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팔리는 마법은 어떻게 일어날까?
로리 서덜랜드 지음, 이지연 옮김 / 김영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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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계의 전설 데이비드 오길비가 설립한 오길비앤매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부회장 로리 서덜랜드의 책 <잘 팔리는 마법은 어떻게 일어날까?>. 카피라이터 인턴에서 15년 만에 부회장 오르며 광고업계 30년 인생 동안 펼친 마케팅의 연금술을 보여줍니다.


광고와 마케팅 현장에서 소비자 행동의 '보이지 않는 비밀'을 알려주는 로리 서덜랜드의 마법. 행동경제학 이론을 바탕으로 현장에 녹여낸 여정을 통해 마법 같은 성과를 내는 마케팅의 비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공학은 마법을 허락하지 않지만, 심리학은 마법을 허용한다." -  책 속에서


세상에는 비논리가 강력해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답을 찾을 때 늘 습관처럼 들이대는 논리를 벗어던지면, 발견되지 않은 방법이 수백 가지는 더 있는 걸 알게 됩니다. 인간의 의사결정 지배 모형은 일관성이나 확실성 따위는 없다는 걸 보여주는 <잘 팔리는 마법은 어떻게 일어날까?>. 인간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를 다루는 책이기도 합니다.


논리적으로는 전혀 말이 되지 않지만, 실제 효과가 있었던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보편적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사례들입니다. 현실에서 대부분의 일은 '심리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자선단체의 인쇄물 봉투 사례로 이해해 볼까요. 10만 개의 봉투는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배달했다고 써놓았고, 10만 개의 봉투는 기부금의 25퍼센트만큼 세금 환급을 받는다고 썼습니다. 다른 10만 개의 봉투는 양질의 봉투를 사용했고, 나머지 10만 개는 세로로 인쇄했습니다. 합리적이라면 기부할 때마다 세금 환급되는 봉투가 가장 기부자 수가 많아야 할 겁니다. 하지만 결과는 상상을 벗어납니다. 일명 '합리적' 봉투는 오히려 기부율이 낮았고, 나머지 3가지 봉투는 기부율을 10퍼센트 이상 높였다고 합니다. 질 좋은 봉투를 사용한 곳에선 고액 기부자 수가 크게 증가하기도 했습니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개선은 실패했지만, 비합리적이고 심리적인 개선은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000파운드 상당 1년 치 공짜 에너지 응모자 수보다 귀여운 펭귄 야간조명에 몇 배나 더 많은 응모자들이 몰리는 것처럼 터무니없어 보이는 인간 행동이 많습니다. 상대의 동기, 목적, 의도를 잘못 판단하면 우리는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이해할 수 없지만 성공했던 사례를 통해 반대로 평소 우리의 집착이 어땠는지 드러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현실에선 '맥락'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원유 시장에 적용되는 법칙이 주택시장엔 안 먹히는 것처럼요.


문제는 우리가 심리적 해결책을 찾는 데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합리적 설명에 집착하고, 심리적 해결책을 폄하합니다. 스스로도 합리적 가면 아래에 무의식적 동기를 숨기고 싶어 하고요.





<잘 팔리는 마법은 어떻게 일어날까?>에서는 이성의 남용은 그만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논리를 버릴 때 마법을 부릴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성공한 기업들은 정신적 연금술을 발견했기에 가능했음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인간 행동의 괴상한 측면의 주된 이유로 신호 보내기, 무의식 해킹, 최소만족, 정신물리학이라는 네 가지를 꼽습니다. 이는 황금알을 낳는 마케팅 연금술로 이어집니다.


안정적인 신호에 확신과 신뢰를 얻기에 신호 보내기를 통해 가치 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단순히 경제적 합리성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것들도 많지만, 우리는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기에 먹히는 마케팅 연금술임을 다양한 사례로 설명합니다.


