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은 몇 군데 가보지 못한 내가, kimji님을 졸라 '마곡사'란 곳을 찾게 되었다. 우연히 문화일보 주말 섹션에 난 기사를 보고 마음이 뺏겨 걸음을 낸 것인데, 절보다 유채꽃이 먼저 우리를 반겼다.


서울에서 공주까지 1시 50여분, 첫만남이라 하기 무색할 만큼 종알종알 입아프게 얘기하며 오는 동안 샌드위치로 채운 배가 홀쭉해졌다. 하여 태화식당으로 직행. 표고찌개 정식을 한상 차려놓고 먹기 시작하는데, 갖가지 산나물과 봄나물, 도토리무침, 감 장아찌, 버섯 밑둥 장아찌, 동치미, 좁쌀밥 거기에 시장이 반찬이었으니 밥 한 공기는 뚝딱! 이다.


옆 마루방에는 젊은 할아버지, 할머니 무리가 점심이라 하기에는 너무 과하게 밥상을 받고 계셨다. 무슨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상춘 나들이라도 떠난 모양이었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밥 먹기가 좀 괴로울 지경이었다. 그 덕분에 서비스로 모듬전에, 호박엿 한 판까지 얻어 먹었으니 인심좋은 식당 주인을 치하해야 할까, 시끄럽던 그들을 치하해야 할까...?


유채밭 앞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슬슬 길을 나섰다. '마곡사 가는길' 표지판을 따라 꽃나무가 듬성듬성한 길을 걷다보니 더덕이나 취, 말린 표고를 팔러 나온 시골 아낙도 보이고 경운기에 아침에 딴 듯한 양송이를 한가득 싣고 와 호객행위하는 늙은 총각도 보인다. 양송이 한 박스에 4만원이라는데 그게 싼 건지 비싼 건지 도통 모르겠고 현금도 얼마 없어 그냥 지나간다.


구불구불 돌고 돌아야 절입구에 도착한다고 해서 이름이 '마곡사'라는 kimji님의 설명도 듣고(마곡사 홈페이지www.magoksa.or.kr에는 약간 다른 유래가 소개되어 있다), 손가락만한 물고기들이 휘휘 헤엄치는 모양도 구경하노라니 어느새 '해탈문' 앞이다. 보통 절은 일주문-천왕문-해탈문-본전 식으로 나열되는데 이 절은 천왕문과 해탈문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단다. 혼자 왔으면 그런 줄 몰랐을텐데 자세한 설명에 그저 고개를 끄덕 끄덕.


천왕문 뒤는 '극락교'다. 이 다리를 건너면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이름이 '극락교'란다. 이처럼 종교적 건축물은 속세와 경내를 가르는 여러 경계를 만들어 놓고 방문자의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대웅보전 앞마당에서는 '마곡사 갑신년 윤달생전예수재 49일 지장기도 봉행'이 한참이었다. 마곡사 홈페이지를 보니 '생전 예수재'란, 살아 생전에 미리 자신이 다생에 지은 죄의 업장을 소멸하는 의식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 의식을 행하면 자신은 물론 자손만대까지 복받는다는 보충설명.


이 행사를 직접보면 이렇다. 신자들은 제가끔 자기 분수에 맞게 구입한 다라니경을 머리에 이고 주지스님을 따라 경내를 순례한다. 5층 석탑을 중심으로 경내를 몇 십 바퀴고 도는 동안 끊임없이 '지장보살'을 왼다. 행렬 왼편엔 한 무리의 스님이 마이크 앞에서 '지장보살'을 외는 한편, 북과 쾡과리를 쉬지 않고 친다. 본전 현판에서부터 마당 모퉁이까지는 오색 띠가 늘어졌다. 주문을 외는 스님들 앞은 부처님께 올리는 제사상이다. 한 차례 순례가 끝나고 불자들이 다리를 쉬는 동안 제사상 앞에서 6명의 스님들이 범패춤을 춘다. 이런 식으로 몇 시간이고 '지장보살'을 외고 경내를 순례하고, 춤을 추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고행은 고행이다.

덕분에 힘들게 찾은 마곡사는, 느긋하고 조용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식당에서부터 절까지) 온통 시끌벅적했다. 최대용량 엠프를 사용해서 주문외는 소리가 무슨 채소 트럭 안내방송 같다. 가끔 오는 관광객이 본사 행사에 토달기도 그렇고, 아무쪼록 봉행에 동참한 신자들 잘되길 빌어본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이 엠프를 타고 왕왕되는 판국에도 절구경은 해야겠기에 대웅보전-대광보전-김구 선생의 향나무를 돌아보았다. 팔작지붕에 다포양식은 맨눈에도 그냥 확 들어오는 특징인데, 확실히 처마가 화려했다. 단청이 원래대로 울긋불긋 했더라면 그 화려함에 눈까지 아프겠다. 대광보전 천장은 우물정자 짜임이라는데, 그것까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마곡사 홈페이지에 뜬 사진을 보고서야 전체 형상을 가늠했으니, 과연 제대로 보고 온 건가 싶기도 하다.

기억할 만한 건, 대광보전의 현판이 표암 강세황의 필력이라는 것. 힘차게 요동치는 선을 느낄 수 있다. 강세황은 김홍도의 그림, 시 스승으로 죽기 전 김홍도의 금강전도 화첩기행에 동행했을 정도로 절친했던 사제다. 김홍도와 강세황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화인열전> 김홍도 편을 참고.

그밖의 부속건물로는 요사채인 심검당(지혜의 칼을 갈아 무명無明의 풀을 벤다는 뜻)과 11명의 나한을 모신 별당(이름 기억 안남)이 있다. 재밌었던 건, 심검당 출입문 앞에 있던 알림판. '그대의 발길을 돌리는 곳'이라 써 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가고자 했으면 이처럼 재치있는 안내판을 놓았을까?


 

 

 

 

 

 

 

 

 

사찰 주변에는 총 5개의 암자(영은암, 은적암, 백련암, 대원암, 토굴암)가 있고, 말사(큰 절에 딸린 작은 절)로는 갑사, 동학사, 신원사 3곳이 있다. kimji님 말로는 '갑사'는 가을이 좋다고 하니까 그때 한번 찾아가보는 것도 좋을 듯.

이번 공주행은 발걸음은 쉽게 냈는데 차분히 절을 돌아보기에는 힘든 환경이라 아쉬움이 컸다. 나중에 다시 찾는다면, 조선중기 2층 건물의 특색을 잘 살피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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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4-1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다님께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정말 여행기를 담백하게 잘 쓰시는것 같습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의 여지도 남겨 주시구요^^
님과 kimji님의 동반 여행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요다 2004-04-18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늘 플라시보님과 문답을.. ^^
하여간, 사진을 보니 마곡사 기행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만연한 봄날씨에 얼굴은 다 탔어도요.

2004-04-18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