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 이사온 지 일 년 반이 조금 안 되었다. 이사 오자마자 폭우가 쏟아지고, 엄청난 무더위와 한파를 겪으며 오래된 상가건물인 우리 집도 벽지에 물이 새어나온다든가 곰팡이가 생긴다든가 하는 자잘한 일들이 벌어졌다. 여름엔 조금 시원한 편이지만 겨울의 외풍이 살벌하다. 보일러를 가동하지 않으면 영상 10도에서 12도를 유지하며, 보일러를 틀어도 실내온도가 20도를 넘는 법이 없다.

 

그래도 볕이 참 잘 들어와서 가끔 낮에 거실창으로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 속에 앉아 있다 보면 내 몸속의 장기들까지 구석구석 광합성하는 느낌이 든다. 온 세상의 스포트라이트가 우리 집을 향해 있는 착각조차 일으킨다. 겨울이면 좀 잠잠해지지만 다른 계절엔 온갖 것을 팔러다니는 트럭들이 활개를 치는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오징어가 열 마리에 오천 원이라든가 굴비가 스무 마리에 만 원이라든가 귀가 솔깃해지는 미끼방송이, 때로는 시끄럽고 때로는 정겹다. 시장과 지하철이 가깝고 관악산과 이어지는 뒷산이 있으며 카페며 편의점이며 편리한 거리에 있고, 좀 있으면 집에서 오 분 거리에 도서관도 완공될 것이다. 옥상이 있어서 이불빨래할 맛이 난다. 여름이면 옥상에 널어 말린 이불에서 나는 뽀송뽀송한 바람냄새가 좋아서 일주일이 멀다 하고 빨래를 하기도 한다.

 

아파트처럼 부재시 택배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고, 수도요금은 네 가구가 한꺼번에 나와서 돌아가면서 처리해야 하고, 계단이 무척 가파르며, 겨울이면 너무너무 춥고, 올 겨울엔 한파가 심해서 집에서 가장 추운 화장실엔 서리까지 꼈는데도 난 이 집이 좋다.

 

처음으로 내 공간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곳이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내 방이란 것을 가졌는데, 무던한 성격의 엄마는 늘 벌컥벌컥 방문을 열고 내 방을 통해 베란다에 빨래를 널러 갔다. 나는 무언가 혼자서 조용히 하길 원할 때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거다. 결혼해서 일본에서 살 때는 언젠가는 떠날 곳이었기에 안주할 수 없었으며, 이 집을 구하기 전 잠깐 기거했던 시댁이 내 예민한 성격에 얼마나 불편했을지는 말 안 해도 뻔하다.

 

서른이 넘어서야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 같다. 나 이외의 한 사람이 같이 사용하기는 하나, 집이라는 공간에 많이 머무는 것은 나이기에 이곳은 내가 주인인 나의 영토 같다는 착각이 들곤 한다. 온전한 내 것이기에 마음 놓고 애착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등기상의 주인 따위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 애착해도 안전한 곳.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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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1-23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지내시다 보면,
나중에는 추위도 더위도 덜 찾아오면서
아름다운 보금자리 누리시리라 믿어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1-23 13:32   좋아요 0 | URL
네 :)
결국 '마음'의 문제인 것 같아요.
객관적으로 얼마짜리 집이냐, 볕이 잘 들어오는 집이냐, 교통이 편리하냐가 아닌 내 주관적으로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인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