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조우에서 개최되는 기업 투자 설명회에 참석하였다. 원래 내가 참석할 자리는 아니었으나 사장님이 급한 사정이 생겨 대타로 참석하게 되었다. 장소는 항조우였으나 실질적인 주관은 안휘성 정부 주관이었다.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도착하니 아직 참석자는 몇 보이지 않았다. 기배정된 자리를 옮겨 제일 졸기 편한 위치로 이동하였다. 잠시후 정부관료인듯한 사람이 도착하였고 각 자리에 배정된 대표이사와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고 받으며 다가왔다. 대타 참석이니 내 명함도 아닌 사장님의 명함을 주며 명함을 건네 받았다. 흰 바탕에 빨간색 명칭이 다소 촌스럽단 생각이 들었는데 가만히 쳐다보니 어디서 많이 본듯한 표시이다. 붉은 낫에 붉은 망치, 중국 공산당 이라고 붉게, 선명히 찍힌 명함이었고 그의 직책은 당서기였다.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지만 공산당원이 차지하는 위치를 볼때 상당한 권력가라 할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도 70명 가량 참석한 대표이사중 한국인이 한명 있다는 것이 자신의 지역으로 기업을 유치하는데 나름 홍보거리라 생각했는지 연설을 할때마다 한국인을 언급하곤 했다. 또 하나의 악재는 어차피 잘 안들리는 중국어, 잠이나 자자 하고 옮긴 자리가 그의 뒷자리(자리 배정이 한국과 좀 다르다) 였다. 졸지도 못하고 당서기 사진의 뒷배경으로 사진만 무수하게 찍혔다. 설명회가 끝난후 오찬 자리에서도 그는 나름의 홍보거리인 가짜 사장에게 다가와 건배를 제의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겼다. 당서기가 인사하니 대표이사들이야 가만 있겠는가. 줄줄이 사탕으로 딸려 들어오는 사장들과 건배하느라 비싼 음식은 제대로 못먹고 쥬스로만 배를 채웠다. 아까워. 오찬이 끝난 후 "짜이찌엔"하고 악수를 하고 떠나려니 한국어로 헤어질때의 인사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어늘한 말투로 "안녕히 가세요"하고 말하는 그와 악수 대신 가벼운 목례를 하고 헤어졌다. 이데올로기로 인간을 규정하는 일 ( 한때 대한민국의 위대한 교육은 그들을 뿔 달린 악마로 인식시키지 않았던가), 얼마나 한심하고 어리석은 일인가 싶다. 

설명회가 개최된 장소는 시후 옆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오찬이 끝난후 통역으로 동행한 부장과 시후 호수를 걸었다. 일요일 새벽부터 항조우로 가는 것이 귀찮아 투덜거리던 나와 달리 그가 콧노래에 흥겨웠던 이유는 항조우에 깊이 남아 있는 추억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유학한 그가 대학 졸업후 중국 내륙 배낭여행을 할때 항조우에서 만난 여인과의 추억이다. 그들이 만난 장소가 시후 호수의 "똰챠오찬쉐(短桥残雪)"였다. <백사전>의 주인공인 빠이냥즈와 쉬씨엔이 갖은 고난 끝에 다시 상봉한 다리로 유명하며 눈이 내린후 잔설이 녹을때 마치 다리가 끊어진듯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도 그녀를 그 다리 입구에서 만났다고 한다. 저녁 일몰을 품고 자전거를 타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는 전설속의 여인을 보았고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 한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지만 당시만 해도 같이 할수 없는 그들의 운명을 안 여인이 "인은 있지만 연은 없다(有因但是没有缘分)"는 편지를 남기고 떠나갔다. 그는 약 두달을 그 헤어짐의 아쉬움으로 앓았다고 했다. 그 다리를 건너다 가슴이 좀 두근거리냐고 물으니 씨익 웃으며 그저 덤덤하단다. 그가 우연히 그녀와 마주치기를 빌었지만 다리를 다 건널때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그래도 추억은 오늘 하루 그를 아주 행복하게 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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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02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은 있지만 연은 없다" 는 말이 가슴에 박히네요. 영화 '호우시절'처럼 혹여나 그 인연들에게도 또 한번의 연이 올지 모를 일이지만은요...

읽으면서 그 영화가 떠올랐는데 다들 재미없다는 영화를 저는 잘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 다리 어디쯤 잉크냄새님만의 또 다른 멋진 로맨스도 기대해봅니다. 사람일은 모르니까요..^^

잉크냄새 2010-06-02 19:27   좋아요 0 | URL
그 다리 말고 시후 호수에 또 하나의 유명한 다리가 있습니다. 소동파가 만들었다고 하는 "쑤띠" 라는 다리입니다.
호수 한쪽을 관통하는 엄청나게 긴 다리이니까 오히려 그 다리가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겠죠.ㅎㅎ
이제는 늙어가니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이 열연한 그 뭐시기 다리가 문득 생각납니다.

털짱 2010-07-1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신문 기사에서 사진을 찾아 올리셔야지요!!!!

잉크냄새 2010-07-15 09:47   좋아요 0 | URL
안후이성 지역 신문이라도 찾아봐야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