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피아빛 초상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나온걸 신문에서 보자마자 당.장. 주문했다. 아옌데의 전작을 읽은 독자 중 상당수가 그러하겠지만 나는 <운명의 딸>(이하 <딸>)과 <영혼의 집>(이하 <집>)을 연거푸 읽고 나서 이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기를 간절히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문한 책이 배달된 후에도 섣불리 책을 들지는 못했다. 분명 한번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놓을 수 없을 것이며 나의 모든 일상은 all-stop될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어제, 아니나 다를까 새벽 3시까지 읽고 잠깐 눈을 붙이고 나서 오늘 아침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기대했던 대로 이 책 역시 재미있었다. 아옌데를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대로 그녀는 정말이지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책값이나 시간이 아깝지 않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아옌데는 누구에게든 권하고픈 작가라는 전제하에 쓴소리를 풀어놓아보겠다.


이 책의 경우에도 “전작만한 속편 없다.”는 속설이 대체로 맞아떨어진다.

<딸>은 줄거리가 더욱 극적이고 주인공도 더욱 인상적이다. 특히 엘리사 소머즈는 내가 처음 접한 아옌데의 여주인공이었던 만큼 숨이 막힐 정도로 신선했고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딸>이 한 여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집>은 한 가족, 가문의 이야기이다. 그런 만큼 <집>은 여러 주인공, 여러 에피소드가 가져다주는 풍부하고 아기자기한 면이 있다. 또 칠레의 현대사의 유명한 정치적 사건이 드리운 광휘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저자의 이사벨 아옌데는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실각한 좌익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의 조카뻘 된다고 한다.) 계급간의 갈등과 같은 칠레 사회의 첨예한 문제점들 역시 이야기의 중심에 깊게 뿌리박고 있어 작품에 무게를 더한다.

<초상>은 <딸>과 <집> 사이에 놓인 다리와 같은 작품이다. 시간과 공간의 강을 건너 소머즈가와 델 바예가라는 두 가문을 혈연으로 맺어주고 있다. 애인을 찾아 남장을 하고 캘리포니아로 떠났던 엘리사 소머즈가 지혜롭고 선한 중국인 타오 치엔과 결혼해 낳은 딸이 역시 <딸>의 한 일화에 등장했던 파울리나 델 바예의 아들과 맺어져 주인공이자 화자인 아우로라가 태어난다. 아우로라의 양아버지이자 파울리나의 조카인 세베로 델 바예가 <집>의 클라라의 아버지가 된다. 파란만장한 운명의 딸이었던 엘리사 소머즈는 <초상>에서 그저 사려깊은 할머니로 뒷전에 물러서고 여장부 파울리나와 손녀딸 아우로라의 이야기가 주가 된다. <집>에서 꽤 깊게 다루었던 계급갈등과 같은 사회문제는 배경 소음 정도로 물러나고 (아니면 아우로라가 취미로 찍는 사진의 대상으로 축소되어 버렸다고도 할 수 있다.) 니베아 등을 통해 작가는 여성문제도 계속 끌고 들어오지만 역시 수박 겉?기 정도로 느껴진다.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할머니덕분에 안락한 삶에서 단 한 발짝도 밖으로 나올 여지가 없었던 아우로라는 그녀의 두 할머니나 또 <집>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에 비해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초라한 캐릭터이다. 탄생의 비밀과 첫 결혼의 상처를 양념으로 쳤지만 여전히 어딘가 싱겁다.


내 머릿속에서 아옌데와 함께 떠오르는 작가가 바로 에이미 탄이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지만 한 7-8년 전 내가 미국에 머물때 나름대로 주목받던 작가라 그녀의 책들을 접하게 되었고 한 눈에 반해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상대적으로 평범한 여성인 화자가 대륙과 문화를 넘나들며 파란만장한 삶을 개척해온 어머니(탄의 경우)나 할머니(아옌데의 경우)로부터 자신의 뿌리와 가문의 역사를 듣는다는 플롯이 무척 흡사하다. 섬세하고 여성적인 아기자기한 문체, 영미권 독자들에게는 덤으로 이국적 향취를 듬뿍 얹어준다는 점도......주인공 여성들이 삶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antagonist 격인 가부장적이거나 이기적인 남자들에게 희생될뻔 하다가 결국 사려깊고 부드럽고 지혜로운 남자를 만나 영원하고 완벽한 사랑을 얻는다는 내용까지도......


이러한 간혹 페미니즘 소설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알고보면 전형적인 “공주” 로망에 호소하는 이야기들이다. 아옌데나 위에 언급한 에이미 탄, 그리고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심지어 박경리의 <토지>까지도...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난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주인공이 파란만장한 역사를 배경으로 자의나 타의에 의해 인습이나 전통과 결별하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나가고 그 와중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다분히 순정만화적 설정을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통속성”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어떠랴? 공주 로망이든, 순정 만화든...뭐가 나쁘단 말인가?

사실이다. 그 자체로 작품을 혐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런데 아옌데의 소설은 (에이미 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세 권째 읽으니까 조금 질리는 면이 있다. 하나같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이나 그리스인 조르바의 친족들처럼 느껴지는 낙천적이고 열정적이고 무모하며 철부지같은 (그러면서도 행운으로 가득한) 주인공들이 영원한 어린시절의 뜨락과 같은 삶의 무대에서 펼쳐놓는 이야기들은....기묘하게 현실성을 비껴나가고 있다. 사랑은 결코 시들지 않는 꽃이고 몸과 영혼을 불살라 연인들을 맺어주는 성(性) 역시 믿을수 없는 광휘를 뿜어댄다. 또한 아옌데의 펜을 거치면 심지어 노화나 병이나 죽음이나 피범벅과 해골조차도 아름답고 정겹게 그려진다. 그야말로 할머니의 입으로 전해듣는 집안의 역사처럼 따뜻하고 나른하면서도 드라마틱하고 눈부시게 윤색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아옌데의 소설은 다 큰 어른 소녀들을 위한 “동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현실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시공간...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감성과 멘탈리티(심리체계) 까지도 조금쯤 다른....그런 이야기를 맛보고 싶다면 아옌데의 이야기들은 더할나위 없이 멋진 경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냉철한 이성과 논리와 현실성의 검열을 거쳐 진지한 공감을 추구하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짜증스러울 수도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덧붙이건대, 두 전작(딸과 집)은 동화적 한계, 약간의 과장과 비현실성 등등을 감안하더라도 별 다섯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수작들이다. <세피아빛 초상>도 나름대로 훌륭하지만 전작들에 비해 조금 힘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별 네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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