갔을 때 그랬거든요. 세번 다..어쩜.
그래서 제 기억 속 파리는 그래요.
예전엔 봄만 되면 좀 짜증도 나고 햇살 쨍쨍한거 싫고 그랬는데 나이 들었나봐요. 이젠 봄바람과 봄햇살이 좋은걸 보니까요. 심지어 꽃 피는걸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아이리시스 2012-03-15 20:33   좋아요 0 | URL
저도 겨울에 가서 파리는 늘 비내린 샹젤리제, 베르사유 이런 것들만 기억이 나는데 현맘님도 예전에 그랬다는 걸 들었;; 는데도 제가 기억력이 그지라서;; 혼자 헛소리를ㅋㅋㅋ

맞아요, 봄 좀 그래요. 괜히 바람도 들고 바람드는 만큼 뭘 할 수가 없고 뭘 해야할지를 모르니까 늘 신경도 좀 곤두서 있고 짜증도 났어요. 그때 어느 교수님은 미칠 만큼 몰두할 수 있는 걸 찾아서 밤 꼴딱 새면서 해보거나, 여행을 떠나라고 하셨어요!! 그때 땅끝마을까지 혼자 여행하고 싶었는데 그걸 할 용기가 안나더라고요. 그게 안되면 책이라도 미칠 만큼 읽으라고 했어요!! 여기서 미친다는 건 '과유불급'도 되는 거지요. 히히. 꽃. 좋죠! 꽃!

cyrus 2012-03-1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내용이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랑 비슷할거 같아요. 배경도 비슷하고 두 소설 다 사회 진출에 대한
욕망을 가진 두 젊은이가 나온 것도 같고요. 펭귄에서 나온 것도 있는데 집에 민음사 전집이 많아서 이걸로
먼저 읽어봐야겠어요. 나중에 이 책 구입할 때 이 글, 땡스투해야겠어요 ^^

아이리시스 2012-03-15 20:40   좋아요 0 | URL
모파상이랑 발자크를 함께 읽는 중이었는데 <벨아미> 읽고나니 힘이 떨어져서 <고리오 영감>은 초반에 막 넘기다 하숙집 사는 인물들 이름을 다 놓쳐버려서 던져버렸어요. 다시 찬찬히 읽어야 정리될 듯 해요. 오오, 이건 223번이라 시루스님 전집에 없는 거군요. 저는 얼마 전에 펭귄이 더 최근 번역본인데도 더 저렴하길래 이걸 샀어요! 사실 번역은 잘 모르니까요. 괜찮아야 할텐데 하며 사는 거죠ㅋㅋㅋ
 
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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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내게 어려웠다. <농담>을 잘 안 읽히면 농담으로 치부하고서라도 끝까지 읽어내겠다, 하는 오기로 시작하기 전에 나는 다른 두 작품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내가 만든 기회였다. 하나는 읽다 말았다를 반복했고 하나는 책장에 그저 꽂히기만 했다. 나는 체코에 무궁한 호기심이 있었다. 이 나라는 유럽에 있지만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전도연과 김주혁의 <프라하의 연인>을 나만 그 전작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데 그건 파리는 낭만적이고 아름답지만 프라하는 절망스럽고 슬퍼서다.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풍경에 나는 늘 울고 싶었다. 그런 우울이 뚝뚝 떨어지는 도시에서 난 작가라면, 나도 모르는 내가 원하는 것이 들어있지 않을까 해서 끊임없이 쿤데라 옆을 서성였는지도 모른다.

 

나름 각오를 다지고 있었는데 생각과 달리 잡는 순간부터 너무 잘 읽혀서 놀라웠다. 여자들은 군대 얘기를 싫어한다지만 내가 겪지 못할 일이라 그것도 너무 재밌다. 물론 수감생활도, 탄광생활도 루드빅에게는 비극이지만 내게는 활력. 그런데 이렇게 리뷰를 써도 될까. 이 놀랍고 경이롭기만한 위대한 농담을 나는 반의 반이나마 이해하긴 한 걸까. 쿤데라의 국가가 낯설고 이질적인 만큼 작품 속 인물과 배경도 마찬가지로 다가온다. 이름 달린 몇 명의 인물들로부터 각각 반추되는 루드빅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삶의 다양성에 얽힌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설명하게 한다. 그 와중에 쿤데라의 목소리가 종종 흘러나온다. 잘 읽히면서도 어렵다. 스탈린주의나 트로츠키주의 같은 용어에 얽힌 지식들을 나는 단편적으로 혹은 이데올로기적으로만 알고 있다. 처음에는 불안하게 시작했다. 지금은 그것들을 모르더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굵게 관통하는 이 작품의 줄기는 결국 한 인간의 정체성, 존재의 농담일텐데 그것을 체코의 공산화 시기의 혁명 이후로 배경을 맞추어 전개해나간다. 이데올로기, 사랑, 정체성, 이것들이 한 선으로 연결된다. 남자의 대학시절은 공산주의 운동으로 점철된 지식터에서 스탈린을 비판한 트로츠키 옹호자를 처치하려는 시대였다. 당시 체코는 막 공산주의화 되려 하고 있었다. 주인공 루드빅의 험난한 여정을 따라 이 소설은 진행된다. 한 사람의 우스갯 장난이 궁극적으로 이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지게 하는지.

