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A Lisbeth Salander Novel (Paperback)
스티그 라르손 지음 / Vintage Books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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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이 책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사들었다.
유럽에서는 해리 포터를 능가하는 신드롬을 일으킨 책이라고......

좌파 경향의 경제 전문 기자인 미카엘 브롬크비스트(Michael Bromkvist)가 두 기업의 비밀과 연루되어 모험을 벌이는 이야기다. 브롬크비스트라는 발음하기도 힘든 성(이름)은 스웨덴이 자랑하는 아동문학가 아스트린드 린드그렌에 대한 오마쥬일까? 이름때문에 미카엘은 칼레 브롬크비스트라는 별명으로 불리고(린드그렌의 유명한 동화 "소년 탐정 칼레") 그 이름이 암시하듯.......그는 저널리스트라는 본분에서 더 나아가 탐정일을 떠맡게 되어 범죄와 비밀을 파헤치게 된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는 어릴적 루팡, 홈즈, 미스마플과 포와로 시리즈를 졸업한 이래로 거의 완전히 관심을 꺼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주인공이 금융 및 기업세계의 비리를 파헤친다는 설정이 나의 관심을 자극했다. 재작년의 금융위기 이후로 금융이니 경제니 하는 주제들은 나의 관심 키워드의 목록에 항상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데 알고보니 금융/기업 드라마가 아니라 오히려 싸이코 스릴러, 시리얼 킬러물이었다!
.............으흐흐흐........그런줄 알았으면 솔직히 아예 읽기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ㅡ,.ㅡ

아가사 크리스티 이후로 추리소설을 읽지 않는데서 알 수 있듯, 나는 범죄소설, 스릴러 따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고 까지 할 수는 없더라도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서 읽고 싶지도 않다. 그냥.....워낙......나의 성정이......평화를 사랑하고 피튀기는 걸 싫어하기에...흠흠...

더구나 범죄인(?)이 성경 구절의 대목을 은유적, 상징적 암호로 사용하고 주인공이 그것을 해석하여 비밀을 풀어나가고 어쩌고....
이런 류의 설정도 솔직히 신물이 난다. 영화니 소설 여기저기에 너무 많이 등장해서.

더 이상의 디테일은 스포일러가 될 듯.

나는 원래 서평/독후감을 쓸 때 나만의 기록을 위해 읽은 책의 줄거리를 자세히 적는 편이지만.........
이런 추리소설(?)의 특성상 스포일링은 훗날 책을 읽으실 수도 있는 잠재적 독자들에게 예의가 아닌듯 하야...줄거리는 생략.

이렇듯, 내가 좋아하지 않는 쟝르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재미는 있다. 엄청.
 
처음에는 그냥 그랬다.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문체. 쏘 쿨~ 하고 드라이한 인물들. (이런것이 하드보일드 소설의 특징인가? 잘 모르겠다. 거의 읽어본게 없어서.)
 

그래도 은근 사람을 잡아끄는 줄거리의 흡인력에 책장은 잘 넘어간다. (스웨덴어를 영어로 번역한 책인데 영어도 무척 쉽다.) 처음 1/3 정도는 그냥 틈틈히 시간이 날 때마다 집어들고 조금씩 읽었기 때문에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러다가 책의 후반부에 이르면서........책의 광고에서 예언한 대로 밤잠을 줄여가며 읽게 되었다. (덕분에 지금 나의 컨디션은 말이 아니다.)

굉장히 재미있기는 한데..........이 책의 매력이 무엇인지는 지금도 정확히 꼬집어서 말하기가 어렵다. 

책을 중간쯤 읽을 무렵, 너무 재미있어서 저자와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대해 마구 관심이 증폭되었다. 

주인공인 Michael Blomkvist는 저자인 스티그 라르손의 문학속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의 비리를 폭로하는 좌파 경향의 잡지(책속에서는 Millenium, 라르손이 발간한 잡지는 EXPO)를 운영하는 기자로 극우파 기업가들에게 끊임없히 협박을 당하고 살해기도마저 겪었던 라르손은 실제로 미카엘과 마찬가지로 잡지의 공동발행인인 여자친구와 평생의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런데..라르손은 이 책을 포함 밀레니엄 시리즈 삼부작을 탈고한 다음 얼마 안있어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한다.  

50세의 나이에 권 당 7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처녀작 소설 세 권을 연달아 내놓고 그 소설이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는걸 채 보지도 못하고 꼴깍 죽어버리다니...............What a life!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힘인 듯.)
책에 나오는 지명을 구글어스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스웨덴이 2차대전 당시 어떤 정치/외교적 역학관계에 놓여있었는지........
정치적 무풍지대이고 한없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듯 한 이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최근까지도 신나치 운동이 기승을 부렸다는 생소한 사실도 접하게 되었다. (구글질을 하다보니 이케아의 창업주이자 CEO인 인물도 젊은시절 나치인지 신나치운동에 가담했었다고...ㅡ,.ㅡ)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성에 대하여 개방적인 북구인"이라는 스테레오타입도 거의 재확인된다. 
주인공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만나는 여자들과 우정과 섹스를 나누지만 사랑은 글쎄..............

또 다른 주인공인 Lisbeth Salander는 정신적으로 disabled 판정을 받을 정도로........자폐적인...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의심되는...천재적이지만 감정과 사회성이 미숙하기 이를데없는 여성이다.

또 다른 악의 축의 무리들........

그들은 아마도 저자가 평생 적으로 삼았던...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부정하게 돈을 모은 기업가, 정치적 우파, 신나치주의자(인종적 우월성과 타인종, 이민자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 일부 스웨덴인들), 타인을 존중할 줄 모르는 인간성이 심하게 훼손된 새디스트, 변태성욕자 등을 상징적으로 대표한다고 생각된다.

그들의 비리를 파헤치고 복수(?) 하는 방법이 불법적이었다는 점은 또 다른 생각거리를 주지만...........어쨌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리스베스의 복수방법은 통쾌하기 이를데없다.
(앞부분의 작은 일화에 지나지 않지만 리스베스가 자신의 후견인인 변호사에게 벌인 복수는 특히 마음에 든다.)

책의 마지막은 속편을 진하게 암시하고 있다. 리스베스의 개인적 비밀과 상처도 설명되지 않았고 그녀의 마음에 자라고 있는 미카엘에 대한 감정도 정리되지 않은채 책이 마무리되었다.

