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a 2004 전시 때문에 갔지만, 그보다는 '피에르&쥘' 회고전 "Beautiful Dragon"이 훨씬 인상깊었다. 피에르&쥘은 1970년대부터 함께 동거하면서 작품활동을 해온 게이 예술가. 피에르는 사진가고, 쥘은 화가였는데 둘이 함께 작업하면서 사진에 회화적 윤곽선을 입히는 활동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부터 비교적 최근(2003년) 작품까지 회고전 형식으로 열렸다. 레드와 엘로우를 기본색으로 전시벽 전체에 감쌌다. 한쪽 벽이 모두 빨간색이면, 잇대어 있는 다른 벽은 온통 노란색이다. 이런 식으로 전시관을 꾸미고 그 위에 작품을 디스플레이했다.

액자 역시 작품성이 뛰어나다. 액자 장식은 사진의 느낌을 고스란히 이어주는 무늬, 색을 사용해 작품의 완결성(통일감)을 높였다. 치밀한 예술가란 점은 이런 데서 알 수 있다. 반짝이는 펄은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데코레이션 방법. 반짝임 때문에 사진의 느낌은 굉장히 키치적이다. 마치 고급스럽게 꾸민다고 꾸몄는데, 그 때문에 더 싸구려 같아 보이는 사진관 배경(돌이나 결혼 사진 배경)처럼 설정이 굉장히 생경스럽다. 그런데, 모델의 표정이나 포즈만큼은 너무나도 진실해서 이 둘이 묘하게 어울린다. 예상외로 깜찍한 것이다. 환상적이랄까? (가서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게다.)

모델의 바디라인은 에로틱하고, 몽환적이어서 사진을 보고 있으면 어떤 달콤함에 빠져드는데... 그 달콤함은 젊은 남성의 몸이 주는 탄력적인 느낌과 그 몸을 바라보는 작가의 사랑스런 시선에서 비롯된 것 같다. 뭐랄까. 연정을 품은 눈길이랄까? 모델은 거의 90%가 동양 남자(일본, 베트남, 중국)인데, 이들을 사진에 담는 작가는 서양인이다. 어쩔 수 없이 동양의 젊은 남자에게 보내는 연모의 정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다. 뭐,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곤 말 못하겠지만 막연히 좋고, 막연히 사랑스럽고, 막연히 정이 가는 느낌은 비단 서양->동양의 경우만 있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작가들은 꿈많은 게이다. 전시실이나 작가나, 작품이나 꽤 앙증맞다.

작품들이 일단 거부감이 없고, 작업솜씨가 산뜻하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은 전시다. 보고 있으면 '풋!' 웃음이 터질 법도 한, 피에르&쥘의 동양예찬이 파리 시각예술계에 던졌을 파장이 어림되는 재밌는 전시. 전시실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좋고, 피에르&쥘의 (아시아) 환상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한편 2,3층 전시실에서는 'Sema 2004' 전시가 한창이다. 동시대의 사회문화적 코드를 작가마다의 독창적 시각과 방법으로 작품화 시킨 전시로, 크게 6개의 주제로 구분된다. '소비게임-공룡의 트릭', 'Replay-이식', '키덜트(Kidult)', '루키즘-외모지상주의', '농담-현실의 틈새를 스며드는 아햏햏스러움', '혼자놀기-섬,꿈, 변신'이 그것이다.

이중 가장 재밌었고 또 자연스러웠던 전시는 네번째 주제를 표현한 '키덜트'. 작품 수는 많지 않았지만 키덜트의 감성을 억지스럽지 않게 잘 표현했다. 이차원의 벽면에 검정 테잎을 부쳐 Cyworld 미니홈피처럼 꾸민'Welcome to my room'이 첫번째 작품. 만화적인 디테일이, 앙증맞은 집을 온라인상에 지어놓고 즐거워 하는 키덜드의 감수성을 잘 말해준다.

