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 다시 읽는 신화 이야기 한 권으로 끝내는 인문 교양 시리즈
시마자키 스스무 지음, 정보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3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그리스 신화, 그 방대한 이야기를 단 한 권에 모두 담아낸 <그리스 신화: 다시 읽는 신화 이야기>. 우리가 알아야 할 서양 문명의 뿌리를 만나보세요. 가볍게 읽히면서도, 얕지 않은 그리스 신화 입문서입니다.


등장인물만 3천여 명, 완성되기까지 800년이 걸린 이 복잡한 신화를 단 42개의 핵심 에피소드로 압축했습니다. 게다가 각 이야기의 배경과 의미를 쉽게 설명해 준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가계도와 관계도를 정리한 부분은 복잡한 신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영화, 게임, 문학 작품에 수많은 그리스 신화의 모티브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스타워즈〉, 〈올드보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키 17〉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현대 콘텐츠가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많은 단어와 표현들이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했습니다. 아킬레스건은 영웅 아킬레우스의 유일한 약점이었던 발꿈치에서, 에코는 메아리의 요정 에코의 이름에서 왔습니다. 요일 이름, 행성 이름, 별자리 이름도 그리스 로마 신화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그리스 신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융의 나르시시즘 등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에서 이름을 따온 개념들입니다.


저자는 그리스 신화는 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을까라는 질문으로 던집니다. 그 답은 바로 보편성입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정신이 그리스 신화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환경과 문화가 달라도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 욕망, 고뇌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 신화는 이런 인간의 본질을 다루고 있기에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정본이나 원전은 있을까라는 질문도 흥미롭습니다. 그리스 신화는 특정 작가가 쓴 단일 작품이 아닙니다. 수백 년에 걸쳐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여러 시인과 작가들에 의해 기록된 집합적 문화유산입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등이 중요한 원천 자료이지만, 이것만으로 그리스 신화 전체를 담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세상의 시작과 신들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그리스 신화는 카오스(혼돈)에서 시작되어 가이아(대지)가 등장하는 창세신화로 시작합니다. 창조신 카오스와 가이아 이야기는 세계 여러 신화의 창조 이야기와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크로노스가 두려워한 불길한 예언은 그리스 신화의 중요한 모티브인 운명과 세대교체를 다룹니다. 크로노스는 자신의 자식에 의해 왕위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자식들을 삼켜버렸지만, 결국 제우스에게 패배하게 됩니다. 인간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그리스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입니다.


티탄 신족 vs 올림포스 신족의 전쟁 이야기는 마치 현대의 영화를 연상시킵니다. 10년간의 티타노마키아(티탄 전쟁)를 통해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올림포스 신족이 승리하면서 새로운 신들의 시대가 열립니다.


인류의 창조와 관련된 인류의 구세주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인간을 위해 신들의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인류 문명 발전의 시작을 상징하면서도, 신에 대한 도전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재앙과 희망을 불러온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판도라의 상자'라는 관용구로 남아있습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연 판도라로 인해 세상에 온갖 재앙이 퍼졌지만, 상자 바닥에 남은 희망은 인간에게 위로가 됩니다. 저자는 판도라가 열었던 상자에 남은 희망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희망의 양면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올림포스 12신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 아테나, 아폴론, 아프로디테 등 개성 넘치는 신들의 에피소드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신의 형태로 투영한 것입니다.


결혼과 가정의 여신인 헤라가 바람둥이 남편 제우스 때문에 겪는 고통과 복수의 에피소드도 참 많지요. 제우스는 왜 자꾸 바람을 피울까라는 저자의 질문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도 재밌습니다. 최고신인 제우스의 끝없는 여성 편력은 단순한 바람기가 아니라, 신화가 창작되던 시대의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권력의 상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인을 암소로 둔갑시킨 제우스와 에우로페를 유괴한 제우스 이야기는 제우스가 연인을 만나기 위해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영웅들이 태어나게 되는데, 그리스 각 지역의 영웅 설화와 신화를 연결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마지막으로 반신반인 영웅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은 신적인 능력과 인간적인 한계를 동시에 가진 존재로, 가장 드라마틱한 서사를 만들어냅니다. 이들은 신이 아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고, 인간이 아니기에 경이로운 능력을 지녔습니다. 이런 경계인의 서사는 오늘날 슈퍼히어로 서사의 전신이기도 합니다.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과업은 가장 유명한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의 이야기입니다. 제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헤라의 미움을 받았지만, 놀라운 힘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들을 완수하며 신이 된 헤라클레스의 모험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신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오이디푸스의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이야기는 그리스 비극의 대표적인 주제인 인간과 운명의 관계를 다룹니다.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그리스인들의 비극적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트로이 전쟁 이후의 이야기인 키클롭스의 동굴, 마녀 키르케의 무시무시한 요리, 뱃사람을 홀리는 세이렌 등은 오디세우스(로마식으로 율리시스)의 10년간의 귀향길을 다룬 『오디세이아』의 주요 에피소드들입니다. 지혜와 꾀로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모험은 인생의 여정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저자는 그리스 신화에는 왜 바다를 건너는 모험 이야기가 많을까라는 질문도 던집니다. 지중해의 섬과 반도로 이루어진 지리적 특성과 해상 무역이 발달했던 역사적 배경을 반영한다고 합니다. 바다는 그리스인들에게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공간이었고, 이것이 신화에도 반영된 겁니다.


