膳友辭(선우사)

                   -백석

 

낡은 나조반에 흰 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아서

쓸쓸한 저녁을 먹는다.

 

흰 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아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 밑 해정한 모래 틈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 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 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 이슬 먹고 나이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어졌다.

착하디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 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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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8-25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 멋진 시 고마워요. 백석 시인은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라는 그의 싯구와도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누아 2006-08-25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취할 때, 텔레비전도 없는 작은 방에서 자취할 때, 밥을 먹으면 손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게 슬로우모션처럼 느껴졌어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구나, 밥을 씹는구나...그땐 외로움이란 단어가 내 안에 없어서 그게 외로워서 그런 건지 몰랐어요. 그때 이 시를 봤어요. 빙그레 웃었어요.

잉크냄새 2006-08-3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 지금 실천문학사의 <백석 전집>을 읽고 있는데, 생각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아요. 저도 이 시 읽고는 빙그레 웃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