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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물 요정 비룡소 걸작선 23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지음, 위니 게일러 그림, 박민수 옮김 / 비룡소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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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먼저 리뷰를 쓰신 분처럼...

나 역시 25년쯤 전...사랑했던 이 동화를 지금 초등 1학년인 아이와 함께 읽고 있다...

어린시절......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의 작품으로 호첸플러츠 시리즈와 함께...이 '꼬마 마녀'와 이 '꼬마 물요정(작은 물요정)'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두 하나같이 사랑스럽고 재미있고 아름다운 동화들이라...어디선가(학교 도서관이나 친구네집)에서 빌려본 책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기억의 깊은 창고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다...

다시 읽으면서...깊이 가라앉았던 그 기억들을 건져내 다시 한번 보듬는 기분은....

내가 가슴 뛰며 읽었던 구절들을 내 이뿐 아이가 눈을 빛내며 읽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은...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꼬마 물 요정은 방앗간 저수지에 사는 물요정 부부에게 갓 태어난 물요정이 봄 여름 가을을 겪으며 소년으로 성장하는 (물요정들은 사람보다 훨씬 빨리 자란다네~) 과정을 잔잔하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가지고 엮어냈다...

소박하면서 전원적인 풍경을 배경으로...어린 물요정을 둘러싼 따뜻한 캐릭터들...그다지 극적인 구석도 없고....전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작가의 다른 유명한 작품 호첸플러츠와 비교하자면 호첸플러츠가 모든 면에서 좀 더 웃기고 좀 더 극적이고 좀 더 복잡한 플롯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물요정은 호첸플러츠보다 좀 더 부드럽고 잔잔하고 밋밋한 편이다....약간 더 어린 연령층(유아의 경우 엄마가 읽어준다면..)의 눈높이에 잘 맞을 듯...

(참고로 초등1학년 남자아이인 울 아이가 그 자리에서 -약40분- 다 읽었다. 밤 10시가 넘어서 가서 자라고 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다 보고 잔다고 우겼다....)

그런데 책을 읽던 아이가 물었다.

"물요정은 물고기와 친구인데 왜 물고기 알을 먹지요?"

"인간 소년들에게 선물받은 성냥이 물에 젖어서 불이 켜지지 않는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물요정 엄마는 어떻게 "물고기알 구이"와 같은 음식을 만들지요?"

음...작가는 왜 이러한 도덕적, 과학적 논리의 허점의 여지를 남겼을까???...프로이슬러 할아부지가 물요정 가족을 채식주의자로 그렸으면 해결되었을 텐데...왜 물고기알 구이니 개구리알 찜같은 엽기적인 음식을 요정들에게 먹였을까...잠시 생각해보다가....프로이슬러가 채식주의적 소설을 쓴다는건 역시...아니라고 본다.

그의 모든 동화에 나오는 "맛있는 음식"의 묘사들!!!

(어릴적 책을 읽으면서 호첸플러츠에 나오는 무슨 크림 과자랑...다시 나타난 호첸플러츠에 나오는 소시지와 양배추볶음을 먹고싶었던 기억이...20여년의 시간 저편으로부터 떠오른다....)

진정한 먹는 즐거움에 누구보다 정통하고 어린 독자들과 그걸 나누고 싶어하는 프로이슬러의 성격상...채식주의는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물요정의 삶이 너무나 아름답고 정답게 느껴져서...그들이 먹는 "개구리알 찜"같은 요리마저도 맛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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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발견 옥스퍼드 주니어 사이언스 1
찰스 테일러 외 지음, 김동광 옮김 / 비룡소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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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조리있는 설명과 엄선된 풍부한 사진들...어느 페이지를 펼쳐서 읽기 시작해도 빨려들어갈 듯 흥미와 매혹을 느낄만한 책이다.

주니어 과학서로 분류되어 있지만 각 분야를 꽤 깊이있게 (그러나 어렵지 않게!) 다루고 있기때문에 어른들이 교양서로 읽기에도 좋을 듯 하다.  하드커버 양장에 좋은 종이질, 아름다운 최고 수준의 화보(실사 사진과 그림들)는 coffee table book으로도 손색이 없다.