 

학창시절, 모임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루드빅이 여자친구와의 장난스런 편지에 쓴 트로츠키 만세! 라는 글 하나 때문에 강제로 입대하게 된다. 그로인해 그가 꿈꿨던 모든 것과 가지고 있었던 생각, 사상, 친구, 지식들까지 모두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당해 부대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모든 것이 착오로 인한 것이며, 진실을 말하기만 하면 받아들여질 것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혹독하다. 한때의 잘못을 쉽사리 바꿀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으며, 바꿀 힘 같은 건 애초 자기에게 없었다는 것을 차차 알아간다. 그는 무언가를 희망했던 이들이 그것을 포기하거나 버려가는 과정의 3단계를 차례로 밟는다. 오랜시간 공을 들여 아주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나는 그 생각을 하기 싫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싫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나는 오늘날 자신들이 신봉하던 시대의 움직임에 의해 나처럼 거부당하고 떠밀려나간 사람들이 자기 운명을 떠벌이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 추방된 자라는 내 운명을 나 역시 영웅화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된 자만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내가 검정 표지 속에 보내지게 된 것이, 내가 용감했기 때문도 아니고, 투쟁을 했기 때문도 아니며, 내 생각과 다른 생각들에 대항하여 싸웠기 때문도 아니라는 것을 냉정하게 상기해야만 했다. 그렇다, 나의 전락에는 그 어떤 진짜 드라마도 선행하지 않았고, 나는 내 이야기의 주체라기보다는 차라리 대상에 가까웠으며, 그러므로 (괴로움, 깊은 슬픔, 실패 등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면) 내 이야기를 가지고 무언가 대단한 척 내세울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p.173)

 

그는 오해로 얼룩진 자신의 신념을 끊임없이 위협받는 동안 운명처럼 만났던 루치에와의 만남이 환상보다 한없이 처져버리자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이제 그에게는 원래의 것도, 돌아갈 곳도, 밝혀내야 할 것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는 옷을 입고 여자는 홀딱 벗은 채로 한 방에 있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의 섹스에 대한 환상은 올곧고 순결하여 새침하기까지 한 루치에의 옷을 단 한 번도 벗기지 못함으로서, 그녀에게 화를 내고 외면하고 윽박지르게 되면서 그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망과 싸우던 틈을 타, 루치에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림으로서 끝난다. 사랑하는 남녀에게 있어, 섹스의 농담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너무 솔직하면 떠나버리고, 너무 가리면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화를 유발하게 된다.

 

내가 딱 하나 경이롭다고 생각했던 <농담>의 구절은 이것이다. 쿤데라가 루드빅의 입을 빌려, 민속 예술의 전통이 이어질 수 있는 배경과 이데올로기에 대해 열변했던 부분. 이 단락이 대단하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체제라는 것을 이토록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대단해서다.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서.

 

예전의 농촌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다. 마을의 한 해 행사는 이런저런 의식들로 이어졌다. 민속 예술은 이러한 의식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낭만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들판의 농가 여인에게 영감이 찾아오면 그 입술에서 곧 샘물처럼 노래가 샘솟아 나온다고 상상했다. 그러나 민속 노래는 지적인 시와는 다르게 생겨난다. 시인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자기에게만 있는 유일한 어떤 것을 말하기 위하여 시를 쓴다. 그러나 민속 노래를 통해서 사람들은 남과 구별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섞이려고 한다. 그것은 종유석처럼 형성된다. 새로운 모티프, 새로운 변형들이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져 덮이면서 민속 노래가 형성되는 것이다. 노래하는 사람마다 새로 어떤 요소를 덧붙이는 가운데 그 노래는 대대로 전해 내려간다. 그러니까 이런 노래들을 지은 사람은 여러 명인데, 그들은 모두 자기가 한 공헌 뒤로 겸허하게 사라져버렸다. 그 어떤 민속 노래도 혼자서 존재하지는 못했다. 제각기 자기 기능이 있었다. (중략)