2권을 읽고싶은 욕구가 적지 않지만............당분간 쉬어야겠다.  

폐인모드에서 벗어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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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3
조지 엘리엇 지음, 한애경.이봉지 옮김 / 민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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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리뷰에 이어) 

톰이 힘들게 돈을 모으고 투자해서 가까스로 아버지의 빚을 갚던 날....
기쁨과 흥분에 취한 아버지 털리버씨는 물방앗간에 찾아온 필립 웨이컴과 싸움을 벌이고, 이성을 잃고 그를 마구 채찍으로 때려서 부상을 입히고 그 자신도 곧 쓰려져 삶을 마감한다. 

더 이상 물방앗간에서 살 수 없게 된 가족은, 톰은 하숙을 얻어 나가고, 엄마는 부자인 언니네 집에 들어가 가정부처럼 일하고, 매기는 집을 떠나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며 역시 고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 부분은 몇 년을 훌~쩍 뛰어넘어....

학교 근무를 마치고 잠시 쉴 생각으로 엄마가 살고 있는, 이모네 집을 방문해 머물게 된 매기.
이모는 병으로 죽은 상태였고, 그 이모부가 오빠 톰을 취직시키고 돌봐준 부자 이모부이고, 그들의 딸인 사촌 루시는 매기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착하고 예쁜..........이상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신붓감(금발에 푸른 눈에  흰 피부, 자그마한 체구, 여성스럽고 착하고 다정한 소녀)이었다. 

루시는 마침 세인트오그스에서 최고의 신랑감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아버지 회사의 사장인 게스트의 아들 스티븐 게스트의 구애를 받고 있었다. 부유하고, 좋은 교육을 받고, 멋지고 남자다운 외모를 갖춘 매력적인 남자 스티븐.  그런데 그는 보통 아가씨들과 달리 꾸밈 없는 태도와 지적인 열망을 가진, 거기에 가난과 불행을 후광처럼 두른 매기에게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한다. 미운오리새끼 같던 매기는 검은 눈에 검은 머리카락에 큰 키가 매혹적인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한 터였다. 

루시를 가운데 두고 스티븐과 매기는 그들만 알 수 있는 이끌림과 유혹의 신호를 주고받는다. ("그들은 각자 상대방의 존재를 숨 막힐 듯 거의 손끝까지 의식하였다.") 아니, 주고받는다고 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매기는 자신의 감정에 계속 저항했으니까. 하지만 매기 역시 스티븐에게 강하게 이끌렸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이성과 합리성이 결여된, 강렬한 본능적, 성적 이끌림이었다. 스티븐은 좋은 조건을 갖춘 멋진 남자지만 루시의 약혼자나 마찬가지였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이고 자기합리화에 능한, 저자의 시선으로나, 독자의 시선으로나, 매기의 시선으로나..........공감보다는 비난을 보내 마땅한 "나쁜 남자"임에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기는 그에게 이끌리는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잘라내지 못하고 감추지도 못했다...............................

한편 스티븐과 친구인 필립도 루시의 집을 방문하면서 넷이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단순한 루시와 달리 영민하고 예민한 필립은 스티븐의 강렬한 열정과 그에 저항하고자 하면서도 이끌리는 매기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괴로와한다. 
 

선의에서 필립과 매기를 맺어주고 싶었던 루시의 주도하에 필립이 자신의 아버지를 설득해 물방앗간을 내놓게 해서 톰이 다시 사들일 수 있게 되고, 필립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매기와의 결혼(웨이컴 입장에서는 자신을 채찍으로 때려죽이려던 자의 딸을 며느리로 맞는 일)을 허락을 받는다. 불구 아들에 대한 남다른 연민과 사랑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필립과 루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스티븐이 찾아와 매기와 둘 만 보트를 타게 되고, 그 보트가 내릴 곳을 지나치고 계속 떠내려가 둘은 사랑의 도피를 한 것과 같은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 추문을 그나마 최선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매기가 스티븐과 결혼하는 길 뿐이었지만, 매기는 사랑하는 사촌 루시, 어린 시절 마음을 주고받고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필립에 대한 마음 때문에 결국 스티븐을 거절하고 혼자서 세인트오그스로 돌아온다. 
 

사람들의 비난과 경멸을 한 몸에 받고 오빠인 톰에게 의절당한 매기. 불행하고 외롭고 치욕적인 삶이었지만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의리를 지켰던 루시와 필립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녀를 감싼다. 

그러던 와중에..........

플로스 강의 물이 불어나 몇십 몇백년 만의 큰 홍수가 나고, 매기는 혼자 배를 저어 물방앗간으로 찾아가 오빠를 구해내지만 곧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거대한 덩어리에 휩쓸려 두 남매는 꼭 껴안고 물에 빠져 삶을 마감한다.

죽기 직전, 오빠에게 용서받고 사랑을 확인한 채로....................................
그리고, 펴보지 못하고 죽은 젊은 남매의 묘비에는 "두 사람은 죽어서도 서로를 떠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새겨진다.
 

..................................................................................

*** 결말에 대하여 *** 


이 마지막 부분의 결론을 놓고, 또 매기가 천박한 스티븐의 유혹에 흔들리는 것을 놓고 많은 비평가들이 비난을 보냈다고 한다. 

그렇다.

플롯을, 꼬고 또 꼬고, 갈등 위에 새로운 갈등을 아슬아슬하게 쌓아놓은 후에 갑자기 불가항력의 힘에 의한 "죽음" 따위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은......................다분히 폭력적이고, 허망하고, 어쩌면....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신이 내려와 한방에 해결해버리는 그리스 드라마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법 이래로....너무나 상투적인 기법인지도 모른다. '지붕킥' PD가 시청자들을 우롱한 것과 너무도 비슷한...

상상력 풍부하고 지적이고 야생마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고 감성이 풍부하고 고집센 매기가 이 모든 자충우돌, 우여곡절을 겪고 그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작은아씨들>의 조나, <빨강머리 앤>의 앤이나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처럼 따스하고 평범한 결말을 맞았다면, 그런 책들처럼 어린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는 마음 흐뭇한 성장소설로 더 널리 자리잡지 않았을까......아니면 적어도 <제인에어>처럼...비참함과 고독 끝에나마 해피엔딩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면............하지만 이 책은 <폭풍의 언덕>의 비극적 미학과 궤를 같이한다. 