바로 그 옆에는 아이의 몸에 30대의 얼굴(이마의 작은 주름, 거친 피부, 그리고 수염)을 붙인 미니어쳐 인물조각이 놓여 있다. 손에는 얼굴 없는 어린애를 들고 있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 그렇게 당연할 수가 없다. 과장이나 왜곡 없이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 작품. 아이디어도 새롭지 않은데 그런 조합이 의외로 충격적이다. 보면 그냥 '섬뜩'하다. 바로 내 모습이니까. (이 작품이 맘에 들어서 사진 좀 찍으렸더니, 전시관리자가 한시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감시중이었다. 몇 번이나 기회를 노리다가 마침내 찍으려는 찰나, 갑자기 나타난 감시자 때문에 놀라서 손이 흔들렸다. 으아... 찍기는 했으나 형태가 허물어진 사진이 되고 말았다)

가장 표면적이라고 느꼈던 전시는 제5주제 '아햏햏스러움'과 제6주제 '혼자놀기'. 물론 그 중에서도 아기자기하게 주제를 잘 표현한 '넓적 오리너구리의 하루'(아... 작품 제목 정확히 생각 안남, 사진 전시)가 있었다. 참 아햏햏다웠던 소품을 이용해(특별제작한 '넓적 오리 너구리', 아래 사진 중 첫째줄 두번째) 사진 전시를 했는데, 마지막에 사진의 모델 '넓적 오리 너구리' 실물을 전시해 더 즐거웠다. ^^

전시5는 작품의 완성도가 좀 떨어지고 노력이 부족해 보였던 반면, 전시6은 큐레이팅이 부족해 보였다. 가는 철사로 조형물을 만들어 벽에 걸거나 부착한 작품이 있었는데, 작품의 존재감이 너무 없어서 거기에 작품이 있었는지도 모른채 지나갔다가 전시 카달로그를 보고서야 찾아냈다. 조명에 좀더 신경써서 관람자의 시선을 끌어주면 어땠을까 싶다. 또 투명고무로 만든 '물웅덩이' 작품은(바닥에 깔려 있었음) 사람들이 밟고 지나갈 정도로 팽개쳐져 있었다. 세심하게 보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을 욕해도 할 수 없지만, 관람자들이 본의 아니게 작품을 밟고 지나가는 일은 없도록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다 관람하는데 3시간이 걸렸다. 좀더 볼 수도 있었는데 폐관시간이 다 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 혹시 가까운 시일에 시립미술관에 갈 생각이라면 넉넉히 시간을 두고 찾았으면 한다. 또, 초입에 있는 분수를 놓치지 말길. 물줄기가 가져다주는 청량함과 리듬감, 그리고 물줄기가 바닥에 부딪힐 때 나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전시도 좋지만 이 분수대부터 미술관 앞마당까지 이르는 포장길이 참 예뻐 사진찍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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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4-19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되면 한번 가볼까 했는데 님의 글을 보니 빨리 가보고 싶군요.
다음주에 다녀와야겠어요..

요다 2004-04-20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좋은 생각입니다. :)
 

절은 몇 군데 가보지 못한 내가, kimji님을 졸라 '마곡사'란 곳을 찾게 되었다. 우연히 문화일보 주말 섹션에 난 기사를 보고 마음이 뺏겨 걸음을 낸 것인데, 절보다 유채꽃이 먼저 우리를 반겼다.


서울에서 공주까지 1시 50여분, 첫만남이라 하기 무색할 만큼 종알종알 입아프게 얘기하며 오는 동안 샌드위치로 채운 배가 홀쭉해졌다. 하여 태화식당으로 직행. 표고찌개 정식을 한상 차려놓고 먹기 시작하는데, 갖가지 산나물과 봄나물, 도토리무침, 감 장아찌, 버섯 밑둥 장아찌, 동치미, 좁쌀밥 거기에 시장이 반찬이었으니 밥 한 공기는 뚝딱! 이다.


옆 마루방에는 젊은 할아버지, 할머니 무리가 점심이라 하기에는 너무 과하게 밥상을 받고 계셨다. 무슨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상춘 나들이라도 떠난 모양이었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밥 먹기가 좀 괴로울 지경이었다. 그 덕분에 서비스로 모듬전에, 호박엿 한 판까지 얻어 먹었으니 인심좋은 식당 주인을 치하해야 할까, 시끄럽던 그들을 치하해야 할까...?


유채밭 앞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슬슬 길을 나섰다. '마곡사 가는길' 표지판을 따라 꽃나무가 듬성듬성한 길을 걷다보니 더덕이나 취, 말린 표고를 팔러 나온 시골 아낙도 보이고 경운기에 아침에 딴 듯한 양송이를 한가득 싣고 와 호객행위하는 늙은 총각도 보인다. 양송이 한 박스에 4만원이라는데 그게 싼 건지 비싼 건지 도통 모르겠고 현금도 얼마 없어 그냥 지나간다.


