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모양이다. 필요에 의해 여성자기계발서를 뒤지던 중이었는데, 악바리근성을 발휘하라고 독려하던 그 많은 책들은 다 어디로 갔나 싶다. 친구들만 만나봐도 다들 자기의 일에, 가정에 푸념을 늘어놓기 바쁘다. 정녕 행복한 삼십 대 여자는 없는 것인가.
알라딘에는 미안하지만, 교보문고에서 <서른다섯까지는 연습이다>와 <서른엔 행복해지기로 했다>를 반값에 팔길래 주저없이 구매했다. 인터넷서점은 줄곧 알라딘만 이용해왔으니 이 몇 년 만의 외도인가. 그래서 돈 없는 사람은 지조를 지키기 어렵다. 가격과 상관없이 사고 싶은 책을 빵빵 지르던 때는 이미 멀리 가버린걸. 난 지금 잉여니까, 싸게 주는 곳에서 구입하는 걸 망설일 필요는 없다, 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표지도 제목도 내용도, 에세이인지 자기계발서인지 애매모호하다. 사실 삼십 대 여자의 위치가 그러하다. 삼십 대엔 직장에서 한 자리 꿰차고 밤톨 같은 아이들과 오순도순 가정을 꾸리고 살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은걸. 일도 어정쩡, 일하는 엄마는 애들한테 남편한테 미안해 어정쩡, 독신녀는 '노처녀' 딱지를 떼지도 붙이지도 못하고 어정쩡, 애 안 낳은 여자는 가정에서 사회에서 어정쩡. 모두들 애매하고 어정쩡하게 엉거주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책들이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거겠지.
뻔한 내용이란 걸 아는데, 역시나 나는 위로 받는다.
'카피라이터'라는 멋진 직업을 가진 여자가 줄곧 연습생으로 살았다고만 한탄하는데,
'방송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여자가 이제야 일상을 꾸려나가고 소소한 곳에서 행복을 찾게 되었다는데, 어떤 삼십 대 여자가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너나 나나 도찐개찐, 그것만큼 마음 편안해지는 일이 또 있을라구.
그러니 뻔해도 안심하면서 읽는다.
나도 아직 희망이 있다면서. 바보 같은 최면을 걸면서 어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