<폭풍의 언덕>강렬한 캐릭터, 비극적 플롯, 그리고 독특한 전원적 배경(히드가 만발한 바람부는 황무지)으로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듯 이 책도  역시 강렬한 캐릭터, 비극적 플롯, 그리고 역시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독특한 전원적 배경(플로스 강)으로 깊은 인상을 준다. 
 
작품 내내 강과 물의 이미지....홍수에 대한 어렴풋한 암시가 줄곧 되풀이된다. 세인트오그스라는 마을 자체가 절박한 모자(실은 성모마리아)를 위험을 무릅쓰고 배로 건네주어 성인의 반열에 오른 뱃사공 오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플로스강은 이 마을의 젓줄이자........털리버 일가, 매기와 톰 남매에게는 몸속을 흐르는 피 만큼이나 진하고 친밀하고 소중하고........또 운명적이고 치명적인 존재였다. 책의 말미 작품 분석에서 언급되었지만 물가에서 위험하게 뛰어노는 매기에게 "저 애는 언젠가 물에 빠져 죽을거야"라고 말하던 엄마의 불안, 마녀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물에 빠뜨려서 헤엄쳐 나오면 마녀이고 빠져죽으면 결백한 것으로 인정했다는 이야기에 "죽은 다음에 마녀가 아닌걸로 밝혀지면 무슨 소용이야?"라고 항변하던 매기..........

그 마녀 이야기는 너무나 슬픈 복선이다. 당시의 인습과 전통이 채 감당할 수 없는 성품을 지닌 매기....매기는 그녀가 속한 가정과 사회에서 마녀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자신의 선의와 결백을 증명하고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어주지 못한 가정과 사회(오빠인 톰!!!)과 화해하는 길은 결국 "죽음".......마녀처럼 물에 빠져 죽는 길밖에 없었던 것이다! 


*** 매기 그리고 조지 엘리엇*** 

이 책은 조지 엘리엇의 자전적 소설로 불린다. 매기의 성격과 어린시절 성장과정, 에피소드는 조지 엘리엇(메리 앤 에반스) 자신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으로 여겨진다. 

조지 엘리엇은 그 시대 인습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 엄청난 수준의 학식을 쌓고, 글을 쓰고, 돈을 벌고, 자유연애를 하고 유부남과 일생의 반려관계를 맺고 늙어서는 20년 연하의 남성과 다시 결혼하는.....오늘날 페미니스트의 시각으로 볼때 유쾌+통쾌+상쾌하기 그지없는 파격적인 삶을 산 멋~~~~진 여성이다.

그런 그녀가 자전적 소설의 주인공인 매기를 그토록 허무하게 죽인 것에 대해, 더구나 매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무가치한 남자(스티븐) 때문에 고통에 빠지고, 더더욱 매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사랑조차 주지 않은 친오빠 톰을 구하다가 톰에게 용서받으며 삶을 마감한 것에 대해, 페미니스트를 비롯 많은 비평가들이 불만을 표시한다고 한다. (오늘 서점에서 이 책의 원서를 들춰보다 Jane Smiley라는 작가가 쓴 Afterword에서 알게된 내용이다.)

그런데.........나는 엘리엇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가 별볼일 없는 가정환경, 갑갑하기 이를데 없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 따위를 던져버리고 스스로 솟구쳐 올라가 당대 최고의 문인(찰스 디킨즈에 비견되는) 자리에 오르고, 사랑 역시 성취했다고 하지만..........그녀가 던져버린 것, 거부한 것, 배신한 것, 또는 그녀를 저버리고 그녀에게 등을 돌린 것들에 대해.......아리고 아픈 회한과 그리움이 없었을까?
(실제로 엘리엇의 친오빠는 그녀가 유부남인 루이스와 동거에 들어가자 의절을 하고 몇십년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지냈다고 한다.)

그녀가 매기를 죽인 것........오빠인 톰과 부둥켜안은채 어린시절 친숙하게 뛰어놀던 강물에 빠져서 죽도록 한 것.........
그것은 엘리엇 그녀가 인습과 단절한 파격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것만큼, 하나의 존재가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음을 항변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 자신의 본성과 내면의 충동과 그것이 가족(사회)과 일으키는 갈등이 오직 죽음으로만 봉합할 수 있을만큼 크고도 강했음을 보여준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어쩌면 마음 한 구석에는.......죽음을 대가로 치루고라도 단절된 그 세계-가족-와 화해하고 싶은 소망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가족, 몰락, 그리고 남매***

 

이 세 단어를 테마로 하는, 나의 기억에 깊고 깊은 인상을 남긴 다른 두 작품이 있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유리동물원>
자크 반 도마엘 감독의 영화 <토토의 천국(Toto le Heros)>

이 책과 위의 두 작품은 모두 몰락한 가족, 가난의 비참함, helpless한 부모, 함께 손을 잡고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남매의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과 연민과 집착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리고 세 작품 모두 내가 기꺼이 완전한 별 다섯을 주고픈, 내 일생에서 만난 최.고.의. 작품들에 속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세 작품의 작가(감독) 모두 독자(관객)의 내밀한 슬픔을 후벼파는데 있어 천재적인 솜씨를 갖고 있다는 점도 역시 공통적이다.

<유리동물원>이나 <영웅 토토> 모두 각 작품에 대해서 얘기를 꺼낼라치면 한 바닥이 넘을 테니.......그냥 여기까지만.
 

*** 플라토닉, 에로스, 아가페 또는 정신 vs. 육체***

 뭔가를 유형화 하고 범주화 하는 것은 언제나 불완전함과 왜곡의 위험이 따르지만, 사랑의 종류를 굳이 따져서 범주화한 위의 분류는 때로는 유용하다. 

필립에 대한 매기의 사랑은 서로 닮은 정신세계에 반하고 존경하고 함께 나누는 플라토닉한 사랑과 가엾은 것, 사랑받지 못하고 불행한 것에 대한 아가페적 사랑이 섞인 것이었다. 매기 자신이 늘 사랑을 갈구하지만 가족으로부터(엄마와 오빠) 그것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또한 스스로가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아이라는 인식 속에서 커왔기 때문에 매기는 모든 여자가 외면할 곱사등이 필립을 거리낌없이 사랑한다. 

"그녀는 목이 비뚤어진 양들을 좋아했던 것이다. 튼튼하고 잘생긴 양들은 귀염을 받는데 그리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기에게 귀여움 받고 싶어하는 녀석들을 귀여워해주길 특히 좋아했다."

