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많이 걷고 햇빛을 많이 쪼이고 많이 먹었다.

자주 가는 카페 주인언니와 코스트코를 가기로 했다.

언니는 월요일 휴무마다 코스트코에 가서 장을 보는데,

한번 따라가야지, 따라가야지 했던 게 일 년이 되었다.

요샌 마음만 바쁘고 실은 한가한 터라 따라나서겠다고 했다.

두 시쯤 밥을 먹고 양재에 있는 코스트코로 출발하기로 했다.

쌀국수 마니아인 언니는 쌀국수를 국물까지 싹싹 흡입하고는 "우리 그냥 반포까지 산책할까?" 했다.

내심 추석 전이라 사람이 엄청 많아 붐빌 생각을 하면 가고 싶지 않는 마음도 있었기에 난 '콜!!!!!!!'

방배동 카페 골목 쪽으로 가서 '두닷 갤러리'를 구경하면서

어떤 집에서 어떤 가구를 두고 살지 요리조리 재보기도 하고,

직접 원두를 볶는 카페에서 깜짝 놀랄 만큼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지인 중 야한 언니 이야기를 하면서 키득거리기도 하고,

신세계 백화점에 가서 소이캔들의 아름다운 향에 취하고 비싸지만 너무 예쁜 식기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버스를 타고 돌아와 조스떡볶이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먹고 이마트에 가서 싸다는 이유로 닭똥집을 샀다. 하루가 훌쩍, 그렇게 갔다.

 

뽀송뽀송한 바람이 얼굴을 간질이는 느낌, 상쾌하리만큼 따가운 햇살, 가을 초입의 산책은 참  유쾌했다. 옥상에 널어놓은 이불은 이미 밤이슬을 맞아 비릿한 냄새가 나서 다시 빨아야 했지만, 어제 하루는 이불을 다시 빨아 넣는 수고를 해도 괜찮을 만큼 평온하고 즐거웠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조각들이 때로는 이렇게 힘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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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3-09-18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가을이구나 싶네요.
글에서도 가을 냄새가 나네요. 가을이니까 가능한 유유자적한 하루의 일상.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9-22 19:02   좋아요 0 | URL
가을인데 참 더운 추석이었어요. 헥헥.
이제 금세 추워지겠죠? 가버리기 전에 언능 만끽해야겠어요. :)
 

 

이토록 노력하는 삶을 동경해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요즘, 쉼 없이 노력할 줄 아는 자들이 부럽고 질투나고 때론 짜증이 나기도 한다.

나는 늘 자유롭고 시간을 자유자재로 부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나는 왜 갑자기 성실하고 치밀하게 규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삶이 부러워진 것일까.

 

사람들은 나를 성실하다고 평가하지만, 내가 아는 나는 딱 적정선의 성실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숙제가 있으면 미리 해놓고 몇 번 다듬어 제출하지만,

시험이 있으면 시험범위를 전부 두 번 이상 훝어보지만,

그 시간을 전부 다 성실하게 쓰진 않았던 거다.

더 깊게 파고들 수도 있으련만,

딱 거기까지, 딱 그만큼만 하고 이정도면 됐지? 하고 자족하는 날이 더 많았다.

 

체력이 좋지 않아 생기는 부작용 중의 하나는 '에너지를 아끼려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방전될 때까지 나를 내버려두지 않고 조금씩 힘을 남겨두는 것이 내 나름대로 익힌 삶의 기술이었다 해도 좋다.

 

하지만 반 칠십이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빨리 성장하고 빨리 어떤 궤도에 진입하고 싶은데 집중력이 따르질 않는다. 하루는 길고 나는 나름의 시간 배분을 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데,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일'이란 왜 이리 말라비틀어진 북어대가리처럼 건조하고 거친지.

 

인내하고 싶진 않다. 그냥 과정을 즐기면서 가고 싶을 뿐이다. 근데 역시 '성실'은 '인내'를 동반해야만 얻을 수 있는 열매인 걸까?

 

내가 마음대로 안 되니 짜증난다. 잘해보려고 하니까 마음이 조급해진다.

에효, 얼마나 해봤다고 저래. 또다른 내가 비웃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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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3-09-16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실함과 꾸준함이 상호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둘이 기대어 서지 않으면 온전한 표현이 이루어지지 않는것 같아요. 삶도 온전함과 부족함이 서로 기대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9-17 13:07   좋아요 0 | URL
아직은 부족함이 더 큰 삶인 듯해요.
온전함을 많이 키우고 싶네요. ^^

숲노래 2013-09-1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나아갈 기나긴 삶
즐거우면서 아름답게 잘
누리시기를 빌어요.