구불구불 돌고 돌아야 절입구에 도착한다고 해서 이름이 '마곡사'라는 kimji님의 설명도 듣고(마곡사 홈페이지www.magoksa.or.kr에는 약간 다른 유래가 소개되어 있다), 손가락만한 물고기들이 휘휘 헤엄치는 모양도 구경하노라니 어느새 '해탈문' 앞이다. 보통 절은 일주문-천왕문-해탈문-본전 식으로 나열되는데 이 절은 천왕문과 해탈문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단다. 혼자 왔으면 그런 줄 몰랐을텐데 자세한 설명에 그저 고개를 끄덕 끄덕.


천왕문 뒤는 '극락교'다. 이 다리를 건너면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이름이 '극락교'란다. 이처럼 종교적 건축물은 속세와 경내를 가르는 여러 경계를 만들어 놓고 방문자의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대웅보전 앞마당에서는 '마곡사 갑신년 윤달생전예수재 49일 지장기도 봉행'이 한참이었다. 마곡사 홈페이지를 보니 '생전 예수재'란, 살아 생전에 미리 자신이 다생에 지은 죄의 업장을 소멸하는 의식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 의식을 행하면 자신은 물론 자손만대까지 복받는다는 보충설명.


이 행사를 직접보면 이렇다. 신자들은 제가끔 자기 분수에 맞게 구입한 다라니경을 머리에 이고 주지스님을 따라 경내를 순례한다. 5층 석탑을 중심으로 경내를 몇 십 바퀴고 도는 동안 끊임없이 '지장보살'을 왼다. 행렬 왼편엔 한 무리의 스님이 마이크 앞에서 '지장보살'을 외는 한편, 북과 쾡과리를 쉬지 않고 친다. 본전 현판에서부터 마당 모퉁이까지는 오색 띠가 늘어졌다. 주문을 외는 스님들 앞은 부처님께 올리는 제사상이다. 한 차례 순례가 끝나고 불자들이 다리를 쉬는 동안 제사상 앞에서 6명의 스님들이 범패춤을 춘다. 이런 식으로 몇 시간이고 '지장보살'을 외고 경내를 순례하고, 춤을 추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고행은 고행이다.

덕분에 힘들게 찾은 마곡사는, 느긋하고 조용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식당에서부터 절까지) 온통 시끌벅적했다. 최대용량 엠프를 사용해서 주문외는 소리가 무슨 채소 트럭 안내방송 같다. 가끔 오는 관광객이 본사 행사에 토달기도 그렇고, 아무쪼록 봉행에 동참한 신자들 잘되길 빌어본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이 엠프를 타고 왕왕되는 판국에도 절구경은 해야겠기에 대웅보전-대광보전-김구 선생의 향나무를 돌아보았다. 팔작지붕에 다포양식은 맨눈에도 그냥 확 들어오는 특징인데, 확실히 처마가 화려했다. 단청이 원래대로 울긋불긋 했더라면 그 화려함에 눈까지 아프겠다. 대광보전 천장은 우물정자 짜임이라는데, 그것까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마곡사 홈페이지에 뜬 사진을 보고서야 전체 형상을 가늠했으니, 과연 제대로 보고 온 건가 싶기도 하다.

기억할 만한 건, 대광보전의 현판이 표암 강세황의 필력이라는 것. 힘차게 요동치는 선을 느낄 수 있다. 강세황은 김홍도의 그림, 시 스승으로 죽기 전 김홍도의 금강전도 화첩기행에 동행했을 정도로 절친했던 사제다. 김홍도와 강세황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화인열전> 김홍도 편을 참고.

그밖의 부속건물로는 요사채인 심검당(지혜의 칼을 갈아 무명無明의 풀을 벤다는 뜻)과 11명의 나한을 모신 별당(이름 기억 안남)이 있다. 재밌었던 건, 심검당 출입문 앞에 있던 알림판. '그대의 발길을 돌리는 곳'이라 써 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가고자 했으면 이처럼 재치있는 안내판을 놓았을까?


 

 

 

 

 

 

 

 

 

사찰 주변에는 총 5개의 암자(영은암, 은적암, 백련암, 대원암, 토굴암)가 있고, 말사(큰 절에 딸린 작은 절)로는 갑사, 동학사, 신원사 3곳이 있다. kimji님 말로는 '갑사'는 가을이 좋다고 하니까 그때 한번 찾아가보는 것도 좋을 듯.

이번 공주행은 발걸음은 쉽게 냈는데 차분히 절을 돌아보기에는 힘든 환경이라 아쉬움이 컸다. 나중에 다시 찾는다면, 조선중기 2층 건물의 특색을 잘 살피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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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4-1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다님께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정말 여행기를 담백하게 잘 쓰시는것 같습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의 여지도 남겨 주시구요^^
님과 kimji님의 동반 여행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요다 2004-04-18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늘 플라시보님과 문답을.. ^^
하여간, 사진을 보니 마곡사 기행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만연한 봄날씨에 얼굴은 다 탔어도요.