타고난 반골에 외톨이인만큼 인습을 거부하고 타인의 취향에 아랑곳 않는 면도, 또한 어린시절 여러 행동으로 미루어 본능적 감, 즉 직관과 EQ가 무척 떨어지고 대신 책벌레답게 책에 나오는 도덕적 원칙에 충실하게 사람을 대하는 면도 필립과 사귀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인간 관계에서 내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너무 잘 안다...............ㅡ,.ㅡ)

그런 필립과의 사랑에서 2% 부족했던 그것(아, 집안 원수의 아들이라는 점은 차치하고)........그것을 갖고 있는 자가 바로 스티븐이었다.정신세계도 인격도 그저그런 그였지만, 그는 아름답고 건장한 외모를 가진 그야말로 '멋진 수컷'이었다. 

남녀간의 사랑에.......이렇듯 머리와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것은 비극의 영원한 테마다. 꼬리를 물고 떠오른 다른 작품들....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곡>
목사가 고아가 된 장님 소녀를 데려다 돌보며 세상을 가르쳐주다가 서로 사랑하게 되었으나, 수술로 눈을 뜬 소녀는 자신이 상상 속에서 사랑한 대상이 늙은 목사가 아니라 그의 아들(젊음을 갖춘 "멋진 수컷")이었음을 깨닫는다.

로이드 웨버 또는 매킨토시의 <오페라의 유령> (소설 원작자 이름은 모름)
최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음미하고 창조해낼 수 있는 지고의 재능, 아름다운 정신세계를 가졌으나 괴물같은 외모의 팬텀. 크리스틴의 재능을 발견한 것도, 그녀에게 기회를 주고 이끌어준 것도, 그녀를 운명처럼 사랑한 것도 모두 팬텀이었으나...........추악한 외모때문에 그를 마음마저 비뚤어진 악당일 수밖에 없고........결국...........평범한 "멋진 수컷"에 지나지 않는 라울이 크리스틴의 사랑을 차지하게 된다. 

우리는 높고 아름답고 남다른 정신세계를 찬양하고 칭송하지만, 이성에 대한 끌림은 일차적으로 인간으로 진화되기 이전의 동물 상태에서 배선된 뇌의 지배를 받지 않던가... 

필립의 사랑은 가슴아프다.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의 사랑도 역시 가슴아프다.
신이 그들에게 육신의 조화를 빼앗는 대신 정신의 우월을 줄 때......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은 금단의 열매로 정했으리라. 그 금단의 열매를 맛본 죄로 평생 사무치는 슬픔이나 파멸을 치러야 했던 그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이것 역시 소설과 드라마의 영원한 테마이다. 어쩌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연적이 될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금기의 벽이 높기에 그나마 감춰지고 수그러들지만, 때로는 금기의 벽 때문에 이성과 도덕의 힘이 약한 자들에게는 더한 매력과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기도......
 

또 닮은 작품 찾기 놀이를 해보자면....... 

얼마전에 읽은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
'매기-스티븐-루시'의 삼각관계는 이 작품에 나오는 '엘렌-뉴랜드 아처-메이'의 삼각관계와 완.전.히. 닮았다. 거의 똑같다. 사교계의 사랑을 받는 좋은 집안의 착하고 아름다운 처녀(루시, 메이)가 좋은 조건을 갖춘 멋진 청년의 구애를 받고(약혼관계) 있는 와중에 불행의 후광을 드리운, 어릴때부터 수상쩍은 뒷말을 들어온 위험스럽고 치명적인 매력(Jane Smiley의 표현을 빌자면 'dark voluptuousness')를 가진 사촌이 방문하고.......그 멋장이 청년과 불행하고 매력적인 약혼자의 사촌이 눈이 맞는..........ㅡ,.ㅡ
두 작품 모두 남자는 빠져서 허우적대며 정신을 못차리고.......dark한 우뤼의 여주인공들은(매기, 엘렌) 그 남자의 사랑에 마음으로 굴복하지만 이성과 양심으로 이겨내고 그를 거부한다............
 

*** 유년기.......황금의 문 ***

 

조지 엘리엇의 문장은 탁월하다. 점점 사건이 꼬이고 갈등과 고통이 증폭되어가는 플롯도 훌륭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가 이 작품을 "가장 사랑하는 소설"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매기가 자신을 이해하지도, 받아주지도, 용서하지도 않는 몰인정한 오빠(단순하고 고집세고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답답한 캐릭터)에게 돌아가며 작품이 마무리된 것에 대해 불평을 말하지만, 이 소설이 어릴 적 읽은 후에 마음에 깊이 남았고, 지금 다시 읽고나서도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란.........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벗어던지고 싶은 굴레이고 속박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사랑하고, 걱정근심 없는 유년기의 황금의 뜨락에서 흠 없는 행복을 함께 나누던 존재.......

결국 매기가 가족(톰)에게로 돌아가고 자연(홍수)에 순응하는 결말은............ 나에겐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채 피어보지 못하고 죽은 두 남매가 어린 시절의 천국 속에서 고사리 손을 잡고 깔깔 웃으며 뛰어놀기를....마음 속으로 간절히 바래본다. 

슬픔은 살아있는 자들의 몫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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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2
조지 엘리엇 지음, 한애경.이봉지 옮김 / 민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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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매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매기, 내 사랑하는 매기야...

이 노래를 들으면 떠오르는 이야기.........

사실 이 노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책이지만 주인공 이름이 매기이고, 물방앗간이 배경이고, 유년시절의 추억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야기라...이 노래와 딱~ 연상의 고리가 연결되고 만다. 책을 읽는 며칠동안, 그리고 지금도 종종 고장난 레코드처럼 이 노래가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다........

어린 시절 축약본으로 읽고서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던 책....
기억의 바닥에 가라앉았다가 몇년 전, 고마운 분의 소개로 완역본이 나온 사실을 알게되었다.
(사실 저자는 물론 제목도 잊어버린채...가슴 먹먹한 스토리만 유령처럼 마음에 남아있던 터였다.)
그 후에도 바쁜 생활 속에서 이리저리 미루다가 최근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종교적이고 가부장적인 빅토리아시대애 파격적인 연애를 하고 남자의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한 조지 엘리엇. 이 책은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로 알려져있다.