신화의 배경이 된 실제 장소도 소개합니다. 크레타섬의 크노소스 궁전 터,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올림포스산, 트로이의 고고 유적 등을 통해 신화와 역사의 연결점을 보여줍니다.


서양 문명의 뿌리를 이해하고, 현대 문화에 숨겨진 신화적 모티브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인간의 본질과 욕망, 갈등과 화해의 패턴을 통해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지혜도 얻을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망 마음속에 기르다 - 나태주 한서형 향기시집
나태주 지음, 한서형 향 / 존경과행복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시집에서 향기가 나는 독특한 책, 향기시집. 풀꽃시인 나태주 시인과 한서형 향기작가의 콜라보로 탄생한 마음 향기시집 시리즈는 오감으로 경험하는 특별한 여정을 선사합니다. 이번엔 '소망'을 주제로 한 시가 가득 모였습니다.


일상의 작은 순간에도 희망의 씨앗을 심는 <소망 마음속에 기르다>. 감각의 문을 열어 마음속 소망을 피워내는 시간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따스한 시어와 한서형 향기작가의 섬세한 감각이 어우러졌습니다. 전작 『사랑 아무래도 내가 너를』에 이어 시각을 넘어 후각으로도 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시집의 제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소망이자 절실한 당부처럼 느껴집니다. '기르다'라는 동사에 주목해 보면, 소망이란 그저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성껏 가꾸고 보살펴야 하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마치 작은 씨앗 하나를 정성껏 심고 물을 주며 햇빛을 받게 하듯, 우리의 소망도 일상에서 끊임없이 돌보고 키워야 비로소 싹을 틔우고 자라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합니다.






소망과 관련한 시가 정말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이 이토록 소망을 많이 이야기했었다니. 나태주 시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전작 사랑에 이어 소망까지 주제별로 그의 시를 한가득 모을 수 있습니다.


소망을 이야기할 때 그 이면에는 좌절, 실패의 감정이 한편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소망하게 되니까요. 책의 1부 '살아있음은 힘이 세다'에서는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시인의 따뜻한 응원이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밥을 먹어야 하고/잠을 자야 하고 일을 해야 하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아낌없이 사랑해야 하고/조금은 더 참아낼 줄 알아야 한다//무엇보다도 소망의 끈을/놓치지 말아야 한다/기다림의 까치발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에서 삶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붙드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화가 나시나요/오늘 하루 실패한 것 같아/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시나요/그럴 수도 있지요/때로는 자기 자신이 밉고 싫어질 때도 있지요/그렇지만 너무 많이는/그러지 마시길 바라요"라는 구절이 있는 「실패한 당신을 위하여」 시에서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피로와 좌절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압도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북돋우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살아있음이란 그 자체로 무한한 가능성이며, 오늘이 있기에 내일의 소망도 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2부 '이런 상상 이런 꿈'에서는 나와 타인을 위한 간절한 소망과 기도가 시어로 피어납니다. "남을 따라서 살 일이 아니다/네 가슴에 별 하나/숨기고서 살아라/끝내 그 별 놓치지 마라/네가 별이 되어라."라는 「너는 별이다」구절은 자신만의 빛을 잃지 않고 살아가라는 따뜻한 응원을 담고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은 타인의 기준이나 사회적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와 꿈을 소중히 여기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별이라는 상징을 통해 각자가 지닌 고유한 빛과 가치를 짚어주고, 그것을 잃지 않고 키워나가는 것이 진정한 소망의 실현임을 알려줍니다.