2004-04-18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어떤 이유로 여행기를 쓰게 될까?                                                                                      여행을 하는 내내 나는 쉽게 엎어지는 일상에 대해 생각했다. 악마처럼 튼튼해 보여도, 그 중에 가장 핵심적인 '직작생활'을 지워버리면 금새 생활공간과 내용이 바뀐다. 회사를 그만 두었으므로 여행도 떠나올 수 있다. 이것만큼 자명한 건 없다.

현재 내 삶의 정체성은 과거의 영향 아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롭다. 아직 미래가 불안할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이럴 때 떠난 여행이었으니, 여행기 또한 한없이 가벼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의 2/3는 우울했으며, 애달펐다.

하루키의 여행기는 일의 연속선상에 있었다. 3년간의 여행에서 소설 2편을 완성했고, 에세이를 수 십편 썼으며, 2권의 책을 번역했다.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먼 북소리>라는 여행기마저 출간했다. 그의 여행기는 따라서 '공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부담감이 없었던 나는 무작정 놀면 되지 생각했다. 노는 것이 남는 거란 생각에. 음... 그런데 노는 것 또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결국은 여행도 '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된 것. 하나의 사이클 처럼 직장을 그만두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새 일자리를 잡고 다시 열심히 일한다. 그리고 다시 긴 틈이 나면 여행을 떠난다. 어디까지나 재충전을 위한 여행이다. 따라서, 하나라도 더 보고 돌아가야 한다. 그림, 궁전, 정원, 도시 분위기 무엇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다, 같은. 지금 본 것들이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는 강박관념. 그래서 몸은 자유로웠으나, 정신은 자유롭지 못했다.

마음의 긴장. 독을 알게 된 후(나는... 여행 초반엔 뭐가 문제인지도 몰랐다. 전혀! 날아가는 총알처럼 잽싸게 관광지를 돌았을 뿐) , 이번 여행에서 이것부터 무장해제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적당히 해야지 너무 많이 하면, 삶은 시금치처럼 될까 그것도 걱정되었다. 긴장과 이완, 어떤 타입에도 완전히 매몰되선 안 된다. 그 사잇길을 찾을 것, 중간의 중간을 걸을 것. (아, 무슨 여행이 이렇게 어렵담! 흑흑흑...ㅠㅠ)

여행은 마음의 추를 제자리에 놓는 일이 되었다. 어디쯤이 제자리인지는 알 수도 없었지만. 평상심을 찾을 것... 이것이 화두였다. 본래의 마음을 찾을 것. 재촉하지도 느긋하지도 말 것.

이런 생각을 안고 돌아다니는 사이, 나는 사는 게 어쩜 이리 비슷할까 신기했다. 유학생들이나, 파리지엔이나 다 불확실한 미래를 어떻게라도 확정지어보려고 애쓰고 있다. 현재에 집중하는 거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티기. 버티기에 무릎끓은 자들은 다시 실업상태에 놓이거나, 고국으로 돌아간다. 매일 스스로를 시험하는 것이다. (시험은 하지만, 되돌아보기는 할까? 지금까지 쭉 이 길만 보고 살았으니까 오늘도 주어진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나에게는 다행히 지금이 그런 시기다. 반성적으로 사유하기.)

그리곤 생각했다. '다들 똑같잖아? 헤-... 나만 힘들고, 나만 괴롭고, 나만 불확실한 거 아니잖아? 뭐야... 별것도 아닌 걸, 여기와서 배우네'라고. 그러고 나서 세계의 끝에서 하루키 할아버지가 웃었던 것처럼 "우호우호, 우호우호" 웃었다. 삶이 기이했다.

과연, 내 마음의 추는 제자리를 잡았을까? 역시 알 수 없지만, 나는 뭔가 자란 느낌이다. 애처럼 떼쓰지 않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게 된 것이다. 큰 수확, 감사하다.

