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만큼 들뜨고 신나고 설레는 선거가 없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도 '누가 되어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친구들의 성향에 따라 대충 투표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달랐다.
지지하는 사람이 있었고, 바뀌길 바라는 희망이 있었고, 조금은 나도 정치얘기에 흥미를 느꼈다.
개업식에서 만난 친구가
아마 내 지인 중 거의 유일무이하게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그녀가,
자기 친구들과 자기가 다니는 필라테스의 수강생들은
(그녀의 친구들은 잘사는 강남 자식들이며 그녀가 다니는 필라테스도 아마 잘사는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다.) 당연히 새누리당을 지지한다고, 그래서 1번을 찍었다고 말했을 때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으면서도 웃으면서
"부끄러우니까 어디 가서 내 친구라고 말하고 다니지마!"라고 가볍게 응수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지고, 우리가 이기리라는 막연한 희망과 자신감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2번을 찍었어야지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그럼 우리 걸 다 내줘야 된다고!!!"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녀가 스스로를 가진 자로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 가진 자라고 느끼는 이가 자기 걸 지킨다는 마음로 투표하는 것,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개표결과를 지켜보며 이렇게 내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아마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끝내 그들이 승리한 거라면 나는 어느 정도는 위로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국지도가 온통 빨간색으로 물드는 것을 보면서, 밀려오는 패배감이 온몸을 다운시켰다.
다음날 멍하게 눈을 뜨면서,
혹시나 내가 자는 사이에 기적이라도 일어난 게 아닐까 헛된 희망을 품으면서
나는 조금 울컥했다.
정치 따위 처음부터 관심을 안 두었음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썼기 때문에 결과가 이토록 아픈 것이다.
그러면서 아, 나는 어쩌면 나꼼수에 부응하기 위해 그토록 이번 대선에 관심을 쏟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킬킬거리며 그들의 노고를 꿀떡꿀떡 삼킬 줄 밖에 몰랐던 내가 그나마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투표'하고 바라는 것밖에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의 울먹이는 마지막 방송을 허무하게 만든 이 결과가 그토록 미웠는지도 모른다.
맨처음 '나꼼수'라는 것을 듣고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너무나 섬뜩해서.
누가 되도 비슷하리라 믿었던 그 자리가,
한 개인의 욕망을 위해, 사리사욕을 위해
그토록 남용될 수 있는 자리라면,
아무에게나 맡겨선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리고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교묘하게 조금씩 자기 배를 불려나가는 그들이,
아니,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럴 수 있다는 게,
너무도 끔찍했다.
그게 '사이코 패스'가 아니고 뭔가.
'공감능력'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고,
무조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것,
그게 사이코 패스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가장 잘못한 건 나인 것 같다.
너무 안이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설득하고 더 이야기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냥 다 비슷하게 생각할 거라 믿었던 오만.
그리고 설마 이 꼴을 당하고도 저들에게 권력을 넘겨줄까 속단했던 것.
다 미안하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