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세들어 살던 집 화장실에서 피를 토하던 아빠의 모습.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데 엉엉 울면서

엄마와 외숙모의 손을 잡고 길고 긴 병원 복도를 달려가던 기억.

그리고 조용하고 딱딱한 시신이 집으로 운구되어 왔을 때 느꼈던 알 수 없는 차분함.

 

아, 사람은 죽으면 조용하구나.

 

말이 많던 아빠도 아니었는데, 그냥 저렇게 조용해지는 거라면 죽는 게 그렇게 무서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시신을 화장시켜야 한다고 엄마의 화장품을 뒤지던 동글동글한 고모들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니네 아빠는 뭐하셔?

-응, 우리 아빠 안 계셔.

-미안해.....

 

그리 다정다감했던 아빠도 아니었기에 사실 아빠가 없다는 게 그렇게 슬프지도 안타깝지도 않았는데, 누군가가 부모에 대해 묻고 거기에 '아빠 없는 아이'라고 대답할 때마다 '아빠가 없는 건 잘못된 거다'라는 돌 하나가 얹혀졌다. 게다가 드라마나 어른들은 (날 보고 한 얘긴 아니었지만) '애비 없는 후레자식'이라든가 '아빠가 없어서'라든가 '엄마가 없어서'라든가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뱉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내가 아빠를 세상에서 없애버린 것도 아닌데 나는 알 수 없는 모욕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엄마, 아빠 다 있어도 불행한 가족은 셀 수 없이 많은데, 일단 한쪽이 없는 것 가지고 손가락질 받을 때마다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어도, 그것은 나를 향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냥 얼버무리는 쪽을 택했다. 누군가가 아빠 얘기를 할 때 나는 그 자리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빠져 굳이 나에게까지 질문을 던지진 않았으니까.

 

그러면서도 나는 거짓말을 하진 않았지만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 잘못도 아닌데 속시원하게 밝히고 투명하고자 하는 욕구와 말을 하면 나만 부끄러워질 뿐이라는 보호본능이 치열하게 싸웠고, 늘 보호본능이 승리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나는 투명해질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고민하고 힘들어할 문제도 아니었는데, 예민하고 내성적인 나의 성향과 주변의 상황이 맞물려서 꽤 큰 부담이 되었던 듯하다, 어리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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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3 0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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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3 2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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