무의식 해킹은 지각 해킹이라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플라시보 효과를 활용하는 겁니다. 상업용 플라시보 중 가장 성공한 건 레드불이지요. 우리는 100년 동안 아스피린의 원리를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아스피린으로 통증을 완화해왔다고 합니다. 똑같은 용량의 이부프로펜 라이신 제품이 편두통약, 긴장성두통약, 생리통약, 요통약 등으로 좁게 정의된 증상에 대한 치료제로 나눈 뉴로펜의 경우를 예로 듭니다. 포장과 약속만 다르지만 위약 효과는 사실 더 크다고 합니다.


고급 식당보다 맥도날드에서 실망할 확률이 낮은 것처럼 실망하지 않을 지점을 의미하는 최소만족 개념도 흥미롭습니다. 완벽한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현실 세계에서 효과를 내는 그런대로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는 게 더 낫다는 걸 보여줍니다.


종에 따라 지각의 신경생물학적 측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연구하는 학문인 정신물리학도 중요합니다. 객관적 실제와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 게 어떻게 다른지 이해해야 합니다. 스타벅스는 커피가 아니라 테이블을 파는 것처럼 맥락에 따라 현실은 바뀝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너무 쉽게 비합리적이라고 묘사되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천편일률적인 보편 모형에 익숙해진 채 적은 비용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걸 짚어줍니다. 생선이 아무리 맛있어도 이름이 피타고니아 이빨고기면 아무도 사지 않지만, 칠레산 농어라고 표기하면 관심을 가집니다.


매일 편하게 두르고 다닌 가정들을 내다 버린다면 당신도 마케팅의 연금술사가 될 수 있음을 응원하는 책 <잘 팔리는 마법은 어떻게 일어날까?>. 단순한 정보 전달로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활용한 진짜 광고와 마케팅의 힘을 깨닫게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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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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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 이후 과학대중화 전도사 브라이언 그린의 또 하나의 역작 <엔드 오브 타임>.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던 시점부터 종말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우주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여정을 살펴봅니다.


<엔드 오브 타임>은 인간과 우주에 관한 책입니다. 생명, 의식, 언어, 종교, 예술, 죽음 등 세상 모든 것을 주제로 방대한 빅히스토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코스모스와 사피엔스의 새로운 만남과도 같은 책입니다. 과학과 인문학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 - 책 속에서


시간의 끝 End of Time. 생명 자체는 유한합니다. 이 책은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과 그들이 쌓아 온 과학적 지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우주의 비밀이 담긴 엔트로피와 생명의 비밀이 담긴 진화입니다. 둘은 서로 협조하여 생명의 출현을 유도한 최적의 파트너였습니다.


엔트로피(entropy)는 물리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 법칙)으로 낯선 용어는 아닐 겁니다. 영화 테넷을 본 독자들도 들어본 단어입니다. 사물의 엔트로피를 반전시켜 상대적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록 만드는 미래 기술인 인버전을 통해서 말이죠.


생명 탄생도 경이롭지만, 의식적 사고가 탄생한 것은 더욱 놀랍습니다. 생명의 기원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연히 지구 환경이 생명 현상과 사고에 우호적이었기에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기후가 조금만 변해도 온갖 부작용이 나타나는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유한하지 않습니다. 행성, 별, 태양계, 은하, 블랙홀 모두 존재하다가 사라질 운명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적 사고 역시 지속될 것인가 또는 사고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질 수도 있게 될 것인가의 질문이 생겨납니다. <엔드 오브 타임>은 엔트로피를 통해 설명합니다.


혼돈으로부터 탄생한 생명과 마음, 죽음을 인식하는 마음이 살아가는 방식은 어떤 것인지 살펴봅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존재의 의미를 찾을지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주변 상황이 질서에서 무질서로 변하거나 좋은 것에서 나쁜 것으로 변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언급되는 엔트로피. 열역학 제2법칙의 숨은 의미를 알아야 이해됩니다. 제1법칙인 에너지 보존 법칙은 시간이 흘러도 에너지의 총량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엔트로피 증가 법칙인 제2법칙은 시간이 흐를수록 에너지의 품질이 저하된다는 겁니다. 미래는 과거보다 엔트로피가 높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발휘되는 에너지는 과거에 발휘되었던 에너지보다 품질이 떨어질 거라는 거죠.


