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 정현종 -

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어디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이 고생이구나

나를 떠나면
두루 하늘이고
사랑이고
자유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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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인간은 과거의 어느 한 트라우마에 고착되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신공장 이전후
한시간의 출퇴근 버스속에서 상념에 잠기다 보면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 머무르는 나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곤 한다. 이제는 잊혀진 기억이라 생각했는데, 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비 개인 저녁 나절의 국밥집, 그저 허기진 배를 뜨끈한 국물로 채웠다는 원초적인 포만감
만으로도 쉽사리 놓고 오던 우산같은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퇴근버스의 차창밖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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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9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9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털짱 2008-03-01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을 많이 그리워하던 살청님께서 가장 좋아하시겠군요.
살청님은 서재를 잠시 닫으신다고 하시던데.
다시 뵐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

잉크냄새 2008-03-03 13:25   좋아요 0 | URL
저도 다시 뵈어서 기쁘네요. 이제 자주 인사드리죠.

2008-03-02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03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8-03-06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초적인 포만감만으로 쉽사리 뭔가를 두고 나오던 저도 많이 공감요~

춤추는인생. 2008-03-0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박 나를 잊고 출근버스에 올랐다
어리둥절해진 몸은
차에서 내려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방문 밀치고 들어가 두리번두리번
챙겨가지 못한 나를 찾아보았다
화장실과 장롱 안까지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집안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몇 장의 팬티와 옷가지가
가방 가득 들어 있는 걸로 봐서 나는
그새 어디인가로 황급히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렇게 쉬고 싶어하던 나에게
잠시 미안한 생각이 앞섰지만
몸은 지각 출근을 서둘러야 했다
점심엔 짜장면을 먹다 남겼고
오후엔 잠이 몰려와 자울자울 졸았다
퇴근할 무렵 비가 내렸다
내가 없는 몸은 우산을 찾지 않았고
순대국밥집에 들러 소주를 들이켰다
서너 잔의 술에도 내가 없는 몸은
너무 가벼워서인지 무거워서인지
자꾸 균형을 잃었다 금연하면
건강해지고 장수할 수 있을 것 같은 몸은
마구 담배를 피워댔다 유리창엔 얼핏
비친 몸이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옆에 앉은 손님이 말을 건네 왔지만
내가 없었으므로 몸은 대꾸하지 않았다
우산 없이 젖은 귀가를 하려 했을 때
어딘가로 뛰쳐나간 내가 막막하게 그리웠다

페이퍼를 읽다보니 다시 생각났어요. 박성우의 <건망증>이.
덕분에 저도 고즈넉한 이밤에 가만가만 읇어보고가요.




잉크냄새 2008-03-1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오랫만이네요. 뭔가를 쉽사리 놓고 오시나봐요.ㅎㅎ

춤인생님 / 이 시 언젠가 저에게 선물하셨던 시인데, 다시 읽어도 맘에 와 닿네요. 어딘가로 뛰쳐나간 내가 막막하게 그리운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