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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평점 :
칼 세이건 이후 과학대중화 전도사 브라이언 그린의 또 하나의 역작 <엔드 오브 타임>.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던 시점부터 종말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우주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여정을 살펴봅니다.
<엔드 오브 타임>은 인간과 우주에 관한 책입니다. 생명, 의식, 언어, 종교, 예술, 죽음 등 세상 모든 것을 주제로 방대한 빅히스토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코스모스와 사피엔스의 새로운 만남과도 같은 책입니다. 과학과 인문학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 - 책 속에서
시간의 끝 End of Time. 생명 자체는 유한합니다. 이 책은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과 그들이 쌓아 온 과학적 지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우주의 비밀이 담긴 엔트로피와 생명의 비밀이 담긴 진화입니다. 둘은 서로 협조하여 생명의 출현을 유도한 최적의 파트너였습니다.
엔트로피(entropy)는 물리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 법칙)으로 낯선 용어는 아닐 겁니다. 영화 테넷을 본 독자들도 들어본 단어입니다. 사물의 엔트로피를 반전시켜 상대적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록 만드는 미래 기술인 인버전을 통해서 말이죠.
생명 탄생도 경이롭지만, 의식적 사고가 탄생한 것은 더욱 놀랍습니다. 생명의 기원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연히 지구 환경이 생명 현상과 사고에 우호적이었기에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기후가 조금만 변해도 온갖 부작용이 나타나는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유한하지 않습니다. 행성, 별, 태양계, 은하, 블랙홀 모두 존재하다가 사라질 운명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적 사고 역시 지속될 것인가 또는 사고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질 수도 있게 될 것인가의 질문이 생겨납니다. <엔드 오브 타임>은 엔트로피를 통해 설명합니다.
혼돈으로부터 탄생한 생명과 마음, 죽음을 인식하는 마음이 살아가는 방식은 어떤 것인지 살펴봅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존재의 의미를 찾을지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주변 상황이 질서에서 무질서로 변하거나 좋은 것에서 나쁜 것으로 변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언급되는 엔트로피. 열역학 제2법칙의 숨은 의미를 알아야 이해됩니다. 제1법칙인 에너지 보존 법칙은 시간이 흘러도 에너지의 총량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엔트로피 증가 법칙인 제2법칙은 시간이 흐를수록 에너지의 품질이 저하된다는 겁니다. 미래는 과거보다 엔트로피가 높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발휘되는 에너지는 과거에 발휘되었던 에너지보다 품질이 떨어질 거라는 거죠.
그런데 지금까지의 우주와 인간의 역사를 봤을 때, 시간이 흐를수록 무질서해지는 우주에서 별, 행성, 인간과 같은 질서 정연한 구조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왜 그럴까요. 엔트로피 2단계 과정 덕분입니다. 물리계에 흐르는 에너지는 엔트로피를 외부로 방출하면서 질서를 유지하고 창출하는데 저자는 이것을 엔트로피의 춤으로 비유합니다.
엔트로피와 제2법칙이 생명과 마음이 탄생하는데 어떤 기여를 했는지 이를 알아보기 위해 빅뱅에서부터 되짚어 봅니다. 여기까지 열역학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진화가 바톤 터치 합니다. 환원주의적 관점으로 진행해온 이야기는 이제 인본주의자의 감수성으로 바뀝니다.
모든 생명 활동은 물리 법칙으로 설명된다는 것을 기초로 분자는 어떻게 일관적으로 안정적으로 일련의 화학 공정을 수행하며 생명이란 것을 탄생시켰는지, 그리고 어떻게 의식을 갖게 되었는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과정에서 자유의지에 관한 이야기는 특히 인상 깊었는데요. 우리는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에서 작용하는 법칙을 직접 볼 수 없기에 자신의 선택이 자유의지를 발휘한 결과라고 믿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일한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자유의지는 진짜로 발현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바위 입자들은 할 수 없는 일을 사람은 하는 것, 그조차도 물리 법칙에 따른 거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를 '자유'라고 표현합니다. 물리 법칙을 마음대로 바꾸는 게 아니라 나로 하여금 자유롭게 반응 보일 수 있도록 해방시켰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놀라웠습니다.
사고에 언어가 추가되면서 인간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스토리텔링의 탄생입니다. 종교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낭비적인 행동은 허락하지 않는 진화이지만, 우리는 왜 이야기에 집착했을까를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그러면서도 철학적으로 설명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풀어가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은 생존 경쟁의 장에서 어떤 이점을 가져다주었는지 들려줍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사고력은 물리 법칙을 따른다는 놀라운 명제가 이해되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생각이란 곧 정보 처리를 의미합니다. 정보 처리와 사고 기능을 엔트로피 처리 과정을 바탕으로 서술합니다.
그런데 사고 행위와 엔트로피의 관계를 이해할수록 솔직히 암울해집니다. 미래에도 우주의 팽창 가속도가 진정되지 않으면 생각하는 존재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의 종말로 결이 완성되거든요. 덧없다는 생각이 솟구칠 수밖에요.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이론은 거기에 한 방을 더합니다. 진정한 시간의 끝을 이야기하거든요. 블랙홀은 복사를 통해 엔트로피 2단계 과정을 수행 중이고, 이론대로라면 블랙홀은 붕괴합니다. 그리고 가속 팽창하는 우주의 마지막 단계에선 입자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질량 덩어리가 형성될 가능성도 없습니다. 우주는 망각의 세계로 사라집니다.
하지만 종말의 끝은 여기가 아닙니다. 이제 힉스입자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1960년대만 해도 헛소리로 치부되었던 힉스의 논리는 2012년 힉스장이 발견되면서 히어로가 됩니다. 진공의 산물인 힉스입자. 결국 텅 빈 공간, 진공의 의미가 수정됩니다. 공간을 열심히 비워도 힉스장까지 제거할 순 없게 된 겁니다. 현재는 힉스장의 값이 고정이지만, 이 힉스장의 값이 변하는 확률이 발생한다면 물리학은 다시 구축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천문학적 시간 규모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짜릿하죠.
우주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 우주의 탄생과 종말을 이야기한 <엔드 오브 타임>. 과학과 별로 친하지 않은 독자라면 열역학 이야기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례를 들 땐 동전, 커피, 신용카드 등 일상적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어 띄엄띄엄이나마 이해될 때의 만족감은 충분히 맛볼 수 있답니다. 쉽진 않지만 한 번쯤 도전해서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