시인의 소망은 단순히 개인적인 바람에 그치지 않고, 타인과 함께하는 동행의 여정으로 확장됩니다. 새봄, 별, 꿈, 희망 등의 키워드를 통해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나아가는 삶의 태도를 제시합니다.





3부 '하늘빛 상상력'에서는 구체적인 삶의 목표와 방향성을 보여주는 시를 만나게 됩니다. "무엇을 걱정하며 무엇을 슬퍼하며/무엇을 주저하느냐/기쁨의 강물 위에 너의 마음을 맡겨라/소망의 강물 위에 너의 마음을 맡겨라."라는 「기도 시간」의 구절은 걱정과 슬픔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기쁨과 소망에 자신을 맡기라는 지혜를 전합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부정적 감정들을 인정하면서도, 그보다는 소망과 기쁨의 에너지에 초점을 맞추라는 실천적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새싹 돋아 푸르고 꽃이 피고/어우러져 녹음되기도 한다/이것이 바로 희망/이것이 바로 사랑/그것을 믿어야 한다."라는 「믿어야 한다」 시에서는 자연의 순환처럼 소망도 결국 피어날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을 강조합니다. 믿음은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소망을 키워나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4부 '흰구름보며 빈다'에서는 직접 자신의 소망을 적어볼 수 있는 '이루게 하여 주소서' 페이지가 있습니다. 소망의 씨앗을 심어보세요.


한서형 향기작가는 이 책을 위해 특별히 탄생한 향의 창작 과정과 그 의미를 소개해 줍니다. 이번 향기는 제가 애정하는 록시땅 버베나 샤워젤 향기의 첫 느낌이 나서 향을 맡자마자 정말 좋았습니다.


"봄이 가까워지면 땅은 폭신해지고 빛은 마치 묘기를 부리듯 반짝입니다. 남서쪽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에 아지랑이가 춤추는 어느 날, 파릇한 싹이 처음 돋아나는 그 순간의 설렘을 담고 싶었습니다. 맑은 날에는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샘솟으니까요."라는 향기작가의 글에서 이 책의 향이 담고자 하는 감각적 경험의 본질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서형 향기작가는 씨앗 향료의 달큼함과 신선한 풀내음, 촉촉한 흙내음을 배경으로 시트러스 노트가 어우러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망 씨앗 향'을 만들었습니다. 시를 읽는 동안 후각적으로도 소망의 생동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이 말하길, 소망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서 피어난다고 합니다. 영차영차 힘을 내었으면 하는 소중한 이에게 선물하기 좋은 시집 <소망 마음속에 기르다>. 소망의 씨앗을 심고 가꾸도록 돕는 특별한 선물이 될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갑신정변과 그 주역 김옥균의 삶을 재조명하는 이상훈 작가의 역사소설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 『한복 입은 남자』로 등단해 『김의 나라』로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한 이상훈 작가는 역사적 자료와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김옥균의 출생부터 암살까지의 여정을 생생하게 펼쳐냅니다.


역사 속 김옥균은 늘 논쟁적이었습니다. 그는 개화파의 영웅이자 동시에 친일파의 원조로 낙인찍히기도 했습니다. 이상훈 작가는 이중적 평가의 틈바구니 속에서 잊혀가던 한 인물을 되살려냅니다. 영웅화 혹은 매도라는 극단을 걷지 않고, 김옥균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탐구하며, 조선 말기의 변혁기를 생생하게 재현해냅니다.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된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는 액자식 구성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1부에서는 김옥균의 출생부터 갑신정변 실패까지, 2부에서는 일본 망명 생활과 암살, 그리고 후일담을 다룹니다.


1894년 3월 25일, 김옥균이 나가사키 항구에서 상하이행 배에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그의 일기인 『갑신일록』의 비밀을 통해 과거로 들어갑니다.


김옥균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의 이야기는 개화사상에 눈뜨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백옥같이 곱고 희다'라는 의미의 이름처럼, 김옥균은 타고난 지성과 열정을 지닌 인물로 그려집니다. 어릴 적부터 총명했던 그는 스승 박규수와 오경석을 만나면서 개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김옥균의 첫사랑 오경화의 이야기입니다. 오경석의 딸 오경화는 김옥균과 동갑으로, 장신인 데다 힘도 세어 여장부의 풍모가 있었던 인물이라고 묘사합니다. 오경석이 딸에게 서양 학문을 가르쳤다는 설정은 그의 진보적 사상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김옥균이 개화사상을 펼치려 할 때마다 부딪히는 장애물은 견고했습니다. 흥선대원군과의 대립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더 이상 대원군과 소모적인 논쟁을 한다면 자신의 신상에 해로울 것 같아 대원군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라는 구절은 김옥균의 현실적인 판단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좌절감을 느끼며, "대원군의 집을 나서면서 옥균은 착잡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옥균의 마음과 같이 그날 저녁에 비가 내렸다."라는 감정적 묘사가 이어집니다.