 

자본주의는 이러한 집단 생활을 파괴했다. 민속 예술은 그래서 자신의 기반, 존재 이유,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사람이 타인과 멀리 떨어져서 혼자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는 그것을 부활시키려 해보아야 아무 소용 없다. 그런데 사회주의는 사람들을 이런 고립된 삶의 올가미로부터 해방시켜 주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집단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동일한 공동의 이익으로 연대하여. 그들의 사적인 삶은 공적인 삶과 일체를 이룰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의식들로 하여 서로 결합될 것이다. (중략)

 

어느 곳에서든 민중의 예술은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제 이해하겠는가? (pp.202-203)

 

하지만 한 마디 농담으로 동무들에게 내쳐진 그는 자기를 사실상 망가뜨린 친구에게 복수심을 품고 그의 아내 헬레나에게 접근한다. 단지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를 점령한다면 친구에게 복수할 수 있다고만 생각해서다. 그에게 여자의 본질은 이런 것.

 

사실상 내가 한 여자에게서 좋아하는 것은 그녀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내게 다가오는 방식, <나에게> 그녀가 의미하는 그 무엇이다. 나는 한 여자를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의 등장 인물로서 사랑한다. 햄릿에게 엘시노어 성, 오필리아, 구체적 상황들의 전개, 자기 역할의 <텍스트>가 없다면 그는 대체 무엇이겠는가?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허하고 환상 같은 본질 외에 그에게 무엇이 더 남아 있겠는가? (p.232)

 

처음에 바란 것은 그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과 이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는 것뿐이었지만, 그것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서 복수를 실행에 옮기며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자기 행동을 타당화하려는 것에 불과한.

 

올곧고 투명하다. 그런데 그게 어떤 거죠? 있는 그대로 살고, 자기가 원하는 것, 욕망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러면 다 아닌가요. 사람들은 규범의 노예들이에요. 누가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말해 주면 그렇게 하려고 애쓸 뿐, 그것이 뭔지 자신들이 무엇인지 절대 알게 되지 못하죠. 대번에 그들은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과감히 자기 자신이고자 해야 해요. 헬레나, 결혼을 하셨다고 해도 저는 처음부터 당신이 마음에 들었고 당신을 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어떻게 다르게 할 수도 없고,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어요. (p.259)

 

돌고돌아 그는 인간이란 '욕망'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닿은 것이다. 농담으로 내뱉은 말을 책임지기 위해 원하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오며, 아무리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제자리에 닿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그는 정작 중요한 것들을 찾기 시작한다. 이대로라면 쿤데라의 말대로 옳은 것과 나쁜 것,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차이가 있기나 한 건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은 '본질'에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조차도. 하지만 그 이데올로기 또한 가장 억압받고 왜곡되고 엇나가기만 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 아니던가. 그가 그 한 마디에 이끌려 이 먼 곳까지 떠밀려 온 것처럼. 지금 헬레나를 통해 실현하려는 바로 그 복수처럼.

 

겉으로 사랑 이야기, 더 들어가 꼬여버린 인생에 대한 반추 같은 거지만 체코가 낯선 나라다보니, 배경과 체제 이해가 자동적으로 되지는 않는다. 간신히 이해해보지만 온전하지는 않을 테니까 지금의 체코 공화국이 되기까지의 과정 이해와 역사적 지식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다. 그것 없이도 <농담>은 충분히 유머와 풍자와 조롱 조의 소설로 읽히지만, 알면 더 많이 보일 것이다. 소설은 타인의 자료조사와 지식창출에 기댄 기본적으로는 아무리 사실적이라도 '픽션'이다. 그래서 소설은 이해를 도와주지만 소설적 이해는 결코 실제와 같지 않다. 공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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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社會主義 共和國, :Československá socialistická republika)은 체코슬로바키아1960년부터 벨벳 혁명 직후인 1990년초까지의 공식 국가 명칭이다.

