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동행
- 김태정-
오년 뒤엔 뭐 하고 있을 거냐고 그가 물었다. 산동네 오르는 비탈길 껑충한 그의 그림자 달빛에 정처없는 듯, 바람 같은 생이 기약없이 떠도는 사이 여자가 시집이라도 가버리면 어쩌나, 그래서 오년 뒤 불쑥 아이 엄마라도 되어 있으면 어쩌나. 그 물음의 쓸쓸한 의도를 알아차려 문득 슬픈 나는 오년 뒤 서른다섯.
요꼬공장을 지나 낮은 지붕들이 휙휙 스쳐가고, 담배연기 자욱한 골목길을 돌아나오도록 나는 그의 그림자를 따라잡기에 숨이 찼다. 도바리치던 날들의 긴장이 그의 삶을 집중시켰고 그래서 더욱 팽팽해진 그의 걸음은 종종 나를 소외시켰지만, 쇳가루 서걱이는 그의 삶 속에서 나는 영원히 낯선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솜틀집, 담뱃가게, 달맞이꽃 핀 돌담, 달빛 아래 휘이청 기울어진 한세상을 돌아 다시 어깨를 마주하는 낮은 지붕들. 그를 숨겨주었다던 루핑지붕 두 칸짜리 절집은 좀체 찾을 수 없고, 오년뒤? 아마도 저기서 아이들 코를 닦아주고 있겠죠 뭐. 금이 간 유리창과 대못이 박혀 있는 미닫이의 어린이집을 지나치면 무심한 척 나는 말했지만, 그가 웃었을까. 그를 비껴간 대답이 어색하나마 그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을 뿐, 그때 나는 서투르고도 어수룩한 갓 서른이었으므로.
그후 그는 영판 떠돌이로 바람결 귀엣말 속에만 존재했고 오년 뒤, 아이 엄마도 되지 못하고 산동네 아이들의 기저귀도 갈아주지 못한 채 비탈길 오르는 내 발걸음이 숨차다. 그 솜틀집이며 담뱃가게 그리고 그 언덕길의 달맞이꽃. 지난날의 기억들이 발밑에서 먼지로 날아오르고 포클레인 소리가 자주 가슴을 갈아엎는다. 오년 뒤를 물어보던 그 폐허에서 그를 비껴간 대답처럼 그의 절망을 비껴간 나는 여전히 할 말이 없어 부끄럽고.
먼지바람 자욱한 비탈길을 내려오는데 문득 두려워졌다. 평지에 발을 딛는 순간 비탈 위의 기억들이 재가 되어버릴까봐. 때묻은 작업복과 해진 운동화, 문 닫힌 공장과 늦은 밤 미싱 소리, 낮은 골목길의 담배연기, 긴 축대 끝의 달맞이꽃, 그의 눈빛만큼 고단했던 시절들이 먼지로 날아오를까봐.
오년 뒤 무얼 하고 있을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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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강 이편도 아니고 강건너 저편도 아닌 강물에 몸을 맡기는 그 순간에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산다는 것은 때론 강건너 저편에 막연한 소망하나 드리워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년 뒤 무얼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