그런데 지금까지의 우주와 인간의 역사를 봤을 때, 시간이 흐를수록 무질서해지는 우주에서 별, 행성, 인간과 같은 질서 정연한 구조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왜 그럴까요. 엔트로피 2단계 과정 덕분입니다. 물리계에 흐르는 에너지는 엔트로피를 외부로 방출하면서 질서를 유지하고 창출하는데 저자는 이것을 엔트로피의 춤으로 비유합니다.


엔트로피와 제2법칙이 생명과 마음이 탄생하는데 어떤 기여를 했는지 이를 알아보기 위해 빅뱅에서부터 되짚어 봅니다. 여기까지 열역학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진화가 바톤 터치 합니다. 환원주의적 관점으로 진행해온 이야기는 이제 인본주의자의 감수성으로 바뀝니다.


모든 생명 활동은 물리 법칙으로 설명된다는 것을 기초로 분자는 어떻게 일관적으로 안정적으로 일련의 화학 공정을 수행하며 생명이란 것을 탄생시켰는지, 그리고 어떻게 의식을 갖게 되었는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과정에서 자유의지에 관한 이야기는 특히 인상 깊었는데요. 우리는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에서 작용하는 법칙을 직접 볼 수 없기에 자신의 선택이 자유의지를 발휘한 결과라고 믿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일한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자유의지는 진짜로 발현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바위 입자들은 할 수 없는 일을 사람은 하는 것, 그조차도 물리 법칙에 따른 거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를 '자유'라고 표현합니다. 물리 법칙을 마음대로 바꾸는 게 아니라 나로 하여금 자유롭게 반응 보일 수 있도록 해방시켰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놀라웠습니다.


사고에 언어가 추가되면서 인간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스토리텔링의 탄생입니다. 종교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낭비적인 행동은 허락하지 않는 진화이지만, 우리는 왜 이야기에 집착했을까를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그러면서도 철학적으로 설명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풀어가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은 생존 경쟁의 장에서 어떤 이점을 가져다주었는지 들려줍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사고력은 물리 법칙을 따른다는 놀라운 명제가 이해되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생각이란 곧 정보 처리를 의미합니다. 정보 처리와 사고 기능을 엔트로피 처리 과정을 바탕으로 서술합니다.


그런데 사고 행위와 엔트로피의 관계를 이해할수록 솔직히 암울해집니다. 미래에도 우주의 팽창 가속도가 진정되지 않으면 생각하는 존재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의 종말로 결이 완성되거든요. 덧없다는 생각이 솟구칠 수밖에요.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이론은 거기에 한 방을 더합니다. 진정한 시간의 끝을 이야기하거든요. 블랙홀은 복사를 통해 엔트로피 2단계 과정을 수행 중이고, 이론대로라면 블랙홀은 붕괴합니다. 그리고 가속 팽창하는 우주의 마지막 단계에선 입자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질량 덩어리가 형성될 가능성도 없습니다. 우주는 망각의 세계로 사라집니다.


하지만 종말의 끝은 여기가 아닙니다. 이제 힉스입자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1960년대만 해도 헛소리로 치부되었던 힉스의 논리는 2012년 힉스장이 발견되면서 히어로가 됩니다. 진공의 산물인 힉스입자. 결국 텅 빈 공간, 진공의 의미가 수정됩니다. 공간을 열심히 비워도 힉스장까지 제거할 순 없게 된 겁니다. 현재는 힉스장의 값이 고정이지만, 이 힉스장의 값이 변하는 확률이 발생한다면 물리학은 다시 구축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천문학적 시간 규모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짜릿하죠.