스승들의 죽음과 함께 김옥균은 더욱 고립됩니다. 박규수와 오경석, 두 스승의 상실이 김옥균에게 미친 영향이 묘사됩니다. 이후 김옥균은 일본으로 건너가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혁명의 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갑신정변의 준비와 실행, 그리고 좌절입니다. 김옥균과 그의 동지들이 계획을 세우는 장면이 긴장감 넘치게 묘사됩니다. "홍영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하의 우유부단한 성품을 봐서 언제 또 입장이 바뀔지 모릅니다.'"라는 대화에는 고종의 성격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습니다.


결국 고종의 변심으로 정변은 실패합니다. "경기감사 심상훈과 민비의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고종에게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로 시작되는 문장을 접하자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갑신정변이 실패하게 된 결정적 순간입니다. "고종은 마지막까지 권력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라는 문장은 정변 실패의 핵심을 표현합니다.


갑신정변은 1884년 12월에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과 함께 일으킨 역사적 사건입니다. 3일 천하의 짧은 반란은 조선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개혁 시도였습니다. 근대 헌정 체제를 꿈꿨고, 관료제 개혁과 신분제 철폐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기득권 체제는 그를 도리어 반역자로 몰았습니다.


김옥균은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합니다. 일본 내에서 근대화 이론을 체득하고, 조선을 근대 국가로 만들기 위한 외교 전략을 구상합니다. 한마디로 김옥균의 외교 노선은 외세를 이용한 자주였습니다. 일본을 조선의 후원국으로 삼으려 했지만, 이는 훗날 을사오적과 같은 진짜 친일파들과 구별되지 않는 오해를 남깁니다.


김옥균은 조선 왕실에 큰 위협으로 간주되었고, 끊임없이 암살 위협에 시달립니다. 1894년, 상하이의 어느 객실에서 홍종우의 권총에 쓰러지게 됩니다. 죽음의 순간에도 "너는 역사가 두렵지 않으냐?"라고 외치는 김옥균의 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소설은 김옥균의 정치적 활동뿐 아니라 그의 사적인 면모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대비전 궁인이자 혁명동지 오경화, 본처 유씨부인, 그리고 일본 여관의 전직 게이샤 스기타니 다마와의 관계는 김옥균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역사적 기록에는 단편적으로만 남아있는 인물들에게 작가가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스토리의 매력을 높입니다.


소설의 말미에서는 김옥균 사후의 한국 근대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보여줍니다. 더불어 그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역사적 아이러니를 지적합니다. 작가는 한국에서 김옥균이 친일파로 매도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김옥균은 일본의 자유민권 사상가들에 의해 아주 높게 평가된 인물로, 그의 암살이 오히려 일본 사상가들의 반조선적 태도를 강화했다는 분석도 흥미롭습니다. 특히 김옥균이 북한에서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는 부분은 한국 사회가 역사 인식에 있어 편향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 책에는 작가가 직접 답사한 갑신정변의 우정국, 김옥균의 생가, 묘소, 유배지 등의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책상 앞에서 머리로만 쓴 글이 아니라 현장에서 가슴으로 쓴 글로 독자들이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실천한 결과입니다.


"나는 묻는다. 다만 목숨을 걸고 옳은 일을 시도한 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날 자신의 이익과 사리사욕을 위해 국가를 팔고 국민을 파는 사이비 정치인 그리고 사이비 지식인에게 김옥균의 일생이 작은 울림을 주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구절은 작가의 현실 인식과 역사관을 보여줍니다.


역사적 인물 재조명을 넘어,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성찰을 안깁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으로 성공했으나 조선은 갑신정변의 실패로 근대화에 뒤처진 역사적 아쉬움을 되새기며,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개혁 정신을 짚어줍니다.