늘 조급했는데, 그 조급함을 한 뜸 늦춘 여행. 여행기는 그 이야기가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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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10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다 2004-04-12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곡사, 저는 처음이에요. 좋은 절 같은데 가기 전에 공부 좀 해야겠네요. 자세한 건 핸드폰으로 문자 쳤습니다.^^

플라시보 2004-04-1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어떤 곳이건 여행이라 불리울 만한 곳을 다니지 않았던 저로써는 저런 님의 갈등마저 한없이 부럽게만 보입니다.^^
 

무의식 중에 자신의 현재를 점검한다는 의미다. 적어도 나에게는.                                              친구와 이야길 하다가, 언제 어떻게 정리되었는진 모르지만 최근에 내가 삶에서 받은 느낌이나 생각이 말로 되뇌어진다. 그러면 그때서야 '아.... 내가 이런 생각을 다했어? 아, 그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절친한 친구와의 만남이 늘 기대된다. 이번엔 내가 어떤 이야길 하게 될까, 뭐가 젤 좋았다고 말할까? 이런 기대. 나에 대해서는, 혹은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꾀고 있으리라 오판하기 쉽지만 나는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결코 뭘 느끼고, 보고 생각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오늘은 "약삭빠른 요즘 여자애들"에 대해서 이야길 나눴다. 친구는 "사장의 애인은 대개가 젊고 예쁜 것들이야. 걔들은 그런 식으로 권력을 쉽게 얻지. 일은 남보다 덜 하지만, 누구보다 더 인정받는 애들.. 그런 얘들을 보면 허탈해져."라고 말했다.

나는 "그애들을 보면 나는 재밌어. 걔들은 어떤 점에서는 나보다 스킬이 좋은 애들이거든. 걔들이 그렇게 사는 건, 어떤 뜻이 있어서거나 뭔가 (사장에 대해서 또는 집착하는 그 무엇에 대해서) 의미심장해서가 아니라 단지 쉽게 강 건너는 법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걔들이 깡통처럼 보이거나 가볍게 보이지 않아. 다만, 이래. '대체 쟤는 언제 저런 스킬을 익힌 거지? 내겐 그런 스킬은 없지만, 그걸 볼 줄 아는 눈은 있다고. 야, 부탁인데 사기 치고 살지 말란 말야!' 근데, 그것도 웃기는 거야. 내가 그애들처럼 살지 않는 건 내가 더 도덕적이거나 더 깨끗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런 스킬이 없어서야. 그래서 걔들이 얄미운 거겠지. 솔직한 말로. 대충 즐기면서 향락적으로 사는 걸, 할 수가 없는 거야. '안 하겠다!'가 아니라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 거지. 그런 게 난 참 재밌어. 뭐랄까, 한없이 통속적인 거 있지?" 

어느새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약삭빠른 계집아이에 대해서. 그들의 그 한없는 속도감에 대해서. 그리고 덧붙이기를...

"내가 허탈할 때는 말이지. 어떤 일이건 너무 쉽게 그것도 깔끔하게 해내는 얘들을 볼 때야. 물론, 그 애 나름대로는 힘들고 어려웠을 테지. 하지만 그 속내를 들키지 않고 속도감 있게 일을 처리하는 얘들이 있다고. 나는 그런 애들을 볼 때마다 질투 나. <천재들의 방식 스프레차투라>란 책이 나와 있긴 하더만..., 그것도 스킬이겠지? 둘 다 똑같이 내겐 없는 스킬인데...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맥 못추게 하지. 왜냐면... 후자쪽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 같진 않거든. 나도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은데 말야.. 근데 그 방법을 모르겠으니까, 답답한 거지. ^^;;"

이런 생각.. 왜 했을까? 되짚어보니까 '사회생활 4년'이 그래도 답이 아닐까 싶었다. 사회생활 하면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건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개중에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이 몇 있다. 대개가 '끝내주게 일 잘하는 애'다. 완벽한 일처리 솜씨는 상당히 쿨하다. 그 시원함을 나는 한동안 동경했고, 시기했고, 좋아했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참 대충대충이지만 그 동경과 시기가 (내게) 어떤 단단함을 만들어 준 것 같다. 그리고, 누구와 견주어 일한대도 완벽한 일처리까지는 못되도, '인상에 남을 만큼의 솜씨'는 가진 것 같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과 '절대로 할 수 없는 일' 중에서 나는 언제나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 왔다.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잘 할 수 있는 일'은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할 수 있으니, 밑지는 게 없다. 그런 신조로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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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4-13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과 비슷한것 같습니다. 절대로 할 수 없을것 같은 일들은 아예 근처조자 가질 않았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고 쓸데없는 발버둥을 줄임으로써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 하는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미리 포기해 버렸으므로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사실인지의 여부에 대해 의문이 남습니다. 하지만 아무튼 저는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들만 골라서 해 왔습니다. 귀찮기도 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노력하는 타입도 열중하는 타입도 아니여서 말이죠. 님이 말씀하신 인상에 남을 만큼의 솜씨. 저도 그런걸 단 하나라도 가졌는지 되물어보게 됩니다.