조지 엘리엇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매기 털리버는 미운오리새끼와 같은 소녀였다.
금발에 푸른 눈, 흰 피부가 칭송받던 시절에 검은 머리, 검은 눈에 유난히 피부가 검은 외모때문에 그녀는 집시같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정이 많고 감성이 풍부하고, 영리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책을 무지 좋아하는 지적인 아이였지만.....그런 특성은 19세기 초 영국 시골의 중류가정 소녀에게는 별 장점이 못되었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격하고 충동적이고 사리분별을 잘 못하는 면이 두드려져....엄마와 외가 친척들에게 계속 혼나고 욕먹고 걱정듣는.....한마디로 말.썽.꾸.러.기.+ 천.덕.꾸.러.기 소녀였다.
예컨대 검고 자꾸 삐치는 곧은 머리카락에 대해 엄마가 잔소리하자 가위로 마구 잘라버리거나,
오빠가 사촌인 루시에게 잘해주자 샘이 나서 루시를 진흙탕에 밀어버리고....혼날 일이 두려워 집을 나가 집시에게 찾아간 사건이나...
매기가 오늘날의 중산층 가정에 태어났다면 부모는 병원 문고리 여러 번 잡았을 것이 분명하다. ㅡ,.ㅡ

그런 매기를 이해 못하는 고지식하고 꽉 막힌 엄마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하고 쩨쩨한 사회분위기를 대변하는 외가쪽 이모들)
정이 많고 다혈질인 아버지 (그리고 현실감각 없는 연애의 결과로 비참한 가난 속에 사는 아버지의 누이동생 모스 고모)  

외가의 피를 받아 현실적이고 고지식한.........어릴 때는 적당히 고집 세고, 장난꾸러기인 천상 남자애였고 나중엔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청년으로 자라나는 오빠 톰 털리버.
그들이 매기의 가족이었다.  

매기는 오빠 톰을 하늘처럼 따르고 사랑했다.
어릴 때부터.......매기는 무작정 오빠를 좋아하고, 톰은 정다운 여동생 매기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감당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측면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을 날려 매기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어쨌든.......따스한 유년기의 햇볕 속에서.....그들은 즐겁고 행복하고 다정한 오누이였다. 

그런데, 몇대 째 물려온 물방앗간 주인인 유복한 농부 털리버씨는 상류에 물을 끌어 쓴다거나 다리를 놓는다거나 하는 사람들과 소송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문제에 휘말려들어간다.  또한 그 와중에 상대편 변호사인 웨이컴에 대한 증오가 점점 커져갔다.

한편 산업혁명의 불씨가 조금씩 불붙기 시작하던 19세기 전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도록, 아들이 자기보다 나은, 그러나 실용적인 교육을 받기를 원했던 털리버씨는 친구의 잘못된 조언으로 라틴어니 유클리드 기하학이니 하는 귀족교육을 하는 목사에게 톰을 보내 공부 시킨다. 이런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학문에 눈꼽만큼의 흥미도 소질도 없는 톰은 그나마 기울어가는 가세에 비싼 돈을 축내며 스승인 목사의 집에서 몇 년의 세월을 낭비한다.

그런데 얄궃게도 그 곳에서 톰과 같이 공부한 소년이 바로 웨이컴의 아들이자 곱추인 필립 웨이컴이었다. 필립은 어릴적 엄마를 잃고 사고로 불구가 되었지만 라틴어와 기하학은 물론이고 미술, 음악 등에 능통하고 조예가 깊은.....영민하고...아름다운 정신세계를 가진 소년이었다.
오빠를 몇 번 방문한 매기는 필립과 이야기를 나누고 우정을 쌓게 되고.....
필립은 지적 갈망과 호기심을 공유하고, 한편으로 정이 넘치는 매기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몇 년의 세월이 흘르는 동안 거듭해서 소송에서 진 털리버씨는 마지막으로 큰 소송에서 패배하면서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빚을 지게 된다. 마침 그 물방앗간을 사들인 자가 하필 상대편 변호사였던 웨이컴이었고, 털리버씨는 원수의 밑에서 고용살이를 하면서 물방앗간 관리인 노릇을 하게 되었다. 

학업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온 톰은 사업가인 이모부 아래서 바닥부터 상업 일을 배워 돈을 벌기 시작한다. 라틴어니 기하학을 배울 때는 좌절감과 굴욕의 쓰나미 속에서 찌그러졌던 톰은 근면과 성실, 사업감각이 요구되는 현실 세계에선 믿음직하고 전도유망한 젊은이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고지식하고 단순한 톰은 열심히 돈을 벌어 빚을 값아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목적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갔고, 그런 그에게 조금씩 기회도 찾아왔다. 안으로는 산업혁명이, 밖으로는 해상무역이 발달하던 영국, 톰은 해외로 수출하는 상품에 조금씩 투자해서 돈을 불린다.

병든 아버지와 혼란에 빠진 어머니와 함께 물방앗간에서 지내는 매기는, 꿈도 많고 호기심도 많고, 삶에 대한 열정과 격정으로 늘 들끓어오르는 매기는 너무나도 불행한 삶 속에서...........모든 욕망과 희망을 버리고 평화를 찾는....구도자와도 같은 금욕적 철학을 따르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 우연히 필립 웨이컴을 다시 만나게 된다! 
금욕적 삶을 추구하는 매기에게 필립은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삶의 아름다움과 예술, 지적 탐구와 참된 행복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설득한다. 그녀에게 책을 빌려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의 초상을 그리는등.........둘만의 만남이 일년 넘게 지속되었다. 

톰이 가까스로 빚을 갚을 돈을 모아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려던 무렵에, 매기와 필립의 만남이 톰에게 발각된다. 여동생이 아버지를 불행에 몰아넣고 물방앗간을 가로챈 원수의 아들인 필립, 게다가 본능적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추한 곱사등이인 필립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 톰은 매기에게 절교를 강요하고, 마지막 순간 필립과 매기는 서로 사랑한다는 마음을 주고받는다. 
 

그 다음은 2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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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Food for Millionaires (Paperback)
이민진 지음 / Grand Central Publishing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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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민 1.5세대, 우리 세대의 한국 여성인 저자(이민진, Min Jin Lee)이 역시 그와 비슷한 background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쓴 소설이다.  

미국에 있을때 반즈앤노블의 서가에서 발견하고...한국 여성 작가가 쓴 소설이라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다. 