작가는 김옥균이 그저 운이 나빴을 뿐, 영웅의 자질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친일이 아닌 극일(克日)의 기수 김옥균의 참모습을 보여줍니다. 역사의 기로에서 나라의 운명과 시대의 소명을 짊어진 그의 삶은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가르침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해야 하는지 중요한 화두를 던집니다. 왜 그는 죽어야 했는가에 대한 치열한 질문이자, 동시에 무엇이 조선을 바꾸지 못하게 했는가에 대한 탐사입니다.


갑신정변과 김옥균에 대한 팩트를 바탕으로 생생한 인물 묘사와 긴장감 넘치는 서사가 매력적인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선택과 책임, 그 결과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답게 살고 싶어서 뇌과학을 읽습니다 - 나도 모르게 내 삶을 결정하는 24가지 뇌의 습관
이케가야 유지 지음, 김현정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고민을 과학적 렌즈로 바라보는 <나답게 살고 싶어서 뇌과학을 읽습니다>. 도쿄대 교수이자 뇌과학자 이케카야 유지 저자는 우리가 흔히 겪는 반복되는 실수와 비합리적인 선택의 근원을 뇌의 작동 메커니즘에서 찾습니다.


'왜 나는 이럴까?' 하는 자기비난의 늪에 빠진 경험 있으시죠? 마감 직전까지 미루기, 후회할 줄 알면서도 반복되는 실수, 충동 구매 등 저마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행동이 있을 겁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뇌의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작동 방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타인과 비교하며 느끼는 불안감은 단순한 열등감이 아니라 뇌의 전대상피질과 편도체가 작동한 결과이고, 다른 사람의 불행에 은근한 쾌감을 느끼는 건 '샤덴프로이데'라는 뇌의 고유한 반응 메커니즘 때문인 겁니다.





끊임없는 외부의 영향과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느낌이 잦다보니 더더욱 나다운 삶을 꿈꾸는 것 같습니다. <나답게 살고 싶어서 뇌과학을 읽습니다>는 생각, 감정, 행동을 결정짓는 24가지 뇌의 습관을 소개합니다. 결국 이 책은 나다운 삶을 위한 뇌과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뇌과학적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각 메커니즘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풀어냅니다. 뇌의 본능적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일상 속 사례를 통해 복잡한 뇌의 작동 원리를 쉽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뇌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인 생존 본능부터 짚어줍니다. 우리의 뇌는 매 순간 최적의 생존 전략을 실행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는 즉각적으로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여 몸을 투쟁 또는 도피 모드로 전환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상사의 비판에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시험 전날 유난히 초조해지는 이유입니다.


이 생존 본능은 때로는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불필요한 스트레스 반응이나 비합리적인 두려움처럼 말이죠. 저자는 이런 행동 패턴을 인지하고 조절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더 건강한 방식으로 삶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뇌과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도파민은 보상의 신호로,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목표를 설정하고 성취하도록 유도합니다. 작은 성공을 반복적으로 경험할수록 도파민 분비가 촉진되어 더 큰 동기를 형성하게 되는 겁니다. 이 보상 시스템을 활용해 습관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감정은 우리의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뇌의 편도체가 위험을 감지하고 신속하게 반응하는 감정 센터라고 합니다. 하지만 감정만으로 결정한다면 때로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율하는 역할이 필요한데, 바로 전두엽이 담당합니다. 이 부분이 성숙할수록 우리는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전두엽의 도움을 받아 올바른 선택을 하는 방법 역시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알려줍니다. 감정과 논리가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줍니다.


때로는 선택의 어려움에 놓일 때가 많습니다. 너무 많은 상품 옵션을 마주할 때 오히려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선택의 패러독스. 뇌가 과도한 정보 속에서 어떻게 마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선택의 중요성을 재정립하고, 지나치게 많은 선택지를 줄이는 것이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줍니다.


뇌를 활용한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게 이 책의 핵심입니다. 뇌는 반복 학습을 통해 변화할 수 있습니다. 뇌의 스트레스 반응이 줄어들고 집중력이 향상되는 명상, 정신과 신체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미소 짓기 등 뇌를 내편으로 만드는 다양한 실천법이 소개됩니다. 작은 행동의 반복이 어떻게 뇌의 신경회로를 재구성하고 습관을 형성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뇌에 기억되는 정보는 그 정보가 얼마나 자주 들어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필요한 상황인지, 즉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기준으로 한다는 이야기는 출력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미소의 효과처럼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즐거운 것처럼 행동 결과에 걸맞은 심리 상태를 우리 뇌는 만든다는 겁니다.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반복되는 행동 패턴의 원인을 깨닫고, 이를 통해 나다운 삶을 설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나답게 살고 싶어서 뇌과학을 읽습니다>. 뇌의 본능을 이용한 더 나은 삶 설계법이라니,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발터 벤야민이 생전에 쓴 소설, 꿈 기록, 설화, 우화 등 미공개 글을 한 권에 담은 <고독의 이야기들>. 마치 한 세기의 문학적 미로를 탐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동안 철학자이자 비평가로서 학문적 저작으로만 알려졌던 발터 벤야민의 또 다른 얼굴, 바로 문학적 상상력이 빛나는 작가로서의 면모를 만나볼 수 있는 책입니다.