요다 2004-04-15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플라시보님, 답신이 늦어 죄송하지마는...
인상에 남을 만큼의 솜씨, 그보다 더한 솜씨는 벌써 갖고 계십니다.
서재에 득시글하는 사람들이 그 증거 아닐까요? ^^
(이렇게 글도 남기고 하는 걸 보니, 많이 좋아지신듯. 앞으로도 더 잘 드세요.)
 

1. 급진적 하모니/Radical Harmonies
감독 : 디 모스배커
미국/ 2002/ 87분35초/ Beta/ 다큐멘터리

< 급진적 하모니 >는 오늘날 번창한 얼터너티브 음악산업에 생명을 불어넣은 여성음악 문화운동의 연대기이다. 이 영화는 페스티발과 공연, 인터뷰와 기록을 통해 1970, 80년대의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문화에서 일어난 음악 장르들의 풍부한 유산을 보도한다.

여성음악 문화운동은 다양성과 고결함, 권리 부여를 약속하면서 여성 음악가, 프로듀서, 음반 관계자, 음악 엔지니어의 발전을 이루어냈다. 싱어 송 라이터이자 운동가인 크리스 윌리엄슨, 마지 아담, 린다 틸러리 등이 뿌리 깊은 운동의 실패와 승리의 순간을 되돌아본다. 이 선구적 다큐멘터리는 여성음악 문화운동의 놀랄 만한 깊이와 범위를 살펴보는 첫걸음이다.

< 급진적 하모니 >에는 멕 크리스티안, 홀리 니어, 메리 왓킨스, 로니 길버트를 비롯한 포크 블루스 아티스트와 인디고 걸스, 애니 디프랑코, 비치 앤드 애니멀, 멜리사 페릭 같은 컨템퍼러리 포크락과 펑크 아티스트도 만날 수 있다. 이들의 녹음, 제작과 배급을 지원했던 제작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 급진적 하모니 >는 여성음악 운동이 어떻게 수많은 여성들의 삶을 바꾸고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는지 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디 모스배커(Dee Mosbacher) 디 모스배커 감독은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 Straight from the Heart >를 비롯하여 < All God's Children >, < Out for a Change: Addressing Homophobia in Women's Sports >를 포함해 많은 다큐멘터리 수상작을 제작, 감독하였다. 그가 총제작을 맡은 < De Colores >는 2001년 LA Outfest에서 관객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대부분의 미국과 캐나다 의과대학 과정에 포함된 20분짜리 영화 < Closets are Health Hazards: Gay and Lesbian Physicians Come Out >, < Lesbian Physicians on Practice, Patients, and Power >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디 모스배커 감독은 정신과 전문의며, 비영리 단체인 ‘Woman Vision’의 설립자이자 회장으로 교육영화와 비디오 제작을 통한 사회 정의 증진에 힘쓰고 있다.


2. 힙합의 여전사/Nobody Knows My Name
감독 : 레이첼 레이미스트
미국/ 1999/ 58분/ Beta/ 다큐멘터리
LA 팬-아프리칸 영화제

< 힙합의 여전사 >는 힙합을 사랑하는 여성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에 출연한 재능있는 여성 예술가들은 자기 표현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는 더욱 분투해야만 한다.

'B-Boy Summit'의 창시자로서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지만 여성 커뮤니티를 갈망하고 있는 ‘아시아 원’,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트 정키즈’의 유일한 여성 멤버인 ‘DJ 심포니’, 메이저 레코드사에 계약되어 있지만 격한 삶을 살고 있는 ‘리쉬아’, 힙합 패밀리를 키우고 있는 ‘리사’, L.A. 힙합 언더그라운드에서 성공한 ‘메두사’, 본인의 재능이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되길 바라는 ‘Cripette’의 전 멤버인 ‘티-러브’와 같은 여성들에 대한 숨김없는 관찰을 통해서 레이첼 레이미스트 감독은 남성 중심적인 하위 문화 속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찾고 싶어하는 매혹적이고 다양한 페미니스트 커뮤니티를 탐구한다. 결국 감독은 그들이 갖고자 노력해왔던 목소리를 그들에게 줌으로써 영화 속의 자기 실현적인 여성들에게 힘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레이첼 레이미스트(Rachel Raimist)
영화 감독이자, 교육가, 활동가, 커뮤니티 조직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어머니와 유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뉴욕 북부에서 자랐다. 1995년 UCLA에서 영화와 텔레비전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고, 1999년 같은 학교에서 영화 연출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 긍정적인 엔터테인먼트 제작을 위해 독립 예술가들의 집단인 독립 제작사 ‘Unleashed Entertainment’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국제영화제 및 TV를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미국의 TV 시사 프로그램인 ‘60분’에도 소개되었다. 현재 그녀는 UCI(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에서 비디오 제작을 가르치며 자전적 일기 형식을 띈 다큐멘터리 < Digging Up Roots >를 준비 중이다.


