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서로 읽다가 내팽개친 책이다. 저자의 고풍스러운 문체와 생경한 교토의 풍경이 익숙치 않아서, 라고 생각했는데, 번역본을 읽다가 알았다.
이건 내 취향의 책이 아니었던 거다.
순진무구한 후배 아가씨를 따라다니며 벌어지는 판타지와 현실의 오묘한 버무림이 매력인 이 책은, 글쎄, 책보다는 만화나 영화에 어울릴 법하다. 기상천외하고 유쾌하고 즐겁지만, 그냥 딱 거기까지인 느낌.
망상하는 청춘은 아름답지만, 나는 여운이 남는 쪽이 더 좋다.
2.
감기 신의 활약으로 지구 종말이 다가왔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감기에 걸려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병문안을 가는 우리의 주인공이 사랑하는 후배 씨. 그녀는 아플 때 엄마가 갈아서 입에 떠넣어 주던 사과의 감촉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달걀술'을 만들어 먹이거나, 사과를 갈아 먹여준다.
나는 아팠을 때를 생각하면 '오뚜기 수프'가 생각난다. 차가운 물에 인스턴트 수프 가루를 뭉침 없이 풀어준 다음 약한 불에 끓여내던 걸죽하고 부드러운 오뚜기 수프. 소고기 수프, 양송이 수프, 야채 수프가 있었던가. 그 부드럽고 고소한 수프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하얀 미음을 가져오면 매우 실망하곤 했던 기억. 요새 애들은 우유와 생크림과 밀가루, 야채를 넣은 '진짜 수프' 맛을 아니까 '오뚜기 수프'는 우습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나도 브로콜리 수프, 감자 수프, 클램차우더 수프도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아파서 이불 속에 누워 있어야 할 때면 '그 맛'이 그립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가 아플 때 뭘 먹일까. 요새 아이들은 아플 때면 어떤 맛을 그리워할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