간단히 얘기하자면....뛰어난 두뇌와 매력적인 외모 및 성격을 타고났지만 한편으로 뉴욕의 퀸즈 한인타운 세탁소에서 일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여주인공 Casey Han이.......대학(프린스턴 대학, 경제학 전공을 장학금으로 다님) 문을 나선 이후 몇년 동안 자신의 삶의 방향을 찾아 방황하는 이야기이다. 

93년에 시작해서......그로부터 한 4-5년 되는 세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딱 내 세대의 이야기이다. 저자가 68년생인데 주인공이 자기보다 2살 어리다고 했으니....케이시는 70년생.....나보다 한 살 많다.)

호기롭게 제일 잘나가는 투자은행 딱 한곳에 지원했다 떨어져 취직도 못하고, 컬럼비아 로스쿨을 합격했지만 변호사라는 장래희망이 '글자그대로'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아 입학을 보류하고....졸지에 백수 상태가 된 여주인공은 그를 탐탁지 못해하는 아버지에게 싸가지없는 말로 대들다가 얼굴이 팅팅붓게 얻어맞고 의절당해 쫓겨난다. 그 후....대학내내 사귀었던 백인 남친 집에 갔더니 그가 원나잇스탠드로 만난 여자 둘이랑 그짓을 하고 있는걸 목격하고...

암튼 책의 첫머리에 트리플 악재를 겪고나서...
 

여주인공 케이시는 우연이 이끄는 대로 이런 저런 사람들과 사건들에 얽히게 된다.

어릴적 교회에서 알던 Ella Shim이라는 친구의 도움으로 그 집에서 기거하고...그녀의 약혼자의 도움으로 월가 투자은행의 보잘것없는 직책(sales assistant -일종의 비서 비슷한..)이나마 돈벌이를 하면서 시간을 죽이다가...월가 쪽에서 승부를 보려고 경영대학원(NYU Stern)에 진학한다. 그 후.....케이시가 학부 졸업하며 지원했다 떨어졌고, 그 후 sales assistant로 일했던 예의 그 투자은행...(소설에서는 Kearn Davis라는 가공의 이름으로 나온다. IB의 독보적 1위라는 설정이니...아마 모건 스탠리? 골드만 삭스? 암튼 학교이름은 다 진짜로 나오는데 회사이름은 가공이어서 처음에 쫌 이상하게 느껴졌다......하지만...하긴 학교는 어느정도 공적인거고 회사는 사적인 거니까 그럴만 하구나...싶었다.) 에 summer intern 으로 들어가 죽자고 일하며...그 세계의 쓴맛 단맛을 보아가다가...결국 나름대로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된다. 

또 한편으로...늘 돈에 고픈, 돈이 모자라 쩔쩔매는 케이시는 대학시절부터 주말이면 럭셔리 백화점의 모자코너에서 판매원으로 알바를 뛰어왔는데...이 백화점을 소유한 한국인 중년 여성인 Sabine가 내내 케이시의 멘터 내지는 후원자를 자청한다. (하지만 케이시는 그녀의 도움도 궁극적으로는 거절한다.) 

케이시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이민자의 딸로서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월스트리트라는 돈과 신분상승의 가장 치열한 전쟁터, 도덕과 아름다움의 불모지대에 뛰어들었지만 그녀가 진짜로 지향하는건..............그 너머의 세계..."미"와 "스타일" 그리고 "여유"와 "개성"과 같은....진정한 상류사회의 "열매"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상징이 바로 "모자"이다. 케이시는 주말에 알바로 모자 판매원으로 일할뿐 아니라 FIT에서 야간으로 모자만들기(millinery)를 배운다.

그게 케이시의 커리어에 관한 측면이라면...

그녀의 연애사는...

대학시절 애인이었던 Jay...엘라의 사촌이자 한국 교포인 Unu...그밖에 스쳐지나가는 남자 Hugh...등이 그녀의 인생에 얽힌다. 섹스도 양념으로 간간하게 등장한다. 

그 외에...케이시의 친구인 엘라와 남편인 Ted Kim의 이야기...케이시의 부모...(특히 케이시 엄마의 어처구니없는 affair...ㅡ,.ㅡ 케이시의 부모는 아주 쪼끔 공감가고 안쓰럽지만 대략 답답하고 짜증나는 캐릭터들이다.) 케이시의 여동생 Tina의 결혼 이야기...등등이 곁다리로 엮어진다.
 
뭐 이렇게 적어놓은 줄거리만을 봐서는 별로 구미에 당길거 같지 않은데..........

막상 책을 읽어...........결말을 보면...더 화가날 지도 모른다.

(이건 열린 결말도 아니고 엉뚱한 반전도 아니고........한마디로 김새는 결말.)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재미 있다는 점.
저자가 정말이지 글.재.주.가 있다. 그야말로 문장이 흡입력이 있다.
대화와 인물 성격 묘사도 탁월하고...
군데군데 탁월하다는 생각이 드는 표현들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에 대한 비평을 보면...

NYT Book Review에서도...19세기 소설을 연상시킨다고 했고...

또 다른 서평에서는 Thackeray의 'Vanity Fair'의 메아리...라고 했다.

그러니까...첨예한 계급과 돈 문제를 배경으로 똑똑하고 매력적인 여주인공이 로맨스와 야망을 펼쳐나가는 줄거리...사실주의적인 묘사....그런 면에서 그런 소설들과 닮았다는게 아닌지....

나는 쌔커리의 베니티 페어를 책으로는 안읽어봤고 리즈 위더스푼이 나오는 영화로만 봤는데...(아무리 생각해도 위더스푼은 그 역에는 어울리지 않는듯. 귀여운 부잣집 공주님 스탈이지...팜므파탈적 미모와 지략으로 신분을 뛰어넘어 야망을 실현해나가는 여쥔공 역에는 영.....누가 어울릴까...마구 상상해보니...나탈리 포트만?...나름 고전적이고 완벽한 미모에...탁 봐도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똑똑함마저...헝그리 정신도 잘 표현해낼만한 강렬한 인상이고..) 그 책의 여주인공이나 이 책의 케이시나...자신의 능력으로, 때로는 매력을 이용해서....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배경을 뛰쳐나와 신분상승을 시도하지만...궁극적으로 그녀들이 돈(또는 부자들)을 정복한게 아니라 돈(또는 부자들)이 그녀들을 정복하고 남용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그런 의미에서 free food가 바로 Casey???)

한편으로 ....

케이시와 엘라의 대조적인 성격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과 멜라니가 떠오르기도 했고...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비, 패션, 섹스에 대한 욕망의 묘사는...'섹스 인 더 시티'가 떠오르기도 했고...