'성실' 하면서 즐겁고 아름답다면
날마다 사랑스럽겠지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9-17 13:07   좋아요 0 | URL
'성실'을 누리는 사람, 좋네요. +.+
 

 

곁에 두어서 기분 좋은 최고의 물건을 한두 가지만 사라. 무조건 적게 갖는 것이 좋은 거라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심플한 삶에는 돈이 많이 든다. 위선을 떨지 않는 점도 좋았다. 저자의 말처럼 살려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아무렇게나 소비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에서 기쁨을 느끼는지,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따져보고 나서야 '그 한 가지'를 살 수 있는 거니까.

 

예전에 반짝반짝 광택이 나는 에나멜 가방을 샀는데, 가방이 영 불편한 거다. 그때는 출판사에서 일할 때라 편집장님한테 이거 잘못 샀나봐요, 뭔지 모르겠는데 들면 편하지가 않네요, 했더니, 편집장님이 그러시는 거다.

 

"그러게, 자기는 원래 부들부들 감촉이 좋은 걸 좋아하지 않았어?"

 

그때 나는 내가 갖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물건들은 디자인보다는 '소재와 편안함'에 특징이 있다는 걸 알았다. 입었을 때 자연스럽게 흐르는 실루엣, 부들부들한 가죽의 지갑, 가볍고 실용적인 천가방 등등.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무턱대고 '예뻐서' '좋아 보여서' 사는 물건들은 결국 장롱 속으로 처박히고 만다. 이런저런 물건들을 사면서, 실패도 하면서, 그렇게 나에게 딱맞는 '단 하나'를 찾는 일, 심플하지만 우아한 삶에 근접하는 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물건을 구입할 때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 일부를 구입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46p

 

우리가 진정 소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하루하루의 시간이다. -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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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3-09-16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필요한것 이외에는 소유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술이 필요한것 이상으로 넘어가는게 가장 큰 문제라죠.ㅎㅎ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9-17 13:0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런 책을 쓰는 사람들은 술은 안 마시는지, 그 문제는 아예 언급이 안됐더라구요. 적당히 마시면 좋은 술, 적당히 즐기셔요~:)
 

나는 자칭 '자유로운 영혼'이라서 '규칙'이란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느즈막히 일어나 커피 한 잔 마시고 산책 좀 하고 책 좀 읽으면 하루가 후닥닥 가버렸다.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어제인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나른한 일상.

 

그런데 잘하고 싶은 게 생기니까 나도 시간을 좀 효율적으로 써보고 싶어졌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 24시간이지만 꼬박꼬박 직장을 나가지 않는 사람에게 24시간은 4시간처럼 써버릴 수도 있는 매우 헤픈 것이니까.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규칙적인 삶'과 친해져보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요새 뇌과학에 약간 관심이 생겼는데 원래 내가 빌리려던 책은 이미 대출중이라 쉽고 간단해보이는 이 책으로 골랐다.

가장 먼저 나오는 내용이 '생활의 리듬을 만들라'는 얘기다. 아침에서 일어나서 일에 착수하기까지와 저녁 먹고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생활은 패턴을 일정하게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아니, 뇌는 늘 새롭고 다양한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던가?!

아니었던 거다.-_-

그리고 집안일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뇌의 기초 체력은 일상적인 일들을 귀찮게 생각하지 않고 묵묵히 해나가는 과정에서 다져지는 만큼 일상에서 뇌를 단련하기 좋은 방법이 집안일이라는 것!

 

이제 겨우 집안일을 즐겁게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집안일=성가신 일로 여겼던 나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사실이었다.

