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면서 이제 죽는구나 하는 순간 불안이 가시고 지난날의 일들이 눈앞을 스치며 시간 감각이 없어진다. 그리고 갑자기 가족과 친구가 생각나며 자기가 자기의 몸에서 빠져나와 밖에서 자기를 쳐다본다." 이 글은 복순이 언니님의 리뷰중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의 일부로서 전체 글중 "밖에서 자기를 쳐다본다"는 부분을 뺀 나머지에 대해 경험한 기억이 떠오른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친구와 둘이 머나먼 전남 광양제철소로 노가다를 하러간 때의 일이다. 당시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의 작업에 받은 돈은 2만원에 생명수당 3천원포함 2만 3천원의 일당으로 노동을 시작했다. 그 당시는 노동을 한다는 자체에, 경제적인 돈벌이를 한다는 자체에 즐거워하던때라 생명수당 3 천원에도 별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어느날, 안전장비도 없이 20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친구는 10미터 정도의 높이였는데 작업장소는 엘리베이터와 같은 커다란 통안으로 칠흙같이 어두운 그곳을 통해 50미터 지점까지 전선을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작업도중 휴식시간동안 잠시 쉬고 위치를 옮겨 다시 통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디디고 있던 발판이 닿지 않았다. 팔꿈치로 매달려 내려가다 마지막에는 손가락 힘으로 지탱하며 매달려 발판을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 사실 그때 가는 철골 두개로 만들어진 엉성한 발판은 허리 지점에 있었다 ) 손가락 힘이 빠져나갈수로 밀려드는 절망감, 그 순간 발 바로 아래에 발판이 있을것이란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고 순간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펴지며 몸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 발바닥에 느껴져야할 발판의 존재가 없음을 느낀 바로 그 순간, < 아~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머릿속을 스쳤고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내 몸은 공중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몸은 분명 떨어지는데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을 그때도 한것 같다. 살아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말로 표현하지 못할 아늑함이 느껴졌고 내 몸은 바람에 비상하는 깃털처럼 가벼이 상승하고 있었다. 공중으로 슬며시 올라갈수록 단편적인 기억의 잔상들이 수도없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문득 아래를 쳐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나를 부르는 친구의 외침에 흡입구 속으로 담배연기가 빨려들어가듯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지상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눈을 뜨니 친구 녀석이 나의 뺨을 치며 나를 부르고 있었고 난 떨어지는 도중 양손으로 전선가닥을 움켜쥐고 오른다리는 철골 한쪽에 걸린 채로 기절한 상태였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나를 돌아보려던 그 순간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나의 육신을 보았더라면 아마도 그것이 나의 육신과 영혼의 영원한 분리, 바로 죽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베르나르의 <타나토노트>의 영혼 여행을 읽은 것이 사건 이전인지 이후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영혼의 끈 하나로 여행을 하는 내용에 동감할지 않을수 없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면서도 순간 섬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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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2004-05-18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기적이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거짓의 사람들>에서 스캇 펙은 기적을 두고 '신의 은총'이라고 말하더군요. 알아채지 못해서 그렇지 인간은 항상 은총을 받고 사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앞에서 언급하신 책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 아닌가요?

잉크냄새 2004-05-19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의 은총"이라...그렇게 볼수도 있겠네요.
참, 책제목 수정했습니다. ^^

stella.K 2004-05-19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 줄 친 부분 참 리얼하게 느껴지네요. 전 아직 죽어보지 못했지만, 그래서 궁금하고. 그렇다고 함부로 죽을 수도 없고...

icaru 2004-05-19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로만 읽고 있어도 아찔하네요... 죽음 근처에 다가갔다가 돌아온 경험이 있는 사람의 삶은 그 경험 이전의 삶과는 그 모양새가 확실히 다를듯 합니다....그렇지 않나요??

미네르바 2004-05-19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경험은 삶을 더 풍요롭게, 더 사랑하게 만들지 않나 싶군요.
죽음이 두렵긴 해도, 죽음 후는 참 평화로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쩜, 우리는 매일 매일을 기적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네요.

잉크냄새 2004-05-20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 사건 이후로 고공공포증이 없어지더라고요.
그리고 내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