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같은 알라딘.

아기를 갖고 낳고 키우다 보니, 알라딘이 멀어졌다.

각종 소셜을 오가며 기저귀와 아기용품을 검색하느라 알라딘은 아주 가끔 '사운드북' 같은 걸 사러 들어오는 곳이 되었다.

지난날 내가 썼던 글들을 읽으며 참 한가하게 살았구나 싶다.

좀더 한가하게 살았어도 됐을걸, 아니면 엄청 치열하게 살았거나.

 

아기가 감기에 걸릴 때마다 나도 같이 감기에 걸려 몸이 천근만근인데 쉴 수가 없다.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는 말,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나처럼 하루의 반나절쯤 자는 건 우습던 사람이 쪽잠을 자며 버틴다.

아파도 움직이고 힘들어도 움직인다.

 

삶은 여전히 순탄대로처럼 술술이 아니라서,

올해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공부든 일이든 해볼까 하는데

3순위 내 차례는 우주처럼 까마득하다.

 

역시 어중간하다.

이도저도 아니다.

남들 아기를 갖고 낳고 키울 때 한가로이 놀았고,

남들 치열하게 일할 때 한가로이 놀았더니,

애매한 나이에 아기를 갖고 낳고 키우며,

더더욱 애매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지나간 시절을 후회하며 시간을 보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쉽다.

 

뭘 할 수 있을까,

뭘 하면 좋을까,

십대처럼 고민한다.

 

육아는 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다.

아직 어딘가를 놀러다니기도 어린 아가랑

하루를 보낸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다.

그래, 고단하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하는 일들을

해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여린 존재.

여리기만하면 좋으련만,

지나치게 에너지가 넘치고, 힘이 세고, 소리가 큰

이 존재와 살아가는 일이 녹록지 않다.

 

나만의 시간,

내 공간,

내 계획,이란 게 사라진 게 언제인가.

 

요즘 내 소망은

아무도 없는 펜션에 가서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

 

그렇게나 는적는적 한가로이 보냈으면서도

나란 사람, 여유로 먹고사는 사람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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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1-15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 그대로, 여유로 먹고 사는 것이 최고로 좋습니다. ^^

마음을데려가는人 2016-01-22 23:25   좋아요 0 | URL
여유,,,, 되찾고 싶네요. :)

잉크냄새 2016-01-15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도 분기에 한번 정도 들어오는데 그 날이 오늘이네요. 마침 오랫동안 소식 없으신 님의 소식도 접하고, 예전 알라딘에서 이런 경우를 찌찌뽕이라고 놀던 기억도 나네요.

엄마가 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16-01-22 23:26   좋아요 0 | URL
히잇, 왠지 잉크냄새 님께서 발자국 남겨주실 것 같았어요.
진짜 찌찌뽕입니다!!!!!!!!!!!!

네, 드디어 엄마가 되었는데,
아, 엄마가 이런 건 줄은... ㅋㅋㅋㅋㅋ
 
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김인순 옮김 / 필로소픽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좀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가난하지만 우아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기꺼이 배울 용의가 있었는데, 내 관점에서 이 책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서에 가깝다. 저자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매스미디어는 늘 우리를 현혹한다. 일 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가야지, 이걸 바르면 예뻐질 거야, 저걸 걸치면 고급스러워 보일 거야, 아이들은 이런 최신 장난감을 좋아해, 맨날 집밥 먹기 지겹지 않아? 등등. 아마 과거처럼 이웃나라 사람과 부자들이 어떤 집에서 살고 뭘 먹고 뭘 입고 다니는지 일거수일투족 알기 어려운 시대였다면, 우리는 더 적은 것으로도 더 행복했을 거다, 분명.