3. 가족의 초상/Shara
감독 : 가와세 나오미
일본/ 2003/ 99분/ 35mm/ 드라마
2004 로테르담 영화제
2003 토론토 영화제

가와세 나오미 감독 자신만의 스타일로 영화 만들기는 이전 작품들인 <수자쿠>와 <호타루>를 통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두 영화와 마찬가지로 <가족의 초상>도 가와세 감독이 태어난 지방인 나라에서 촬영되었다. 풍부한 불교적 역사를 지닌 나라는 선조들의 숨결, 고통과 기쁨이 아직도 느껴지는 곳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에겐 과거로부터 온 메아리가 미래를 위한 희망을 의미하고 있다.

한 여름, 지조 축제 기간동안 슌의 쌍둥이 형제인 케이가 사라진다. 그후로 5년이 지났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 다쿠, 임신한 어머니 레이코(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직접 연기하였다), 그리고 이제 17살이 된 슌, 모두들 여전히 마음은 아프지만 일상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다쿠는 매년 열리는 거리 축제 준비로 바쁘고,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레이코는 정원을 가꾸고, 내성적인 슌은 실종된 케이의 실물 크기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슌의 여자 친구인 유의 가족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감정의 앙금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다. 성공적인 축제와 출산, 그리고 유의 어머니의 폭로로 인해 모두에게 해결의 실마리가 열리는데…
달콤하고 구슬픈 음악에서부터 정교한 편집, 살아있는 듯한 등장인물에 이르기까지 삶의 기쁨과 숨막힐 듯 아름다운 분위기를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와세 나오미(Kawase Naomi) 1969년 나라에서 태어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오사카의 예술학교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하는 동안 다수의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감독 자신의 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다큐멘터리 <따뜻한 포옹 Bracing>(1992)과 <달팽이 Katatsumor>(1994)는 영화제 수상작이며, 첫 장편 영화 <수자쿠>로 1997년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칸 영화제에서는 황금 카메라상을 수상하였다.


4. 사랑은 어려워/Easy
감독 : 제인 와인스톡
미국/ 2003/ 99분/ 35mm/ 코미디
2004 선댄스 영화제
2003 토론토 영화제

 
현대 도시의 젊은 미혼 여성들과 낯선 남자들의 사랑에 대한 가벼운 가십거리가 신문 가판대나 텔레비전, 극장에 넘쳐 난다. 영화 < 사랑은 어려워 >는 화려하진 않지만,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인생의 일면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로맨틱 코미디 가운데서도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이다.

빛나는 지성파 배우인 마가레타 모레가 연기하는 제이미 해리스는 비현실적이며 밝은 성격을 가진 25세 여성으로 특수제품의 이름 짓는 일을 하고 있다. 제이미는 여러 물건에 주체성을 불어넣고 있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녀는 형편없는 남자들과의 데이트 때문에 누구를 믿어야 할지, 어떻게 진실한 관계를 찾아야 할지 몰라 고민한다. 어느날 썩 괜찮은 남자 두 명이 그녀의 궤도에 진입하게 되고 제이미는 가장 두려워하던 상황에 직면한다.

셰익스피어 희극처럼 유쾌하고 생생한 뉘앙스가 살아 있는 제인 와인스톡 감독의 각본은 재기 넘치는 경쟁의 열정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기까지, 인물들의 꿈틀거리는 몸부림을 지켜보는 맛난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랑은 어렵다…

나는 < 사랑은 어려워 >를 만들면서 로맨스를 미화하지 않고 로맨틱한 삶을 탐구하고 싶었다. 난 언제나 (대부분 40년대의) 로맨틱 코미디를 사랑했지만, 또한 냉혹한 진실을 담은 영화도 사랑했다. 나는
< 사랑은 어려워 >에 이 두 가지를 모두 담으려고 했다. <사랑은 어려워>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내 삶과 영화에 대한 애정이 함께 있다. 마침내 나는 좋은 관계를 이루었고, 이제 그걸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이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소견이다.
– 감독의 변

 
제인 와인스톡(Jane Weinstock)
제인 와인스톡 감독은 자신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단편 영화들이 선댄스, 토론토, 베를린, 베니스, 런던 영화제 등에서 상영되며 높이 평가 받았다.
단편 영화 < The Clean-Up >은 미국 극장에 배급되고, 유럽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다. 또한 선댄스 영화제에서 디렉터스 랩에 참여하였다. 그녀는UCLA와 Cal Arts에서 영화사를 강의했으며, ‘Art in America’를 비롯한 출판물에 영화와 예술에 관한 많은 기사를 썼다. < 사랑은 어려워 >는 제인 와인스톡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영화이다.

