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섭 사진화랑 개관 1주년 기념 전시회로 열린 '외젠 앗제'전. 사진 초창기의 숨은 장인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하고 특별한 전시다. 나의 경우,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외젠 앗제를 처음 알게된 후, 그가 사진사에 남긴 빛나는 족적을 흠모하게 되었다. 흠모라고 하기에는 사진에 대한 나의 지식이 짧고 무르지만.
하여간, '외젠 앗제'의 사진을 서울 한복판에서 보게 될 줄이야... (요새 국내 큐레이터들이 세계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사진시장의 규모와 그 상품성을 뒤늦게 깨닫고, 국내에 그 시장을 이식하느라 분주하단 소리는 들었지만, 이렇게 급속도로 대가들의 사진전이 열릴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얼마전 시립미술관에서 했었던 '도큐멘트 전'은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다. 사진의 기록가치에 주목한 전시기획으로, 교육적 효과가 무척 컸다. 전시 작품의 독자성이나 미적 가치(?)보다는 미술관으로 들어온 사진의 위상(또는 이유를)을 잘 보여준 예라고 할까? 나름대로 꽤 의미심장했다(진지했다).
뒤이어 열리고 있는 큰 큐모의 사진전(외젠 앗제-김영섭 사진화랑, 앙리 까리띠에 브레송-뤼미에르 갤러리, 헬무트 뮤튼전-조선일보미술관)은 그에 대면 엄청 발빠른 행보이다. 워낙에 이름있는 사진가들이라 언론 홍보로만도 관람객 모집이 가능하고, 외젠 앗제의 경우는 균일가 판매방식로 전작품 매진을 기록했다고 하니 대중성과 상업적 이익 두 마리 토끼를 잘 좆는 중이랄까.
지난 월요일 외젠 앗제 전시회를 찾았다. 4000원이라는 정말 저렴한 가격에, 60점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4000원이면 비싸지 않냐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살바도르 달리 입장권은 12,000원이다. 사진은 늘 회화보다 못하다고 평가받아왔지만(서양에서도 사진이 인정받기 시작한 건 몇 십년 되지 않는다) 앗제는 달리와 비등한 사진 거장이다. 아무렴! 사진이란 신기술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초상사진으로 일관하며 장식적인 회화를 흉내내던 시절, 앗제만이 사진의 독자성을 인식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앗제로 인해 사진은 독자적인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지 않았던가. 앗제 없이 현대 사진은 없다. 그런 앗제의 사진 60점을 4,000원의 가격에 볼 수 있다는 것은 횡재나 다름없다. 전시장 규모는 작았지만, 서울에서 앗제의 사진을 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더이상 불평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언제 또 앗제의 전시회가 열릴지 불확실한 이 마당에.
지금 사람들의 눈에 앗제의 사진은 범속하기 이를 데 없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앗제에 의해 전파된 사진의 전형에 우리가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지 그의 사진이 진부하기 때문은 아니다. 어디 그 당시에 풍경사진을 찍기나 했던가.
앗제는 초상사진이 범람하던 시대에 최초의 풍경사진을 탄생시켰다. 마치 범죄현장을 담듯 1890년대 파리 시가지 풍경과 근교 프로방스 지방을 계속해서 목적의식적으로 찍어낸 것. 포토그래퍼의 시작은, 그리고 취재사진의 시작은 앗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사실이 그렇다.
사진이 예술의 자리에 앉게 된 그 최초의 순간에 앗제가 있다. 사실, 앗제는 만 레이에 의해서 초현실주의자로 세상에 소개되었다. 사물만 가득한 앗제의 사진은 뭔가 비밀스럽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는데 초현실주의자인 만 레이의 눈에는, 앗제야말로 자신들의 강령을 앞서 실천한 선구자로 비쳤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앗제 사진을 초현실주의로 읽어내려는 경향은 여전하다(사진이 Fine Art에 발목잡힌 증거). 하지만 만 레이가 아니였다면, 앗제와 그의 사진은 더 깊은 잠을 자야만 했을 것이다.
앞서서 시립미술관의 '도큐멘트전' 이야기를 잠시 했는데, 앗제 사진은 바로 그 '기록가치'면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앗제 없이는 1890년대 파리의 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 이 점, 너무 명확하다. 사진의 기록가치란, 역사적 증거물... 바로 그 말과 같다. 보도사진만 해도 그렇다. 보도사진이 역사를 증거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각광받지도 팔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건 나의 느낌일 뿐이지만. 거기 덧붙여서 앗제 사진의 '사물성'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사물, 그 자체. 다시 말하면 '즉물성'. 이건 뒤샹의 '샘' 이후 생겨난 오브제 아트의 핵심주제이다. 사진은, 비록 입체적이지는 않지만 사물을 보여준다. 사물을 담고 있고, 사물의 어떤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것도 날카로운 기계의 눈으로. 이번 전시회에서 많이 좋아라했던 사진도 그런 류였다. 외진 골목, 손수레, 물통, 열려진 창문, 쓰레기... 대낮의 공동주택. 사물이 말을 걸어오는 듯한, 비의적인 느낌. 다른 세계--사물들의 세계--에 불쑥 들어선 느낌. 그랬다.
140만원. 앗제 사진 1장의 가격이다. 어떤 기준에 따라서 140만원이 책정되는지는 몰라도, 월급쟁이가 큰 맘먹고 구입할 수 있는 가격선이라고 (크게 잡아) 생각해본다(호당 몇 십만원 하는 그림도 있는데 말이지). 앗제 사진이 140만원이라는 건, 달리 보면 사진이 아무리 잘 나가봐야 모나리자 뺨을 칠 수 없단 이야기이기도 하고...(뭐, 작품 거래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으니 더 떠들 수도 없지만)느낌상~~ 의외로 쌌다는 말이다. 음... 좀 의외로.
앗제 사진전에 맞춰서 책도 한 권 소개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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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Euge'ne Atget (2001)
열화당
2003년 11월 1일 / 128쪽 / 155*137mm
ISBN 893010049X
도록(20,000원)보다 싸고 작품수도 많은 편이니 구입해도 손해는 안본다. 아예 열화당 사진문고 시리즈를 다 사면 좋겠지만, 부담이 된다면 이 책 한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