 

1943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망명 정치가 에드바르트 베네시 (Edvard Beneš)는 소련의 외교 정책에 무조건 따르라는 스탈린의 요구에 응하여, 베네시 선언에 따라 백만여 명이 넘는 주데텐의 독일인을 "부자"로 치부하여 추방하고, 헝가리인들도 쫓아냈다. 베네시는 스탈린과 군사ㆍ경제 분야에서 "긴밀한 전후 협조"를 약속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를 향한 인민의 길"에 따라 대지주의 재산, 공장, 광산, 제강소, 은행을 몰수하여 국유화하였다. 베네시는 러시아의 하수인은 아니었으며, 그의 계획에서는 다른 동구권 국가의 몇몇 내정 개혁과 다른 점이 있었으나, 스탈린은 베네시가 재산 몰수를 실시했고, 여타 소비에트 블록 나라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자 세력이 강하다는 점에도 만족하여 그를 반대하지 않았다.

 

1945년 3월 베네시는 모스크바를 방문하였다. 소련 내무인민위원회의 질문 목록에 답변한 뒤 베네시는 주데텐에 사는 이백 만 여명의 독일인과 400,000명에서 600,000명 사이의 헝가리인을 국외로 퇴거시키고, 붉은 군대와 긴밀히 공조하는 강력한 군대를 육성한다는 계획으로 소련 정부를 기쁘게 하였다. 1945년 4월 세 개의 사회주의 정당이 지배하는 거국 연정인 제3공화국이 창설되었다. 공산당의 힘이 강했고(이들은 300석 가운데 114석을 점하였다) 베네시가 소련에 충성하였기 때문에 다른 동구권 국가와 달리 소련 정부는 체코슬로바키아에 블록 정치를 강제하거나 "믿을 만한" 간부를 최고위직에 앉히도록 요구하지 않았으며, 행정부과 입법부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예전대로 하던 구조를 계속 유지하였다. 그러나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1946년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고도 자신의 입지를 펼치지 않는데 처음으로 실망하였다. 이들은 지방 정부를 공산당이 장악한 새로이 구성된 위원회로 대체하여 기존의 행정 실권을 빼앗았으나, 군대내에 "부르주아"의 영향을 제거하거나 실업가와 대지주와 재산을 몰수하지는 못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어느 정도 독립적인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어 처음부터 소비에트 블록의 전형적인 정치ㆍ사회ㆍ경제 체제를 갖추지 못했으므로 소련 당국은 이를 문제시하게 되었다. "애국 전선" 바깥의 세력들은 정부에서 배제되었으나, 이들은 아직 건재하였다. 붉은 군대가 점령한 나라들과 달리, 체코슬로바키아에는 공산당이 이미 주도적인 역할을 주장할 수 있어서 소련의 군정 당국이 없었다.

 

소련 당국은 다가오는 1948년 선거에서 공산주의자가 승리하리란 기대를 잃어갔다. 1947년 5월에 크렘린의 어느 보고서에서는 서방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반동적 요소"가 강해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마셜 계획의 자금을 얻을 것을 잠시 고려하고, 그리하여 1947년 9월 시클라르스카 포렝바에서 코민포름이 여러 공산당을 비난하면서, 루돌프 슬란스키 (Rudolf Slánský) 는 국가 안보국(StB)이 당내 정적을 제거하고 반대자를 숙청하여 권력을 잡을 계획으로 프라하에 돌아왔다. 1948년 2월 초에 공산주의자인 내무 장관 바츨라프 노세크 (Václav Nosek) 는 국가 경찰대에 남은 비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하려 하는 월권 행위를 하였다. 소련의 발레리안 조린 (Valerian Zorin) 대사는 쿠데타를 준비하기 위하여 프라하에 도착하였으며, 비공산주의자가 장관직에 오르고 군대가 병영에서 출금 조치되자 정변을 일으켰다. 붉은 군대에 복무하는 조린 (Zorin) 과 함께 공산주의자 "행동 위원회"와 노동조합 민병대가 이내 조직되어 무장하고, 반공주의자를 숙청할 준비를 갖추었다. 베네시는 내전이 일어나고 소련이 간섭할 것을 두려워하여 1948년 2월 25일에 항복하고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이 장악한 정부를 인명하였으며, 그 지도자는 스탈린주의자인 클레멘트 고트발트 (Klement Gottwald) 로, 이틀 뒤에 총리직 취임에 선서하여 독재를 이끌었다. 유일하게 고위직에 있던 비공산주의자인 얀 마사리크 (Jan Masaryk) 는 2주 뒤에 시체로 발견되었다. 소련이 지원한 쿠데타는 대놓고 잔인하게 행동하자 서방 국가들은 이전의 어떤 사건보다도 충격을 받았으며, 일시적으로 전쟁 자세를 취하여, 미국 의회내에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마셜 계획에 반대하던 소수의 사람들조차 찬성으로 돌아섰다.