 

18세기부터 영락의 길을 걸어온 집안 내력 때문에 실직을 하고도 우아함을 잃지 않고 사는 법을 터득했다는 저자는 세계는 앞으로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앞으로 점점 일자리는 줄어들 테고 세계는 전체 인구의 20%에 의해 움직일 것이다. 그럴 때를 대비해 우리는 망해도 의연하게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일은 줄이고 유희를 즐기고, 집 자체보다는 생활양식이 주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욕망을 좇기보다는 몸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고, 많이 움직여 건강을 지키고, 자동차를 버리고, 남들이 간다고 따라가는 휴가여행을 가지 말 것이며, 어떤 옷을 입느냐보다는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신경 써야 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들이지만, 돈은 나쁘고 부자들의 대다수가 경박하며 덜 갖는 것이 무조건 행복하다는 식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이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좀 설득력이 부족하다. 자본주의와 돈을 비판하는 데 급급해서 가난한 것이 더 좋은지 잘 전달이 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가난이 나쁜 것은 가난그 자체가 아니라, ‘가난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줄어든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살 수 있는데 안 사는 것과 살 돈이 없어서 못 사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이다. 돈은 사고를 제한하고 사고는 행동을 제한한다. 저자의 말처럼 휴가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 집에 머무르는 것이 천배 백배 나으려면 휴가여행을 경험해보고 그것이 산책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일개 나약한 인간일 뿐인 우리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탐색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사람과 미디어의 말에 상관없이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뭘 할 때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나는 집의 안락함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쾌감 중 무엇이 더 좋은지……. 자신만의 가치관과 기준이 올바르게 서 있어야 욕망을 절제할 수 있다. 그래야 자신 있게 휴가여행을 포기하고 집에 머무르는 길을 선택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면이 단단한 사람은 외적인 요인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니까.

중간 중간 좋은 구절들이 많았는데, 그에 비해 이야기들이 골고루 섞이지 않은 느낌이다. 독일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읽기에는 선뜻 다가오지 않는 내용들은 번역의 탓인가.

 

밑줄긋기

 

지나친 만족을 추구하지 마라. 감각적인 만족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과다한 만족 후에는 오히려 심신이 침체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에게 일시적인 만족의 포기는 만족감의 고조로 이어진다. 언제나 흥청거리며 호사스럽게 사는 사람은 머지않아 다시없이 근사한 물건 앞에서도 더 이상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24p

 

네가 돈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면,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지 버나드 쇼

-62p

 

집에 들이는 돈이나 집이 위치한 동네가 아니라 손님들을 맞아들이는 자연스러움을 통해서 집은 아름다워진다. 친구들이 모여 드는 집을 가진 사람은 부유하다. 그리고 가슴 답답한 비 오는 날에 찾아갈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도 부유하다. 그러나 보스의 고성능 음향기기, 능동 매트릭스 화면의 대형 텔레비전, 콘런의 디자이너 가구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장소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87p

 

우리는 전혀 허기를 느끼지 않거나 그저 조금 입맛이 당길 뿐인데도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좌절감에서, 욕망을 쫓아서 음식을 먹는다.

-95p

 

무엇보다도 중요한 규칙은, 사람이 옷을 입은 게 아니라 옷이 사람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옷을 건전하게 경멸하는 사람만이 우아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에 지나치게 옷을 차려입는 것보다는 차라리 수수하게 입는 것이 더 낫다.

-131p

 

아이들이 제대로 기쁨을 누리도록 훈련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비결은 원한다고 무조건 모든 걸 사주지 않는 것이다. 호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부모들이 무리하게 형편을 무시하고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물건들을 마련해주는 경향이 종종 있다. 혹시라도 남들보다 자녀들에게 못해 주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서, 온갖 잡동사니, 말하는 인형, 디즈니 그림이 그려진 책가방, 비디오게임, 나이키 제품 일체를 사준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학우들에 비해 불이익을 당한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런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어른이 되면, 옆 사람이 가진 것은 무엇이든 갖고 싶어 하는 마음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스스로를 전혀 억제할 줄 모른다. 출생에서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시장이 제공하는 모든 것에 푹 파묻혀 지낸 아이들에게 최악의 경우에는 언젠가 결핍이 혹독한 체험일 수 있다.