 

이 책에서 나오는 대로 일정한 생활리듬을 만들고, 무언가를 할 때 시간을 정해놓고 집중적으로 하며, 일어나면 집안일부터 하면서 뇌를 깨우는 과정을 실천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나.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긴 하지만, 일어나면 몸부터 움직이면서 서서히 몸과 마음이 깨어나도록 하니 밥맛이 좋아졌다. 그리고 집안일을 한꺼번에 다 해치우려고 하지 않고, 아침 먹기 전 잠깐, 점심 먹고 잠깐, 이런 식으로 틈틈이 하다 보니 일이 많이 처리되는 데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하되 틈틈이 휴식 시간'을 넣다 보니 생각보다 내가 무언가를 하는 데 들이는 시간이 많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오늘 문득 시간이 천천히 간다는 걸 알았다. 늘 뒤돌아 보면 벌써 오늘이 **일이야? 하고 놀랄 때가 많았는데, 오늘은 겨우 9월 9일이었다. 시간을 덤으로 받은 것 같아 마음이 흐믓해진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난 답답한 거 싫으니까'라면서 정작 내 몸과 뇌가 좋아하는 일들을 멀리해왔던가, 인생을 허비해왔던가, 숙연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꾸준히 실천해서 시간에 휩쓸리지 않고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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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9-10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안일을 어릴 적부터 제대로 느끼면서 즐기면
어른이 되어서도 참 신나게 노래하면서 할 수 있어요.

언제나 아름다운 마음 되어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걸레질도 하셔요~ ^^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9-10 18:00   좋아요 0 | URL
아이가 생기면 집안일을 놀이처럼 즐기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함께살기 님은 이미 실천하고 계신 거죠?^ㅡ^

잉크냄새 2013-09-1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유와 규칙은 뭔가 상반되는 개념이라는 느낌이 지배적이라서...
한번 읽어볼만하겠네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9-10 18:02   좋아요 0 | URL
게으름을 부릴 만큼 부려봤더니,
'규칙'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날도 다 오네요. ^^
 

다들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모양이다. 필요에 의해 여성자기계발서를 뒤지던 중이었는데, 악바리근성을 발휘하라고 독려하던 그 많은 책들은 다 어디로 갔나 싶다. 친구들만 만나봐도 다들 자기의 일에, 가정에 푸념을 늘어놓기 바쁘다. 정녕 행복한 삼십 대 여자는 없는 것인가.

 

알라딘에는 미안하지만, 교보문고에서 <서른다섯까지는 연습이다>와 <서른엔 행복해지기로 했다>를 반값에 팔길래 주저없이 구매했다. 인터넷서점은 줄곧 알라딘만 이용해왔으니 이 몇 년 만의 외도인가. 그래서 돈 없는 사람은 지조를 지키기 어렵다. 가격과 상관없이 사고 싶은 책을 빵빵 지르던 때는 이미 멀리 가버린걸. 난 지금 잉여니까, 싸게 주는 곳에서 구입하는 걸 망설일 필요는 없다, 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표지도 제목도 내용도, 에세이인지 자기계발서인지 애매모호하다. 사실 삼십 대 여자의 위치가 그러하다. 삼십 대엔 직장에서 한 자리 꿰차고 밤톨 같은 아이들과 오순도순 가정을 꾸리고 살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은걸. 일도 어정쩡, 일하는 엄마는 애들한테 남편한테 미안해 어정쩡, 독신녀는 '노처녀' 딱지를 떼지도 붙이지도 못하고 어정쩡, 애 안 낳은 여자는 가정에서 사회에서 어정쩡. 모두들 애매하고 어정쩡하게 엉거주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책들이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거겠지.

뻔한 내용이란 걸 아는데, 역시나 나는 위로 받는다.

'카피라이터'라는 멋진 직업을 가진 여자가 줄곧 연습생으로 살았다고만 한탄하는데,

'방송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여자가 이제야 일상을 꾸려나가고 소소한 곳에서 행복을 찾게 되었다는데, 어떤 삼십 대 여자가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너나 나나 도찐개찐, 그것만큼 마음 편안해지는 일이 또 있을라구.

그러니 뻔해도 안심하면서 읽는다.

나도 아직 희망이 있다면서. 바보 같은 최면을 걸면서 어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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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9-09 0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희망이 있다기보다
이제껏 희망이 있었고
앞으로도 희망이 있어요.

즐겁게 읽고
즐겁게 하루하루 누리시기를 빌어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9-09 16:11   좋아요 0 | URL
'아직'과 '앞으로도'라는 부사의 차이가 참 크네요 :)

잉크냄새 2013-09-09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이 주는 의미가 좀 특별하긴하죠. 이미 지나간 세월일지라도.
서른을, 아니 마흔을 표현한다고 해도 김광석의 서른즈음에 만큼 잘 표현할수는 없을것 같아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9-09 16:11   좋아요 0 | URL
뭔가 서른이 넘어서야 진짜 인생인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