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핀 언덕

                          -곽재구

 

내 나이
스물한 살이었을 때

강가의
나무에 앉아
나를 바라보던 새

수선화 핀
언덕을 넘어가자고

수선화 핀
언덕을 차마 넘어가자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5-10-19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들어 있네요. 스물 한 살. 수선화. 새. 나무. 강가. 언덕..

이누아 2005-10-19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부터 마음에 머무는 시예요. 스물 한 살로부터 꽤나 떨어져 있는 것 같은데, 저 새는 아직도 저와 함께 있네요. 바라보는 새..
 

벌레 먹힌 꽃나무에게

                                    -이성복

 

나도 너에게 해줄 말이 말이 있었다

발가락이 튀어나온 양말 한구석처럼

느낌도, 흐느낌도 없는 말이 있었다

 

아, 너도 나에게 해줄 말이 있었을 거다

양말 한구석 튀어나온 발가락처럼

느낌도, 흐느낌도 없는 말이 있었을 거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돌바람 2005-10-18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이성복 시인의 시 자락 붙잡고 저도 하루를 엽니다.

이누아 2005-10-18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시집 읽는 데 예전보다 가슴에 와 닿는 시들이 많네요. 저도 님의 연표로 아침을 여네요.

icaru 2005-10-1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나무가 나인가~내가 꽃나무인가~

이누아 2005-10-18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이상의 "꽃나무"가 생각나요.

달팽이 2005-10-1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하지 못한 그 말
하지만 끝내 말로 표현하지 못할 그 말
벽을 뚫고 들어가지 못해 튀어나온 못처럼
가슴에 걸리고 목에 걸리던 그 말
나 끝내 못하고 그대를 보내리라

이누아 2005-10-18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마음을 읽으셨군요.

비로그인 2005-10-19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도란도란, 여기에서들 정담을 나누고 계셨군요. 이성복 시인의 시도 멋있구, 달팽이님의 시도 아름답습니다. 근데 양말에서 주착없이 비죽 삐져나온 발가락을 보면 을매나 무안턴지 말에요. 특히 남의 집, 갔을 때..발가락 사이에 양말 밀어넣고 종종걸음으로 때운 후, 방석 속으로 후딱 발 집어넣구 말에요. 으흐..그때도 완전범죄형 ㅡ_ㅡ;;

이누아 2005-10-19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멍난 양말..아침엔 분명히 괜찮았는데 구멍이 났네...저도 그런 적 많아요.^^;;
 

오늘 아침 새소리

                                   -이성복

 

병이란 그리워할 줄

모르는 것

사람들은 그리워서

병이 나는 줄 알지 그러나

병은 참말로 어떻게

그리워할지를 모르는 것

 

오늘 아침 새소리

미닫이 문틈에 끼인 실밥 같고,

그대를 생각하는 내 이마는

여자들 풀섶에서 오줌 누고 떠난 자리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5-10-18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새 소리도 안들리더군요...

이누아 2005-10-18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은 좀 지났지만 이누아 새소리 안 들리세요? ^^

비로그인 2005-10-19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립니다, 포로로롱~
아침 새소리가 하루를 참 밝게 빛내주죠. 근데, 인간들 때문에 새들이 조류독감 바이러스를..제가 얼마나 새를 좋아하는데요.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낍니다..새가 무신 죄라고..

이누아 2005-10-19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잔하게 그리워하면 된다 싶은데...그리움이란 그런 단어다 싶은데...생각하면 들쑤셔놓은 풀섶같고...어떻게 그리워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나 봅니다. 새소리에 제 이마를 좀 씻었습니다. 복돌님, 새를 좋아하시는군요. 예전에 산에서 지낼 때 새벽에만 우는 새도 있었어요. 매일 들으면 새가 저한테만 살짝 무슨 이야기 해 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해요. 여기서는 새소리 잘 안 들려요. 이 얘기 하니 유승도의 "새에게"라는 시가 생각이 나네요.
 

모든 살아 있는 중생의 고통이

남김 없이 걷히게 하옵소서.

세상의 병든 중생을 위해

제가 의사, 약이 되게 하시옵고

또 저로 하여금 간호사가 되게 하소서.

모든 중생이 치유될 그날까지.