책의 구성을 보면 감각과 지각으로 부터 시작해서 주변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자연과 개념(빛, 소리, 생물 등)을 다루다가 차츰 차츰 추상적이고 어려운 개념들(힘, 에너지, 기계, 신체, 전기전자, 시간여행)로 나아가는 식이다.

과학 전 분야의 개론서로, 본격적으로 과학책을 읽고자 하는 모든 독자(어린이, 청소년, 성인)들에게 흥미를 돋우워줄 애피타이저와 같은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에게 선물로도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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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12-2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좋은 책이라 거금주고 샀는데 아이가 거들떠도 안봐서 속상해 하고 있어요..ㅜㅜ(제가 너무 일찍 산 탓도 있어요. ^^;; 초등 3학년이 보기에는 쪼끔 어렵더군요.)

이네파벨 2005-12-22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반갑습니다. 초등 3학년이면 좀 어려울것 같긴 하네요...어른 눈높이에도 적당하니까요.....하지만 아이들 크면 나중에 제 값을 할겁니다.^^
 
슈렉! 비룡소의 그림동화 64
윌리엄 스타이그 글 그림, 조은수 옮김 / 비룡소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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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감기에 걸려서 모처럼 양쪽에 끼고 책을 읽어주었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읽을 줄 아니 너희 혼자 읽으라고 떠밀어두었던 터라...동화책을 펼쳐든건 나로서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제..... 열이 펄펄 나면서 아프다고 흐느끼는 큰 애를 붙잡고 몇시간을 씨름한 나는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런데 다른 책 두 권 다음 이 책, 슈렉을 읽다가 첫 페이지도 넘기기 전에 나와 아이들은 발작적인 웃음에 빠져들었다. 침대위에서 셋이 데굴데굴 구르며 웃어댔다. 지금 맑은 정신으로 다시 보니 그 정도로 웃긴건 아니지만(그래도 상당히 웃기긴 웃기다.) 어제는 정말 이 책 한권 읽으면서 눈물이 날 만큼 웃어댔다.

난 사실 서점에서 이 책 표지만 보고는 영화가 인기를 끌어서 급조된 동화인줄 알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알고보니 이 책은 15년쯤 전에 쓰여진 것이고 영화가 그 뒤에 나온 것이다. 영화도 재미있지만 난 원작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림도 이야기도 모두 기발하고 훌륭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번역이었다.  맛깔스럽고 입에 착착 달라붙는 단어들과 리듬감. 원작을 보지 않았지만 어쨌든 번역된 문장의 완성도는 만족을 넘어서 감동 수준이었다.  어린이 책의 번역은 거의 창작에 가까운 작업이라고 들었다. 창작 자체도 고통스럽고 힘든 작업이지만 원문이라는 틀 안에서의 창작은 그 못지않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어려운 작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발을 묶고 달리는 이인삼각 경주처럼.....내가 번역을 하고 있기에(어린이책은 아니지만) 한줄한줄 노고와 정성이 눈에 더 잘 들어왔는지도 모르지만...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와서...굳이 작가의 철학이나 심층 의미를 분석할 마음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지만...아무튼...예쁜 것과 미운 것, 착한 것과 나쁜 것, 바른 것과 틀린 것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살짝 역전되기도 하는 그런 세상....그것이야말로 작가가 이 책을 통해서 어린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천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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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5-09-22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네파벨님이 번역 더 잘하실거라고 봐요. ^^

이네파벨 2005-09-22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무슨 말씀을...전 어린이책 번역은 젬병이예요. 좀 고학년용 과학서적을 번역한 일이 있는데 어투가 성인물같다고 출판사로부터 complain 받은 아픔이....

2005-11-09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계곡 비룡소의 그림동화 123
클로드 퐁티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비룡소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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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된 외국 동화를 보면 유난히 나무집이 많이 나온다. 나무 속에 여러 개의 방이 들어있고 다람쥐처럼 작은 동물들이 그 안에서 사는 그런 이야기(찔레꽃울타리) ...아니면 무시무시한 나무 집 안을 탐험한다든가... (번스타인 베어)

그런데 나는 사실......이런 류의 동화는 언제 봐도......좋다. 그 세밀함과 아기자기함이라니..