우주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 우주의 탄생과 종말을 이야기한 <엔드 오브 타임>. 과학과 별로 친하지 않은 독자라면 열역학 이야기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례를 들 땐 동전, 커피, 신용카드 등 일상적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어 띄엄띄엄이나마 이해될 때의 만족감은 충분히 맛볼 수 있답니다. 쉽진 않지만 한 번쯤 도전해서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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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1년
이인화 지음 / 스토리프렌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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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 <영원한 제국>의 이인화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었습니다. 정조의 독살설을 소재로 한 <영원한 제국>에 이어 이번엔 세종이 만든 한글을 소재로 스릴감 넘치는 시간여행을 하는 <2061년>.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먼치킨 임금 두 분을 모두 다룬 셈이라 시리즈로 채워지는 느낌이어서 좋네요. <영원한 제국>에 푹 빠져본 독자, 팩트를 바탕으로 한 픽션 소설 좋아하는 독자라면 <2061년> 놓치지 마세요.


2061년. 인공지능의 시대입니다. 미합중국 대통령은 인간과 기계의 결혼으로 태어난 혼종입니다. 인공지능을 관리할 수 있는 특별한 인공지능을 갖춘 호모 마키나가 대통령이 된 겁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기나긴 세월이 필요하진 않았습니다.


지구온난화, 생태계 파괴, 공장형 가축 사육 등으로 고위험 전염병 바이러스가 진화했고 주기적인 팬데믹에 휩쓸린 지구. 코로나 45 이후 결국 대분열 시대가 왔습니다. 내전의 시대였고, 각종 이익이 얽히고설켜 한국이 핵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코로나 61 응급상황입니다.


뉴욕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익. 23년 동안 1896년의 제물포를 연구했던 초공간 역사학과 대학교수였습니다. 인간의 의식을 다른 인간의 뇌로 전송하는 기술이 성공하면서 2030년대 말 초보적인 시간여행이 가능해졌습니다. 시공의 균열이 있는 시간대라면 과거로 갈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들은 탐사자라고 부릅니다. 과거 누군가의 몸을 빌려 단순히 현장을 목격하는 것을 넘어 숙주의 의식을 묶어두고 탐사자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재익은 탐사자로서 1896년의 제물포로 시간여행을 하다 순간의 분노를 이기지 못해 역적 이완용에게 총을 쏜 사건 때문에 시공간 보호법 위반으로 수감 중입니다. 그런데 2061년 인류 멸망을 야기할 치명적인 전염병 바이러스 창궐이 인공지능에 의해 예측된 상황. 이 바이러스와 가장 가까운 균주가 1896년 조선에 나타났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재익은 미국 대통령의 제안으로 다시 조선으로 떠나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정보 그 자체가 아닌 정보를 말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인공지능. 수많은 언어들 중 이도 문자로 인공지능은 발화성을 증명했습니다. 이도 문자는 세종 이도가 1443년 발명한 문자입니다. 우리의 한글이 어떻게 기계어를 아우르게 되는지 그 과정이 무척 흥미진진하게 묘사됩니다. 미국에선 공공건물의 로마자 사용 금지가 내려졌고, 이도 문자 전용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훈민정음 서문에 담긴 휴머니즘을 계승하는 미국 대통령이 이도 우파라면, 본문과 후서에 담긴 인간 확장의 보편주의를 계승한 이도 좌파도 있습니다. 방역과 경제를 함께 관리하는 강력한 국제기구인 국제방역연합은 '이도의 무지개'라는 완전 방역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연방정부 전복을 목표로 하는 반이도파 단체도 있습니다.


1896년 제물포, 이도 우파와 좌파 그리고 반이도파가 나타납니다. 이번엔 이들 모두 역사에 개입하려고 작정한 상태입니다. 이들이 숨어든 1896년의 인물들은 경무관, 간호사 등 당시 전염성 바이러스로 사망한 영국인 사건에 얽힌 주변인물들입니다.