 

1948년 2월 쿠데타가 일어나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자들이 집권하자 체코슬로바키아는 새 헌법이 발효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Československá republika)이라는 인민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그 후 공산주의 체제의 안정을 위해 1960년 신헌법을 채택, 시행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사회주의의 최종적 승리"의 상징과 마찬가지로 1960년 7월 11일에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국호로 바꾸었으며 1990년 벨벳 혁명 때까지 유지되었다.

 

1969년 각각 동등한 지위를 갖는 체코 사회주의 공화국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두 구성공화국이으로 이루어진 연방제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이행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을 휩쓴 개혁, 개방 물결 속에 1989년 벨벳 혁명으로 다당제가 도입되고 공산정권이 붕괴되었고 1990년 4월 1일 공식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으로 변경하여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명칭은 사라졌다.

 

한편, 이후의 체코 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은 1992년, 각각 체코슬로바키아로 분리할 것을 결의하여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는 완전히 소멸하고 두 독립국인 체코 공화국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나누어졌다.

 

[출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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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공부.. 하지 말 걸 그랬어..( '') 하루에 한 문단씩 읽어야겠어..( '')

 

루드빅은 자신을 이렇게 불운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파벨 제마넥의 아내 헬레나를 굴복시켜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그녀를 정복했을 때 비로소 깨닫는다. 헬레나와 제마넥의 오래된 관계, 과거에 묶인 사이일 뿐 현재의 둘 사이는 애틋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음을. 한때 증오하는 그 남자의 모든 것인 여자였지만 이제 그에게 있어 아무 것도 아닌 존재. 그 여자를 정복함으로서 그에게 복수하려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과 이제는 그가 아니라 자신이야말로 바로 그 실수로 썼던 엽서 속 편지, '트로츠키 만세'라는 농담에 길들여져버렸음을. 그는 돌이킬 수 있을 것인가. 언젠가 자신의 욕망 앞에 끝내 꼬리 내리지 못한 채 흐느끼다 소리없이 안개처럼 떠나버렸던 루치에를 다시 만나게 된 지금이 바로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할 계기인가.

 

그가 헬레나를, 여자를 다루는 방식은 남녀의 차이를 관통하는 사유인 동시에, 쿤데라의 의식 속 여자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여자의 생각을 다루는 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나름의 규칙이 있는 법이다. 이성으로 여자를 설득하려 하거나, 아주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여자의 의견을 반박한다거나 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여자가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이미지(원칙이나 이상, 신념 같은 것)을 파악하고, 우리가 바라는 그녀의 행동과 그 이미지가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궤변을 동원하여)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이다. (p.259)

 

그는 친구 코스트카를 기다리며 루치에의 소식을 애타게 갈망한다. 코스트카에게 듣게 된 루치에의 비밀과 자기를 떠난 이후의 그녀의 삶에 대해 듣고는 한 사람이 가졌던 세월과 시간, 비밀에 대해 떠올리며 이제 그녀가 완전히 저를 떠났다는 것을 느낀다. 제마넥에게 복수하려 헬레나에게 접근했던 이유, 그 시작이 되려 굴욕적으로 자신을 사로잡는 걸 느끼며 루드빅은 괴로워한다.

 

내가 복수하고자 했던 나의 과거, 그러나 여기서 마주쳤는데도 마치 나를 알지도 못한다는 듯이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가 버린 나의 과거, 그 과거 전체가 나에게 보여준 것과 동일한 그런 차가운 무관심.

 

나는 굴욕과 수치로 숨이 막혀왔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은 마음, 혼자 있고 싶은 마음, 헬레나와 제마넥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그제와 어제와 오늘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을 다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마지막 흔적까지 모두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었다. (p.385)

 

그는 겨우 과거를, 이제 나에게 밖에는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못하는 과거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헬레나에게도 자신의 모든 꼼수와 계획적 언행을 털어놓는다. 승리의 문턱에서,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이전부터 루드빅은 과거를 원망하고, 과거를 향해 복수하려는 이 모든 계획들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쭉 외면해왔는지도 모른다. 멈추지 않은 채 질주함으로서 마지막에서 맞닥뜨린 건 결국 패배와 좌절 그리고 자기 바닥을 확인하는 일 뿐이었다. 그는 절망한다. 세상에 나서 제 바닥을 스스로 자초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보다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까.