 

우주 공간처럼

위대한 대지처럼

한량없이 무수한 중생의 삶을

제가 언제나 뒷받침할 수 있게 하옵소서.

 

중생들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때까지

제가 또한 삶의 근원이 되게 하옵소서.

우주 공간 저 끝까지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중생들의 온갖 세계를 위하여.

                                                                                   -[티베트의 지혜], p. 364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5-10-11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 삶의 무게도 감당하지 못하고 비칠대기만 하는데..모든 중생을..아, 정말 그렇다면 모두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말 것 같아요!! .아, 근데 왜 지구를 들고 있는 헤라클레스가 떠오를까요..죄송합니다. 이누아님..

이누아 2005-10-1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구에서 달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어 아마도 지금의 우리에게 그런 일이 가능하듯이 저 불가능해 보이는 바램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실은 우리 안에 모든 존재와의 교감이 이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 강아지의 비명이 우리의 가슴을 찌르고, 호흡을 멈추게 하겠습니까? 왜 연민이 일겠습니까? 그래서 님은 강아지를 보고, 연민과 우울을 느끼셨을 때 능숙하게 그 강아지를 구하든지 아니면 평온한 죽음을 맞게 해 주고 싶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전혀 능숙하지 않고, 당황하고, 슬프고...마주 한 상황은 얼른 피하고 싶은 현실이 됩니다. 우리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해도 아무 꺼리낌이 없는 그런 상태가 되고 싶습니다. 가엾다고 여길 때 도와주고 싶은 겁니다. 그런 상태를 염원하는 것이 바로 저 기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두려워서 내가 그렇게 할께 라고 말하지 못해서 그렇지 누구나 가슴 속에 저런 서원이 자리잡고 있는 것 아닐까요? 배고픈 사람 보면 마음 아프고, 아픈 사람 보면 눈물 나고, 집 없는 사람 보면 따뜻한 방에서 그들을 보는 것이 민망하고...

님이 뭐라고 했다고 제게 이렇게 길게 댓글을 다는 건가요? 그나저나 헤라클레스 떠올렸다고 죄송할 것까지야...오히려 님의 연상 능력에 별 다섯!!

봉준이 2005-10-12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스님께서는 추워 떨면서 밤새 산속에서 상상보시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자와 제비에서처럼 실제 그 보시가 이루어졌다고 하더군요.
생각지 않은 것이 이루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행복해지길 원하고 원합니다.
이 순간 저는 행복합니다.
주제 넘었나요^^

이누아 2005-10-12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낙타! 누군지 몰랐잖아? 반말 써, 반말! 서재에 방금 갔다 왔다. 음~오전 열시에 서재에 들어올 시간이 있으면 안 되는데...^^ 저녁에 보자. 오늘은 산수몽, 수천수네. 책 좀 보고 갈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춤도 못 추고, 음치인 내게는 무척 재미있는 시다. 그래, 이 시대로 하면 어떨까?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아무도 듣지 않은 것처럼 춤추고 노래하기라...실제로 난 집에서 혼자 춤도 추고, 인상을 그려가며 노래도 한다. 돈이 필요하지도 않는데 일한다면 그 일은 얼마나 즐겁고, 보람된 일일까? 상처 받기 두려워서 웅크리고,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는 때, 가치 있게 여겨지는 일을 내일로 미루려고 할 때 꺼내보면 좋을 시다. 정말로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때이긴 하지만 어쨌든 난 오랜만에 노래를 하고 있다. ^^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5-09-17 0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9-15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09-15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는 춤추고 노래하는 일이 즐거운 일이 아니라 무겁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익숙치 않은 사람 앞에서 여전히 그렇지만 예전에 혼자 있을 때도 그런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남이 보면 춤이 아니라고 하지만 저 혼자 웃으면서 춤도 춥니다. 혼자서 즐기는 데도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이 시를 읽으니 정말 제게는 용기가 되고 힘이 됩니다.

그리고 속삭이신 분^^ 튼튼한 남성분들 몰아부치는 게 일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인 거 아직 모르시죠? 어쨌든 오늘 오후부터 명절에 일할 생각에 슬슬 겁이 납니다.

2005-09-15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09-1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분, 정말 다행입니다. 님 덕분에 저도 즐거움이 생겼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나 싶었는데, 다행입니다. 늦은 시간인데 잘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