-152p

 

인간은 포기할 줄 알아야만 만족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 철학자 아널드 겔렌은 인간이 절박한 욕구 충족 이상의 것을 원하도록 촉구하는 압박에 끊임없이 시달린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항상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을 겔렌은 과잉 충동이라고 불렀다. 겔렌에 따르면, 이 과잉 충동이 없었더라면 인간은 절대로 현재만큼 문명을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며, 지구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더 많은 것, 더 나은 것, 더 새로운 것을 향한 충동은 겔렌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느끼는 깊은 만족을 향한 욕구처럼 우리 본성의 일부이다. 타고난 본성을 거스르며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이것에 저항하는 사람은 불행해진다. 깊은 만족의 비결은 자신의 욕망을 인식하고금욕주의자처럼 억누르거나 부정하려고 하는 대신알맞게 제한하는 것이다. 라틴어에는 이것을 표현하는 산뜻한 낱말 temperantia가 있다. 이 낱말은 지나친 억제와 훈율보다는 올바른 배합의 기교를 암시해 산뜻하다. 요리를 망가뜨리지 않으려면 설탕이나 밀가루를 적정 분량 사용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154p

 

부를 좀 더 개인적으로 정의하면 비교적 쉽게 부에 이를 수 있다. 내가 코스타 스메랄다의 집이나 페라리를 소유하는 것을 부유하다고 이해한다면 평생 가련한 녀석으로 지낼 가능성이 아주 많다. 그러나 은행 예금액을 높이는 걸 포기하고서 가능한 한 많은 여가를 즐기고, 또 이 여가 시간에 나 자신을 돌볼 뿐 아니라 예를 들어 어딘가에서 명예직으로 종사하는 것을 부라고 일컫는 경우에는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 힘이 닿는 일에 내 자존심을 걸면 부자가 될 것이고,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에 내 행복을 걸면 가난할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 나는 내 인생의 절반을 훨씬 더 부유한 사람들의 그늘에서 보냈으며 다른 사람들의돈을 내 것으로 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동안에는 불행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이 아름답고 다른 사람들의 삶은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마치 해방된 것 같았다. 부는 욕구의 문제이다. 이른바 우리의 욕구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심지어 우리 본래의 욕구를 가로막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누구나 부를 누릴 수 있다. 다만 광고 업계가 우리를 설득하려고 하는 것과 조금 다를 뿐이다.

-2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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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4-05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여러모로 밑줄 많이 그으셨네요.
좋은 알맹이를 즐겁게 받아먹으면서
우리가 누리면서 나눌
'넉넉함(부자)'과 '홀가분함(가난)'을
깊이 돌아보면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피어나리라 생각해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4-04-05 23:42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좋은 글도 많았는데 전체적으로는 별로였다는.
오홍, '가난'을 우리말로 하면 '홀가분함'인가요?
없는 만큼 가볍다는 의미겠죠? 새롭네요 :)

2014-04-18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29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응모하는 알라딘 행운의 램프, 우와 연극 당첨되었다! 야호!

 

<에쿠우스>는 영화 <아마데우스>의 원작자로 유명한 극작가 피터쉐퍼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작품.

1973년 초연 이후 전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연극은 말 여덟 마리의 눈을 찌른 열일곱 살 소년 알란을 정신과의사 마틴이 치료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토록 말을 사랑하고 아꼈던 소년이 왜 그토록 잔인한 짓을 저지질 수밖에 없었는가....

지나친 신앙심을 가진 어머니와 TV조차 못 보게 하는 인쇄공 아버지 밑에서

학교도 다니지 않았던 알런.

그는 어릴 적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말에 매혹되어 말을 숭배하고 찬양하기에 이른다.

그런 그가 왜???

치료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소년의 숨겨진 내면세계도 흥미롭지만,

그 속에서 엄청난 갈등에 시달리는 마틴의 고뇌 또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나는 많은 소년들을 치료했지만 그들을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 '개성'이란 것을 빼앗아야 했지.

그런데 '정상'이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알런을 평범하게 만들어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어.

하지만 그에게서 '정열'을 빼앗아 과연 유일신의 세계로 돌려놓는 것이 옳은 일일까?

 

'신' 대신 '에쿠우스(라틴어로 '말'을 뜻하고 연극에서는 알런이 아끼는 말 '디제트'를 가리킴)'를 숭배하면서 위로 받고,

남몰래 어두운 들판으로 나아가 말을 타고 신과의 합일을 경험하며 환희를 느꼈던 알런.

그에게서 그 흥분되고 짜릿하고 생생한 열정을 빼앗아가는 것이,

'정상'으로 돌려놓겠다는 명목으로 그렇게 하는 일이 맞는 것인지... 나 또한 곰곰 생각해보게 되었다.

