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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5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갑신정변과 그 주역 김옥균의 삶을 재조명하는 이상훈 작가의 역사소설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 『한복 입은 남자』로 등단해 『김의 나라』로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한 이상훈 작가는 역사적 자료와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김옥균의 출생부터 암살까지의 여정을 생생하게 펼쳐냅니다.
역사 속 김옥균은 늘 논쟁적이었습니다. 그는 개화파의 영웅이자 동시에 친일파의 원조로 낙인찍히기도 했습니다. 이상훈 작가는 이중적 평가의 틈바구니 속에서 잊혀가던 한 인물을 되살려냅니다. 영웅화 혹은 매도라는 극단을 걷지 않고, 김옥균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탐구하며, 조선 말기의 변혁기를 생생하게 재현해냅니다.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된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는 액자식 구성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1부에서는 김옥균의 출생부터 갑신정변 실패까지, 2부에서는 일본 망명 생활과 암살, 그리고 후일담을 다룹니다.
1894년 3월 25일, 김옥균이 나가사키 항구에서 상하이행 배에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그의 일기인 『갑신일록』의 비밀을 통해 과거로 들어갑니다.
김옥균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의 이야기는 개화사상에 눈뜨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백옥같이 곱고 희다'라는 의미의 이름처럼, 김옥균은 타고난 지성과 열정을 지닌 인물로 그려집니다. 어릴 적부터 총명했던 그는 스승 박규수와 오경석을 만나면서 개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김옥균의 첫사랑 오경화의 이야기입니다. 오경석의 딸 오경화는 김옥균과 동갑으로, 장신인 데다 힘도 세어 여장부의 풍모가 있었던 인물이라고 묘사합니다. 오경석이 딸에게 서양 학문을 가르쳤다는 설정은 그의 진보적 사상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김옥균이 개화사상을 펼치려 할 때마다 부딪히는 장애물은 견고했습니다. 흥선대원군과의 대립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더 이상 대원군과 소모적인 논쟁을 한다면 자신의 신상에 해로울 것 같아 대원군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라는 구절은 김옥균의 현실적인 판단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좌절감을 느끼며, "대원군의 집을 나서면서 옥균은 착잡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옥균의 마음과 같이 그날 저녁에 비가 내렸다."라는 감정적 묘사가 이어집니다.
스승들의 죽음과 함께 김옥균은 더욱 고립됩니다. 박규수와 오경석, 두 스승의 상실이 김옥균에게 미친 영향이 묘사됩니다. 이후 김옥균은 일본으로 건너가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혁명의 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갑신정변의 준비와 실행, 그리고 좌절입니다. 김옥균과 그의 동지들이 계획을 세우는 장면이 긴장감 넘치게 묘사됩니다. "홍영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하의 우유부단한 성품을 봐서 언제 또 입장이 바뀔지 모릅니다.'"라는 대화에는 고종의 성격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습니다.
결국 고종의 변심으로 정변은 실패합니다. "경기감사 심상훈과 민비의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고종에게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로 시작되는 문장을 접하자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갑신정변이 실패하게 된 결정적 순간입니다. "고종은 마지막까지 권력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라는 문장은 정변 실패의 핵심을 표현합니다.
갑신정변은 1884년 12월에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과 함께 일으킨 역사적 사건입니다. 3일 천하의 짧은 반란은 조선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개혁 시도였습니다. 근대 헌정 체제를 꿈꿨고, 관료제 개혁과 신분제 철폐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기득권 체제는 그를 도리어 반역자로 몰았습니다.
김옥균은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합니다. 일본 내에서 근대화 이론을 체득하고, 조선을 근대 국가로 만들기 위한 외교 전략을 구상합니다. 한마디로 김옥균의 외교 노선은 외세를 이용한 자주였습니다. 일본을 조선의 후원국으로 삼으려 했지만, 이는 훗날 을사오적과 같은 진짜 친일파들과 구별되지 않는 오해를 남깁니다.
김옥균은 조선 왕실에 큰 위협으로 간주되었고, 끊임없이 암살 위협에 시달립니다. 1894년, 상하이의 어느 객실에서 홍종우의 권총에 쓰러지게 됩니다. 죽음의 순간에도 "너는 역사가 두렵지 않으냐?"라고 외치는 김옥균의 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소설은 김옥균의 정치적 활동뿐 아니라 그의 사적인 면모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대비전 궁인이자 혁명동지 오경화, 본처 유씨부인, 그리고 일본 여관의 전직 게이샤 스기타니 다마와의 관계는 김옥균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역사적 기록에는 단편적으로만 남아있는 인물들에게 작가가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스토리의 매력을 높입니다.
소설의 말미에서는 김옥균 사후의 한국 근대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보여줍니다. 더불어 그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역사적 아이러니를 지적합니다. 작가는 한국에서 김옥균이 친일파로 매도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김옥균은 일본의 자유민권 사상가들에 의해 아주 높게 평가된 인물로, 그의 암살이 오히려 일본 사상가들의 반조선적 태도를 강화했다는 분석도 흥미롭습니다. 특히 김옥균이 북한에서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는 부분은 한국 사회가 역사 인식에 있어 편향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 책에는 작가가 직접 답사한 갑신정변의 우정국, 김옥균의 생가, 묘소, 유배지 등의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책상 앞에서 머리로만 쓴 글이 아니라 현장에서 가슴으로 쓴 글로 독자들이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실천한 결과입니다.
"나는 묻는다. 다만 목숨을 걸고 옳은 일을 시도한 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날 자신의 이익과 사리사욕을 위해 국가를 팔고 국민을 파는 사이비 정치인 그리고 사이비 지식인에게 김옥균의 일생이 작은 울림을 주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구절은 작가의 현실 인식과 역사관을 보여줍니다.
역사적 인물 재조명을 넘어,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성찰을 안깁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으로 성공했으나 조선은 갑신정변의 실패로 근대화에 뒤처진 역사적 아쉬움을 되새기며,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개혁 정신을 짚어줍니다.
작가는 김옥균이 그저 운이 나빴을 뿐, 영웅의 자질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친일이 아닌 극일(克日)의 기수 김옥균의 참모습을 보여줍니다. 역사의 기로에서 나라의 운명과 시대의 소명을 짊어진 그의 삶은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가르침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해야 하는지 중요한 화두를 던집니다. 왜 그는 죽어야 했는가에 대한 치열한 질문이자, 동시에 무엇이 조선을 바꾸지 못하게 했는가에 대한 탐사입니다.
갑신정변과 김옥균에 대한 팩트를 바탕으로 생생한 인물 묘사와 긴장감 넘치는 서사가 매력적인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선택과 책임, 그 결과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