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탕이 끓는 동안
-정철훈-
감자탕은 끓을 기미도 없는데
벌써 소주 한 병을 비워낸다
털어놓을 것이 있다며 오랜만에
감자탕집으로 불러낸 아내
이쯤에서 고백을 해야 하는데
나는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아직 견딜 만하다는 것인가
갑자기 하늘이 어둑해지더니
짜지직 허공을 찢는 보랏빛 줄번개
장대비는 쏟아지고 아내는
익으려면 멀었다며 잔을 뺏는다
감자와 돼지뼈가 삶아지는 동안
빗방울은 출입구 문턱을 넘어
무릎까지 튀어오르고
한 번은 아내를 한 번은 창 밖을 쳐다보며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사내
소주 한 병이 추가됐다
아스팔트는 빗물로 찰랑거리고
물은 흐르면서 세상을 비춘다
버스도 행인도 가로수도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흐느적거리고
소주 벌써 세 병째
이쯤에서 털어놔야 하는데
끝내 게워놓지 못한 나의 어둠
금이 간 나의 실체
번개에 천둥에 갈갈이 찟긴
허공 같은 것!
아내의 자리에 애인이나 친구를 불러내어도 좋을 듯 싶다. 세련된 인테리어로 장식된 위생을 담보하는 색감의 가게면 안되리라. 먼저 직사각형의 유리가 세 개 끼워지고 맨 아래는 합판으로 가려진 미닫이 문이어야 한다. 여닫을 때도 너무 매끄러우면 돼지뼈가 안 익는다. 가게 이름은 굵은 페인트로 가게 주인의 필체로 적혀 있어야 한다. 그 밑에 약간 작은 크기의 안주가 줄줄이 적혀 있으면 좋다. 인쇄체의 글씨면 돼지뼛속 골수가 안 빠진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감자탕 김을 빼려고 열어 놓은 문 사이로 튀어 들어오던 빗방울, 답답함에 걷어 올린 정강이에 스며들던 빗방울의 한기, 시를 읽는 내내 바지 가랑이가 젖을 듯 하여 자꾸 만지작거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