 

마지막 챕터에서는 지금까지 있었던 15년 사이의 기나긴 일들보다 더 폭풍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루드빅은 야로슬라브의 연주 악단에 참여하여 여지껏 겪었던 일, 저질렀던 잘못, 존재와 영혼의 상관관계, 처음에는 고쳐볼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나중에는 잊기로 한 부질없는 것들을 하나하나 상기시키고 또 잊어간다. 역사 속에서 혹은 개인의 일생 안에서 생성되는 존재의 모든 말과 행동에서 어떤 인간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던져준 채로. 다른 말로는 책임.

 

나는 비로소 루드빅 아니면 코스트카의 입으로만 과거, 현재를 드러내는 신비의 여인 루치에가 궁금했다. 존재의 가벼움, 영혼의 무거움, 현실의 영면화 등 쿤데라가 늘 드러내왔던 작품세계가 여기 <농담>을 지나치지 못한다. 여전히 이해불가에 어렵고 난해하고 나 자신이 별 것 또는 별 것 아니게 느껴지게 하는 이 모든 힘. 이미 있어왔던 것과 새로 생겨날 것에 대한 조화의 힘. 존재와 영혼이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 루드빅의 아니, 쿤데라의 모든 농담이 존재한다. 쿤데라는 읽고나서도 여전히 어렵다. 빛을 비추는 곳마다 어둡다. 기교가 아닌데 기교처럼 느껴지는 문체가 암담하면서도 아름답다. 삶의 지혜를 찾고싶다. 오래된 것을 무시하지 않고 새 것을 받아들일 용기를 갖고 싶다. 함부로 농담을 건네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당신에게 건넬 새로운 농담을 찾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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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3-09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밀란 쿤데라 <불멸> 읽고 참 좋아서, 아는 사람들한테 선물할 때 늘 이 책을 고르고는 했었는데, 막상 그의 대표작이라는 <농담>은 읽어본 적이 없네요. 아..이 이야기가 이렇게 욕망이 가득한 이야기던가요. 내용으로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이 연상되네요..

아이리시스 2012-03-10 00:16   좋아요 0 | URL
제가 책장에 꽂아만 둔 게 <불멸> 이거든요. 이건 걱정을 전혀 안한 게, 괜찮다는 분을 많이 봐서(얼마전에 샤이닝님도, 오늘 맥거핀님도) 시간만 내면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두께는 이것보다 많이 두껍던데요. 당분간은 쿤데라랑 멀리할 듯.

오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들 좀 검색해봤는데 시작을 <지하로부터의 수기>로 하면 어떨까 했었는데 완전 신기하네요. 맥거핀님이 언급하시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3-1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 농담이네요. 근데 항상 느끼는거지만, 말은 정말 잘 골라서, 가려서 해야 해요.

요새 도서관에 펭귄클래식 시리즈가 아주 꽉 들어찼는데 손에 안 들어와요.
이 민음사 시리즈가 왠지 오래된 친구처럼 정겨워서 그런지 새로 나오는 고전들이 판형도 종이질도 느낌도 좋은데
왠지 이 시리즈만큼 친근해지지 않네요. 뭐 그렇다고 제가 민음사 시리즈를 사들이는 만큼 읽어대는 것도 아니예요.ㅋ


아이리시스 2012-03-14 12:29   좋아요 0 | URL
저는 구소련,독일 사정들 잘 몰라가지고;; 최대한 찾아보고 아는 척 하며 쓴 거예요!!
사상으로 사람을 구속하고 잡아가둔다는 게 시대착오적인 구석이 많은데, 예전에 우리 때도 그랬잖아요. 사상범들 잡혀오면 말로만이라도 전향해도 살려준다는 거, 그거 생각났어요^^

펭귄클래식이 누워서 들고 보기는 좋아요. 한때는 가벼운 책에 목말랐는데 전집 중엔 맘에 드는 게 없어요. 민음사랑 펭귄클래식도 크기는 다 어정쩡해서;; 그래도 민음사가 여전히 제일 친근해요!! 아직 못 읽은 게 많은데 자꾸 사들이고 있어요.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