 

5.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감독 : 마가레테 폰 트로타
독일/ 1986/ 122분/ 35mm/ 드라마

1896년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의 민주정부 설립과 폴란드의 혁명을 위해 투쟁하면서, 그녀의 정치적 재능을 모든 사람에게 인정 받게된다. 그러나 레오 요기헤스(다니엘 올브리쉬스키 분)와 긴밀히 협동하면서 그들의 정치적 활동은 개인적인 관계에 어려움을 가져오게 된다. 국제적 긴장감이 감돌자 로자는 전쟁과 군국주의를 비난하는 연설을 하게 되고 그녀의 사회주의자 동지들은 로자를 급진적 인사로 치부하게 된다.

내 기억으로 1968년은 우리 모두가 정치적으로 긴장했을 때였다. 나는 그 때 로자 룩셈부르크의 책인 「사회민주주의의 위기와 개혁 또는 혁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 글 뒤에 숨어있는 여성을 생각하며 언젠가 그녀의 일생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나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오 요기헤스의 관계를 알고 있었으며, 로자의 옥중 서신을 통해 그녀가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지만 여성으로서의 감성 또한 잃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2,500통의 서한을 썼고, 이 편지들은 영화를 만드는데 최고의 자료가 되었다. 서한들은 그녀가 얼마나 감성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했으며 따뜻한 여인인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역동적이고 전투심이 넘쳤는지도 보여준다.

로자는 정말 완벽할만큼 선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인간보다 자연에게 더욱 가까운 ‘유대감’을 느꼈다. 그녀는 문학과 음악, 미술과 식물학(사실 식물학에 대해선 전문가였다), 지질학에 대해 관심이 높아 촘촘하고 깔끔한 글씨로 공책 가득 메모를 하곤했다. 그녀는 언제나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았으며, 무슨 일을 하든 열정을 가지고 행했다. 그녀는 자신의 불행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녀 특유의 발랄함과 인내심으로 친구들을 격려하고 위로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에 관해 모은 자료들이 너무 많아서 두 편의 영화를 더 찍어도 될 정도였다. 그녀는 평생을 바쳐 연구해도 아깝지 않을 여성이었다. 몇몇 역사가들은 내 영화가 매우 부족하다고 말한다. 나는 역사물을 만들거나 로자의 완벽한 초상을 그리는게 목표가 아니었다. 나의 영화로 인해 로자 룩셈부르크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감독의 변
 

6. 완전히 미친/Sheer Madness
감독 : 마가레테 폰 트로타
독일/ 1983/ 105분/ 35mm/ 드라마
1983 베를린 영화제 OCIC상

폰 트로타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자매애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 완전히 미친 >은 올가(한나 쉬굴라 분)와 루스(안젤라 뷩클러 분)라는 두 여인의 우정이 커져가는 과정을 그린다.

독립적인 여성 올가는 페미니스트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며, 현재 남편과는 별거 중이다. 화가이자 내성적인 성격의 루스는 약간의 정신병적 증세를 보인다. 루스는 가끔 자살하는 꿈을 꾸고, 올가는 절친한 친구와 헤어진 이후로 자살을 한 19세기 여성 작가에 대한 강의를 한다. 루스의 남편인 프란츠(페터 슈트리벡 분)가 올가와 아내의 사이를 격려하면서 올가와 루스의 우정은 점점 깊어간다. 그러나 올가와 루스가 이집트로 함께 여행을 떠난 후부터 프란츠는 질투심에 휩싸이게 된다. 루스는 남편과 친구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되고 이 혼란에 대한 그녀의 반응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이루게 된다.

파스빈더 감독과 함께 활동했던 마이클 발하우스의 뛰어난 촬영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프로방스와 카이로에서 촬영했으며, 주연배우들의 연기 또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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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 2004-04-09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무완수. <사랑은 어려워 easy>와 <여성 애니메이션의 새물결> 마스터!
폐막작--아시아 여성 단편 당선작--은 보지 못했으나, 나름대로 괜찮았음.
나중에 <로자 룩셈부르크>나 비됴 떠서 봐야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