바이러스 전염의 매개가 되는 모든 생태계의 소리를 이도 문자로 받아 적어 완벽한 위기 대응을 하려는 이도의 무지개 시스템은 이도 문자의 해설인 훈민정음해례본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사라지는 방역 독재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소설 <2061년>은 이도 우파, 좌파, 반이도파가 훈민정음해례본을 없애거나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1896년 제물포는 바이러스 균주를 얻을 수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1940년 간송 전형필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기 이전에 훈민정음해례본을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는 시공간대입니다. 팩트와 픽션의 조화가 예술입니다. 날탕패, 만인계 등 1896년의 조선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나라가 망해 허물어져 가는 분위기의 제물포는 음울하면서도 살아 있습니다.


2020년 10월에 기사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사람의 기침 소리만으로 코로나19 감염을 98.5 퍼센트 MIT AI 알고리즘의 성공. 소설 <2061년>에서처럼 박쥐와 같은 동물을 포함해 바이러스와 관련된 모든 소리를 감지하는 기술로의 확장, 가능할 법한 생각이 듭니다.


언어가 바뀌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가 바뀐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처럼 지구 생명체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되는 이도 문자의 힘, 짜릿한 전율을 일으킵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 민족말살정책을 당한 우리는 더욱 실감 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훈민정음해례본이 1940년에야 공개된 사연, 고려 시대에서 조선시대로 왕조가 바뀌는 가운데 일어났던 여진과의 관계, 한글 창제 이유의 숨겨진 비밀 등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1940년 안동이 아닌 1896년 제물포에서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되었더라면 인간 집단 지성의 도약 시기가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SF 상상을 얹은 팩션 소설. 디스토피아를 그린 조지 오웰의 <1984>와 함께 이인화 작가의 <2061년>의 빅브라더는 어떤 모습인지 비교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팬데믹과 인공지능이라는 이 시대 키워드와 역사적 소재가 어우러지니 대작 아우라를 뿜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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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 미러 -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
지아 톨렌티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생각의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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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 미러>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영드 '블랙 미러'입니다. 전자기기를 껐을 때 검은 화면에 본인의 얼굴이 비친다는 의미의 블랙 미러는 디지털 시대에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부작용을 다룬 드라마입니다. 왜곡이 있는 거울을 뜻하는 트릭 미러는 블랙 미러와 닮았습니다. 이 책은 인터넷과 연결된 여성의 삶을 중심으로 나 자신, 이 국가, 이 시대의 이해를 형성한 공적 영역 속 여성의 서사를 들려줍니다. 돌려까기가 예사롭지 않아 읽는 내내 통쾌함과 자기 성찰을 동시에 안겨 주는 책입니다.


지아 톨렌티로 작가는 1988년생 필리핀계 미국인으로 <뉴요커> 기자입니다. <트릭 미러>는 여성으로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일명 페미니즘 책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페미니즘 책과는 읽는 맛이 다릅니다. 진지하고 냉철하면서도 그 속에 처절한 유머 코드가 있고, SNS적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세련된 문체를 갖춘 글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에세이인데도 저널리스트의 사회 탐사 여정을 보는 듯한 독특한 책입니다.


저자는 낯설지만, 얼마나 주목받는 (이슈 될 소지가 높은) 책인지는 책 뒷면을 빼곡히 채운 국내 영향력 있는 여성 인사들의 화려한 추천사가 대변합니다. 강화길 소설가, 김금희 소설가, 김하나 작가, 이길보라 감독, 이다혜 기자, 이슬아 작가, 장혜영 국회의원, 황선우 작가의 멘트 덕분에 기대치가 높아지네요.