 

섹시한 근육을 가진 인간들로 대체된 여덟 마리의 말들과 함께 펼치는 군무는 환상, 그 자체였다.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세계로 함께 이끌려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다고 느낄 때

무엇인가 그럴 듯한 것을 하는 척하면서 마음은 저 허공 어딘가를 떠돌 때

마음과 상상으로만 자유를 느끼고 정작 몸은 한정된 공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할 때

알런이 느꼈던 광기와 열정은, 여덟 마리 말의 눈을 찌르고서라도 경험해보고 싶은 것이다.

 

여러 생각들이 어지러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닌 연극이었다.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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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색 반신욕조를 샀다.

일본에서는 그 작은 집 코딱지만한 욕실에도 욕조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삼십분이고 한시간이고 반신욕을 했다. 보글보글 거품이 나는 욕조 안에서 멍때리고 있다가 나오면, 왠지 모를 상쾌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욕조를 없애는 게 추세라고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원래는 욕조가 있는 집이었지만 살던 사람들이 없앴다고 한다. 요즘 들어 폭발할 것 같은 불쾌함을 안고 있는 나로서는 더 이상 욕조 없는 삶을 이어가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인터넷에서 가장 싼 플라스틱 반신욕조를 샀다.

 

집에 사람이 없을 때 택배 아저씨가 왔다 갔다.

문앞에 거대한 핑크색 욕조가 반투명한 비닐에 싸여 있는 모습이 기이했다.

낑낑거리면서 욕조를 화장실에 갖다놓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욕조는 그 사랑스러운 빛깔에도 불구하고 스릴러나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투명비닐로 싸인 시체처럼 보였다.

 

화장실 문을 열 때마다 욕조가 생겼다는 기쁨보다는, 관 하나를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욕조에 물을 받고 그 안에 들어갈 때마다 관속으로 들어가는 연습을 하는 것 같다.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란 작고 별 볼 일 없는데,

나와 너는 뭘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거리는 거니?

묻고 싶어진다.

 

반신욕을 즐길 수 있다는 그 자체는 즐겁지만,

왠지 이 동거가 불편하기도 하다.

 

나는 욕조 하나만큼의 밥값은 하고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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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었는데도 출출하고 달달하고 부드러운 게 땡겨서 카페베네에 갔다. 커피는 낮에 마셨으니 스팀밀크와 허니브레드를 시켜서 신랑과 나눠먹었다.

 

가끔, 신랑과 카페에 온다. 카페에 오면 단둘이 마주앉아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분명 같이 사는 사람인데 오늘 누굴 만나 뭘 하고 왔는지, 입을 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결혼하고 나서 '그 많던 대화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싶어서 쓸쓸해지는 때가 있었다. 보통 나는 낮에 단골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하고 마니,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온 신랑과 카페에 가는 일은 드물다. 보통, 저녁을 먹고 뒹굴거리거나 티비를 보며 박장대소하거나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거나, 자잘한 일상으로 채워진 우리의 저녁시간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

 

어느날인가 우연히 밤의 카페를 찾았는데 집에 있을 때처럼 티비가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도 아니고, 해야 할 일상적인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볼 수밖에 없게 되었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란 것이 만들어지자, 의외로 여러 이야기들이 술술 나왔고, 그즈음 알 수 없던 신랑의 마음도 알게 되고, 나의 마음도 얘기할 수 있었다.

 

아, 부부란 가끔씩 밖에 나와서 진지하게 마주 앉아 대화를 해야 하는구나.

물리적인 방해요소들을 없애고 차분히 앉아 있으면,

그러면 굳이 뭘 이야기해야 생각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가 저절로 나오는 거구나. 싶었다.

 

나는 매일 내가 한 얘기를 신랑이 금방 까먹어버린다고 토라지지만, 나 역시 귀기울이지 않고 대충 흘려넘겼던 이야기들의 조각을 모아서, 허니브레드와 스팀밀크와 먹고 나니, 배도 부르고 졸음이 온다. 오늘은 달달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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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0-01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마음을 툭 터놓고 느긋할 만한 자리에 있어야
비로소 자잘한 것들 아닌
마음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구나 싶어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10-02 18:10   좋아요 0 | URL
그래서 환경이란 게 중요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