빈털털이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이쁜 옷을 보면 질러버리고...친구들과 만나도 호기롭게 쏘지 않고 못견디는 케이시의 모습은...The Confession of the Shopperholic을 연상시켰다....ㅡ,.ㅡ

또한 케이시 주변의 대조적인 두 부류의 엘리트들....(돈과 계급에 대한 욕망이 끝이 없는 Ted Kim 비롯 월스트릿의 investment bankers vs. 돈도 있고 엘리트 교육을 받았으나 기본적으로 섬세하고 이상주의적인 Ella Shim, David Greene, Unu Shim 등)은...예전에 David Brooks가 Bobos in the Paradise에서 묘사한 두 부류의 엘리트들...Predator vs Nurturer의 구분을 재확인시켜주는 느낌이었다. 
 

한편....그리는 주제나 소재는 확연히 다르지만...아시아계 이민자인 저자가 그가 속한 사회와 삶을 그려냈다는 점에서....에이미 탄의 소설들이 떠올랐다. 독자들의 요구라는 면에 있어서도 역시 에이미 탄의 소설들과 비슷한 niche를 점할 듯 하고....살짝 현실보다 윤색해서 그려낸 주인공과 그들의 삶...(larger than life 가 아니라 prettier than life?)...우아하고 아름다운 문체...등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Min Jin Lee의 문체가 좀 더 다이내믹하고 현대적이고 재치넘치는 면이 있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이 연상시키는 또 다른 책은...예전에 신문에 연재되었던 덕분에!!! 읽어본....정이현의 '나의 달콤한 도시'이다.  온갖 유혹과 좌절이 듥끓는 대도시에서...젊은 여성이 겪어나가는 모험....다양하고 방종한 연애담....적당히 달꼼쌉싸름하고...적당히 fancy하면서...적당히 고뇌가 묻어있고...적당히 가볍고 또 적당히 무거운....그런 면에서....

(책 한 권을 읽거나, 영화 한 편을 보면 과거의 오만가지 책과 영화가 떠오르는 나의 버릇)
  

사실 어떤 진중한 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문학적 완성도 높은 플롯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의 배경이...가난한 이민 가정이라는 고뇌를 포함하고 있고....저자 이력이 월스트릿이나 아이비 리그를 배경으로 그려낼만한 credential을 갖추고 있다는 점(저자는 예일대와 조지타운 로스쿨을 졸업한후 변호사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이 아니면 가볍고 감각적인 Chick lit과 구분하기 어렵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고...결론적으로...이 책이 별로다...........라는건 아니다.

데뷔작으로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둔 이민진은 분명히 재능있는 작가라고 생각되고...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미있고 흡인력있는 책이다.
그녀의 후속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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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1-03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긴 책을 원서로 다 읽으셨네요 와~
저는 번역본으로 읽었는데도 이상하게 별 재미를 못 느껴 간신히 읽었거든요.
케이시와 엘라를 대조적으로 그린 것도 너무 식상하고 그랬었는데...
전 책보다 이네파벨님 리뷰 읽는게 훨씬 더 재미있네요 ^^
그런데 이 책 나온지 꽤 되었는데 아직 후속작은 나오지 않은거죠?

이네파벨 2010-01-03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이 책은 거의 1년 전, 미국에 있을때 읽은거구요. 서평도 그때 다른 곳에 쓴 것을 옮겨놓은 거예요. ^^

아무래도 미국에 있을 때는 또 이런(미국 내의 한국인 내지는 Asian의 삶) 책이 관심을 끌게 되더라구요. 12년 전에도 혼자 미국에서 1년반 나가있었는데...그때는 에이미 탄 소설들을 재미나게 읽었더랬죠...

이 책은 플롯이나 구성보다 문장의 맛이 장점인 소설이라...원서로 읽어서 더 나았는지도 모르겠어요^^ 구성은 좀 허술......하죠?

ddd 2011-07-25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저랑 느끼는 점이 정말 비슷하시네요 ㅋㅋ

전 좀 케이시 연애사에 치중해 봐서인지 free food가 꼭 휴 같은 사회의 백인 위너들에게 자동적으로(?) 매혹되고 주위를 맴돌게되는 (여자포함)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ㅎㅎ
휴한테 케이시가 비슷한 말을 했었던것 같은데..
흠 제가 2년전에 딱 케이시 나이일때 읽었는데.. 막상 그때 상황이 케이시랑 너무 비슷해서 좀 우울했어요ㅠㅜ(연애사 빼고) 사빈 캐릭터랑 완전 비슷한 교수님과의 문제로 좀 혼란스러웠거든요. 저도 결국 케이시 같은 선택을 하고난 직후라 위로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말씀대로 플롯은 너무 전형적이기까지 하지만, 특히 레아 부분의 date rape 꼭 있어야 했을지.. 하지만 케이시의 방황과 고민,선택에서의 갈등이 전 너무 와닿고 제게 위로가 되었답니다. 가은상황이지만 저는 케이시같은 대범함이 없어서 맨날 비교와 자책을 달고 살았거든요.

리뷰 잘 읽었어요 ㅎㅎ
 
Wicked: The Life and Times of the Wicked Witch of the West (Mass Market Paperback) Wicked Years Series 1
그레고리 매과이어 지음 / Harper Collins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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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뉴욕 여행 때 브로드웨이의 최근 몇년 최고 인기작인 <위키드> 공연을 보려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보지 못하고 아쉬움을 달래려고 책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뮤지컬 버전이 과연 원작만큼 훌륭할까...싶을만큼 즐겁고 멋진 독서 체험이 되었다. 

이 소설은 L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의 전편(prequel)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캔자스에서 돌퐁을 타고 날아온 도로시가 우연히 사악한 동쪽 마녀를 깔아뭉개 죽이고 착한 북쪽 마녀 글린다의 조언으로 에메랄드시티의 지배자 마법사 오즈를 찾아가 집에 돌아가게 해주는 조건으로 서쪽 마녀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아 모험을 떠나는게 오즈 이야기이다. (L 프랭크 바움은 이 Wizard of Oz말고도 오즈 시리즈를 열댓권을 썼다.) Wicked는 그 막강하고 무시무시한 서쪽 마녀(Wicked Witch of the West)인 엘파바의 일생을 그린 팬터지이다.  