지아 톨렌티노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의 수전 손택이자 인터넷 시대의 몽테뉴, 그리고 소셜 미디어 시대의 글로리아 스타이넘으로 불립니다. 그만큼 비판과 성찰의 목소리가 옹골차다는 의미일 겁니다. 사회 비판과 자전적 에세이 그 어딘가에 자리 잡은 아홉 편의 에세이에서 그 목소리를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1999년에 처음으로 인터넷 시민이 되었다는 지아 톨렌티노.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 사이트를 찾았고 HTML 문서작성법을 배우며, 열 살의 나이에 인터넷 중독이 될 것 같다는 고민을 털어놓으며 자신의 존재를 디지털 방식으로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인터넷은 광기 어리고 과열된,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지옥임에도 왜 우리는 부족한 자유 시간을 고문 같은 환경에 밀어 넣고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정체성, 자기 홍보와 필연적으로 얽히는 연대, 우리가 하는 것을 통제 못하는 현실 등 지아 톨렌티노가 짚어주는 인터넷 왜곡에 관한 이야기들은 모두가 공감하는 것들입니다. 더 나은 버전의 나, 더 진실한 나를 보여주고 하는 욕망이 온라인 자아라는 신기루를 만들어내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열여섯 살 때 리얼리티 쇼를 찍은 경험을 오픈한 저자는 전형적인 십 대 판타지이자 자기기만을 실현하는 리얼리티 쇼에 대한 생각을 들려줍니다. 내가 느끼는 대로 행동하고 싶고, 내 진짜 모습대로 살고 싶은 꿈은 그 자체로 리얼리티 쇼가 되어가고 있었고, 이제는 모두가 자기의 삶을 찍고 기록하며 남들에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현대 사회라는 인공적인 조건 아래에서 진정한 자아를 만드는 게 왜 불가능한 일인지 오히려 드러나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시장의 법칙을 이해하고 재생산하는 평범한 여성이 이상적인 여성으로 진화하는 여정도 탐구합니다. 우리는 언제는 최적화 중이라는 말이 인상 깊습니다. 시장친화적이고 주류의 존재 방식이 된 페미니즘의 응원 아래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날카롭습니다.


똑똑하고 야망 있는 여성들이 빠지는 덫, 미모 신화는 자기 관리라는 진보적인 명칭으로 바뀌어 여전히 최적화 중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이 시대는 '라이프스타일의 신화'라고 말합니다. 여성의 몸을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하나의 자산으로 포장하는 물품은 늘어가면서 정작 우리는 임금을, 육아 제도를, 정치적 대표성을 최적화하지는 못한 현실을 지적합니다.


"이제 아름다움의 신화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의 신화라는 패러다임이 생겼다. 여성은 사용 가능한 모든 기술과 자본과 정치를 끌어모아 이상적인 자아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인정사정없는 자기 계발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페미니스트적이라고 이해하고 누가 뭐래도 한 여성으로서 세상을 가장 잘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믿어야만 한다." 책 속에서 


문학 속 소녀, 성인 여성 캐릭터를 살펴보는 시간도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동화 속 소녀들은 모두가 씩씩하고, 어른 여주인공들은 모두 억울해한다고 합니다. 어린이 문학에서 소녀들은 자신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트라우마에 잡아먹히지 않지만, 성인 소설에서는 여성이 서사의 중심에 서기 위해 언제나 트라우마가 맨 앞자리에 놓인다고 합니다. 여성의 삶과 문학의 관계를 시대의 산물로 바라보는 관점이 눈길을 끕니다.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며 저널리스트 관점의 글을 쓴 지아 톨렌티노의 <트릭 미러>. 분명 느끼고 있었지만 말로 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끄집어낼 때 다뤄야 할 중요한 문제들을 짚어줍니다.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시장친화적인 페미니즘 문화를 비평하고, 종교적 도취와 마약을 교묘히 연결하는 안드로메다적 독특한 시선을 내보이고(이 파트만큼은 아직 이해 불가이지만), 성폭행과 인종차별로 얼룩진 모교의 역사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이상적인 여성의 삶에 대한 반전을 이야기하는 등 주제도 주제거니와 작가의 톡톡 튀는 문체는 관심 주제에 따라 변곡은 있겠지만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닌 것 같아요.