꼭 나무집이 아니더라도 가상의 집...가상의 동네...가상의 왕국을 만들어놓고 방의 벽지 색깔부터 정원의 조경까지 하나하나 골라가며 머릿속에 오직 나만의 공간을 건설해가던 기억....상상력 풍부한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두번 해보는 일이 아닐런지...거기에 재능과 훈련이 더해지면  그 공간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생기를 불어넣어 한 편의 동화로 완성하는 것일테고...

이 책의 작가도 주의깊고 꼼꼼하게 가상의 공간을 건설했다. 책의 앞 부분에 아기자기한 나무집의 내부와 기발한 지명으로 가득한 계곡의 지도가 제시되어 있다.

책의 내용은 계곡에 사는 다람쥐 비슷한 생물인 투임스 가족들이 사는 모습을 그린, 두 페이지를 넘지 않는 짧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들은 짤막하고...어찌 보면 이야기를 꺼내는가 싶은데 이미 끝나버리는 느낌도 든다. 도입부, 맛보기만 슬쩍 보여주고 휘릭 사라져버리는 듯한 느낌....

그.런.데. 그게 짜증스럽다거나 완성도가 떨어지는게 아니라....기묘한 "여백의 미"를 준다. 각 에피소드들은 참으로 생뚱맞고 기발한 소재들로 가득하다. 이야기를 소개하는 방식도, 끝내는 방식도, 이야기를 구성하는는 크고작은 내용들도....어딘가 묘.......하면서 새롭다. 군데..군데..초현실주의적인 느낌조차도 준다.

아이들(7세, 5세) 도 무척 좋아한다. 구성이나 그림이 어딘가 만화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그런 점에 특히 열광하는 것 같다. 일러스트레이션은 풍경을 그린 부분은 사실주의적인데 인물들의 표정이나 디테일은 만화같다. 그 묘한 부조화가 나에게는 약간의 감점대상인데 아이들은 인물이 무척 귀엽다고 야단이었다.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할만한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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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빛 초상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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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온걸 신문에서 보자마자 당.장. 주문했다. 아옌데의 전작을 읽은 독자 중 상당수가 그러하겠지만 나는 <운명의 딸>(이하 <딸>)과 <영혼의 집>(이하 <집>)을 연거푸 읽고 나서 이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기를 간절히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문한 책이 배달된 후에도 섣불리 책을 들지는 못했다. 분명 한번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놓을 수 없을 것이며 나의 모든 일상은 all-stop될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어제, 아니나 다를까 새벽 3시까지 읽고 잠깐 눈을 붙이고 나서 오늘 아침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기대했던 대로 이 책 역시 재미있었다. 아옌데를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대로 그녀는 정말이지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책값이나 시간이 아깝지 않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아옌데는 누구에게든 권하고픈 작가라는 전제하에 쓴소리를 풀어놓아보겠다.


이 책의 경우에도 “전작만한 속편 없다.”는 속설이 대체로 맞아떨어진다.

<딸>은 줄거리가 더욱 극적이고 주인공도 더욱 인상적이다. 특히 엘리사 소머즈는 내가 처음 접한 아옌데의 여주인공이었던 만큼 숨이 막힐 정도로 신선했고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딸>이 한 여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집>은 한 가족, 가문의 이야기이다. 그런 만큼 <집>은 여러 주인공, 여러 에피소드가 가져다주는 풍부하고 아기자기한 면이 있다. 또 칠레의 현대사의 유명한 정치적 사건이 드리운 광휘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저자의 이사벨 아옌데는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실각한 좌익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의 조카뻘 된다고 한다.) 계급간의 갈등과 같은 칠레 사회의 첨예한 문제점들 역시 이야기의 중심에 깊게 뿌리박고 있어 작품에 무게를 더한다.