20세기 가장 혁신적인 사상가 벤야민의 사상과 상상력이 빚어낸 42편의 이야기들은 꿈, 여행, 놀이라는 세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모더니티의 풍경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만화경처럼 현실의 균열과 상상의 세계를 번갈아 비추며 독특한 매력을 뿜어냅니다. 이야기 모음집에 가깝습니다.





파울 클레와의 협주는 문학과 예술의 융합을 오롯이 보여줍니다. <고독의 이야기들> 표지부터 본문 곳곳에는 그가 사랑했던 화가 파울 클레의 작품이 50여 점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삽화가 아니라, 벤야민의 이야기를 보완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1부 꿈과 몽상에서는 벤야민의 내밀한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너무나 가까운」 글에서 그가 느끼는 그리움에 대해 "상상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 사이의 문턱을 이미 넘어서 있는 그리움."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단순한 그리움을 넘어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사유의 순간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순한 감정의 그리움이 아니라, 가까이 있으면서도 닿을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갈망에 가까운 그리움. 벤야민은 우리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이 종종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라는 역설을 탐구합니다.


2부 여행에서는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을 선보입니다. 공간과 경험의 의미를 재구성합니다. 「북유럽 바다」에서 벤야민은 "시간 창고 안에 들어가 보면 사용되지 않은 하루하루가 쌓여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라며 시간의 은유적 풍경을 그려냅니다.


「마스코테호의 항해」에서는 여행을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새로운 규칙과 현실이 탄생하는 공간으로 그려냅니다. "여행은 문턱을 가시화한다"라는 문장은 경계의 유동성을 완벽하게 포착합니다.


여행은 우리가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경계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듭니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떠나고 있는지를 자각하게 됩니다. 벤야민은 이 순간을 단순한 경계 인식이 아니라, 존재와 경험의 전환점으로 봅니다. 여행 중에는 익숙했던 일상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규칙과 현실이 등장하며, 이 과정에서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거나 재발견하게 됩니다.


벤야민의 여행은 물리적 이동을 넘어 인식의 변화, 타자와의 만남 그리고 내면의 풍경을 탐험하는 방식이 됩니다. 이동을 통해 익숙함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엽니다.


각 작품은 마치 시적 산문, 철학적 우화, 꿈의 단편처럼 읽히면서도 깊은 사유의 힘을 지니고 있어, 아주 쉬운 글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수월하게 읽은 글은 벤야민의 서평들이었습니다. <고독의 이야기들>에는 프란츠 헤셀의 『내밀한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동요 모음집 등 벤야민의 서평이 몇 편 있습니다. 제 취향상 벤야민 스타일의 서평 문체가 꽤 매력적이더라고요.


3부 놀이와 교육론에서는 벤야민의 급진적인 사유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는 놀이를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인식과 창조의 근본적인 방식으로 바라봅니다. "어른들은 말장난과 놀이의 즐거움을 아이에게서 배워야 한다"라며 기존의 교육과 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전복을 이야기합니다.


「네 가지 이야기」에서는 구술 전통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엿보입니다. 벤야민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단절된 경험의 전달 가능성을 고민하며, 이야기라는 형식이 단순한 오락이 아닌 인간 경험의 중요한 기록임을 보여줍니다. 그의 스토리텔링은 단순한 픽션의 집합체가 아닌, 경험의 구슬입니다.


그의 저서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 『일방통행로』에서 논의된 아이디어들이 이 문학작품집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벤야민이 풀어내는 짧은 이야기들을 한 편씩 천천히 음미하며 읽는 방식을 추천드립니다. 벤야민의 언어가 철학적이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가 왜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문학적 글쓰기와 비평적 글쓰기를 넘나드는 벤야민의 독특한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문학 모음집을 넘어, 생전에 출간한 그의 비평과 에세이의 사유와 아이디어의 공명판으로 기능하는 글을 만나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