번역자도 고심을 많이 했을 정도라니 독자도 곱씹으며 읽어야 하는 책, 그럼에도 매력 있는 책이라는 건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삼십 대 초반의 밀레니얼 작가의 자기기만에 관한 고찰은 정말 놀랍거든요. 왜곡이 있는 거울 트릭 미러가 아닌 거울에 비친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싶은 욕망, 에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그래도 자신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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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쉬운 핑거푸드
노고은.정지윤.강정욱 지음 / iamfoodstylist(아이엠푸드스타일리스트)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손으로 간단히 집어먹을 수 있는 음식 핑거푸드. 집들이, 행사 때 멋진 케이터링을 보면 눈이 먼저 즐거워집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일상이 지속되면서 식사 한 번 함께 하기 힘든 시기, 이제는 한 그릇에 담긴 음식을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며 먹는 방식보다는 깔끔하고 편리한 핑거푸드 스타일이 선호될 것 같아요. 


요리연구가 겸 푸드디렉터 노고은, 케이터링 전문가 정지윤, 셰프 강정욱 3인이 함께 한 <참 쉬운 핑거푸드>.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핑거푸드 레시피가 150가지나 수록되어 있습니다. 


홈파티, 초대요리, 특별한 날 만들 수 있는 예쁜 핑거푸드 만나볼까요~ 케이터링을 처음 접하는 요리 초보자들도 쉽게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요리책입니다. 출장뷔페보다는 훨씬 더 콘셉트가 다양하고 프라이빗한 음식이 제공되는 케이터링 현장. 직접 케이터링을 하며 익힌 노하우가 실려 있습니다. 


크기가 작아 앙증맞다는 생각부터 먼저 들게 하는 핑거푸드. 그런데 요 작은 음식이 은근 까다롭다는 건 직접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거예요. 매번 만들던 것만 만들게 되고요. 


<참 쉬운 핑거푸드>에는 창의적인 비주얼이면서도 만들기 어렵지 않은 다양한 핑거푸드가 등장합니다. 연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연어가 얹힌 핑거푸드들이 눈길을 사로잡을 테고, 과일을 좋아한다면 과일이 얹힌 핑거푸드에 침이 고일 거예요~ 


바이츠, 브루스케타, 유부초밥, 오니기리, 파이, 카나페, 샌드위치 등 베이스도 정말 다양합니다. 위에 올라가는 재료는 고기, 채소, 과일 등에 다양한 소스를 가미할수록 색다른 핑거푸드가 줄줄이 탄생되네요. 


핑거푸드 하면 초밥, 카나페만 알고 있었는데 <참 쉬운 핑거푸드> 덕분에 이 세상 핑거푸드는 다 만난 기분이에요. 유부초밥엔 밥으로 채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이번에 탈탈 털어냈습니다. 


완전 귀여워~ 연발하게 만드는 핑거푸드. 손쉽게 집어먹기 편하게 만들어야 하니 샐러드용 채소 엔다이브를 이용한 카나페는 정말 맘에 쏙 들더라고요. 샐러드 좋아하시는 분들도 요렇게 한번 해보세요 ^^ 


투명한 컵에 만드는 보틀케이크도 달달구리 간식용으로 딱이겠더라고요. 흔히 먹는 마들렌도 

다양한 토핑을 더해 새롭게 탄생됩니다. 조금은 특별하게 먹는 음료로 깔끔하게 마무리까지. 타르트 쉘이나 기본 소스 같은  자주 등장하는 음식은 별도로 모아뒀어요.  


아이엠푸드스타일리스트에서 나온 참 쉬운 요리책 시리즈 세 번째. 충분히 한 끼가 되는 영양 가득한 핑거푸드가 소개된 <참 쉬운 핑거푸드>. 


양배추 쌈밥, 두부튀김, 스팸 등 식탁에 자주 올라오던 재료를 발견할 때면 흔한 재료들이 핑거푸드로 어떻게 변신되는지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평소 집밥을 핑거푸드처럼 응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요리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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