<초상>은 <딸>과 <집> 사이에 놓인 다리와 같은 작품이다. 시간과 공간의 강을 건너 소머즈가와 델 바예가라는 두 가문을 혈연으로 맺어주고 있다. 애인을 찾아 남장을 하고 캘리포니아로 떠났던 엘리사 소머즈가 지혜롭고 선한 중국인 타오 치엔과 결혼해 낳은 딸이 역시 <딸>의 한 일화에 등장했던 파울리나 델 바예의 아들과 맺어져 주인공이자 화자인 아우로라가 태어난다. 아우로라의 양아버지이자 파울리나의 조카인 세베로 델 바예가 <집>의 클라라의 아버지가 된다. 파란만장한 운명의 딸이었던 엘리사 소머즈는 <초상>에서 그저 사려깊은 할머니로 뒷전에 물러서고 여장부 파울리나와 손녀딸 아우로라의 이야기가 주가 된다. <집>에서 꽤 깊게 다루었던 계급갈등과 같은 사회문제는 배경 소음 정도로 물러나고 (아니면 아우로라가 취미로 찍는 사진의 대상으로 축소되어 버렸다고도 할 수 있다.) 니베아 등을 통해 작가는 여성문제도 계속 끌고 들어오지만 역시 수박 겉?기 정도로 느껴진다.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할머니덕분에 안락한 삶에서 단 한 발짝도 밖으로 나올 여지가 없었던 아우로라는 그녀의 두 할머니나 또 <집>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에 비해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초라한 캐릭터이다. 탄생의 비밀과 첫 결혼의 상처를 양념으로 쳤지만 여전히 어딘가 싱겁다.


내 머릿속에서 아옌데와 함께 떠오르는 작가가 바로 에이미 탄이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지만 한 7-8년 전 내가 미국에 머물때 나름대로 주목받던 작가라 그녀의 책들을 접하게 되었고 한 눈에 반해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상대적으로 평범한 여성인 화자가 대륙과 문화를 넘나들며 파란만장한 삶을 개척해온 어머니(탄의 경우)나 할머니(아옌데의 경우)로부터 자신의 뿌리와 가문의 역사를 듣는다는 플롯이 무척 흡사하다. 섬세하고 여성적인 아기자기한 문체, 영미권 독자들에게는 덤으로 이국적 향취를 듬뿍 얹어준다는 점도......주인공 여성들이 삶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antagonist 격인 가부장적이거나 이기적인 남자들에게 희생될뻔 하다가 결국 사려깊고 부드럽고 지혜로운 남자를 만나 영원하고 완벽한 사랑을 얻는다는 내용까지도......


이러한 간혹 페미니즘 소설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알고보면 전형적인 “공주” 로망에 호소하는 이야기들이다. 아옌데나 위에 언급한 에이미 탄, 그리고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심지어 박경리의 <토지>까지도...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난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주인공이 파란만장한 역사를 배경으로 자의나 타의에 의해 인습이나 전통과 결별하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나가고 그 와중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다분히 순정만화적 설정을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통속성”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어떠랴? 공주 로망이든, 순정 만화든...뭐가 나쁘단 말인가?

사실이다. 그 자체로 작품을 혐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런데 아옌데의 소설은 (에이미 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세 권째 읽으니까 조금 질리는 면이 있다. 하나같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이나 그리스인 조르바의 친족들처럼 느껴지는 낙천적이고 열정적이고 무모하며 철부지같은 (그러면서도 행운으로 가득한) 주인공들이 영원한 어린시절의 뜨락과 같은 삶의 무대에서 펼쳐놓는 이야기들은....기묘하게 현실성을 비껴나가고 있다. 사랑은 결코 시들지 않는 꽃이고 몸과 영혼을 불살라 연인들을 맺어주는 성(性) 역시 믿을수 없는 광휘를 뿜어댄다. 또한 아옌데의 펜을 거치면 심지어 노화나 병이나 죽음이나 피범벅과 해골조차도 아름답고 정겹게 그려진다. 그야말로 할머니의 입으로 전해듣는 집안의 역사처럼 따뜻하고 나른하면서도 드라마틱하고 눈부시게 윤색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아옌데의 소설은 다 큰 어른 소녀들을 위한 “동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현실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시공간...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감성과 멘탈리티(심리체계) 까지도 조금쯤 다른....그런 이야기를 맛보고 싶다면 아옌데의 이야기들은 더할나위 없이 멋진 경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냉철한 이성과 논리와 현실성의 검열을 거쳐 진지한 공감을 추구하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짜증스러울 수도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덧붙이건대, 두 전작(딸과 집)은 동화적 한계, 약간의 과장과 비현실성 등등을 감안하더라도 별 다섯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수작들이다. <세피아빛 초상>도 나름대로 훌륭하지만 전작들에 비해 조금 힘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별 네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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