신앙싱 깊은 목사 프렉스와 먼치킨랜드의 지배자 Thropp가문의 후계자인 멜리나 사이에서 태어난, 피부가 온통 녹색인 아기 엘파바(Elphaba는 오즈의 작가 L Frank Baum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종교에 미친 아버지와 모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위기의 주부 어머니에게 거의 기대할 것이 없는 환경 속에서 엘파바는 그나마 상식적인 유모의 보살핌으로 가까스로 자라나게 된다.

성년이 된 엘파바는 대학도시 Shiz에 와서 공부하게 된다. 이곳에서도 친구들의 따돌림, 남과 다름에 대한 아픈 자각은 계속되지만.......훌륭한 스승을 만나 학문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친구들과 연구와 토론에 매진하며 빛나는 청춘의 나날을 보낸다.  

한편 스승이자 멘터인 천재적 과학자 딜라먼드와의 만남과 그의 죽음은 엘파바 필생의 테마였던 Animal의 권리 보호 운동으로 이어진다.

animal과 구분되는 Animal은 동물이되 의식과 언어를 갖고 있는 동물을 말한다. 딜라먼드 박사는 goat가 아닌 Goat, 그러니까 말을 하고 생각을 하는 염소이다. 오즈 나라에서는 애초에 바움이 제시한 먼치킨, 질리킨, 빈쿠스, 쿼들링 네 종족  외에 이렇듯 말하는 동물, Aminal이 한데 섞여 살아간다.  딜라먼드 박사처럼 Animal들은 인간 사회에 섞여서 사회생활과 자아실현을 하며 살아왔으나 기구를 타고 날아온 마법사 오즈가 권력을 쥔 후, 이 Animal에게 박해를 가하기 시작한다. 마치 미국 남북전쟁 직후의 흑인에 대한 segregation이나 나치의 유대인 핍박처럼... 

이처럼 옥죄어오는 정치적 환경 속에서 탁월한 생물학자인 딜라먼드 박사는 "의식"의 본질 내지는 뿌리를 규명해내는........그리하여 Animal에 대한 차별을 무력화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될 수 있는 이론을 완성해나가고.....(머과이어가 과학과 철학계의 첨예한 궁극의 논쟁거리이자 나의 개인적 관심사인 "의식" 문제를 가볍게나마 끌어들인 것은.........ㅎㅎㅎ 나에게는 마치 개인적 호소처럼 여겨졌다.) 우뤼의 엘파바가 조수로서 실험을 돕고 자료를 찾고 친구들의 협조를 조직해낸다.....아...아름다운 날들이여.......한편 글린다, 보크 등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도 이 부분에서 각기 개성있는 엘파바의 학창시절 친구들로 등장한다.

그러나 오즈의 사주를 받은 교장 모러블 부인에 의해 딜라먼드가 죽게 되고 그 사건은 엘파바를 반체제 운동가이자 궁극적으로 "마녀"로 이끄는 자연스러운 인과관계의 방아쇠가 된다. 

무대는 쉬즈를 떠나 에머랄드 시티로 옮겨지고........반정부 지하 운동가로 활동하던 엘파바는 우연히 다시 만난 빈쿠스의 왕자 파이예로와 운명적인 사랑을 나눈다. 이것은 황량한 엘파바의 일생 중 짧은 불꽃처럼 강렬하게 타오르고 금새 스러져간 "여자로서의 삶"이었다.  

모리블에게 복수하려던 테러 기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연인 파이예로마저 잃고서  수도원에 들어가 10년 세월을 보내던 엘파바는 Liir라는 소년을 데리고서쪽으로 향하는 대상의 무리에 끼어 파이에로의 집을 찾아간다. 빈쿠스의 성에 살고 있는 파이에로의 가족들은 얼떨결에 엘파바를 맞아들이고 엘파바는 성에 은둔하며 마법에 몰두하며 차츰...차츰...마녀와 같은 이미지로 변해간다..........
그리고 물론 마지막에 도로시 일당이 나타나 차츰 지리멸렬해지던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 뒷부분은 뭐랄까...<오즈의 마법사>라는 틀에서 시작한 인물과 에피소드들을 출발선에서 멀리멀리 나아가 고유의 독자적인 삶을 살게 하다가 마무리 부분에 이르러 재빨리 불러들여 수습하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한마디로 다소 억지스러운 느낌) 하지만 그것도 이해할만 하다. 애초에 이것은 원작의 틀을 벗어나지 않되 최대한 독창적인 새로운 작품을 쓰는 게임과도 같은 시도였다고 볼 수 있고, 이만하면 그 원작으로부터의 원심력과 구심력의 균형을 아슬아슬 적절히 잘 맞추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의도는 아마도........어린이를 위한 동화의 행간에 있는 어른들의 세계의 현실을 그려내는 것이었으리라. 물론...이런 패러디 우화의 ABC와도 같이...선악을 비틀고 뒤집어 새롭고 허를 찌르는 해석을 내놓는 것도 (예컨대 사악한 서쪽 마녀와 동쪽 마녀는 사실상 반체제 인사였으며 정치선전과 역사왜곡의 희생물이다...이런...) 이 소설의 중요한 존재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소설에 반한 이유는........좀 더 미묘하고 좀 더 세부적인 측면에 있는 듯 하다. 

일단 저자의 글솜씨가 눈부시다.  마치 역사소설을 읽는 것과 같이...고풍스러운 과거의 시공간을 묘사하는 문체 역시 어딘가 옛스럽고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책의 첫머리에...엘파바가 태어날 무렵의 프렉스와 멜리나(엘파바 부모)의 이야기는...마치 데자뷰와도 같이 어린시절 나에게 충격과 매혹을 선사했던 작품...너대니얼 호손의 "Young Goodman Brown"을 연상시켰다. (절망적이도록 쓸쓸하고 황량한 배경, 무지하고 잔인하고 가차없는 주변인물들, 강렬한 악의 상징 Time Dragon, 목사인 남편과 악덕의 유혹에 굴복하는 아내...) 나는....이런...어딘가 그로테스크하고 섬뜩한 아름다움..............에 이끌리는듯 하다. (히에르니무스 보쉬나 고야의 그림처럼...)

그밖에....독자로 하여금 진정한 공감과 애증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입체적이고 현실감 넘치는 인물들, 이야기의 구비구비마다 크고 작은 놀라움을 마련해둔 독창적인 상상력.............모두 훌륭하다.  

내게는............마법처럼 매혹적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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